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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31

직업으로서 산업 디자이너

한국에서 가장 주목 받는 산업 디자이너 이석우의 영감 창고.

산업 디자이너 이석우. 디자인 스튜디오 SWNA는 그의 이름 약자와 ‘and association’을 합친 말이다. 바닥에는 현대카드에서 전시한 대로 그간 디자인한 제품을 나열했다.

대중에게 산업 디자이너 이석우의 이름을 알린 것은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의 메달 디자인이다. 메달 정면은 직선으로 뻗은 빗줄기나 얼음의 표면 같은 느낌이지만, 옆면에 한글 자음을 새긴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한글이 우리 문화의 씨앗이라 보고 그 줄기가 자랐을 때의 모습을 다듬어 내놨다. 공히 글로벌 디자인 제작물인 올림픽 메달은 디자인 보편성과 공감이 필수다. 그의 디자인은 한국에 국한되지 않은 모던함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디자이너로서 이석우의 시작은 여느 디자이너와 비슷해 보인다. 예고에서 조소를, 대학에서 산업디자인과 그래픽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의 몇몇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경험을 쌓고 돌아와 모토로라에서 글로벌 수석 디자이너로 3년간 몸담았다. 올해로 10년째, 그는 디자인 스튜디오 SWNA를 운영하며 제품 영역을 벗어나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19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공예·디자인 부문을 수상하고 주요 프로젝트로 여전히 순항 중이다.

공식적으로 SWNA 스튜디오를 창립한 것은 2010년입니다. 이후 평창 동계 올림픽 메달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전과 후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일은 꾸준히 해왔고, 양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요. 전과 달리 패션 브랜드나 건설사 등 일반적 산업디자인의 카테고리를 벗어나 의뢰가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디자인 스튜디오는 기업을 주로 상대하기에 대중에게 저 자신이 드러나는 일은 드물죠. 스튜디오의 시작은 모토로라에서 글로벌 수석 디자이너(2008~2010)로 입사 당시 미리 양해를 구하고 주중에는 회사 일을 하고 주말엔 개인 작업으로 조명이나 의자를 만들었어요. 회사원으로선 우리나라에 처음 나온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만들었고요. 지금은 저와 16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어요. 점점 재미있으면서도 힘든 작업이 늘고 있습니다.

일단 사무실 곳곳은 재미있어 보이는데요. 종이로 만든 모형도 많고요. 곧 출시할 국내 생활 브랜드 소형 제품과 브랜드 프로젝트에 관한 거예요. 스마트폰의 경우 정확한 기능과 제조 공정이 정해져 있어 바로 스케치하고 소재를 연구하면 되지만, 새로운 것은 사용자에 대한 조사가 먼저죠. 기존과 다른 접근이 필요해요. 의자나 무선 주전자를 디자인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운송 기기의 미래를 그리는 컨셉을 고안하기도 합니다. 많은 분이 디자인에 대해 말할 때는 외형에 대한 스타일링을 일컫는데, 지금 우리 스튜디오가 하는 것은 외관이 아닌 구조나 사용성을 제안하는 거예요. 제품화하는 작업은 자동차처럼 크더라도 종이와 스티로폼으로 1 대 1 크기로 직접 형태를 만들죠. 이걸 움직이고 바꿔가면서 디자인을 다듬어 내놓습니다.




1 MBC 프로그램 <같이 펀딩>에서 배우 유준상과 함께 대한민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태극기 함.
2 디자이너 이석우와 협업해 16년 만에 바꾼 푸르지오 아파트 컨셉. ‘본연의 고귀함(The Natural Nobility)’이란 철학을 담았다.
3 매터앤매터(Matter & Matter)는 가구가 좋아 시작한 일. 원목 빈티지 가구를 업사이클링 하는 것으로 처음 시작했다.

산업 디자이너는 우리가 쓰는 물건을 디자인한다고만 생각했어요. 맞아요. 저 역시 커리어 초기에는 기능이 명확한 전자 기기로 시작했는데, 최근엔 마스터 플래너라는 타이틀로 아파트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스위치나 월패드 디자인부터 주민에게 제공해야 할 서비스까지 제안하는 일을 했죠. 우리나라 아파트에 최초의 브랜드가 생긴 지 20년 가까이 되었거든요. 지금은 아파트가 건축적 개념보다는 하나의 마을이나 테마파크처럼 조성되고 있어요. CI나 BI뿐 아니라 미래의 아파트 단지에 공간의 내·외관과 단지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상가와 커뮤니티 서비스가 필요한지 고민하죠. 기존에는 건축가들이 주로 하던 일인데, 요즘 소비자가 경험하는 건축적인 것 외에 수영장이나 피트니스센터처럼 어떤 경험과 혜택을 누릴지 관심을 두고 있어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의 예시만 들어도 해야 할 일이 정말 광범위하네요. 특별함을 어떻게 잡아내나요? 살고 있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고 인터뷰와 관찰을 해요. 다른 시도를 조사하죠. ‘무엇이 사람들에게 필요한가?’를 보고 구조와 사용성을 검토합니다. 전략적 디자인이라 할 수 있죠. 산업디자인은 기본적으로 기능을 바탕으로 해요. 예컨대 주사기나 소방관의 옷을 보고 ‘좋다’라고 하려면, 기능이 뛰어나야 합니다. 디자인은 어쩌면 행복에 대한 개념과 비슷해요.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보고 좋다는 조건은 조금씩 다르거든요. 지금은 접근해야 할 분야가 넓어져 일의 프로세스를 고민해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고요. 저뿐 아니라 최근 디자인 디렉터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어요. 때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진행해야 하고, 그 브랜드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죠.

프로세스를 고민한다는 말이 흥미롭습니다. 사실 디자인뿐 아니라 문화나 공연 쪽에서도 영역 파괴는 필수인 시대니까요. 장르 해체가 트렌드라고도 하는데, 산업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2년 전만 해도 가까운 대형 마트를 두고 모바일로 새벽 배송을 즐길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대기업도 1~2년 사이 트렌드에 치이는 시대가 됐죠. 아파트나 자동차, 책도 모두 플랫폼이 아닐까 싶은 시대예요. 하지만 택시 회사와 플랫폼 회사가 차를 이야기하는 게 같을 수 없어요. 혼돈의 시기인 거죠.

그런 과정에는 나름대로 기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구를 좋아해서 가구 브랜드 매터앤매터(Matter&Matter)를 만들었고, 덕분에 공간에 대한 일을 하게 됐어요. 산업 디자이너는 현실적인 직업이에요. 동시에 영역이 넓어지면서 스트레스가 많아집니다. 이제는 제게도 정보가 모두 칼처럼 날아와요. 예전에는 편안하게 쉬면서 잡지를 봤거든요. 지금은 다 공부해야 할 것으로 보여요.(웃음)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요? 좋은 생각인데요! 그걸 일종의 디자인 알고리즘이라 할 수 있겠죠. 젊다면 젊지만, 요즘 같은 업무 환경에서는 “나 때는 어땠다”라고 말하지 않도록 사념을 줄이는 연습을 해야겠죠. 또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어요. 결과적으로는 어떤 삶에 대한 이야기를 찾는 것이 되겠죠. 올해는 개인적으로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정신적 안식년을 생각하고 있어요.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아침에 수영, 저녁에 달리기를 하고 있지만 공부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고 자란 세대인데, 요즘은 그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머리맡에 두고 답답할 때마다 읽고 있어요. 근본적으로 직업 만족도가 높아 보이는데, 그런 삶이 부러워요.

하이엔드 디자인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이케아와 아트 퍼니처의 차이처럼, 어디나 하이엔드 시장은 존재해요. 제품 서비스 쪽은 당연한 것 같아요. 무엇이 더 좋고 나쁜지 구분하는 것이 아닌,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라 두 축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하죠. 제가 일하는 산업디자인은 보다 대중을 위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이긴 해요. 개인적 바람으로는 클라이언트가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섣불리 자신을 창작자로 말하지 않네요. 산업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은 마음에 드나요? 우리 생활 속에서 산업적이지 않은 건 없어요. 의자, 공간, 스마트폰…. 산업 디자이너는 결국 도구를 만들거든요. 어떤 의미에선 그림도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도구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철학적 위안을 얻을 수 있어요.(웃음) 그래서 산업 디자이너 이석우는 제게 가장 어울리는 말 같습니다.

문득,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가장 아끼는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저는 산업디자인을 해서 그런지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 잘 사지 않아요. 여느 디자이너처럼 특별히 모으는 컬렉션도 없고요. 그런 저를 동료들도 특이하다고 해요.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황종현(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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