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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9

김민재의 自然

연기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했고,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고자 하는 배우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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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 ‘자연(自然)스럽다’의 사전적 정의다. 동시에 배우 김민재의 연기를 보면서 에디터가 느낀 소회다. 데뷔 14년 차인 김민재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하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으로 데뷔한 그는 이후 <시>와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베테랑>·<군함도>에 연이어 출연했다. 연상호 감독의 <염력>, 드라마 <방법> 그리고 올여름 개봉하는 영화 <반도>까지, 소위 대작 감독의 잦은 부름을 받았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을 비롯해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 SBS <열혈사제> 등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작품에도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형사 전문 배우라는 별명을 얻었고, MBC 에브리원 예능 <도시경찰> 두 시즌에 걸쳐 활약했다. 다수의 장르물에 출연한 그는 화려한 애드리브를 뽐내는 신스틸러 사이에서 느긋하고 편안한 연기로 극 중 공기처럼 존재한다. 여전히 “김민재가 누구야?”라고 말하는 관객이 꽤 있을 것이다. 하나, 이 배우의 성실한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면 적어도 세 편 이상은 이제껏 본 작품 리스트와 일치할지 모른다. 자연이 ‘자연스러운’ 상태일 때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듯이, 김민재는 그런 배우다. 계단의 난간처럼, 창밖 풍경 속 나무처럼 늘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다. 어떤 인간의 삶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믿는 김민재는 “연기를 하면서도 내가 살고 있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연기는 궤도에서 반짝이는 존재가 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발버둥이자 삶에서 누군가를 구원하려는 가치 있고 숭고한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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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살고 있다고 들었다. 서울에는 언제 올라왔나? 오늘 아침에. 밭 매다 왔다.(웃음)

올해만 해도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tvN 드라마 <방법>, 영화 <반도> 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요즘은 제주도에서 쉬고 있나? 요즘 더 바쁘다. 와이프 챙겨야지, 아이 돌봐야지, 마당의 잡초 뽑아야지. 얼마 전에는 잡초를 뿌리째 뽑지 않았다고 와이프한테 혼났다.(웃음) 그 밖에 제주도에서 정부와 공동 사업 형태로 ‘크라 예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무대미술, 화가, 영상 쪽 친구들이 모여서 하는 교육 사업의 일환이다. 하나의 키워드를 던져주면 초등학교 4~6학년 아이들이 스토리를 풀어내고, 작가들이 그 내용을 취합해 대본을 만들어 놀이 형태의 연극을 만든다. 연극이 끝난 뒤 아이들이 현실로 돌아갔을 때 그 전에 보지 못한 시각이나 문제를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의지를 갖고, 공동체적 예술 작업을 통해 자존감을 확립하길 바라는 마음에 기획했다. 그들이 ‘내가 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닫기를, 그리고 잊혀진 공동체적 가치와 노동의 가치를 공유하려 한다.

언제부터 그런 고민을 했나? 배우가 되기 전 이창동 감독님 밑에서 배울 때다. 배우란 계약 관계로 만나기에 계약이 끝나면 관계도 끝이 난다. 소진되고 소모되는 과정의 연속이다. ‘사람’이 중심인 다른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이 학교에는 아이뿐 아니라 젊은 배우, 신진 작가도 다수 참여한다. 사치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화가, 예르미타시 뮤지엄에서 전시한 아티스트 같은 인재도 있다.

얼마 전 생일이었다. SNS에 이렇게 많은 축하를 받은 건 처음이라고 썼던데, 최근 관객의 사랑을 실감하나? 사랑은 잘 모르겠고,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다만 어떤 관심인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관심만 받고 끝나는 건 재미없다. 소통할 수 있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한다. 무언가를 ‘구한다’는 것에 관심이 많다. 영화적으로는 누군가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건 상업적으로 잘 팔리기 위한 이야기고.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우리’ 이야기, 우리가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가 많아지면 좋겠다.

데뷔 후 햇수로 14년 동안 영화 필모그래피만 58편에 달한다. 엄청난 다작 배우다. 일단 먹고살아야 하잖나.(웃음) 주로 조연으로, 극에서 주연을 도와주지만 어려움에 처하게 하거나 감정적으로 데미지를 주면서 긴장감을 유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연출자는 그런 역할에 자기 세계에 집중해 연기하는 배우를 찾는데, 내가 그런 배우인가 보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기회가 자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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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다는 평가를 받는 배우다. 스스로도 자각하나? (웃음)자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니까. 그런데 자연스러움 자체를 추구하는 건 아니다. 배우로서 가치관이 있다면 정말 뭔가를 변화시키는 것, 그 안에서 내 할 일을 하는 거다. 어떤 배우는 재능을 노출하고 존재를 인정받으면서 주목받는 힘으로 살아가지만. 그러다 보면 진정한 친구를 만들기 어렵다고 본다. (에디터를 또렷이 응시하며) 재밌는 거 하나 보여줄까?

재밌는 거? (옆에 앉은 소속사 직원에게) 연주야, 커피 좀 줘볼래? (소속사 직원이 커피를 건넨다) 이제 내가 커피를 달라고 해도 주면 안 된다. (다시 아까처럼) 커피 좀 줘볼래? (미동 없는 소속사 직원. 침묵 속에서 삼각 대열로 앉은 소속사 직원, 에디터, 김민재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이런 거. 처음에 커피를 요구할 때는 원하는 삶대로 이루어지는데, 사전에 ‘커피 주지 말라’고 얘기한 뒤에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긴장감, 텐션을 느끼게 된다. 배우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런 긴장감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 관객이 현실로 돌아갔을 때 그 전에는 보지 못한 다른 측면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하는 것. 배우는 그런 상황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작을 하면서 모든 역할에 의미를 두거나 몰두하긴 쉽지 않을 텐데. 뭔가를 바꾸기 위해 행동하고 감독, 스태프와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다. 다행히 요즘은 의지대로 뭔가를 희망하고 사회적 변화를 모색하는 감독이 많다. 그런데 지금 내 얘기 재미있나?

재미있다. 사실 내 얘기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최근 작품 <방법> 이야기를 좀 해볼까? ‘센캐’들 사이에서 김민재만 유독 여유 있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연상호 감독과 인연이 깊은데, 이번 작품은 어땠나? 조민수, 성동일 선배님이랑 연기할 때마다 너무 웃겨서 NG가 많았다.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늘 즐거웠다. 선배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모범적인 답변이다. (웃음) 정말 그랬다. 좋은 현장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타입이라, 즐거웠다.

곧바로 연상호 감독의 <반도> 촬영에 임했다. 연상호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그의 작품에 연달아 출연 중인데, 여름에 개봉할 <반도>는 어떤 작품인가? 감독이 그동안 보여온 세계관이 또 한번 확장된 작품이다. 나는 군인 역할이고, 내용이 군인 중심으로 펼쳐진다. 연상호 감독은 사람들, 사회문제나 그로 인한 파급력에 관심이 많아 개인적으로도 잘 통하고 대화도 많이 나눈다. 작업할 때도 굉장히 즐겁다. 보통 연출자가 배우 앞에서 연기를 직접 보여주지는 않는데, 연상호 감독은 적극적이다. 연기를 보면 배우들은 막 오글거린다. ‘진짜 이렇게 연기를 하라는 건가?’ 하면서.(웃음) 그런데 사실 그가 보여주고 싶은 건 연기가 아니라 자신이 뭘 원하는지 배우에게 얘기하는 거다. 이 상황에서 원하는 것을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지. 보통 연출자는 방어적이고 예민하거나 시니컬하기 마련인데, 연상호 감독에겐 좀 다른 면모가 있다. 힘들 땐 상담도 잘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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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분을 조언했나? 작업하면서 많이 지친 시기였는데 지나치게 이상적인 세계관만 추구하는 것 아니냐며, 다른 세계관에도 기댈 수 있도록 힘이 돼주었다. 사실 영화 <염력> 이후 나에게만 차기작 캐스팅 제의를 안 해서 좀 섭섭했는데 <성난 황소> 시사회 무대 인사 중 동석이 형(마동석)을 통해 다음 작품(<반도>)을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다. 무척 기뻤다. 단순히 캐스팅되어서가 아니라 관계가 지속되는 연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진심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관계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연상호 감독 같은 사람과 함께라면 언제든 달려갈 것이다. 신뢰가 생겼으니까.

그렇게 부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갈 친구가 또 있나? 아, 어려운 질문이다. 이창동 감독님, 그리고 아직 함께 작업한 적은 없지만 봉준호 감독님도 단편영화에 출연할 때마다 잘 봤다면서 집 근처 오면 술 한잔하자고 연락하곤 한다. 류승완 감독님도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솔선수범해 보여주신 분이라 존경한다. 그리고 최근 작업한 이시이 유야 감독. 그런데 사실 누구와 작업하고 안 하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전에 일단 내가 바로 서야 한다. 내가 잘하면 좋은 제안은 절로 따라올 것이다.

처음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중학생 때 우연한 기회에 연극을 했는데, 그때 느낀 감동이나 감정이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스무 살 때 극단에 들어갔다. 일제강점기 때, 서민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내용이었는데 온몸이 감동으로 휩싸였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 이거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굉장히 의미 있고 좋은 일인 것 같다. 머리보다 몸으로 먼저 느낀 것 같다. 서울로 올라올 때 동대구역에서 배웅해준 친구에게 “성공해서 내려올게” 그런 유치한 말을 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것을 후회하진 않나? 배우를 하면서 겪는 과정이나 인간관계에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배우는 존중받아 마땅하고, 고귀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에너지를 토해내 변화를 꾀하는 사람들이니까. 물론 방향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어떤 직업도 다 귀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외된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의미였나? 그런 이야기‘도’ 있었으면 하는 거다. 돈이 기준인 시스템에서 개인의 이야기는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누구의 삶도 다 가치가 있고, 들여다보면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창동 감독님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상상도 현실을 뛰어넘을 수 없다”. 우리가 사는 것에 집중하고 주변의 삶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면 한다. 작가는 자기의 이야기를 해야 하고, 배우도 마찬가지다. 연기를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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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도 쓰고, 영화 제작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지금 운영하는 학교에서 단계별로 개인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에 들어갔다. 가령 누군가의 사진첩을 정리하면서 그들이 지나간 시공간을 대화를 통해 공간으로 구현해내는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지역 축제도 만들어보려 한다. 심리 상담이나 지역 아동지원센터 같은 기관에 찾아가지 않더라도, 말하지 못한 내면의 이야기를 건강하게 꺼내는 방식과 문화를 만들고 싶다.

예능 <도시경찰>을 보니, 현장 출동 후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불편한 현실을 목도하는 것을 힘들어하면서도 꾸준히 직면하려는 이유가 있나? 내가 배우를 왜 하지? 배우는 뭐하는 사람이지? 스스로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살아간다. 진짜는 아니지만, 누군가를 때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신은 매번 힘들고 어렵다. 실제 상황을 만나는 건 더 어렵지. 평생 누군가의 죽음을 몇 번이나 경험하겠나. 살면서 그런 일을 직업적으로 하는 분들은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배우로서 그것을 넘어서는 지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구한다’는 말을 자주 언급하는데, 연기하면서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나? 당연하다. 잘못됐다면 한참 잘못될 수도 있는 상황에 자주 노출되곤 했는데, 어렵고 힘든 시기에 함께 연기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보살핌을 받으면서 20대의 나를 붙들 수 있었다. 운 좋게도.

아까 스치듯 훌륭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김민재가 시나리오를 다시 쓴다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 이야기의 종류보다는 살면서 투쟁하는 것, 내 삶을 잠식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뭔가를 구하러 갈 수도 있고, 사랑에 대한 질문도 할 수 있고, 어떤 걸 찾기 위해 떠나는 모험일 수도 있고. 최근 이시이 유야 감독의 <아시아의 천사>라는 영화에 참여했는데 오다기리 조, 이케마쓰 소스케 등 일본의 톱 배우, 그리고 최희서 등과 함께 연기했다. 끝난 뒤에는 너무 친해져서 헤어질 때 울고불고 난리였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지만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닌 얘기기도 했는데, 이렇게 우리에게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소위 배우로서 야망, 욕심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래도 욕심이 있다면? 나 같은 배우 동료가 많아지길 희망한다. 그래야 우리가 왜 시작했는지 알 수 있으니까. 크라 예술 학교에서 전문 배우들이 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치유받을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워크숍을 여는 아카데미도 진행하려 한다.

김민재의 현재는 어디에 와 있나? 마흔을 넘으면서 성장통을 앓고 있다. 관계에 대해 다시 알아가는 중이다. 마흔 전까지는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질문하고 알아가고 사회적으로 자리 잡는 시기였다면, 마흔 이후인 지금부터는 진짜 가족을 만드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을 좀 더 넓혀가고 있다.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사진 김참   헤어 & 메이크업 장해인   스타일링 황금남   어시스턴트 박교희, 최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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