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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27

반해버렸어

지난 겨울 에디터의 마음을 뒤흔든 두 사람, 배우 백동현과 현대미술 작가 한선우

리넨 소재 세일러 칼라 톱과 팬츠 SONGZIO, 화이트 스니커즈 REKKEN.

소년 만화 주인공처럼 백동현
오랜만에 좋은 연극을 만났다. <에쿠우스>는 말 일곱 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 알런과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정상·비정상의 경계에 관한 고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지난 1월 막을 내렸건만, 역동적 무대연출과 휘몰아치던 감정선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기억의 중심엔 백동현이 있다. 알런 역을 맡은 그는 ‘대학로 라이징 스타’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폭발적 연기를 펼쳐 보였다. 이런 배우는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지난겨울 같은 시기에 <에쿠우스>와 뮤지컬 <종의 기원> 무대에 올랐는데,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웃음) 다행히 알런이 뜨거운 역할이라면 <종의 기원> 한유진 역은 차가운 인물이라 헷갈리진 않았어요. 3월 초 마무리되는 <종의 기원>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면 한숨 돌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럴 만도 하다. 2018년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교관 역으로 데뷔한 뒤 뮤지컬 <풍월주> 사담, <와일드 그레이> 알프레드 더글라스, <스메르쟈코프> 스메르쟈코프, 연극 <환상동화> 한스와 사랑광대까지 여러 작품에서 매번 결이 다른 배역을 맡으며 쉴 새 없이 달려왔다. “모든 작품이 소중하지만, <환상동화>의 사랑광대 역이 모멘텀이었어요. 평소 성격과 다른 유난스러운 역할이라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연기하면서 스스로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일까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캐릭터,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그려가는 초연작에 마음이 끌립니다.”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의 <종의 기원>이 딱 그런 작품이다. “한유진은 사이코패스 성향의 살인자예요. 이런 인물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니 접근 방식을 달리했죠. 제 생각이나 감정으로 채우기보다는 사이코패스가 어떻게 사고하고 움직이는지 조사하고 대입하며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한유진이 다른 인물을 만나 이질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는데, 여기에 집중해서 봐주시면 작품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예요.”
앞서 잠시 쉬어가겠다고 했지만, 올해 목표를 들으니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미뤄둔 운전면허부터 따려고요. 무대나 촬영장에 갈 때 운전이 꼭 필요하겠더라고요. 또 기회가 되면 영상 작품으로도 찾아뵙고 싶습니다. 언제부턴가 연극과 뮤지컬에 익숙함을 느끼고 새로운 시도를 겁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보다는 눈 딱 감고 해보려고요.” 굳게 다짐하는 얼굴에서 소년 만화 주인공이 떠올랐다. 마주한 도전은 피하지 않고, 혹여 부닥치고 깨지더라도 결국 멋지게 성장하는 주인공. 그런 백동현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브라운 컬러 오버사이즈 슈트 LEHA, 블랙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 한선우
1월과 2월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지금 우리의 신화>전이 열렸다. 한국의 예술 문화와 사회적 지형을 작업의 주요 영감으로 삼는 작가 3인의 신작을 소개한 자리로, 유럽 대표 갤러리가 국내 유망 작가를 발굴해 소개한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전시장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작품은 한선우의 ‘관찰’(2022)이었다. 정체불명의 생명체에 기계를 덧씌운 초현실적 풍경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동시에 첨단 기술에 의존하는 오늘날 우리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이런 작품은 대체 어떻게 탄생한 걸까.
“광고, 디자인, 음악, 패션, 일러스트 등 대학 시절 경험한 다양한 분야의 일들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던 성장 과정도요. 대다수 이민자나 소수 집단이 그렇듯, 어느 한 곳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떠도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포토샵으로 사진을 꾸미고, 드라마를 시청하고, 아이돌을 덕질하는 등 혼자만의 취미가 늘어났습니다. 자연스레 컴퓨터를 비롯한 기계와 가까워졌고, 대중문화에 드러나는 사회적 정서와 시대적 경향에 주목하게 됐죠.” 한선우는 방대한 리서치를 토대로 디지털 이미지를 선별한 후 포토샵 등으로 콜라주를 완성하고, 이를 회화로 다시 한번 옮기는 순서로 작업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성장한 세대라 전통 회화의 접근법과 디지털 매체를 혼용하는 방식에 익숙합니다. 동시에 코로나19 전후로 일상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며 고민하던 ‘신체 위치’를 탐구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두 세계를 넘나드는 현대인의 모습을 관찰하며 거기서 파생되는 사건과 질문을 작품에 담아내는 거죠.” 한선우의 작업에서 디지털 이미지는 온라인 환경을 떠도는 가상의 신체로 상정된다. 스크린 속 스케치를 회화로 변조하는 경유의 과정을 통해, 기술로 인해 변화하는 삶을 뒤틀리거나 과장된 신체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제 감정 상태나 신체 조건이 그림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표면상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두 매체 사이의 오묘한 격차에 주목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선우의 작품은 이렇게 바라볼 것을 권한다. “온·오프라인에서 겪은 일화, 주변 인물의 경험, 웹 기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재료로 하는 만큼 이를 알아보고 작게나마 공감해주시면 좋겠어요. 나아가 기술 사회를 살아가며 겪는 형용하기 어려운 불안, 공포, 욕망 같은 감정이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기억해두자. 앞으로 한선우의 작품을 마주할 일이 더욱 많아질 테니.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
헤어 & 메이크업 강다슬
패션 스타일링 정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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