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 보타니아는 누가 만들었을까?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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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17

외도 보타니아는 누가 만들었을까?

거제도에서 15분 가량 들어가면 '꿈과 환상의 세계', 보타니아가 펼쳐진다.

위쪽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건축 기둥이 인상적인 비너스정원에서 만난 최호숙 회장.
아래쪽 리하우스 앞에 선 최호숙 회장. 파란 화병은 최 회장이 직접 서울에서 구입했다.

며칠 전 한 포털 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김병만, 31번 도전 끝 파일럿 됐다. ‘죽기 전까지 꿈꿀 것’ ”. 순간 눈을 의심했다. 신기하게도 전날 거제도 옆 작은 섬 외도에서 만난 섬 주인 최호숙 회장이 인터뷰 말미에 남긴 문장과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출발해 꼬박 6시간을 남쪽으로 달리면 거제도 앞바다에 있는 자그마한 구조라선착장이 나온다. 그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15분가량 들어가면 한 어드벤처 파크의 주제곡 가사 같은 ‘꿈의 나라, 환상의 세계’를 눈앞에 맞닥뜨리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드넓은 숲이 두 팔 벌려 끌어안는 곳, 바로 외도다. 정확히 말하면 최호숙 회장의 개인 소유 섬, 외도 보타니아(구 외도해상농원)다.
거제도는 안쪽으로는 내도, 바깥으로는 외도로 구성되어 있다. 작은 섬이 모여 내도와 외도를 이루는 구조로, 두 섬 모두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역에 포함된다. 거제도가 천혜의 자연풍광을 자랑하게 된 데에는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섬이 많은 리아스식해안이라는 특성이 큰 역할을 하지만, 사람들이 남해안의 아름다운 해안을 뒤로하고 거제도를 찾는 이유는 외도 보타니아(이하 외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동남아시아의 휴양지가 떠오르는 이국적 절경과 에메랄드빛 바다, 섬 전체를 채운 빽빽하고 아름다운 숲과 나무, 섬 어느 곳에서도 조금만 시선을 옮기면 해금강을 품은 시원한 남해 앞바다가 펼쳐지는 외도는 사계절 푸른 지상낙원 그 자체다.





왼쪽 관광객이 외도 보타니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이곳을 보호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쾌적하게 관광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사진처럼 외도는 거대한 토피어리가 멋진 절경을 선사한다.
오른쪽 외도 보타니아의 건축물은 모두 건축가 강병근의 작품이다. 자연 속에 묻힌 건축, 자연의 일부가 된 건축을 볼 수 있다.

운명처럼 이끌리다
1995년 외도해상농원으로 지정, 2005년 외도 보타니아로 이름을 바꾼 뒤 지금까지 2000만 명 넘는 관광객이 방문했지만, 사람들은 이곳이 최호숙 회장 개인 소유의 섬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최호숙 회장은 1969년 남편인 고 이창호 회장과 함께 외도에 낚시하러 왔다가 하룻밤 묵으면서 이곳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남편이 평안남도 순천 사람이었어요. 대동강가에서 자라 워낙 수영을 잘하고 낚시를 좋아했죠. 낚시를 왔다가 하룻밤 자게 됐는데, 여기가 그렇게 좋았나 봐요. 그 인연으로 여기에 작은 집을 하나 샀어요. 늙으면 낚시질이나 하며 살겠다는 요량이었죠.”
하지만 외도 원주민은 대부분 도시로 나가고 싶어 했다. 부부는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집을 한 채 한 채 구입했고, 외도 땅과 산도 조금씩 매입하다 보니 3년 만에 4만8000평(약 15만8700m²)에 달하는 외도 전체가 부부의 소유가 되었다. “그 정도로 무모했어요. 특히 남편은 한번 결정하면 앞만 보고 직진하는 스타일이었죠.”
본래 초등학교 교사인 최호숙 회장과 고등학교 교사인 남편의 월급으로 섬을 산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부부는 최 회장의 언니에게 동대문의 직물상을 인수해 운영하면서 어느 정도 돈을 모았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섬마을 전체를 사들이면서 지독한 고생길, 아니 고행길이 시작됐다.
우선 부부는 주민들이 고구마를 심던 밭에 밀감나무 3000그루와 편백나무 8000그루를 심어 농장을 조성했다. 그런데 유례없는 한파가 들이닥치며 부부가 정성스레 피땀 흘려 가꾼 농장이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그렇다고 쉽게 무릎을 꿇을 순 없었다. 폐교된 구조라 분교 터를 이용해 돼지 80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엔 한우 파동과 양돈 파동이 겹치며 더 이상 돼지를 사육하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망연자실 주저앉아 넋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꽃을 좋아하던 부부는 꽃과 나무를 재배해 거대한 식물원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뒤 본격적으로 정원을 조성했다.
지금이야 차 한 대 다닐 수 없는 외도에서도 무거운 짐은 전동 카트로 옮기지만, 1970년대는 거제도에서 외도까지 작은 고깃배로 오가던 시절이었다. 자그마한 배에 건축자재와 꽃나무 등을 실어 나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선착장도 마땅치 않아 배에서 내리려면 그때마다 나무다리를 육지에 연결해 하선할 정도였다. 게다가 파도가 성질을 부리기라도 하는 날엔 꼼짝없이 거제도 선착장에 발이 묶여, 눈앞에 외도를 두고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한번은 서울에서 트럭 가득 꽃을 싣고 거제도에 내려왔는데, 파도가 쳐서 며칠을 외도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2~3일을 기다려도 바다는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죠. 파도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사이 트럭에 있던 꽃이 모두 시들어 쓸모없게 되었어요.” 얼마나 속상했는지, 지금도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다고 했다. “사람이 어떤 일에 미친다고 하잖아요. 지나고 보니, 미치지 않고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남편은 외도에, 최 회장은 아이 넷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서울과 외도를 오가며 정비에 몰두했다. 발동기를 이용해 우물을 파고 정원에 물을 공급하며 꽃과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화훼 단지 조경 계획을 세운 것도, 지금 관광객이 걷는 산책로를 디자인한 것도 모두 부부였다. 그사이 태풍으로 선착장이 파괴되어 일곱 번이나 재건하고 자연재해에 가까운 피해를 입기도 수차례였지만, 그때마다 최 회장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우직하게 한길을 가고자 한 남편 덕분이다. 2003년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혈압으로 쓰러져 며칠 만에 하늘나라로 갔을 때, 최 회장은 절망에 휩싸였다. 거제도의 작은 섬에서 남들이 도리질할 정도로 힘들고 외로운 길을 30년간 함께 걸으며 무에서 유를 창조했는데, 하루아침에 평생의 반려자가 사라졌을 때의 막막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 부부는 외도를 가꾸면서 정말 많이 싸웠어요. 몸은 힘들지, 일은 진척이 안 되지, 섬이다 보니 몇 시간 훌쩍 떠나 바람 쐬고 올 곳도 없지, 둘 다 체력이 바닥날 즈음엔 서로 해서는 안 될 말도 많이 했어요. 상처를 많이 줬죠. 그게 너무 마음 아팠어요.”
이토록 아름다운 외도를 만든 건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인데, 그 행복을 위해 맞바꾼 시간은 지치고 힘든 과정이었다. 1995년 외도해상농원으로 개장한 뒤 2000년에는 연 관람객 100만 명을 돌파하고 2002년에는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인기를 얻으며 외도가 본격적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바다의 날 대통령상 수상, 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 그리고 누적 관람 인원 1000만 명에 이어 2000만 명 돌파라는 창대한 봄을 보지 못하고 고인이 된 남편이 최 회장은 지금도 안타깝다. “살아 있을 때 제가 남편에게 ‘우리 이런 걸 좀 해볼까요?’ 하면 우리 영감은 늘 ‘이것만 끝내고 봅시다’, ‘이것만 마무리하고 봅시다’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영감이 ‘봅시다’로 마무리한 인생인 것 같아 너무 아쉬워요.”





위쪽 외도 보타니아에선 남해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아래쪽 외도 보타니아의 50여 년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메모리얼 갤러리 내부. 정원을 관람한 후 마지막 코스인 이곳에선 고 이창호 회장과 최호숙 회장이 외도를 위해 쏟은 노력과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여행의 품격
4월 중순이면 외도에 본격적으로 꽃이 피기 시작한다. 다홍색 크로코스미아와 연보라색 무스카리, 노랗고 빨간 튤립 등 수십 종류의 아름다운 꽃이 외도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선인장. 알로에 . 용설란 . 덕구리란 등이 모여 있는 ‘선인장가든’, <겨울연가> 마지막 장면의 배경이 된 ‘리하우스’, 대나무와 자연림이 우거진 터널 ‘뱀부로드’, 사계절 다양한 꽃을 감상하는 ‘벤베누토 정원’, 편백나무 8000그루를 심은 ‘천국의 계단’, 프랑스식 연못과 조형물이 일품인 ‘물의 정원’, 김광재 작가의 대리석 조각 작품이 즐비한 ‘조각공원’, 옛 주민이 마을의 안녕과 풍어제를 지내던 수령 300년 된 당산나무가 있는 ‘사랑의 언덕’, 정상에 위치한 ‘전망 카페’ 등 외도는 공간의 특성을 살린 약 16개의 소정원과 건축물이 산책로 코스를 따라 조성되어 있다.
부부의 땀과 노력, 눈물이 배지 않은 곳이 없지만, 최 회장이 특히 애정을 갖는 공간은 사택으로 사용하는 리하우스(Lee House) 앞으로 넓게 펼쳐진 비너스가든이다. 오래전 초등학교 분교였던 이곳은 버킹엄궁 후정을 모티브로 꾸민 공간으로, 최 회장이 직접 구상하고 설계한 외도 보타니아의 대표 정원이다. 외도의 정원사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이곳은 그리스식 야외 음악당이 연상되는 건축물과 곳곳에 놓은 우아한 비너스 조각상이 일품. 지난해 성큰가든 형식으로 다시 꾸미면서 관광객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 “아직은 성큰가든에 식물이 다양하지 않지만, 여름이 오면 많은 변화를 줄 수 있어요. 수채화 같은 그림의 정원이 가능하죠.”
외도의 모든 꽃과 꽃나무는 섬 내부에 마련한 온실에서 절반을, 서울 양재동 꽃 시장에서 절반을 공수한다. “방문객이 보는 공간이 전부가 아니에요. 외도의 아름다운 정원을 보여주기 위해 작업하는 공간이 외도 곳곳에 마련돼 있죠.” 온실에서 재배하는 식물만으로 외도의 정원을 완성할 수 없어 최 회장은 지금도 2주에 한 번은 꼭 양재동 꽃 시장을 방문해 꽃과 소품을 구입한다. “지금도 꽃 시장에는 늘 새로운 꽃이 나와요. 수입하는 꽃이 많으니까요. 저는 제가 보지 못한 새로운 꽃을 접할 때마다 늘 기적을 만나는 기분이 듭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 사유지가 문화시설 지구로 허가받은 건 외도 보타니아가 처음이다. 문화시설 지구로 지정되었지만 선착장 시설을 제외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크게 지원받는 건 없다. 외도의 시설을 정비하고 관광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원천은 입장료와 외도 내 식음료 시설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충당한다. “사람들은 겉만 보고 ‘돈을 많이 번다’, ‘성공했다’고 하는데, 일반 사업가의 계산기로 두드릴 때 이 사업은 망한거나 마찬가지예요.”





위쪽부터 이탈리아어로 ‘환영합니다’라는 의미를 담은 ‘벤베누토 정원’. 봄에는 튤립과 양귀비, 여름에는 수국과 천사의 나팔, 가을에는 란타나와 부시세이지, 겨울에는 동백과 피라칸사 등이 정원을 수놓는다.
영국 버킹엄궁 후정을 모티브로 최호숙 회장이 직접 구상하고 설계한 비너스 가든은 외도 보타니아를 상징하는 대표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거제도 구조라선착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구조라해수욕장 앞에 최시영 건축가가 설계한 온실 카페 ‘외도 널서리’가 있다. 인스타그램 성지로 소문난 이 카페는 현재 최호숙 회장의 막내딸 이남경 이사 부부가 운영 중이다. 유자 등 거제 특산품을 이용한 음료와 디저트가 일품이다.

섬의 특성상 육지에 비해 건축물의 수명이 3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아 늘 보수해야 하고, 그만큼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최 회장은 이곳에서 펼쳐보고 싶은 일이 아직 많다. 외도의 중심인 비너스가든에서 클래식 음악가를 초청해 음악회를 열고 춤도 출 수 있는 우아한 여행 문화 콘텐츠를 운영하고 싶은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우아하게 즐기는 방법을 잘 몰라요. 그럴 만한 공간도 없고요. 노는 것도 갖추고 놀면 좋잖아요. 사람들이 ‘외도에 가면 음악회를 볼 수 있어, 주말 오후엔 왈츠를 출 수 있지’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여행을 새롭게 즐기는 방법을 보여주고 싶어요. 사실 제가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만들고 싶기도 하고요.(웃음)”
80대의 최 회장은 지금도 10개 남짓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6년에 출간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외도>에 이어 ‘꿈은 특별한 사람만 꿀 수 있는 게 아니라 나와 같은 보통 사람도 꿀 수 있는 것’에 대한 글을 쓰는 중이고, 그동안 수집한 수천 개의 프랑스 인형을 모아 언젠가 인형 박물관을 열 계획이다. 전직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이 죄다 아이돌 가수의 노래만 부르는 게 안타까워 한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동요 100곡이 담긴 CD를 제작해 곧 초등학교와 양로원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맘마미아!>나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외도를 배경으로 뮤지컬 영화를 제작하고 싶어 한 예술대학교 교수와 각본도 의논한 상태다.
“꿈이 왜 필요할까요? 꿈이 없으면 세상에 대한 관심이 사라집니다. 세상이 점점 나와 관계가 없어지는 거죠. 무기력해지고 게을러져요. 하지만 꿈이 있으면 주변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생각할 거리, 고민거리가 넘쳐나요.”
그럼 꿈을 이루는 첫 번째 행동 원칙은 무엇일까? 우선 한 발을 들여놓으라는 것이다. “꿈 언저리를 배회만 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거대한 코끼리가 어떻게 움직이나요? 기둥 같은 앞다리 중 하나를 들고 발을 떼야 하거든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뒷다리가 따라오죠. 그렇게 꿈을 향해 가는 거예요. 네, 그게 바로 고생길이기도 합니다. 근데 재미난 고생이에요. 스릴이 넘치죠. 힘들지만 그렇게 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됩니다. 주변 사람에게 박수 받을 기회가 생기는 거예요. 젊은 사람일수록 사서라도 고생을 해봐야 해요. 고생 없이는 ‘진짜 삶’을 영위할 수 없으니까요.” 최 회장은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국내 곳곳을 여행할 예정이다. 여러 명소를 언급했는데, 기억나는 곳은 이곳 하나뿐이다. 지리산 꼭대기! 몇 주 전 동료에게 한양도성 성곽길을 등반한 이야기를 돈키호테 무용담처럼 길게 늘어놓던 것이 떠올라 잠시 부끄러웠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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