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김현철의 목소리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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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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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김현철의 목소리

17년 가까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그의 섬세한 감성.

중학생 때부터 라디오를 들었다. 자신만의 시간이 절실하던 중딩은 저녁을 먹자마자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 라디오를 틀었다. 소형 CD플레이어에 이어폰을 꽂고 이문세와 김현철, 신해철, 유희열, 배유정 같은 DJ의 방송을 들었다. DJ의 말과 그들이 읽어주는 또 다른 나의 사연에 귀 기울였다. 그건 아주 은밀한 시간이었다. TV처럼 모두의 것이 아닌, 나 개인의 것처럼 느껴졌다. 본 적 없는 타인과의 대화였으며, 세계의 확장이었다. 거기엔 음악과 영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며 사춘기를 버텼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고등학교를 지났고, 군에 입대하고 제대를 앞둔 몇 달의 새벽도 라디오와 함께했다. 아직도 잠들지 못하는 새벽이면 라디오를 켠다. 밴드 ‘더 버글스(The Buggles)’가 1978년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발표하며 라디오 시대의 종말을 예고했지만, 내게 라디오는 여전히 가장 첨예하면서도 상징적인 미디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엔 DJ 김현철이 있었다. 김현철의 <디스크쇼>는 매일 밤 11시에 시작해 새벽 1시에 마쳤다. 그 두 시간 동안의 대화는 사춘기 소년에게 꽤 유익했다. 1950년대 모타운 레코드의 음악이나 퀸시 존스, 베이비 페이스가 만든 음악을 접했고, 심지어 남미의 보사노바나 스페인의 파두(Fado) 같은 제3세계 음악도 만났다. 그때 만난 여러 뮤지션과 앨범이 여전히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다. 그리고 어떻게 세상을 대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김현철은 어느덧 11집 발매를 앞둔 뮤지션이며, 오후 11시가 아닌 오전 11시 마이크 앞에 선다. 그는 여전히 세련된 선곡 리스트를 뽑아내며, 스피커에 귀 기울이는 청취자와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능수능란한 DJ다. 2021년 6월 4일 <골든디스크> 방송을 마치고 정오에 그를 만나 라디오와 얽힌 추억 그리고 음악 이야기를 나누었다.





계속 흐리더니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오늘 방송의 첫 곡은 무엇이었나요? 제퍼슨 스타십의 ‘Nothing’s gonna stop us now’였어요. 오늘처럼 화창한 날에 어울리는 곡이죠.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골든디스크>를 듣다 보면 반가운 곡을 만나게 돼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지금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곡. 담당 PD가 김현철 DJ는 메뉴 선정과 선곡에서 탁월한 감각이 있다고 했어요. (웃음) 음식에 대해서는 맞아요. 먹는 걸 좋아하니까. 선곡에서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아침에 출근하는 차 안에서 생각하죠. 오늘은 어떤 노래를 함께 들을까? 주로 제가 듣고 싶은 곡으로 선곡하는데, 좋아해주니 고마울 뿐입니다.
<골든디스크>도 자주 듣지만, 개인적으론 밤에 진행하던 방송에 대한 기억이 더 많아요. <디스크쇼> 같은 방송. 지금 생각하면 운이 좋았어요. 그때 라디오는 밤 시간이 하이라이트였거든요. 아직 어린 데다 쟁쟁한 DJ가 많았는데, 제가 맡게 된 거죠. 라디오 DJ는 어릴 때부터 꿈이었어요. 그때 이종환 선배가 낮 시간에 <디스크쇼>를 하고 계셨어요. 축하한다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에 오래 남네요.
김현철 DJ도 라디오를 듣고 자랐나요? 그럼요. 굳이 따지자면 라디오 세대죠. <골든 팝스>나 <디스크쇼>, <2시의 데이트> 같은 방송을 많이 들었어요. 음악도 그때 많이 들었죠. 여러 뮤지션도 알게 됐고.
낮과 밤, 두 시간대의 매력이 다를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어떤 시간대를 더 좋아하세요? 성격이 좀 달라요. 활기찬 에너지와 차분히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서로를 응원하는 것,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는 것. 모두 사랑해요.
청취자의 성격도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마 같은 분들일 것 같아요. 20년 전 라디오를 듣던 10~20대가 사회에 나와 가정을 꾸리고 일상을 보내다 라디오를 켜는. 라디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듣거든요. 고민이나 관심사가 그때와 다를 뿐,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16년 정도 라디오를 진행했는데, 한 가지 일을 이렇게 오래 할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전 라디오를 좋아해요. 좋아하니까 10년, 20년 할 수 있겠죠? 여건만 되면 30년도 할 수 있을 거예요.(웃음)
처음 방송할 때를 기억하세요? 어렴풋이 기억나요. 매우 떨렸고, 설레던 느낌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방송국에 너무 고맙죠. 마이크를 열어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특히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인을. 심지어 녹화도 아닌 생방송인데. 가끔 힘들면 그런 생각을 해요.
DJ는 시간에 제약이 많아요. 아티스트로서, 또 자연인으로서 여러모로 불편한 게 많을 것 같아요. 다행히 1년에 한 번 4박5일 정도 여행을 갈 수 있어요. 전부 녹음을 해두거나 임시 DJ를 구하기도 하죠. 사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4박5일 정도 쉬면 되지 않을까요?(웃음) 너무 많이 쉬는 것도 안 좋아요.
김현철 DJ의 방송을 들으면서 팝을 많이 배웠어요. DJ의 취향이라고 할까요. 그때 추천해주신, 방송에서 들려주던 노래가 어느새 제 취향이 되더라고요. ‘티-스퀘어’나 ‘카시오페아’ 같은 밴드 음악은 <디스크쇼>에서 처음 듣고 지금도 좋아하는 뮤지션이에요. 라디오 프로그램마다 성격이 달라요. DJ로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게, 이제껏 맡은 프로그램에서 선곡을 믿고 맡겨줬다는 거예요. <골든디스크>도 올드 팝 위주로 들려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제가 DJ를 맡고 조금 변화가 있었어요. 올드 팝 그리고 자주 듣지 못했을 것 같은 음악. 특히 ‘현디 맘대로’라는 꼭지가 있는데, 말 그대로 DJ 마음대로 선곡하는 코너예요. 조금 튀지 않나 싶었는데, 반응이 괜찮아요. 오늘 현디 맘대로에선 조지 벤슨의 ‘I just wanna hang around’를 틀었어요. 이런 것들이 쌓여 지금의 <골든디스크> 색이 완성되는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게, 생방송 중 번개 모임을 했어요. 맞아요.(웃음) 그땐 그런 낭만이 있었어요. 몇 번 했는데, 시작이 아마 음식 이야기였을 거예요. 혹시 자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만나서 가볍게 소주 한잔하자는 취지였죠. 몇 명이나 올까 했는데 첫 만남 때 60명 넘게 모였어요.(웃음) 새벽이라 갈 곳이 없어 홍대까지 걸어간 기억이 나요.





팬데믹으로 목소리라는 매개체가 주목받고 있어요. SNS라든가 라디오도 그 중 하나고요. 아, 그건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네요. 그런데 한편으론 팬데믹이 종식되고 사라질 현상이라면 허수라고 봐요. 이 시기가 지나고 나서도 라디오가 다시 주목받는다면 그땐 정말 의미 있는 거겠죠.
전에 비하면 라디오 청취가 많이 줄었어요. 개인적으로 많이 안타까워요. 5분의 1로 줄어든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안타깝지는 않아요. 그냥 시대의 흐름이고, 여러 플랫폼이 생기니까 흩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요? 다만 지금도 라디오를 듣는, 또 여전히 라디오를 사랑하는 청취자에게는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라디오라는 플랫폼 특유의 감성이 있어요. 그럼요. 그건 제가 라디오를 듣던 어린 시절이나 10~20년 전 진행을 처음 맡았을 때, 그리고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라디오는 혼자 듣는 미디어잖아요. 물론 크게 틀어놓고 함께 듣는 사람도 있지만, 주로 자신만의 공간에서 작은 스피커를 통해 듣죠. 그리고 DJ가 말하는 게 청취자에겐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저도 방송할 때 청취자 한 명 한 명과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진행해요.
<골든디스크>는 라디오라는 플랫폼에서 특별한 방송이죠. DJ 요청을 받았을 때 어땠나요? 방송을 맡기 6개월 전 다른 라디오 DJ에서 하차했어요. 14년 만에 10집 앨범 녹음을 앞두고 있었거든요. 작업이 한창일 때 MBC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놀면 좋냐”고.(웃음) 그러면서 오전 11시 프로그램은 어떠냐고 묻길래 좋다고 했어요. 전 오후 시간보다 오전 11시가 좋거든요. 요즘 라디오는 오후 4~5시까지 발랄한 분위기가 있어요. 그래서 제게 더욱 맞는 시간대라고 생각했죠. 평소 즐겨 듣던 방송이기도 했고요.
<골든디스크>도 분위기가 밝던데요. 아, 밝죠. 발랄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밝음이라고 할까. 제가 원래 밝아서 그런 것 같아요. 라디오 프로그램도 결국 DJ의 성격을 따라가거든요. 아직 ‘<골든디스크>는 이런이런 방송이다’라고 정의하기 어렵지만, 제 성격과 많이 닮아가는 것 같아요.
청취자의 사연을 읽어주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아는 사람 넋두리 들어주듯 편안하더군요. 사연은 거의 다 읽으려고 해요. 요즘은 스마트폰이 좋아 금세 읽어요. 예전엔 멋있는 말을 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웃음) 대학생 때 여자 앞에서 멋있어 보이려던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지금은 그냥 같이 걱정하고 고민해주고, 또 위로해주는 게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생활과 더 가까워진 듯해요.
김현철은 왜 라디오가 좋나요? 그냥 좋아요. 별다른 이유가 없어요. 여러 추억이 있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그리고 지금 라디오국 국장이나 PD, 작가, DJ까지 모두 라디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다 보니 이야기가 잘 통하는 거죠. 어릴 때 라디오 켜놓고 DJ 놀이를 하던 기억이 나요. 그때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행운이에요. 좋아할 수밖에 없죠.
라디오 DJ이기 전에 31년 차 뮤지션이에요. 음악 활동을 하는 모습도 보고 싶어요. 그렇게 됐네요. 1989년에 데뷔했으니 오래됐어요. 며칠 후 정규 11집 앨범이 나와요. 제가 잘하는 빠르고 비트 있고 밝은, 그런 음악. 총 일곱 곡이 들어 있는데, 이번 앨범은 제가 직접 노래를 다 불렀어요.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김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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