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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24

당신에게 도자는 예술인가?

도자라는 매체의 모순성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예가가 아닌 예술가 류젠화의 철학.

백진, Reie(detail), Porcelain on Canvas, 147×113×5cm, 2019
ⓒ 2019 Arario Museum

Liu Jianhua
당신에게 도자는 예술인가? 사실 도자는 오랫동안 공예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편견이 시원하게 깨지게 된 배경에는 도자를 현대미술의 범주로 끌어오려 많은 노력을 기울인 현대미술가들이 있다. 그 가운데 전통 매체를 현대적 언어로 해석하는 류젠화를 빼놓을 수 없다.

류젠화
1962년 중국 지안성에서 태어난 류젠화는 도자기 산업으로 유명한 도시 징더전에서 14년을 보내며 도자공예를 익혔다. 1989년 대학을 졸업한 후, 현대적 맥락 안에서 그만의 실험을 시작했는데, 그의 도자기와 혼합 미디어 작품은 중국의 경제적·사회적 변화와 그에 따른 문제들을 반영한다. 울렌스 현대미술센터, 상하이 미술관 등 중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을 비롯해 쿤스트뮤지엄 베른, 모리 미술관, 아로스 오르후스 쿤스트뮤지엄, 함부르크 아트 센터 등 전 세계 유수 기관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1 Untitled 2012(detail), Porcelain, Variable Dimension (41×41×4.5cm each), 2012
2 중국의 현대 미술가 류젠화.

지난 1월, 미국 LA 카운티 미술관(LACMA)에서 전이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전시는 매체의 성질에 집중해 작업하는 중국 작가를 대거 초대했는데, 그 쟁쟁한 작가 리스트에 류젠화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아마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본전시에 출품한 ‘Square’는 그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당시 작품과 공간의 관계, 또 단단하지만 깨지기 쉽고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으나 자연에 풍화되어 소멸할 수 있는 존재인 도자라는 매체의 모순성을 통해 사회 현실에 대한 그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소개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류젠화. 도예가가 아닌 예술가로 입지를 굳힌 그의 작품 철학을 직접 들어보자.

중국 도자 산업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징더전(Jingdezhen)에서 14년가량 살며 수학했다고 들었어요. 그 경험이 작업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제 성장 과정은 확실히 남달랐어요. 열네 살 때 징더전에 들어갔는데, 아주 운이 좋았죠. 당시 징더전에 들어가 일한 곳이 지금의 대기업 ‘연구소’와 비슷해서 ‘미술연구소’라고 불렸어요. 8년 동안 도자공예 기술을 상대적으로 잘 익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에 3년간 준비한 끝에 징더전 도자 아카데미(지금의 징더전 도자 대학교)에 들어갔죠. 개인적으로 조소와 공간이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조소과를 선택했어요. 4년이 지나 졸업한 후 쿤밍에 있는 윈난 예술 아카데미에서 교편을 잡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의 경험은 이후 예술가로서 창작 활동과 소재에 대한 이해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징더전에 다시 돌아왔죠. 과거 8년간의 경험 덕분에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기 전 기본적으로 명확한 방향성을 갖췄다고 볼 수 있어요. 도자 재료를 보고, 굽는 과정을 거친 후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판단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창작 활동을 하면서 재료를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범주도 훨씬 넓다는 것을 알게 됐죠. 예술가로서 재료의 가능성을 인식하는 방법이 있다면, 재료에 대한 인식과 사고의 전환을 통해 재료를 응용한다는 점이에요. 이 점은 아주 중요합니다.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재료를 인식하고, 또 재료가 나와 함께 성장한다고 생각하죠. 도자에서 기술적 도전을 작품의 형태, 작품의 언어 체계 속에 드러나는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어요.

작가님은 종종 ‘도자 설치미술가’로 국내외 예술계에 소개되곤 해요. 어떤 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특정 장르로 한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까지 예술가로서 활동하며 창작과 사고가 고정불변한 형태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다양한 변화와 도전을 원하죠. 나 자신을 스스로 ‘도자 설치미술가’로 귀결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도자는 하나의 매개, 하나의 재료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도자는 내 작품 가운데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본 매개체일 뿐이에요. 나는 다양한 재료가 공간과 대화를 나누고, 보는 이와 친밀하게 교류하는 것을 좋아해요. 관람객이 내 작품을 볼 때, 작품에 표현한 것에서 일종의 발견적 사고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유서 깊은 재료는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어요. 하나의 재료에서 다양한 변화를 찾고 현대미술의 체계 속에서 사고하는 거죠. 나는 이것이 내가 마주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3 2018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메이드 인 클로이스터 재단에서 열린 개인전 전경.
4 The End of 2012(detail), Porcelain, 522×252×3cm, 2011

많은 이가 도자를 ‘순수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손이 많이 가는 작업 공정을 거치며 물, 흙, 온도 모두 정교하게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공예’에 더 가깝다고 여기죠. 그렇다면 우리는 ‘도자’를 어떤 예술로 봐야 할까요?
맞아요. 도자는 원료, 유약을 바른 표면, 온도의 속성 그리고 재료를 다루는 인위적 요인 등이 매우 강력히 작용합니다. 동시에 예측이 불가능하고 제어할 수 없는 요소도 너무 많죠. 기술이 노련할지라도 매번 예상한 효과를 얻어낼 수 없는데, 바로 이것이 도자의 매력입니다. 예전부터 도자는 늘 실용성과 일상성을 겸비했고, 공예미술의 속성도 내포하고 있어요. 예술가로서 나는 도자의 속성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뒤집고 싶어요.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 오래된 재료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싶습니다. 도자의 모든 ‘공예적’ 속성을 작품의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활성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건 아주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거라고 믿거든요.

작가님에 관한 많은 텍스트에서 “중국의 사회를 반추하고, 또 매체에 대한 클리셰를 깨는 작가”라고 소개한 걸 봤어요. 이러한 평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술가로서 성장 스토리를 포함해 그만의 예술 언어와 개인적 시스템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 시스템의 변화가 예술가로 하여금 과거와 다른 인식을 하게 해요. 예술가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예술을 통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이끌 수 있죠. 이전까지 사람들이 해보지 못한 사고를 하게 유도하는 거예요.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나만의 예술 언어를 발전시켜왔어요. 현대미술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형태를 통해, 그리고 새로운 사유 방식을 통해 도자 재료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싶었거든요.




5 Rime, Porcelain, Variable Dimension, 2012~2015
6 Untitled 2012, Porcelain, Variable Dimension (41×41×4.5cm each), 2012

조금 전 질문과 이어지는 건데, 2008년을 기점으로 작업에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철학적으로, 기법적으로 바뀐 점을 직접 듣고 싶어요. 덧붙여 작가님이 말씀하신 ‘무의미, 무내용(no meaning, no content)’의 정확한 의미도 궁금합니다.
2008년은 예술가로서 나에게 비교적 큰 변화가 있었던 해예요. 이전에 나는 중국의 예술가로서 어떠한 모습으로, 어떠한 언어 체계로 혹은 어떠한 정신으로 세계와 대화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당시에 내가 몇 년 동안 줄곧 생각하고 표현의 방향성을 찾고자 한 이유이기도 하죠. 2008년에 나는 ‘무의미, 무내용’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작업했어요. 이 개념은 당시에 사회라는 가장 기본적인 배경을 전제로 한 일종의 가능성이었죠. 개인적 작품 언어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개념을 제시한 이후 새로운 작품 표현과 재료의 운용, 작품의 스타일에서도 이전의 방식과 어느 정도 차별화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또 철학, 종교, 문화, 예술에 대한 태도를 통해 형성된 나만의 언어 체계를 만들고 싶었어요. 중국철학은 자연에 대한 관조를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우주 공간을 상상하고 깨달아요. 서양철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죠. 나는 지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내가 느낀 것을 작품 언어의 체계 속에서 인식하고, 표현하고, 전달하고, 초월하고 싶었습니다.

각각의 작업에서 특별히 신경 쓰는 점이 다르다면 그건 무엇인가요?
‘아무리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변화 속에서도 자신이 지향하는 언어적 방향이 있죠.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든 혹은 동일한 재료를 이용하든 표현이나 생각이 다르면 재료가 가져다주는 구체적 가능성이 달라집니다. 이것은 예술가가 창작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문제이자 도전 과제예요. 기존의 인식 층위, 경험적 판단 그리고 기술이 전혀 새로운 가능성으로 인식될 수 있는 거죠.

현재 몰두하고 있는 작업은 어떤가요? 완전히 새로운 작업인지, 기존의 틀을 확장하고 깊이를 더하는 일인지 궁금합니다.
요즘 가능한 새로운 사고를 표현하되, 동시에 기존의 작품 위에 깊은 사색을 더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기존 작품에 이용한 재료, 공간의 표현, 형태의 전달 등에서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일이에요. 이와 동시에 새로운 생각을 하면서 다음 작업에 접근하려 해요. 예술가가 지향하는 체계 속에서, 사색의 공간적 차원에서 표현하는 거죠. 예술가마다 표현이나 일하는 방식, 매개체의 선택이 달라요. 하지만 모두 자신의 체계를 형성하는 작업을 지속하며 깊이를 더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작품이 특별하겠지만, 그래도 그중 ‘류젠화를 대표하는 작품’ 하나를 꼽을 수 있나요?
모든 작품이 맥락의 진전과 관련되어 있고, 때로 현재의 작업이 이전의 사고나 판단이 축적되어 비로소 겉으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긴 어렵네요. 나는 그저 점들을 연결해 하나의 전체적 예술 언어 체계를 만들고 있어요. 각 작품이 제작 시기에 따라 다양한 경향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죠. ‘Blank Paper’ 같은 경우, 아주 다른 개인적 창작의 경험을 보여 주죠. 2008년부터 2009년 사이 예술 언어를 전환하면서 작품의 언어 체계 자체가 하나의 기술적 도전이었어요. 다른 재료로 ‘Blank Paper’ 작업을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도자를 재료로 사용했는데, 작품의 형태가 어려우면서도 단순하다는 점이 특히 큰 도전이었죠. 재료의 특수성, 사람과 재료의 밀접한 관계도 작품의 시각적 흔적 속에 표현해야 하는데, 거의 어떠한 언어적 표현의 흔적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 사고를 통해 느끼고 마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예요. 이 작품을 꼽은 이유는 제가 예술가로서 오랜 시간을 들여 작업하지만, 작품의 가능성은 전적으로 우연과 순간을 통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흥미롭죠.

작가님을 포함해 많은 중국 작가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중국의 예술’, ‘예술로 반추하는 중국’을 얘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중국의 현대미술에 대해 무지한 점이 많아요.
중국의 현대미술은 여전히 긴 발전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만의 체계와 시스템을 확립하는 시기죠. 시스템이 확립될 때 비로소 더 많은 역량을, 더 많은 가능성을 갖게 되는데, 나는 최근 들어 중국의 현대미술이 이미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고, 예술가마다 표현 언어도 한층 성숙하고 자신만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갤러리 시스템, 미술관 시스템, 소장 시스템 그리고 정부의 지원을 포함해 재단 시스템은 여전히 좀 더 발전이 필요하죠.




7 Square, Porcelain, Steel, Variable Dimension, 2012~2014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로 소개되는 만큼, 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작가님의 소명이 궁금합니다.
예술가는 지나친 압박감을 안고 사색이나 창작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상대적으로 가벼워야 한다고 믿어요. 자신의 작업을 잘해내고, 예술가의 책임을 작품을 통해 드러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최상의 창작 활동을 유지하는 거죠.

끝으로 2020년은 작가님께 어떤 한 해가 될 것 같나요?
2020년은 조정의 시기가 될 것 같아요. 2018년, 2019년 연달아 규모가 큰 개인전을 열었어요. 저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개인적 예술 창작 활동에서도 새로운 실험과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일정한 공간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올해 제 예술 창작과 연구 결과를 담은 화집을 출간하려 합니다. 제 작품에 관심을 갖고 인터뷰를 청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한국의 독자와 관람객에게도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8 Stele, Glass, Carbon Fiber, 260×75×60cm, 194×70×50cm, 2018




9 A Reed Raft, Porcelain, 178×21×3cm, 2009
10 Trace, Porcelain, Variable Dimension, 2011




11 Lines, Porcelain, Variable Dimension, 2015~2019
12 Black Body, Glass, Concrete, Dimension of Installation Varies, 2018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제공 류젠화 스튜디오, 페이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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