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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9 ARTIST&PEOPLE

호크니가 시대에 던지는 더 큰 첨벙

  • 2019-05-30

영국 테이트 모던과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전이 연일 인기다. 8월 4일까지 열리는 전시를 통해 우리는 호크니의 독특한 시선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유추할 수 있다.

1 ‘로먼 로드에 꽃피우는 5월(May Blossom on the Roman Road)’을 그리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2009).
2 울드게이트 숲에 베어진 나무들(More Felled Trees on Woldgate), Oil on 2 Canvases (152.4×121.9cm each), 152.4×243.8cm Overall, 2008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의심할 여지 없이 현시대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은 수많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되었으며, 2017년 작가 탄생 80주년을 기념해 영국 런던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을 필두로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을 순회한 회고전은 오늘날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아시아 최초의 회고전이 성황리에 진행 중이고, 지난 3월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에서는 작가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는 ‘자연’에 대한 두 거장의 헌시, < 호크니-반 고흐: 자연이 주는 환희(Hockney-Van Gogh: The Joy of Nature) >전이 개막했다. 이러한 과정과 상황을 볼 때 우리는 데이비드 호크니를 현존하는 예술가 중 최고 작품가를 기록한 작가로 평가하기보다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인 이 시대의 예술가’로 소개해야 할 것이다.


호크니의 빛과 색
호크니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언뜻 지나치기 일쑤인 사물, 풍경, 일상의 언어는 호크니라는 연금술사를 만나 더욱 아름답게 다가온다. 시간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명민하고도 민첩하게 포착해내는 그의 작품을 숨죽여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북쪽의 빛’에 익숙한 그가 햇살 가득한 캘리포니아 남부의 풍경에 둘러싸여 느꼈을 다채롭고 풍요로운 시각의 경험이 절로 궁금해진다.






3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 Acrylic on Canvas, 242.5×243.9cm, 1967

1964년부터 LA 샌타모니카 인근에 거주하며 호크니는 이 지역 특유의 다양한 건축양식, 강렬한 빛과 그림자의 색채, 그곳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의 모습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그에게 보다 단순하지만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가 태어나 20년간 보낸 영국의 소도시 브래드퍼드(Bradford)에는 밝은 해가 자주 뜨지 않았기에 그림자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던 반면, 캘리포니아의 빛은 그곳보다 열 배나 더 강렬했다. 고향과 달리 강한 햇빛이 내리쬐는 아름다운 아침을 맞이하게 된 그가 그저 반복되는 일상의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한 것뿐인 미국 서부인에 비해 ‘빛’을 다른 시점으로 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며 바라보는 별다른 특징 없는, 어찌 보면 따분할 수도 있는 풍경과 수직적 구조의 건축물, 표지판을 비롯해 잔디밭과 정원이 있는 뒤뜰 그리고 수영장이 있는 평범한 주택은 호크니의 손을 거쳐 매력적으로 묘사되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의 로스앤젤레스 섹션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작품에는 물이 각기 다른 형태로 스며들어 있다. 이번에 한국에서 선보인 그의 대표작 ‘더 큰 첨벙(The Bigger Splash)’에는 호크니가 LA에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아크릴 본연의 얇고 산뜻하고 가벼운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덧바를 수 있는 유화와 달리 바르자마자 말라버리는 아크릴의 특성상 수정하기가 쉽지 않아 2주 넘게 공들여 그린 물살에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의 특성을 어떻게 포착할지 고민한 흔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협력해 이번 전시를 진행한 테이트 모던의 큐레이터 헬렌 리틀(Helen Little)도 호크니와 마찬가지로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호크니의 ‘더 큰 첨벙’이 시각적 발견과 감각을 일깨우는 전율을 선사했다고 고백한다. 물을 표현하는 데 어떠한 제약도 없다고 생각한 호크니의 다른 작품 속엔 햇빛에 반사되어 무지갯빛으로 흩뿌려지는 물줄기부터 잔디 위로 분수처럼 분무되는 가느다란 물줄기, 출렁이는 것처럼 보이는 수영장 타일의 패턴까지 물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4 클라크 부부와 퍼시(Mr. and Mrs. Clark and Percy), Acrylic on Canvas, 213.4×304.8cm, 1970~1971

새로운 창을 선사하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에 호크니는 자신이 본 사람들과 장소에 대해 더욱 감성적으로 반응하며 이미지를 제작했다. 초기작이 이집트 고대사가 연상되는 도식화된 인물상이었다면, LA에서 보낸 시기는 자연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이 시점은 그가 세부 묘사를 위해 35mm 펜탁스 카메라를 구매해 사용한 시기와도 우연히 맞아떨어진다. 채광은 시간과 함께 변화하기에 그는 점차적으로 사진을 통한 섬세한 연구에 몰두했으나 이내 “창을 통한 관점은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다”며 프레임에 갇힌 고정된 시각으로 이미지를 보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원근법에 충실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곳에 머물지 않는 움직이는 초점을 적용해 그림으로써 고정된 관점에 갇혀 있는 관람객에게도 ‘소실점의 개념도, 경계선도 사라진’ 새로운 시점을 불어넣는다.






5 인테리어 구도 속 화병 세 개(Three Vases of Flowers in an Interior), Acrylic on Nine Canvases, 203.2×294.6cm, 2018
6 LA 루버에서 열린 < Something New in Painting (and Photography) [and even Printing] …Continued >전시 전경.

호크니는 ‘로드 픽처스(road pictures)’ 연작이라 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의 ‘샌타모니카 대로’나 작업실 가는 길을 묘사한 ‘멀홀랜드 드라이브’ 등을 통해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을 정지된 그림으로 그려낸다. 작품 속에 내재한 이러한 움직임은 마치 오페라 무대 위 배우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듯 보는 이의 머릿속에도 다양한 시선이 자리하도록 만든다. 호크니가 LA 인근에 둥지를 튼 3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스무 번 넘게 전시한 LA 루버(LA Louver)에서 지난 2월 선보인 < Something New in Painting (and Photography) [and even Printing] …Continued >전에서도 호크니의 새로운 시각과 호기심이 드러났다. 정지된 그림과 세계의 부단한 움직임을 융화해 3차원 세계를 평면 위에 재현한 호크니의 대형 포토그래픽 드로잉 작품에는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에 대한 그의 사색이 깊이 배어 있다. 할리우드 힐스(Hollywood Hills)에 자리한 그의 스튜디오 전경이나 정물, 건축적 모티브 등을 주제로 9개 패널에 나눠 그린 ‘인테리어 구도 속 화병 세 개(Three Vases of Flowers in an Interior)’에서는 의도적으로 캔버스 사이에 간격을 두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틈을 상상력으로 채우도록 만든다. LA 루버 양쪽 벽을 채운 초상화의 주인공은 에드 시런(Ed Sheeran), 브루노 마스(Bruno Mars)를 비롯한 그의 스튜디오 팀원과 지인들이다. “사람이란 지극히 흥미롭고 신비로운 존재여서 끝없이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호크니는 올해 81세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그의 청력은 꽤 오래전부터 신통치 않고, 게티 미술관(The Getty) 내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필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농담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애연가지만 말이다. 그는 그리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여전히 이를 즐긴다. 또 디지털의 승승장구에도 오히려 신문물을 그림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오늘도 호크니는 시종일관 자신의 주위를 에워싼 세계를 관찰하고, 그리고, 연출하고, 찍고, 때로는 인쇄해 현대적이고도 새로운 시각을 선보이며 관람객에게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제안하고 있다.






7 에드 시런(Ed Sheeran), Charcoal and Crayon on Canvas, 121.9×91.4cm, 2018
8 서울시립미술관 < 데이비드 호크니 >전 전경.
9 < 데이비드 호크니 >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Mini interview
with Helen Little(테이트 모던 큐레이터)


전시장은 각 공간의 언어를 지닌다. 130여 점의 작품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어떻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호크니의 그림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다가가기 쉬운 전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다. 멋진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호크니 특유의 예술 세계로 떠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이미 잘 알려진, 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호크니의 작품뿐 아니라 덜 알려진 면면까지 고루 보여주고자 했다. 작가가 시간과 움직임, 공간을 2차원 평면에 포착해내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일관되게, 꾸준히 노력을 기울여왔음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고 스타일 변천사를 거듭해온 만큼 시대순에 맞춰 특정 양식에만 국한되지 않은 그의 대담함과 비범한 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과거 테이트 모던, 퐁피두 센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전시와 비교했을 때 이번 전시의 의의에 대해 말해달라.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개최되는 첫 호크니 전시인 만큼, 그간 작가에 대해서는 알고는 있었으나 원작을 볼 기회가 없었던 관람객에게 작품 실물을 심도 있게 소개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관람객들은 호크니를 오늘날에 이르게 한 대표작 외에도 그가 얼마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을 즐겼는지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호크니는 각기 다른 소재로 그린 작품을 한데 보여주는 것이 결정적이라고 믿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 외에도 프린트, 드로잉, 디지털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지난 60년간 그의 작품을 망라해 보여준다.

호크니가 미술사에 미친 영향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들려줄 수 있는가?
미술사와 관련한 호크니의 심도 있는 지식과 과거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그의 말을 비추어보건대 그의 작품 또한 다양한 역사적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의 2인 초상화는 18세기 영국의 전통 초상화와 연관성이 있고, 요크셔 회화는 화가 콘스터블(Constable)이나 터너(Turner)처럼 영국식 경관을 그려온 전통을 잇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움직이는 초점(Moving Focus)’ 시리즈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이 그가 1980년대 초반 사진 작업과 시점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전개할 때 깊은 인상을 준 아시아 미술에 대한 관심과 존경을 표하고 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황다나(아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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