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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를 그리는 길

  • 2019-06-25

포슬린 아트 작가 승지민에게 취미와 예술의 경계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시대 한 여성의 삶으로 보면 다른 깊이가 있을 뿐.

승지민은 한국에 포슬린 아트를 소개한 1세대 작가다. 유약을 바른 도자기에 색을 입히는 상회(上繪) 기법이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2000년대 초, 직접 스튜디오를 열고 교육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포르투갈 리스본 월드 포슬린 페인팅 컨벤션 금상, 2004년 국제포슬린작가협회 컨벤션 은상 등을 수상했고, 많은 국내외 전시에도 참여했다. 생활 공예나 취미로만 알려진 포슬린 아트의 편견에서 벗어나 목재와 도기를 입체 회화의 장르에 접목해 새로운 시도를 해온 그녀의 이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고유의 문화와 여성성을 상징하는 자신만의 해석으로 최근 미국과 터키 등 해외 전시 초대를 통해 컬렉션 구매가 활발히 일어나는 등 작가로서 새로운 전기를 열어가는 중. 오는 10월 미국 LA에서 개인전을 앞둔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작가가 결국 전하고자 하는 것은 작품을 만드는 기법이 아닌, 여성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가는 의지의 힘이었다.

프로필 대신 작품을 먼저 보았습니다. 항아리 모양 도기가 캔버스로 바뀌었네요. 원래 전통적 요소에 관심이 있었나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긴 했지만, 꼭 그런 건만은 아니에요. 학력고사를 치른 뒤 먼 인척인 한국 사학 1세대 이기백 학자의 권유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 입학했어요. 막연히 역사를 좋아하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알다시피 1980년대 인문대학은 세상에 더 관심이 많았죠. 과 분위기가 뒤숭숭했고, 전공에 흥미를 잃고 말았어요. 결국 여성학으로 눈을 돌렸어요.

여성학은 뜻밖인데요? 전공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서 여성학 동아리엔 열심이었어요. 딸만 넷인 집의 막내라 당시 사회의 남녀 차별에 더 민감했는데, 현실적인 데다 사회 참여가 가능한 학문이라 재미있었어요. 자연스럽게 대학원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미국 산호세 주립대에 입학해 유학 생활을 하며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죠. 아이도 둘 낳았고요. 우리 나이대의 많은 여성이 그렇듯이, 집안 어른의 권유로 가정에 충실해야 했습니다. 박사과정에 등록하고도 접어야 했죠. 여성학자를 꿈꾸던 내가 현실에 순응하다니, 분했어요.

포슬린을 만난 계기가 그쯤이겠군요. 저보다 먼저 박사과정을 마친 남편이 귀국한 뒤 다시 폴란드 주재원으로 나가면서 전업주부의 삶이 시작되었어요. 좋은 평가를 받은 석사 논문과 공부에 대한 미련이 마음 깊이 깔려 있었죠. 그러다 우연히 현지에서 만난 영국인의 권유로 포슬린 아트를 접했습니다.

무엇이든 몰두하고 발산할 통로가 필요할 때, 삶이 붓으로 흘러갔고요. 폴란드에 이어 이탈리아 독일 바우어와 마이센으로 무엇에 홀린 듯 도자기를 따라 건너다녔어요. 한국에 돌아온 것은 2002년인데, 당시 한국은 포슬린이라는 장르가 낯설 때였어요. 내 인생을 바꾼 예술이니 어서 알려야겠다는 마음뿐이었죠. 작가나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할 수도 없었습니다.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즈음인가요? 작품 구상은 늘 하고 있었어요. 귀국 후 가족의 지원으로 스튜디오를 열었고, 동료들과 전시를 하면서도 개인전은 따로 해왔습니다. 가르치는 일에 급급하면서도 늘 여성의 위대함을 표현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어요. 보티첼리의 작품 ‘비너스의 탄생’을 보고 여신이 서 있는 진주조개가 도자기의 질감과 비슷한 것을 발견했고, 거기에 주력했습니다. 그러다 대지의 여신, 여자의 몸과 상징으로 관심사가 옮겨갔어요. 나만의 여성을 찾아 토르소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무 쟁반 위에 놓은 접시처럼 작품의 바탕이 되는 도자기도 개발했고요. 최적의 재료를 찾기 위해 다른 공예가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죠.

여자가 여자를 찾아다닌 거군요. 여성의 위대함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한때, 진지하게 여성학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타고난 여성 자체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성과 동등하기 위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까지 비슷하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전 여성이 타고난 여성성을 우아하게 표현하기를 원해요. 여성만이 할 수 있는 무엇을 찾고 있죠. 가족들과도 이런 주제로 종종 토론해요. 제 영향을 받았는지, 딸아이도 여성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걸 보면 내심 뿌듯합니다.

사는 모습이 달라졌을 뿐, 인간 승지민으로서는 멈춘 적이 없군요? 여성학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 같아 가끔은 아쉬웠지만 한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면 다른 방면으로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누군가의 아내 또는 엄마로 사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느꼈다면 가족에게 원망이 생겼겠지요. 전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내 방식대로 다른 방향에서 표출했기에 그런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포슬린 아트는 여가 시간을 보내는 고급 취미로만 알고 있어요. 그런데 해외에서는 반응이 달랐죠? 많이 알려진 요즘은 돈벌이 수단으로만 비쳐지지 않도록 뜻을 같이하는 한국포슬린작가협회 회원들과 꾸준히 전시도 하고, 개인전도 열고 있어요. 공익을 위해 재료비를 공개하기도 하죠. 그러면서도 저 스스로를 다잡게 된 것은 지난해 터키에서 열린 ‘컨템퍼러리 이스탄불 아트 페어’에 참가한 후부터예요.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작품을 준비했는데, 정작 현지에서 컬렉터의 관심을 끈 것은 여자의 뒷모습(토르소)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야하다며 지인조차 쉽게 구매 문의도 못하는 것이 해외에서는 유독 여성에게 인기가 높았죠.

어떤 부분이 그들의 눈길을 끈 걸까요? 터키는 이슬람 문화권 중에서도 개방적인 나라고, 아트 페어에는 주로 유럽계 중·상류층 컬렉터가 많이 찾아요. 그 점을 감안해도 신기했어요. 그 사람들 눈에는 그저 아름다운 여자고 작품인 거예요. 막연히 한국적인 것, 동양적인 것에 끌리는 것이려니 생각한 제가 멍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기쁘기도 했고요. 국내 반응에 갇히지 않고 제 스타일로 더 자신감을 갖고 몰두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가로서 확신도 생겼겠네요. 20여 년간 일반인 대상으로 교육도 하며 한국에 포슬린 아트를 알리는 데 애써왔어요. 취미와 작품의 경계는 모호하죠. 그래서 가끔은 미술 학원에서 작품 재료를 사는 것처럼, 제 작품의 바탕이 되는 토르소 도자기만 사겠다는 사람도 있어서 곤란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누구나 포슬린 아트의 비결을 알려달라고 하면 언제든 얘기합니다. 쉽고 빠르게 그리는 편이죠. 한두 번에 끝내는 저만의 방법이 있거든요. 무엇을 공개해도 두렵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누군가 빨리 나를 알아줬으면 하고 조바심 낸 적도 없으니까요. 지금은 작가로서 마음이 또 새롭습니다. 20대부터 미혼모와 낙태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저는 그들을 후원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세대예요. 하지만 이제는 다른 작가들과 작품 활동을 통해 조금이나마 돕고 있습니다. 사회적 인식이나 정책적으로도 훨씬 열린 것에 공감하고 있어요. 미국 뉴저지에서 한인 작가회 초청으로 연합전을 열 때도 그랬는데, 주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꽃 작품 위주로 그려 올리면 저를 더 알아줄 거라는 조언을 해요. 하지만 나만의 방법이 있으니, 따르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게 작가로 거듭나고 싶어요. 

 

포슬린 아트(포슬린 페인팅)의 기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청화백자처럼 초벌구이한 도자기 위에 바로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발라 소성한 것을 하회 기법이라 하고, 유약을 바른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린 후 소성한 것을 상회 기법이라 한다. 상회 기법은 덧칠할수록 깊은 색감이 우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김잔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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