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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9 FEATURE

독자적 궁금증

  • 2019-10-20

작가에 대해 우물처럼 깊은 궁금증이 피어날 때 단물 역할을 해줄 세 권의 책. 작가, 그 번외 편에 대하여.

아마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종종 받을 것이다. “혹시 이거 네 이야기야?” 몇 년 전 에세이 형식 기사에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시골 조부모님 댁에 놀러 갔다 서울로 떠나는 날의 아쉬운 마음을 담은 글인데, 평소 쓰지 않던 형식이라 그랬는지 주변 사람들이 묻곤 했다. “진짜 네 이야기야?” 하물며 소설가들은 더할 것이다. 극세사처럼 얽힌 인물의 관계도와 감정선, 각기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수백 가지 상황을 창조하려면 “소설 안에 작가 있다”가 아니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떤 장면이 작가의 직접 경험이고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안에 작가의 어제 경험, 오늘 생각, 내일 계획이 들어 있음은 자명하다. 이는 작가의 인터뷰를 읽을 때 더 명확해진다.
1953년 창간한 미국의 문학잡지 <파리 리뷰>가 그간 인터뷰해온 문학계 거장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작가라서>는 그야말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정독해볼 만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부터 장 콕도, 귄터 그라스, 존 스타인벡, 테너시 윌리엄스, 무라카미 하루키 등 국적과 나이를 초월한 그들은 <파리 리뷰> 편집자의 질문에 각자 생각과 입장, 경험을 때론 가볍게, 때론 허심탄회하게 내뱉는다. 예를 들면, “등장인물의 이름을 어디서 착안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예전 제자의 이름이나 전화번호부에서, 장 콕도는 노르망디 지방 어느 약국의 유리병에 적힌 명칭에서 가져온다는 엉뚱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늘 도입부부터 쓰십니까?”라는 질문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저는 첫 문단을 쓰는 데 몇 달이 걸리는데, 일단 첫 문단이 생기면 나머지는 아주 쉽게 나옵니다. 첫 문단에서 저는 책에서 다룰 문제 대부분을 해결합니다”라고 답했다. 이를 통해 그가 <백년의 고독> 도입 부분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커피를 마시며 원고와 씨름했는지 예상할 수 있다.
캐나다의 CBC 라디오 진행자 엘리너 와크텔의 <인터뷰, 당신과 나의 희곡>은 오르한 파묵, 조너선 프랜즌, 이윤 리 등 15명의 작가와 나눈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야만인을 기다리며>로 알려진 J. M 쿠체는 인터뷰어에게 까칠하기로 유명한데, 인터뷰를 위해 자신이 거주 중인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달려온 와크텔이 쏟아낸 통찰 가득한 질문 앞에서 작가는 자국의 문화 검열, 정치적 분열, 개인적 증오, 언어를 통한 특정한 세계관에 대해 길고 구체적이며 성실한 대답을 풀어놓는다. 독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작가의 민낯을 확인한 느낌. 날 선 인터뷰이에게 농익은 답변을 끌어내는 인터뷰어의 가상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한국문학계의 거목 박완서가 고정희 시인, 정효구 문학평론가, 피천득 작가 등 7명의 문학인과 나눈 인터뷰를 정리한 <박완서의 말: 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는 2011년 작고한 박완서를 현실로 소환한다. 작은 목소리로 “글쎄요”, “그 질문은 어떤 의미인가요?” 같은 혼잣말이나 되묻는 말에는 작가의 여릿한 숨소리가 묻어나지만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논하다 “나는 차이는 인정을 해요. 차별받고 싶지 않다는 거죠” 같은 대답에선 입을 꽉 다문 단호한 눈빛이 활자에 묻어난다. 피해를 입을까 봐 글을 쓸 때는 최대한 가족 이야기를 덜어낸 채 오히려 그 반대 상황을 설정하고, 주인공이 여자든 남자든 자신의 시점을 사용한, 머리가 맑아야 작업이 즐거워 늘 새벽 5시에 일어나 오전 내내 글을 써온 박완서의 완숙한 답변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육성으로 들을 수 없는 그 대답을.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김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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