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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5

피터 마리노와 셰인 발렌티노에게 말을 걸다

록 스타처럼 세상을 누비는 건축가 피터 마리노, 공간 속 관계의 메시지를 미장센으로 심는 아트디렉터 셰인 발렌티노에게 <아트나우>가 말을 걸었다.

< One Way: Peter Marino >전에 출품한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조각 ‘Sing Sang Zero’(2011)와 안젤름 키퍼의 회화 작품.

피터 마리노 Peter Marino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예술 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의 개념을 예술 작품의 ‘오라(aura)’로 설명했다. 작품이 내뿜는 고유의 오라는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똑같이 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예술가로서 오래도록 탄탄한 커리어를 쌓은 이들을 보면 작품뿐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느끼곤 한다. 그런 면에서 피터 마리노는 ‘지나간 자리마다 그만의 오라를 남기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드는 그에게 그래서 ‘종합예술인’이라는 수식어는 딱 알맞다.






은도금 브론즈로 만든 ‘Tall Dragon Scale Box’ 모델 XXV와 함께 있는 피터 마리노.

1949년생인 피터 마리노는 고희를 넘겼음에도 여전히 어떤 젊은이보다 뜨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놓는 작품마다 고유의 개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그는 그 독창성에 대해 “모든 사람의 개성은 개인을 이루는 부분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술가이면서 건축가고 동시에 인테리어 디자이너, 가구 제작자, 유리공예가, 청동 주물 제작자, 정원사, 테니스 치는 사람, 골동품 수집가, 출판인, 예술 재단 설립자이기도 하죠. 이 모든 활동, 모든 면면이 ‘피터 마리노’를 독특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자부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디어에서는 지금껏 그의 ‘건축가’적 면모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도 그럴 것이 패션 브랜드와의 긴밀한 협업이 건축가로서 그의 입지를 견고히 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루이 비통, 디올, 샤넬, 까르띠에 등 그가 함께한 브랜드만 수십 곳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건축가’인 동시에 ‘예술가’라는 점을 강조한다.






< One Way: Peter Marino >전에서 선보인 에르빈 부름의 ‘One Minute Forever’ 설치 전경.

피터 마리노는 다른 현대미술 작가에게서 건축적 영감을 얻기도 한다. “페르낭 레제의 ‘Composition of Forms’에 나타난 추락하는 입체적 형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거대한 듀플렉스 아파트를 짓기도 하고, 잭슨 폴록의 작품을 기반으로 랍스터 클럽의 바닥을 디자인하기도, 또 재스퍼 존스의 그림을 시각화해 수놓은 실크로 한 텍사스 집의 인테리어를 하기도 했죠. 앤디 워홀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는 정말 끊임없이 저를 자극하는 영감의 원천과 같은 존재입니다. 저에게 영감을 주는 또 한 명을 꼽으라면 리처드 세라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2014년 완공한 서울 분더샵은 2016년에 AIA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피터 마리노가 건축과 인테리어를 모두 담당했다.

이렇듯 20세기, 21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수많은 작가가 피터 마리노 인테리어와 건축에 레퍼런스로 차용됐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다른 작가의 작업을 차용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건축과 인테리어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의 ‘큐레이팅 역량’에 있다. 선보이는 건축물마다 어울릴 만한 작품을 작가에게 의뢰해 협업하는 것. 그렇게 작품과 공간 인테리어가 자연스레 어우러져 작품이 더욱 빛을 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피터 마리노는 지금을 “전통적 박물관, 재단, 갤러리의 역할에 도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예술을 보여주는 시대”로 정의한다. 또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작품을 새로운 맥락 속에 배치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그의 건축물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지가 된다. 그의 건축물은 고급스러우면서도 소비가 가능하고 또 실제로 거주할 수 있는 실용성까지 갖춘 곳이다. 이곳에 비치하는 예술 작품은 건축물의 고급스러움을 더욱 고조시킬뿐더러,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예술 집합소’로 만드는 힘을 더한다. 지금껏 마리노가 작품을 의뢰한 많은 작가가 그가 제시한 장소를 “예술가와 작품을 위한 공간”으로 받아들이고, 또 평소와는 다른 독특한 맥락 속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작품을 선보이는 데 놀라움을 표하곤 한다.






2018년 완공한 샤넬 플래그십 부티크. 총 31점의 현대미술 작품으로 공간을 장식했고 그 가운데 강익중, 이우환, 이불 3명의 한국 작가가 눈길을 끈다.

그동안 그와 함께한 작가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몇몇을 소개하면 장-미셸 오토니엘, 에르빈 부름, 제임스 터렐, 솔 르윗, 앤터니 곰리 등이다. 피터 마리노는 오토니엘이 2003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한다. 이후 그는 여러 차례 오토니엘을 패션 하우스 또는 자신의 레지던트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오토니엘은 그와 함께한 작업을 회상하며 “그는 스케일 면에서 저를 몰아붙였어요. 거의 빌딩만 한 사이즈의 건축적 비율을 가진 작품을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그 정도 규모의 작업은 피터 마리노가 아니면 시도해볼 수조차 없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랍스터 클럽 레스토랑에는 피터 마리노의 콜라주 작품이 걸렸다. 바닥은 잭슨 폴록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레스토랑은 2017년에 완공했다.

에르빈 부름도 마찬가지다. 2014년 마리노는 큐레이터 제롬 산스(Jerome Sans)와 함께 마이애미비치에 위치한 배스 미술관에 20세기, 21세기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 50여 명을 초대하는 < One Way: Peter Marino >전을 구상하던 중,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우연히 부름과 조우했다. 그는 부름에게 ‘완전한 작업의 자유’를 부여했고, 작가는 그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했다. 그렇게 에르빈 부름의 대표작인 ‘One Minute’ 조각 시리즈를 피터 마리노 버전으로 선보였다. ‘One Minute Forever(Peter Marino)’는 마리노의 신체 사이즈를 바탕으로 제작한 해골 조각인데, 여기에 또 마리노를 대표하는 가죽 소품을 더해 ‘영원성’을 내포한 조각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했다.






< One Way: Peter Marino >전 전경. 피터 마리노가 샤넬을 위해 디자인한 일본 긴자와 홍콩의 프린스 빌딩의 파사드는 미칼 로브너와 협업했다. 크리스토퍼 울의 작품도 살펴볼 수 있다.

이렇듯 피터 마리노가 건축 프로젝트에 함께할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은 바로 ‘DNA’다. 그가 협업하는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은 물론, 건축물이 위치하는 곳의 장소성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 그가 말하는 DNA다. “저는 각 브랜드의 특징과 아이콘을 통해 그 DNA를 해석하고 장식을 더합니다. 사실 작가로서 개인적 창작 욕구는 배제하고, 이러한 작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협업의 경우 보다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가 선보이는 모든 커미션 작업과 건축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소품 하나하나까지 ‘클라이언트’의 아이덴티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지난해에 오픈한 샤넬 서울 부티크를 살펴보자. 시대를 초월한 코코 샤넬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고, 최첨단 도시인 서울의 면면을 건축에 투영했다. 특히 코코 샤넬이 이룬 예술 후원의 전통이 마리노가 선별한 현대미술 작품 31점의 디스플레이로 그 명맥을 이었다. 이불, 강익준, 이우환, 파올라 피비, 앙드레 & 미셸 이르레, 파블로 레이노소, 이드리스 칸, 레미 마르코비치(Remy Markowitsch), 앤드루 로드(Andrew Lord), 네드 비너(Ned Vena) 등 작품을 의뢰한 작가의 면면도 화려하다. 회화, 설치, 석판, 브론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각 공간의 분위기에 맞춰 디스플레이했다. 이렇게 철저히 공간에 집중해 작품을 큐레이션하는 능력이 큐레이터로서 또 예술가로서 그의 역량을 가늠케 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피터 마리노는 서울의 하우스 오브 디올에 나선형 계단을 설치했다. 이곳을 장식한 오요룸 (Oyorum)의 커미션 작품 ‘Detail of Movie Toile’ (2015).

“예술은 많이 접할수록 수용성이 높아집니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말이죠. 감각뿐 아니라 감정을 활용해 예술을 경험해야 해요. 저는 매일 백 번가량 미술 작품을 봅니다.” 피터 마리노에게 훌륭한 예술이란 진실, 시대정신, 당시의 정서나 영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샤먼’, ‘보는 자(seer)’, ‘시대를 정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 나이 일흔이 넘은 지금도 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해결법과 정의를 찾아가는 그의 이런 행보가 여전히 거칠 것이 없다는 점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셰인 발렌티노가 아트 디렉션을 맡은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의 한 장면. 영화는 2016년 BAFTA 어워드에서 베스트 프로덕션 디자인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제7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셰인 발렌티노 Shane Valentino
아티스트와 아트 디렉터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 사람은 무언가를 만들고 한 사람은 그것을 지시하는 사람이라 해도 좋다. 다만 둘 다 대중에게 인정받으려면,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과 서사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미술을 포함한 모든 장르에서 영상을 매개 삼은 작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순식간에 스치는 장면마다 완벽한 디테일을 기대하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한 편의 추상회화처럼 인상 깊은 작가주의를 보여주는 사람을 찾는다면 셰인 발렌티노가 있다.
그의 나이나 정확한 데뷔 작품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많은 제작 현장의 작가가 그렇듯 크고 작은 작업으로 커리어를 일찍 시작한 것만은 분명하다. “사춘기 시절부터 지독한 영화광이었어요.” 래퍼 닥터 드레가 웨스턴 힙합을 키울 즈음, 같은 LA에서 셰인 발렌티노는 뉴웨이브부터 아방가르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화 장르를 즐기며 자랐다. “지금도 일주일에 10~20편을 볼 만큼 영화에 빠져 있어요. 어릴 때는 앤디 워홀, 켄 제이컵스(Ken Jacobs), 폴 샤리츠(Paul Sharits)처럼 현대 아트 신에서 영사기를 통해 입체적 창작력을 보여준 예술가와 제작자에게 주로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시네마 키드’는 대학 졸업 전 칙 스트랜드(Chick Strand)의 지도로 실험적 영화를 만들며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어서 샌프란시스코 예술학교에서 영화 제작 실기 석사(MFA)를 마치고 뉴욕으로 넘어가 지금껏 그곳에 살고 있다.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에 등장한 데이미언 허스트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절묘한 고통(Saint Sebastian, Exquisite Pain)’(2007).

“전 영화와 방송, 광고 분야에서 프로젝트 감독과 협력해 작품의 모든 것을 결정해요. 미술감독과 함께 세트와 소품을 제작하고 특수 효과와 로케이션은 물론, 이동을 위한 자동차 준비까지 담당합니다.” 셰인 발렌티노는 아티스트라 부르며 인터뷰를 시작한 에디터에게 겸허히 자신을 프로덕션 디자이너라 칭했다. 커리어 초기 친구 따라 방송국 미술부를 드나들며 비주얼에 관한 전반적 시스템을 깨친 후 처음 맡은 대형 프로젝트는 <아이작 미즈라히 쇼>(2001~2003)였고, 프로덕션 디자이너로서 처음 맡은 일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많은 관심을 받은 탤미지 쿨리(Talmage Cooley) 감독의 단편영화 <폴 포츠의 생일>(2004)이었다.
이후 아트 디렉터로서 <배트맨 비긴즈>(2005), <레이크 하우스>(2006),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2012) 등 다양한 작품을 담당하며 아카데미를 비롯한 주요 영화제에 꾸준히 노미네이트되었다.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GAP, 코치, 샤넬, 롤렉스, 펩시, 나이키, 아우디, BMW, 애플, 아르마니, 코카콜라 등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글로벌 브랜드의 광고와 전시에도 아트 디렉터로 참여했다.






셰인 발렌티노는 둥근 안경테와 중절모를 즐겨 쓴다.

그중 대중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2016)다.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가 감독이라 사람들은 강렬한 영화의 미장센이 그의 능력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셰인 발렌티노의 깊이 있는 분석과 설치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3개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이어진다. 수전(에이미 애덤스)의 불안한 심리와 부유한 LA 엘리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현재라면 전 남편 에드워드(제이크 질런홀)가 등장하는 우울한 과거가 있고, 그 사이에 에드워드가 그녀에게 보내준 소설 속 비극적 상상이 서부 텍사스 사막을 배경으로 점멸한다. 이 작품은 2017년 BAFTA 어워드를 비롯한 국제적 영화제의 아트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영화를 비난한 사람들조차 미장센에 대해서만은 호평할 만큼 아름다웠다.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는 주인공 수전의 압박감을 새하얀 배경과 강렬한 의상의 대비로 보여주었다.

이를테면 수전이 핏빛 립스틱을 바르고 일하는 갤러리 로비에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절묘한 고통(Saint Sebastian, Exquisite Pain)’(2007)이 있고 통로에는 ‘복수(revenge)’라고 쓰인 거대한 액자가 걸려 있었다. 화살이 꽂힌 채 우울한 아쿠리움 속에 빠져 있던 어린 숫소의 모습은 수전의 현재를 상징하는 무언의 메시지이자 반전을 예고하는 힌트였다. “톰 포드와의 협업은 가장 뜻깊은 경험이었어요. 우리는 건축과 사진, 예술에 대한 취향과 영화적 심상 등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었죠.” 시점은 다양하지만 결국 수전의 이야기였기에 한 인터뷰에서 셰인 발렌티노는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무의식중에 비슷한 잔상을 남기기 위해 장면마다 색상과 질감까지 가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Nike Free: A Revolution in Motion’(2016) 광고 영상.

보이지 않는 사실로도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그의 창의력이 드러난 작품으로 영화 <비기너스>(2010)가 있다. 75세에 커밍아웃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에서 누군가는 역사의 함의까지 느낄 수 있었다고. 셰인 발렌티노는 극 중 아버지 할(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집으로 1927년에 지은 미국 최초의 철근 구조 주택 ‘로벨 헬스 하우스’를 선택했다. 건축가 노이트라의 초기 작품인 이 건물은 유리로 둘러싸 실내로 부드러운 자연광을 비추며,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의 독특한 캐릭터를 살린다. 특히 이곳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결성한 동성애 인권 단체 집회가 열린 적이 있는 역사적 공간. 셰인 발렌티노가 옥시덴틀 칼리지에서 영문학과 여성학, 예술사를 전공했다는 사실에서 작품마다 마치 중세 회화처럼 강한 컬러와 명암의 대비 아래 상징과 은유가 촘촘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영화 <비기너스>의 공간 중 하나. 세련된 아트 디렉션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성공을 인정받은 지금도 최고를 만드는 비법은 초심자 시절과 비슷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뉴욕 한복판에 갇힌 상황이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인터뷰 직전에는 데이미언 셔젤(Damien Chazelle) 감독과 단편영화 제작을 마쳤고, 에런 소킨(Aaron Sorkin) 감독과 영화 < The Trial of the Chicago 7 >(2020)을 제작했다. “미묘한 차이로 공간의 뉘앙스를 바꿀 수 있으니까요. 항상 영화와 사진을 찾아봅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도 종종 가고요. 도시를 거닐며 도시인의 삶과 옷차림,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모습(inaction) 그리고 그 풍경을 비추는 여러 형태의 조명을 관찰하는 걸 즐겨요.” 읽기도 멈추지 않는다. “지금은 폴 B. 프랭클린(Paul. B. Franklin)의 <브랑쿠시와 뒤샹: 대화의 기술(Brancusi and Duchamp: The Art of Dialogue)>을 읽고 있어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Andrei Tarkovsky), 에릭 로메르(Eric Rohmer), 모리스 피알라(Maurice Pialat)의 영화도 자주 보고요.” 인간의 모든 감각을 깨우는 체험의 창작자로서 셰인 발렌티노의 목표는 분명하다. “저는 형태와 내용 사이의 정교한 관계를 통해 공간에 여러 겹의 의미를 부여하려 합니다.” 그는 항상 공간이 지닌 서사성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에서 자신의 독창성을 뽑아낸다. 덕분에 최근에는 오는 9월까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리는 같은 상징적 전시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인상 깊은 향수 ‘가브리엘 샤넬’ 광고(2017).

‘관계성(engagement)’과 ‘우리(we)’는 그가 거듭 강조한 창조와 협업의 핵심이다. 그는 항상 프로젝트를 종료한 후 SNS를 포함한 여러 통로를 통해 협업자를 공개적으로 격려한다. 인터뷰 말미에도 향후 계획을 말하는 대신 동료 디자이너 네이선 크롤리(Nathan Crowley)가 시작한 ‘램 디자인 스튜디오(Lamb Design Studio)’의 작업을 주시해주길 청했다. 이유를 물으니 자신에게는 ‘협업이 예술의 재료(medium)이며 작품이 곧 협업’이기 때문이라 했다. 그는 내내 그의 작업(works)을 예술(art)이 아니라 일(career)이라 칭했다. 덧붙여 그에겐 함께 일하고자 하는 협업자에게 요구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 “제가 파트너를 고르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지성과 설득력 있는 비전, 좋은 유머의 소유자여야 해요.” 스스로 세운 목표와 원칙은 간명하나 실천하긴 쉽지 않은 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겸손한 태도는 결국 그의 모든 일을 예술로 바꿔놓는 가장 든든한 바탕일 것이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제공 피터 마리노 스튜디오, 셰인 발렌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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