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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28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 헤메다

한국계 덴마크인이 말하는 정신적 고향, 제주에 관한 작품에 관하여.

제인 진 카이젠의 ‘Each Sorrow’. Photo by David Stjernholm





제인 진 카이젠. 1980년 제주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됐다. 현재 전 세계를 무대로 영상 및 비디오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제인 진 카이젠의 이름은 지난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통해 여러 차례 접했을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한국관 작가에 낯선 외국인 이름이라니. 하지만 제인 진 카이젠의 뿌리는 한국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제주. 아주 어릴 때 덴마크 가정으로 입양된 그녀는 그래서인지 작품에 종종 디아스포라, 정체성, 이주, 페미니즘 같은 주제를 담아내곤 한다.
그런 그녀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은 제주를 연구한 ‘이별의 공동체’다. 72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비디오 설치와 2분 58초 분량의 퍼포먼스 영상으로 이뤄진 작품은 제주의 무속 신화 ‘바리공주’를 모티브로 했다. 2011년 작가는 ‘제주4·3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제주의 무속 문화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고. “먼저 간 이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제주 무속인들의 역할에 마음이 갔어요. 특히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그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죠. 이곳의 무속 신앙은 땅과 소외된 기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대체로 젠더화되고 체현된 ‘미적’ 실천이라고 저는 해석했어요. 작가로서 이러한 무속 신앙과 환경의 밀접한 연결 고리가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하나 덧붙이자면 ‘이별의 공동체’는 당시 제가 만난 고순안 심방(무당)과의 인연으로 시작됐어요.”
그런데 왜 바리공주였을까? 먼저 바리공주 신화부터 살펴보자. 한 왕국의 일곱 번째 공주로 태어나 버림받은 바리공주. 이후 왕과 왕비는 죽을병에 걸려 바리공주를 다시 찾고, 그녀는 그들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무상신의 약려수를 구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부모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하지만 그녀가 구해온 약려수로 그들을 다시 살리고, 왕국의 절반을 주겠다는 왕의 제안을 뒤로하고 지상과 지하를 잇는 신이 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작가는 한 명의 입양인으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던 중 이 바리공주 신화에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고 한다. 영역과 영역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주변부’의 존재, 즉 지상 세계와 죽은 자들의 세계를 왕래할 수 있고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바리공주에게 자신의 ‘디아스포라적 경험’이 투영됐다고 본 것이다. 특히 김혜순 시인의 바리공주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시인은 바리공주 신화를 근본적으로 여성 범죄에 대한 페미니스트 신화로 해석했어요. 저와 같은 시각을 공유했죠. 바리공주는 ‘버려짐’의 개념을 소외와 상실이 아니라 ‘주체성’과 ‘중재’의 능력으로 재해석하는데, 인간의 문화가 부여한 가부장적 규범과 국경의 논리를 거부하고 중재자 역할을 하는 무당의 길을 선택한 바리공주의 이야기에서 내외부의 경계를 탐색하고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인 진 카이젠의 대표작 가운데 ‘Sweeping the Forest Floor’와 ‘Community of Parting’ 설치 전경. Photo by David Stjernholm





‘Each Sorrow’의 상세 이미지. Photo by David Stjernholm

구전되는 한 편의 무속 신화에서 이러한 페미니즘적·디아스포라적 맥락을 읽어낸 제인 진 카이젠. 이 이야기를 재해석하기 위해 작가는 제주에 1년여간 머무르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 리서치를 진행했다. 직접 제주 곳곳을 찾아 촬영하고, 자료를 모아 연구하고 또 이에 관한 자기 생각을 글로 정리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바리공주를 개념화했다. 작가는 특히 ‘수집하는 자료’가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이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나 개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긴 시간을 쏟아 작업을 진행했지만, 제주는 작가에게 ‘고향’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인 진 카이젠은 현대미술 작가라는 자신의 ‘신분’과 관련해 정신적으로 자신이 난 곳에 대해 다층적으로 이해하고 유대감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피력했다. 그녀는 특히 제주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 암반과 성상 등 자연에서 깊은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뿐 아니라 그곳의 자연에서 뼈아픈 역사의 흔적을 바라본다. “제가 탐구한 제주의 자연은 제주4·3사건과 같이 역사적으로 상처를 입은 곳이지만 동시에 자양과 재건을 위한 양분의 축적지이기도 해요. 이러한 유대감은 ‘이별의 공동체’를 비롯해 ‘Reiterations of Dissent’나 ‘Each Sorrow’ 같은 작품을 통해서도 탐구해왔어요.” 결국 그녀가 오랫동안 탐구한 주제인 기억, 이주, 젠더,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볼 때 제주는 제인 진 카이젠의 작가로서 관심사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장소다.
그곳만의 도서(島嶼) 문화에 매료되고 제주가 아닌 다른 도서 지역 문화와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었던 작가는 보편적 국사(國史)에서 소외되어 흘러간다는 점과 자급자족 문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점, 동시에 육지와 바다의 접점에서 비롯한 방재력에 깊이 공감한다. 변두리로 내몰려 소외된 이야기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제인 진 카이젠. 이미 지나가 다루기 어려운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것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를 말하는 것임을 제주에 대한 연구와 작업으로 증명해낸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제공 제인 진 카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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