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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1

일기 쓰듯 그리는 그림

일기처럼 그림을 그리는 신모래의 < your only lover, friend, enemy. >전.

신모래
2013년, SNS에 올린 그림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보라와 분홍, 네온사인빛이 가득해 눈이 아릴 만큼 화려하지만 마치 군중 속 고독처럼 어딘지 모르게 공허함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린다. 신모래에게 그림은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일상의 기억을 소거하는 일기 같은 존재다. 그래서 작가의 그림에선 공허함과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로 데뷔한 후 구슬모아당구장, 롯데갤러리 등에서 꾸준히 개인전을 열었으며 랄프 로렌, 설화수, 호가든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했다.

디지털 일러스트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도 당연히 일러스트 위주일 줄 알았어요. 드로잉 중심은 저도 처음이에요. 이번 전시의 구성을 고민할 때 쓴 편지들이 있어요. 그 편지가 아날로그 분위기를 풍겼는데, 개인전이 그와 비슷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희미하지만 동시에 힘이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매끈한 디지털 일러스트보다 손 느낌이 잘 드러나는 드로잉에 끌렸죠. 그리고 디지털 작업을 하기 전에 드로잉을 하곤 했어요. 어떻게 보면 저에게 더 친숙한 매체는 드로잉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데 아트 신에서 드로잉은 메인 스트림 밖 이미지가 있어요. 그래서인지 드로잉으로 공간을 가득 채운 이번 전시 자체가 모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그림은 일기 같은 존재예요. 하루를 살아가면서 제 마음속에 남은 감정과 잔상을 그림으로 해소하곤 하죠. 그렇게 그린 장면을 보며 ‘내가 이런 기억을 지우고 싶었구나’ 생각하고, 금방 잊어버려요. 또 해소하고 싶은 기억은 매일매일 쌓이기 때문에 빨리 그려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그래서 디지털 일러스트를 할 때도 덜어내는 일을 중시했어요. 이런 점에서 드로잉은 참 비슷하죠.






your only lover, friend, enemy, Conte′ on Paper, 36.7×25.7cm, 2020

생각을 지우기 위해 그림을 그리니까요? 그렇죠. 제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 자체가 생각을 빨리 잊어버리기 위해서예요. 많은 선을 쓰지 않는 드로잉은 스치는 기억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매체였죠. 그래도 이번 전시는 포옹하는 모습의 드로잉으로 따스한 느낌을 많이 냈어요. 기억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하는데 저는 좋은 것만 남기는 편이거든요.

드로잉 개수가 많아 다양한 일상이 얽혀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달려가서 안기는 모습을 스톱모션처럼 그리려 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관람객의 마음에 닿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포옹의 다양한 형태를 담았죠. 애정이 듬뿍 담긴 포옹도 있지만 의례적으로 하는 포옹도 있잖아요. 그렇게 포옹으로 온도 차이를 표현했습니다.

드로잉뿐 아니라 직접 쓰신 러브 레터도 전시하죠? 평소에 그림만큼이나 글도 많이 쓰시나 봐요. 사실 그림보다 글을 더 많이 써요. 스마트폰에 메모하고, 노트에도 쓰고. 덜어내고 싶은 게 떠오를 때마다 수시로 써요. 그런데 글은 쓰고 나도 제 마음이 홀가분해지지 않더군요. 그림은 기분이 가뿐해지는데 말이죠. 이 점은 저도 참 이상하다 여겨요. 그래서 당분간은 그림과 글 작업을 병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래 멈추어 있고 대단한 것, Digital Print on Paper, 60×80cm, 2020

이야기를 들어보니 작가님의 러브 레터가 꼭 연인에게만 쓴 편지는 아닐 것 같습니다. 전시의 출발점인 편지도 신모래가 신모래에게 쓴 거니까요. 맞아요. 몇몇 편지의 수신인은 저예요. 어느 날, 하루하루를 버텨온 저 자신이 장하게 느껴졌어요. 과거의 저를 다독이고자 편지를 쓴 게 시작이었죠. 그리고 저는 작업할 때 실제 20%, 허구 80%의 비율을 설정해요. 작업 소스가 현실의 저라면 그림에는 남자로 등장하는 식이죠. 실제에 허구를 더하면서 작품으로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는 걸 숨겨왔어요. 그래서 작품을 볼 때 자신, 연인, 친구, 가족 등 무엇으로 해석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작품 감상에 대해 굉장히 열려 있는 듯합니다. 발표하는 순간 작품은 제 손을 떠난 거니까요. 관람객의 작품 감상에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아요. 무언가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요.(웃음)

SNS에 작품을 올리면서 신모래란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지금이야 SNS가 작품 유통 채널로 자리 잡았지만, 작가님이 처음 작품을 올린 2013년만 해도 그렇지 않았죠. 개인 홈페이지에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정도였으니까요. 작가로 활동하겠다는 의식 자체가 없어서 올린 것 같아요. 일러스트를 그리기 전에 독립 출판을 잠깐 했는데, 독립 출판의 주요 홍보 플랫폼인 트위터에서 많은 활동을 했죠. 그 비슷한 시기에 태블릿을 선물 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빛이 사선으로 갈라져 들어오는 장면을 포토샵으로 그려서 트위터에 올렸는데, 어느 날부터 리트윗이 되더군요. 처음에는 제 그림이 알려지는지도 모르다가, 한 브랜드의 협업 제의가 들어오면서 실감하게 됐죠. 인스타그램도 특정한 의도로 활용한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정방형 사진 위주의 플랫폼이 마음에 들어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죠.






your only lover, friend, enemy, Conte´ on Paper, 36.7×25.7cm(각), 2020

신모래를 대표하는 컬러로 알려진 분홍을 포함해 눈이 아릴 만큼 화려한 색감이 특징이에요. 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 공허함이 함께 느껴진다는 평도 많아요. 아무래도 웅크리고 있는 자세와 괄호로 그린 눈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게다가 인물의 표정이 없으니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도, 감정이입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 신모래의 관심은 어디에 쏠려 있나요? 작업을 잘하고 싶어요. 어떤 실력을 갖추고 싶다는 개념이 아니라 제 마음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감정을 잘 걷어낼 수 있는 선에서 작업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좋은 방향으로 나이 들고 싶어요.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진행 노블레스 컬렉션팀   사진 윤주상(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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