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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9

예술을 읽어요

누군가는 고전을 재해석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예술을 매개로 현실을 파고든다.

<지젤>로 보는 온라인 공연 플랫폼의 가능성
좋은 재료가 요리의 맛을 결정한다는 공식은 예술에도 적용된다. 그렇다면 예술에서 좋은 재료는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고전이라 답하려 한다. 시대상에 따라 달리 읽히는 고전은 언제나 새로움을 안겨준다. 이러한 이유로 그간 고전은 샘솟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고, 창작자들은 새로운 버전의 고전을 발표해왔다. 안무가 아크람 칸과 잉글리시 내셔널 발레단이 협업한 <지젤>도 그중 하나다.
아크람 칸의 <지젤>은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클래식 발레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겹만 들추면 인물의 중요도, 의상, 음악, 무대 같은 여러 디테일에서 현대적인 것이 보인다. 특히 등장인물에서 두드러진다. 아크람 칸은 지젤을 시골 처녀에서 이민자이자 의류 공장 노동자로, 알브레히트는 귀족에서 부유한 상류층, 죽은 처녀의 영혼 윌리는 공장 노동자의 유령으로 바꿔 자신의 <지젤>이 자본주의 시대에 만든 작품이란 걸 명확히 한다. 인간의 주체성을 부각하고자 윌리와 그들의 여왕 마르타의 비중도 한껏 키웠다. 그렇기에 지젤과 알브레히트가 극을 이끄는 1부는 고전 <지젤>과 큰 차이가 없지만 윌리와 마르타가 전면에 나서는 2부는 아크람 칸 특유의 강렬함이 극대화된다.






아크람 칸의 <지젤>에서 장대를 들고 선 윌리들.

방글라데시 이민자 2세이자 영국 태생인 아크람 칸은 그런 자신의 배경을 바탕으로 인도 전통 무용 카탁과 현대무용을 결합한 인상 깊은 안무를 선보여왔다. 그런 독창적 안무에 그로테스크함을 더하고자 그는 마르타와 윌리로 하여금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지젤을 죽음으로 몰아간 알브레히트, 노동자와 이민자를 홀대한 사회를 향한 원망의 춤을 추게 한다. 이때 마르타와 윌리는 푸앵트(발가락 끝으로 서는 동작)를 취하는데, 발레의 우아함을 상징하는 자세지만 여기선 멈출 줄 모르는 의류 공장의 재봉틀 바늘을 상징해 극을 한층 무겁게 만든다. 윌리들이 안무에 사용한 장대도 알브레히트 그리고 그들 자신을 향한 창이 돼 불안한 기운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아크람 칸의 <지젤>에는 비극적 사랑이 주는 슬픔보다 삶의 설움과 한이 서려 있다.
이토록 흥미로운 아크람 칸의 <지젤>이지만 처음엔 이 작품을 감상할지 말지 망설였다. 공연의 막이 무대가 아닌 LG아트센터의 디지털 스테이지 ‘COM+ON’에서 올랐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연은 현장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기에 온라인 공연에 의구심을 품은 채 모니터 앞에 앉았지만 어느덧 마지막 장면에서 박수를 치는 나를 발견했다. 여기엔 카메라 워킹과 채팅의 역할이 컸다. 풀 샷부터 클로즈업까지 다채로운 카메라 워킹은 전체 동선과 표정의 디테일을 모두 챙기며 극이 유연하게 흐르게 했다. 또 침묵이 미덕인 공연장과 달리 안방은 소리에 자유롭다. COM+ON뿐 아니라 대다수 온라인 공연 플랫폼은 채팅창을 함께 운영하는데, 이곳에서 실시간으로 감상과 의견, 지식을 공유하는 게 상당한 재미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채팅창은 아크람 칸과 <지젤>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위키피디아였다. 아크람 칸의 작품은 동시대 안무가 중에서도 난해하단 평을 자주 듣는다. 온라인 플랫폼의 여러 장치 덕에 공연을 관람한 모두가 그의 어려운 안무를 쉽게 소화할 수 있었다. 예술과 대중을 더 가깝게 잇는 해답은 온라인 플랫폼에 있을지도 모른다. 에디터 이효정






전소정, Organ, 플라스틱, 40×30×40cm, 2020

무엇을 상상하든 오롯이 당신의 것
처음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휘황찬란한 건물 외관과 명품을 ‘전시한’ 공간을 거쳐야 나오는 전시장. 지금의 지하 1층으로 옮기기 전 3층에 있던 그 전시장은 사회 초년생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이제 메종 에르메스는 도산공원의 터줏대감으로,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한국 현대미술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특히 2000년 제정한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비롯해 매년 열린 전시는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7월 5일까지, 이곳에선 제18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 작가 전소정의 <새로운 상점>전이 열린다. 작가가 주제로 삼은 ‘새로운 상점’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 이상의 연작시 ‘건축무한육면각체’(1932) 중 동명의 시를 가리킨다. 이 시는 1930년 경성에 들어선 미쓰코시 백화점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알려졌다. 식민지 조선이 처한 현실과 동떨어진 채 오로지 소비를 위해 지은 이 거대하고 기형적인 상점을 시인은 한글과 영어, 중국어, 일어 등을 혼용한 수수께끼 같은 시구로 조롱하고 비판한다. <새로운 상점>전은 전시장과 그곳이 위치한 메종 에르메스의 의미가 어우러져 이상이 말한 사각형 속 사각형이 반복되는 상점을 연상시킨다. 새삼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처음 간 기억이 떠오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상점’과 그 속의 전시장, 두 공간을 가로지르며 느낀 낯섦과 어색함. 전자와 후자에서 소비자와 관람객 각각이 모종의 경험을 획득하는 과정이 상반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새로운 상점>전 전경.

자본주의사회의 상점에서 소비자는 눈앞에 펼쳐진 재화를 고르고 값을 지불하기만 하면 상품을 소유하고 브랜드의 가치도 누릴 수 있다. 여기서 소비자의 쉽고 빠른 선택을 방해하는 요소는 방출된다. 또 필요한 정보를 즉각 제공해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 커다란 텔레비전 상자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반대로 전시장은 불편함을 종용한다. 현대미술가는 미처 보이지 않는 것을 다양한 매체로 제시해 관람객이 보고 듣고 느끼며, 주체적으로 재조합하고 인식할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를 위해 작가는 쉽게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것을 다루는 일,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재료, 이미지를 사용해 기존에 없던 정보를 전달하거나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유도한다.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것을 다루는 일. 고생할 수 밖에 없는 작가의 숙명이다. 이러한 전시와 작품 감상은 필연적으로 불편한 감각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작품을 통해 고민하고 상상하는 만큼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그것은 어디서도 살 수 없는 나만의 것이다.
전소정 작가는 이미지의 비선형적 나열과 불특정한 소리의 결합이 가능한 영상 기술을 적극 활용하며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작가가 그동안 보여준 이미지 서사 구조의 실험적 해체와 결합은 이상의 ‘새로운 상점’에서 영감을 얻은 구조물과 오브제로 확장된다. 전시장에는 상점가의 아케이드 또는 상품 진열장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이 서 있고 ‘Organ’이라고 명명한 오브제 연작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 이는 이번 전시의 중심 작품인 ‘절망하고 탄생하라’는 이상의 시를 영상으로 오마주한 것 같았다.
작가는 “이상의 작업과 작가가 위치한 ‘불확정적 영역’, 임시적이고 유동적인 ‘번역적 공간’이야말로 이번 작업이 향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관람객 입장에서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최소한의 파편만 흩뿌려놓은 전시가 야속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관람객은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구조물 사이사이를 오가며 ‘Organ’을 살펴보고 영상 장면 하나하나를 음미해야 한다. 전소정이 만들어낸 낯섦과 은유로 가득 찬 상점은 바로 위층에 자리한 브랜드 제품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현혹한다. 관람객은 “현혹하는 이 새로움 앞에서” 망설이지 말고 상상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길이 아닌 곳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영상 속 파쿠르처럼. 그때 비로소 전시는 오롯이 당신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언론홍보 박유리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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