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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25

막이 오르기 전

<베토벤> 개막을 앞두고 만난 EMK 엄홍현 대표의 무대 뒤 이야기는 뮤지컬보다 더 뮤지컬 같다.

EMK뮤지컬컴퍼니 대표 겸 총괄 프로듀서 엄홍현.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2022년 공연 티켓 판매액은 5588억 원이었다. 이 중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약 4252억 원, 전체 판매액의 76.1%를 차지했다. 국내 뮤지컬 시장 매출액이 4000억 원을 넘긴 건 지난해가 처음으로, 코로나19가 야기한 공연계의 암흑기를 딛고 이뤄낸 성과라 더욱 뜻깊다. 여기서 EMK뮤지컬컴퍼니(이하 EMK)의 공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가장 높은 티켓 판매 수를 기록한 <웃는 남자>를 비롯해 <마타하리>, <프리다> 등을 무대에 올려 극적 반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23년에도 기세를 이어갈 예정으로, 1월 중순 개막한 EMK의 다섯 번째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 <베토벤>으로 포문을 열었다.
사실, 기사 작성 시점에는 <베토벤>의 막이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단정적으로 성공을 예견할 수 있는 건 EMK 대표이자 총괄 프로듀서 엄홍현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뮤지컬이 성행하던 국내시장에 <몬테크리스토>, <더 라스트 키스> 등 유럽 뮤지컬을 들여와 흥행 불패 신화를 쓴 인물. 2016년 <마타하리>를 기점으로 꾸준히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7년을 공들여 만든 <베토벤>은 그간의 뮤지컬 제작 노하우를 총망라한 대작이다.





위쪽 EMK의 첫 번째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는 2022년 8월 세 번째 시즌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아래쪽 쿤체-르베이 콤비가 완성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EMK는 2014년 초연 당시 무대, 의상, 안무는 물론 대본과 음악까지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게 대대적 수정을 거친 한국 프로덕션만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탄생시켜 호평받았다.

“출발점부터 특별한 작품이에요. 스타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가 베토벤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고, 전 세계 유명 제작사들이 이 작품의 프로덕션이 되기 위해 경쟁했습니다.” 그중 EMK의 규모가 가장 작았지만, 엄홍현 대표는 자신 있었다. <모차르트!>, <레베카>, <마리 앙투아네트> 등 쿤체-르베이 콤비의 기존 작품을 로컬라이징해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줬기 때문. “뮤지컬을 들여올 때 음악과 대본을 제외한 연출, 무대, 음향 등에서 재창작의 여지를 두는 ‘스몰 라이선스’ 계약을 지향해왔습니다. 이것저것 수정한다고 하니 쿤체-르베이 콤비는 처음엔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지만, 재연·삼연마다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니 이제는 EMK를 전적으로 믿어줍니다. 여기에 세계 톱클래스 수준의 한국 배우들까지 있으니 못할 일이 없죠.”
<베토벤>은 음악가로서가 아닌 인간 베토벤의 면모를 담아낸 작품으로 ‘월광’, ‘비창’ 등 베토벤의 오리지널 음악을 모던하게 재해석한 곡의 향연이 펼쳐진다. “작품에 맞게 새로운 곡을 쓰는 것보다 기존 곡을 완성도 있게 변주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한데 그 어려운 걸 르베이가 해냈습니다.(웃음) 르베이는 ‘<베토벤>을 통해 뮤지컬 음악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클래식 음악을 더욱 친숙하게 느낄 기회를, 클래식 애호가에게는 작품의 음악을 통해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고 했는데요. 그 의도에 맞게 클래식과 뮤지컬을 서로 가까이 두고자 했습니다. 오케스트라 파트를 관객에게 잘 보이도록 재배치했는데, 연주자들이 시대 배경에 맞는 가발과 복장을 착용하고 베토벤이 오케스트라 파트로 내려가 합을 맞추는 등 그간 없던 장면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베토벤>이 뮤지컬계와 클래식계를 잇는 문화적 가교가 되었으면 합니다.”
몇 년 사이 EMK는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 제작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당장 오는 12월 EMK의 여섯 번째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의 월드 프리미어 초연이 예정돼 있다. 해상왕 장보고가 주인공인 <오션스>,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과 관련한 미스터리를 다룬 <한복 입은 남자>, 인기 드라마 원작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앞으로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 라인업도 충실히 갖췄다. 흥미로운 점은, 엄홍현 대표가 2010년 라이선스 뮤지컬 <모차르트!> 흥행으로 인터뷰할 당시부터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 제작을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이다. 신생 제작사였던 EMK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큰 도전이었을 터. “그래도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이 답이었습니다. 당시 국내 뮤지컬 시장 규모는 2000억 원이 채 되지 않았고, 여기서 EMK가 몇 %를 차지하는지 따지는 건 의미 없어 보였어요. 그렇다면 세계시장으로 나아가야죠. 또 라이선스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며 로열티를 지불하는 게 아쉬웠고, 장기적으로 로열티를 받는 제작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길은 정해졌으니, 다음 단계는 어떤 작품을 개발할지 고민하는 거였죠.”





위쪽 <웃는 남자>는 제7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 6관왕, 제3회 한국뮤지컬어워즈 3관왕, 제6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뮤지컬 부문 최우수상, 제14회 골든티켓어워즈 대상 및 뮤지컬 최우수상을 휩쓸며 4개의 뮤지컬 시상식 작품상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그랜드슬램’ 작품이다.
아래쪽 EMK의 첫 유럽 뮤지컬 <모차르트!>는 오는 6월 통산 일곱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마타하리>, <웃는 남자>, <엑스칼리버>, <프리다>, <베토벤>. 지금까지 월드 프리미어로 선보인 EMK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은 모두 해외가 배경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마타하리>를 예로 들면, 우선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싶었어요. 남자 스파이는 흔하니 여자 스파이로. 이야기의 모티브가 될 국내 인물도 찾아봤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겠더군요. 반면 마타하리는 익숙하죠. 그런 관점에서 접근한 <마타하리>, <웃는 남자>는 해외에서 로열티를 받는 작품이 됐습니다. 더없이 만족스러운 결과지만, 시대가 바뀐 걸 느끼고 EMK도 다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변화를 눈치채긴 했다. 앞서 소개한 <오션스>, <한복 입은 남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모두 한국 고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을 만드는 데 5년 정도 시간이 걸려요. <베르사유의 장미>까지 기존 접근법으로 완성한 작품이라면, 이후에 나올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은 몇 년 사이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BTS, <오징어 게임> 등의 성공이 그의 생각을 바꿨다. “더 이상 소재가 중요한 게 아니더군요. 관건은 좋은 콘텐츠 자체입니다. 한국인으로서 우리 이야기가 세계에서 인정받았으면 하는 생각은 늘 있었는데, 그걸 받아줄 수 있는 시대가 왔어요.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을 배경으로 한 EMK 작품이 해외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국내 창작진의 성장은 EMK의 비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해 호평받은 <프리다>, 곧 선보일 <베르사유의 장미>는 국내 창작진이 연출과 작곡, 작사를 맡은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이다. “세계 진출을 목표로 한 만큼 해외 창작진과의 작업을 주저하진 않아요. 그들과 함께하며 많이 배웠고, 이젠 부족한 부분이 보여도 스스로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국내 창작진의 실력도 많이 높아졌죠. 요새 소극장을 다니면 작품 퀄리티가 높아서 깜짝 놀랍니다. 자연스레 국내 창작진만으로도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K-팝, K-무비, 이어 K-뮤지컬을 외친 지도 몇 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보면 진정한 K-뮤지컬의 막은 이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EMK 설립 당시 즐겁게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는 엄홍현 대표는 어느덧 뮤지컬계를 이끄는 입장이 됐다. “당시엔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웃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캐치해 한 작품씩 최선을 다하던 것이 <베토벤>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거창한 목표를 세우려 하진 않아요. 문화란 끊임없이 유동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변화의 흐름을 읽고 유연하게 맞춰나가야죠.” 식상하지만 중요한 질문, 그에게 뮤지컬은 무엇일까. “다른 일을 했어도 잘했을 거라는 얘기를 종종 들어요. 고마운 말이지만, 이제 뮤지컬 말고 다른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뮤지컬이 제 전부인 거죠. 뮤지컬로 쓰러진다 해도, 다시 저를 일으키는 건 결국 뮤지컬일 겁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JK(인물)
사진 제공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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