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 속 특별한 정의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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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03

애매함 속 특별한 정의

이해강에게는 스스로를 직시하고, 자기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힘이 있다. 그라피티, 애니메이션, 회화 작업을 넘나드는 그에겐 특별함이 있다.

이해강
붓과 유화물감, 래커까지 캔버스에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작가 이해강은 홍익대학교에서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했다. 전시뿐 아니라 지금은 해체한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의 <거인> 뮤직비디오, 실리카겔의 뮤직비디오 <낮잠> 등을 작업하며 대중문화, 서브컬처 등 다양한 관심사를 표출하고 있다.




AE2-1, Spray Paint and Oil on Canvas, 90×90cm, 2020

하나의 매체만 진득하게 파고드는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작가님처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분도 있죠. 그라피티, 애니메이션 그리고 회화까지, 많은 장르를 소화하는 이유가 있나요?
전 사실 대학 학부에선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그리고 그라피티를 시작했죠. 어떻게 보면 ‘미술’이라는 메인스트림 안에서 볼 때 바깥 생활을 오래 한 거예요. 그렇기에 ‘진짜배기’에 대한 제 발 저림이 좀 있어요. 진짜배기가 되고 싶어 그라피티를 할 땐 크루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러면 어디 가서 그라피티 좀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니 그렇지도 않은 거예요. 제가 발을 걸친 모든 장르에서 같은 점을 느껴요.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지만 “난 애니메이터야”라고 당당히 말하기도, 회화 작업을 하면서 화가라고 주장하기도 모호하죠. 그래서 진짜배기를 추구하지만 어느 곳에도 제대로 끼지 못해 붕 뜬 느낌이 언제나 아쉬워요. 그런데 뒤집어 생각하면 이러한 점이 ‘이해강’의 정체성이 되겠다 싶었어요. 그라피티를 이용한 영상, 애니메이션을 통한 미디어 작업, 그라피티와 애니메이션 모두를 기반으로 한 회화 작업이 작가로서 이해강을 설명하는 거죠.

그렇다면 이 많은 장르를 통해 얘기하고 싶은 하나의 기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지금 시대에서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기록물을 보고 있잖아요.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만들면, 그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자꾸 이를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기록물을 만드는 거죠. 이런 것을 보고 영향을 받아 지금의 저와 제 작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내가 만든 것이 고유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작업 전반에 고루 드러나는 게 아닐까요. 어쨌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기에 각각의 영역에서 애매한 위치인 저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제 목표예요. 애매한 존재라도 나만의 확실한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죠.

이번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선보이는 전과 ‘아치 에너미’ 프로젝트에 대해 말씀 부탁드려요.
사실 빌런과 아치 에너미라는 개념은 어릴 때 경험에서 나온 거예요. 형과 역할극을 하면 저는 늘 지고 쓰러져야 하는 빌런이었죠. 그리고 이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어요. 어떤 장르든 고유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세계를 지키는 사람이자 히어로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보기에 저는 이것저것 합쳐진 악당, 즉 빌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빌런으로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고심했죠.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남들이 볼 때 애매한 기술의 집합체를 보여줘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애매함이 바로 나의 정체성이야”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거겠죠. 총 19점의 신작을 준비했는데, 평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빌런을 차용했어요. <드래곤볼>의 베지터·셀·마인부우·프리저, <어드벤처 타임>의 아이스퀸, <요괴소년 호야>의 백면인 같은 인물이 등장해요. 모두 카리스마 넘치지만, 어딘가 모르게 짠한 구석이 있는 존재예요.




AE3×4(부분), Spray Paint and Oil on Canvas, 90×90cm, 2020

하나의 회화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사실 생각은 어떤 틀 안에서 돌고 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인풋이 있을 때 내게 나올 수 있는 아웃풋의 범위가 한정적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제 작업에서 ‘모핑’이 중요한 기법으로 사용돼요. A라는 객체가 B로 변환될 때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하나하나 그려내는 거예요. 직접 그리면 거기에 내가 의도한 바가 투영되거든요. 예를 들어 눈은 눈으로, 코는 코로 변환해야겠다는 의지 말이죠. 이러한 것을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괴상한 형태의 빌런을 만들면서 이 빌런과 저 빌런이 섞인 이유를 더 드러낼지 말지 내가 정할 수 있으니까요. 일종의 스케치 같은 겁니다. 애니메이션을 활용하는 이유는 나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서고요. 어느 시점에서 그리는 걸 멈추고 ‘완성’해야 하는데, 그저 제가 임의로 중간 이미지를 하나 고르고 ‘이게 멈춤 포인트야’라고 해서는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애니메이션은 쭉 이어지기 때문에 누가 봐도 과정 속 멈춤 포인트가 보여요. 그래서 애니메이션 작업이 선행됩니다. 제가 선정한 한 장면을 캔버스에 옮기는 건 사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AE13, Spray Paint and Oil on Canvas, 45×45cm, 2020

그렇다면 이번에 출품한 작품이 전부 애니메이션으로 남아 있겠네요!
맞아요. 제 작업은 총 3단계로 생각할 수 있어요. 빌런과 빌런을 섞어 하나로 만드는 영상을 1단계로 보고, 2단계는 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캔버스에 옮기는 거죠. 아직 공개하진 않았지만 3단계는 그렇게 섞인 한 폭의 빌런 장면을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거예요. 새롭게 부여된 정체성을 이런 단계를 통해 더욱 단단하게 만듭니다. 올해는 이렇게 아치 에너미 프로젝트로 꽉 채우고 싶어요.




AE5, Spray Paint and Oil on Canvas, 90×90cm, 2019
AE6, Spray Paint and Oil on Canvas, 90×90cm, 2020

전시를 보러 오는 분들이 꼭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작품이 있을까요?
사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작업이 힘들다고 느꼈어요.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하는 느낌과 헤매는 구간이 있었죠. 19점을 작업하면서 한 번 흐름이 바뀌는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AE 10’이에요. 이 작품 전에는 선정한 캐릭터를 섞으며 ‘캐릭터성’에 좀 더 초점을 맞췄어요. ‘이 빌런과 이 빌런이 섞이면 이런 게 나와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아, 이건 캐릭터가 아니라 그림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꽉 잡은 선을 슬쩍 푼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작품을 꼽고 싶네요. 저는 많은 분이 제 작품에서 명확한 형상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무드에 좀 더 집중했으면 해요. 애니메이션적 분위기를 느끼고 ‘응, 회화 작업이구나’ 하고 조금 편안하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진행 노블레스 컬렉션팀   사진 김잔듸(인물), 이시우(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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