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러 떠난다! '워케이션'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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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08

일하러 떠난다! '워케이션'

코로나19가 바꾼 새로운 여행 트렌드가 있다. 일과 여행을 병행하는 '워케이션'이다.

위쪽 일과 휴식을 겸할 수 있는 워케이션.
아래쪽 수려한 자연경관을 지닌 조지아의 카즈베기산.

재택근무 1년째. 업무 특성상 인터뷰 진행이나 행사 참석이 아니면 집 밖에 나설 일이 없다.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킬 수 있어 좋지만, 가끔 곤란할 때도 있다. 아무리 집을 사무실처럼 꾸며도 집안 대소사가 눈에 밟히면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특히 후다닥 일을 끝내야 할 시기라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럴 때 에디터는 가끔 호텔을 예약한다. 가지런히 정렬된 물건과 침대 시트의 소독약 냄새는 왠지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낯선 공간이 주는 긴장감도 있지만, 이 정도는 일할 때 도움이 된다. 원고를 털고 밤늦게 주변을 산책한 뒤, 다음 날 느긋하게 호텔 조식까지 먹으면 미션 클리어. 몇 번 이용하다 보니 호텔 가는 게 습관이 됐다.
에디터만의 업무 노하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일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이런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가 따로 있다는 것도. 바로 ‘워케이션(workation)’이다.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여행지에 머무르며 업무와 휴가를 겸하는 근무 형태를 뜻한다. 요즘은 하루나 이틀 숙소에 머물며 업무를 처리하는 것부터 몇 달을 휴가지에서 일하는 것까지 모두 이 단어 하나로 설명하는 추세다. 워케이션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원격근무의 연장으로 공과 사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직장인이 사무실도 집도 아닌 제3의 업무 공간을 찾는 것이다.
워케이션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미국에선 2000년대 초부터 쓰던 말이다. 단순히 선진국이라 먼저 보급되었다기보다는, 미국 특유의 고용 관행 때문에 그렇다는 분석이다. 해고하기 쉬운 데다 법으로 강제하는 유급휴가가 없다 보니 부담 없이 장기 휴가를 내는 게 쉽지 않은 것. 그래서 본인이 비용을 대더라도 어느 정도 휴가를 즐기며 일하는 워케이션이 매력적인 옵션이 됐다. 일본에서도 몇 년 사이 워케이션 문화가 꽃피고 있다. 일본항공(JAL)이 2017년부터 연간 최대 5일 국내외 어디서든 회사가 지급한 컴퓨터로 담당 업무를 처리하면 정상 근무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 대표 사례. 워케이션은 노동력 부족에 따른 장시간 근무, 낮은 휴가 이용률이 문제가 되는 경직된 일본 근로 문화의 해결책으로 평가된다. 또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관광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휴양지에 기업 거점인 위성 사무실(satellite office) 보급을 돕는 등 워케이션을 장려하겠다고 발표했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는 꾸준히 워케이션 패키지를 운영 중이다.

미국과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한국도 지난 1년 사이 근무 형태가 유연해지며 워케이션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는 중. 지난 11월 에어비앤비가 한국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가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하면서 휴가 분위기를 즐기는 워케이션을 시도해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한 곳은 호텔업계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평일 공실률을 줄이기 위해 워케이션이 가능한 패키지를 내놓고 있는 것. 짧게는 당일치기부터 시작한다. 지난여름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는 주중 한정 오전 8시부터 12시간 머물 수 있는 ‘하프데이 스페셜’ 패키지를 내놨다.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대실을 지양했던 특급 호텔로서는 파격적 행보. 당초 한시적으로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호응에 힘입어 판매 기한을 늘렸다고 한다. 현재는 동일한 구성의 ‘팔팔한 하루, 8 to 8 Workcation’ 패키지를 운영 중이다. 한편, 머큐어 서울 앰배서더 강남 쏘도베 호텔은 오전 8시 체크인해 다음 날 저녁 체크아웃하는 ‘호텔에서 오피스’ 패키지를 선보였고, 부티크 호텔 레스케이프 역시 오전 8시 체크인 오후 8시 체크아웃이 가능한 하프데이 스테이와 다음 날 낮 12시까지 여유롭게 업무를 보거나 휴식을 취하는 오버나잇 스테이 중 선택하는 ‘워크케이션’ 패키지를 마련한 바 있다. 롯데호텔도 2월까지 국내 모든 체인에서 다양한 부대시설 이용과 근처 관광지 방문을 내세운 ‘워크 & 라이프’ 패키지를 선보였다. 패키지 구성은 타 호텔과 비슷하지만, 한라산의 경치를 한눈에 조망하는 롯데호텔 제주나 해운대 근처에 자리한 시그니엘 부산은 입지 조건만으로도 워케이션족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 1년 사이 경제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은 관광 국가들도 워케이션으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바베이도스는 GDP와 연관된 관광업 비중이 40%에 달한다.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이들은 지난 7월부터 ‘바베이도스 웰컴 스탬프(Barbados Welcome Stamp)’를 도입했다. 외국인이 1년 동안 바베이도스에 체류하며 일할 수 있는 원격근무 비자다. 비자 소지자는 12개월간 여러 번 출입국이 가능한 데다 사립학교는 물론 국영 공립학교에도 자녀를 보낼 수 있다. 바베이도스 총리 미아 아모르 모틀리(Mia Amor Mottley)는 “코로나19로 큰 도전에 직면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며 “바베이도스 웰컴 스탬프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일과 휴가를 병행하는 완벽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홍보에 앞장섰다. 바베이도스뿐 아니다. 북대서양 서부에 위치한 버뮤다의 ‘버뮤다에서 일하기(Work from Bermuda)’, 발트삼국 중 하나이자 IT 강국으로 소문난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노매드 비자(Digital Nomad Visa)’, 동유럽의 숨은 보석 조지아의 ‘조지아에서 원격으로(Remotely from Georgia)’ 등 여러 국가에서 유사한 비자를 내놓고 있다.





위쪽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의 아름다운 해변.
아래쪽 북유럽 IT 강국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전경.

팬데믹을 계기로 급성장한 워케이션 문화가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도 지속될 수 있을까? 워케이션을 원격근무의 한 갈래로 본다면, 앞으로 근로 환경 방향성을 결정할 유명 CEO의 평가는 엇갈리는 편이다.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는 “대면 방식으로 모일 수 없는 것은 분명 안 좋은 일”이라며 “아이디어를 놓고 토론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역시 “생산성이 떨어지고 소외감이 증가하는 경우도 보인다”며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반면 애플의 팀 쿡은 “대부분의 직원이 사무실 밖에서 새로운 애플워치와 아이패드를 만들어냈다”며 “이전과 같은 업무 형태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직원들이 만족하고 생산성도 유지되고 있어 빠르면 5년 안에 직원 절반은 원격근무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렇듯 의견이 나뉘는 이유는 원격근무 그리고 워케이션의 보편화가 유사 이래 없던 현상이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적어도 코로나19라는 강력한 변수가 사회 전반의 디지털화를 촉진하면서 기존 사무 환경이 예전과 같은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워라밸(work-life balance) 혹은 워라블(work-life blending)을 중시하는 MZ세대에게 워케이션 가능 여부가 직장을 선택하는 주요 기준이 될 수도.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에디터 같은 직장인에겐 충분히 환영할 만한 변화다. 이달엔 바베이도스에서, 다음 달엔 조지아에서 원고를 쓸 가까운 미래를 기대해본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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