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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05

Remember Me

소설가 이유리,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 기억해야 할 두 이름과 함께 평온한 한때를 보냈다.

리넨 소재 쇼트 재킷과 와이드 팬츠 모두 MAISON MARAIS, 이너로 입은 톱 LE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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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
작년 봄,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1990년대생 작가들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이유리의 작품을 읽으며 단숨에 팬이 됐다. 그녀는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빨간 열매>로 당선되며 ‘능청스러우면서도 낯선 상상력과 활달한 문체가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복싱 선수 남자친구의 오른손이 어느 날 갑자기 브로콜리로 변한 <브로콜리 펀치>, 귀를 갖다 대면 속마음이 들리는 상상의 장기를 소재로 한 <마음소라> 등 ‘이유리 유니버스’를 탐험하다 보면 머릿속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쉴 새 없이 떠오르니 말이다. “능청스럽거나 낯설어야겠다고 의식하진 않아요. 마트에서 브로콜리를 보고 문득 글러브 같다고 느꼈고, 이어 손이 브로콜리인 복싱 선수가 있다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 <브로콜리 펀치>의 시작이었죠. 다른 작품도 전부 그런 식으로 작업했으니, 생활 밀착형 작가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일까. 비현실적 요소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유리의 작품은 뜯어볼수록 현실 상황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아이돌 팬의 ‘덕심’이 외계 생명체의 연구 대상이 된다거나(<둥둥>), 전세 사기를 당한 인물이 반려 요정을 이용해 대국민 사기극을 계획하는 이야기(<페어리 코인>) 등. “비현실은 현실을 극적이고 재미있게 바라보게 하는 장치예요. 다만 그 장치를 제외한 부분은 굉장히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저와 독자 세계가 겹치며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거든요.”
비현실과 현실을 맛있게 버무려낸다는 점에서 비슷한 뉘앙스의 또래 작가가 몇 있다. 다만 이유리가 특별한 이유는, 이야기의 뒷맛이 기괴하고 씁쓸하기보다는 산뜻하고 개운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운 축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불행하고 우울한 것투성이지만, 자세히 보면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고요. 제 작품을 읽은 분들도 세상을 그렇게 느꼈으면 합니다.” 작가로서 원칙은 단순하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쏟아냈냐는 것. “지금껏 원칙을 어긴 적은 없습니다. 이왕 그렇게 쏟아낸 이야기를 사람들이 좋아해준다면 더 좋겠죠. 넷플릭스나 유튜브보다 재미있는 작품을 쓰는 것이 목표인데,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진 못했어요.(웃음)” 이미 넘어섰다고 느끼는 사람이 에디터만은 아닐 테다. 올 하반기 첫 장편소설을 출간한다니, 이를 통해 그녀만 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이야기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옐로 원피스 RECTO.
옐로 원피스 RECTO.


박수예의 고혹한 활의 노래
언젠가 가을밤을 수놓은 레지에로(leggiero, 가볍고 경쾌하게)와 피치카토(pizzicato, 현을 손가락으로 퉁기는)가 지금도 가슴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을 상징하는 파워풀한 연주에 길든 귀가 낯선 음악과 강렬히 공명하는 순간이었으니까. 악마의 재능이라 일컫는 파가니니를 이토록 따스하게 재해석한 연주자가 있었는지. 늘 새로운 작풍을 선보인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의 천재성이 재림한 듯 느껴질 정도였다. 이처럼 그날의 기억에 깊숙이 자리한 연주를 선보인 사람은 열여섯 살에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을 녹음해 화제가 된 2000년생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다.
네 살 때 처음 바이올린 활을 움켜쥔 박수예는 2009년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교 울프 발린 교수를 사사하며 본격적으로 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콩쿠르 대신 공연과 음반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했다는 것. 콩쿠르 출전을 반대한 울프 발린의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다. “너무 어린 나이에 콩쿠르에 집중하면 음악을 대하는 감정이 좁아질 수 있다고 하셨어요. 또래 연주자의 콩쿠르 소식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선생님의 가르침 아래 제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기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저를 만든 것은, 기본기를 갖추고 저만의 음악성을 키우기를 바란 선생님 덕이 커요.”
아직 20대 초반의 신예 바이올리니스트지만, 박수예의 이력은 중견 연주자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까지 다섯 장의 인터내셔널 음반을 발매했기 때문. 그중 세 번째 음반 <세기의 여정>(2021)은 영국 잡지 <그라모폰>이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했고, 지난 4월에 발매한 <시마노프스키: 신화>는 섬세한 연주를 선보였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그런 박수예의 음악을 두고 <그라모폰>이 ‘탁월한 해석과 뛰어난 기량,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연주자’라는 평을,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협주곡 리코딩 제안을 한 건 기위 유명한 사실. 일찌감치 차세대 스타 자리를 예약한 박수예의 행보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따뜻하고 솔직한 음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단순히 음만 연주하지 않기 위해 작곡가와 작품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또 경험의 폭도 넓히고 있죠. 제 마음이 음악에 녹아들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이대희
스타일링 김수정
헤어 & 메이크업 강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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