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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9 FEATURE

도시는 죄가 없고

  • 2019-04-23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문화’란 무엇일지 떠올려 봤다. 보편적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어 머리가 아팠다.

대도시 서울. 우린 이곳에서 각자의 취향에 맞는 문화를 얼마나 누리고 있을까?

한국에서 ‘1000만 관객 영화’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2003년 <실미도> 이래 총 23편의 1000만 관객 영화가 나왔으니 말이다. 심지어 2012년 이후엔 1년에 3편꼴로 1000만 관객 영화가 나왔다. 2019년 현재 전국의 스크린 수는 약 3000개. 이 중 94%가 멀티플렉스다. 이곳에서 해마다 2억 명 이상이 영화를 본다. 국민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로는 4.2회, 이를 뛰어넘는 나라는 ‘빙하의 땅’ 아이슬란드 밖에 없다.
아무리 훌륭한 영화라도 한 작품에 국민의 3분의 1이 몰리는 일은 드물다. 이는 아무래도 전국 곳곳에 있는 멀티플렉스 덕일 것이다. 한국인의 독서량은 오랫동안 OECD에서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니, 도심의 복합 쇼핑몰에 자리한 멀티플렉스가 여가 문화를 지배한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데 이 문제는 한 번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만의 독특한 도시 문화 관점에서 말이다. 정확히는 도시의 공간적 측면. 예로, 유럽의 도시 대부분은 사는 곳 어디서든 걸어서 10분 안에 공원과 도서관에 갈 수 있다. 공원에, 광장에, 미술관에 ‘걸어서’ 간 사람들은 다양한 강연과 토론에 쉽게 참여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문화를 평소 알고 지낸 이들과 같이 누린다. 하지만 우리는? 우린 다르다.
에디터만 해도 주말이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지붕이 덮인 쇼핑몰까지 차로 오가며 시간을 보낸다. 자연스레 커뮤니티, 자연과는 격리된다. 변화하는 자연은 인스타그램에서 더 자주 느낀다.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에디터보다 어린 학생이라고 다를 것 같진 않다. 그들은 똑같이 생긴 학교에서 같은 교복을 입고 공부하며, 남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같은 쇼핑몰에서 문화생활을 하면서 ‘대세’의 흐름에 끼고 싶어 한다. 이는 한 해에 ‘1000만 관객 영화’가 3편이나 출몰하는 한국의 문화 사정과 그리 멀리 있지 않다.




1 이벤트가 생길 빈도가 높아 보이는 로마의 뒷골목.
2 세계의 몰링족이 모이는 홍콩의 한 쇼핑몰 풍경.
3 걸으며 다양한 ‘우연성’을 만나게 되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거리.

한국의 도시 공간과 문화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박해천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언젠가 <아트나우>와의 인터뷰에서 “복합쇼핑몰이라는 공간이 개인의 정체성을 ‘소비자’로 빠르게 포획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복합 쇼핑몰은 모든 개인이 자신을 소비자로 인식하게 하며 ‘어디서 쓰느냐’는 이슈만을 부각한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복합 쇼핑몰에서 우리가 만나는 이들은 공동체 이웃이 아닌, 돈을 낸 대가로 서비스를 해주는 ‘직원’이란 얘기다. 돈으로 계약된 관계에서 우린 비슷한 태도로 직원을 대한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음식을 주문하고, 다들 보는 영화를 똑같이 관람한다. 우리가 사는 물건뿐 아니라 태도도 비슷해진다. 우리가 이러는 걸 우리도 눈치채지 못한다.
서울에 복합 쇼핑몰이 생긴 지 20년이나 됐다. 2000년 삼성동에 코엑스몰이 문을 연 뒤 해를 거듭할수록 전국에 규모를 과시하는 복합 쇼핑몰이 생겼다. 그간 복합 쇼핑몰은 도시에서 다양한 세포분열을 했다. 이제 이곳에 가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이 됐다. 최근엔 복합 쇼핑몰에서 쇼핑뿐 아니라 여가 생활을 즐기는 이들을 ‘몰링(malling)족’이라고도 부른다. 어려서부터 동네 복합 쇼핑몰에 가는 게 익숙한 20〜30대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더울 땐 더워서, 추울 땐 추워서 날씨의 영향을 덜 받는 복합 쇼핑몰을 약속 장소로 정한다.
이경훈 국민대학교 건축과 교수는 저서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에서 이러한 서울의 문화 기형에 대해 이렇게 썼다. “도시는 걸음으로써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사는 만큼 서로 자주 접촉하고 마주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또 “도시의 쾌적함은 녹지의 면적과 나무 수가 아니라 공유 공간을 함께 나누고 그곳에 생명력을 가져다주는 데 있다”고 쓰며 “흔히 도시적 건축의 상징으로 여기는 서울의 쇼핑몰은 서구적이며 현대적이지만 도시적이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상점이 먼 미국의 전원 도시에서 탄생한 서울의 복합쇼핑몰 모델은 거리와 상점을 흉내 내 만든 작은 가상 도시로, 주변거리를 죽게 하고 결국 도시 전체를 폐허로 만든다는 이야기.
<알쓸신잡>으로 유명한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과 교수는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우리나라 도시 생활의 특성으로 ‘자연의 제거’를 꼽으며 “자연을 격리하는 쇼핑몰이 획일화를 부추긴다”고 했다. 그는 “획일화되면 각자의 가치관은 정량화될 수밖에 없다”며 “같은 집에 사니 ‘무슨 꽃이 피었다’가 나만의 가치가 아니라, 집값으로만 주거 가치가 평가되고, 모두가 같은 문화를 누리니 우리 삶의 다른 가치도 성적이나 연봉, 키, 나이, 체중 이렇게 ‘숫자’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돼버린다”고 썼다. 신기하게도 ‘1000만 관객 영화’의 이면을 들추니 이처럼 도시 구조, 나아가 계속 악순환되는 문화 획일화 문제가 드러난다.
물론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다양성 영화의 의무 상영 비율을 강제로 늘리는 프랑스나 도보 10분 이내 공원 배치 정책을 주마다 확산하는 미국 등 본받을 행정적 사례는 많다. 하지만 이는 우리도 이미 하고 있는 것으로 좀 더 본질적 해결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경훈교수의 말처럼 의도적으로 ‘걷게 하는 것’이 도시를 살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10여 년 전, 에디터가 유럽의 도시를 여행하며 느낀 점은 ‘왜 이렇게 골목이 미로 같을까?’였다. 골목길의 호텔에서 나와 골목에 있는 식당과 미술관에 가기까지 무수한 골목을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당시 목적지까지 가는 길엔 늘 공원과 나무, 교차로, 광장 등 ‘이벤트가 생길 만한’ 것이 넘쳤다. 이벤트의 빈도가 높으면 ‘우연성’이 생긴다. 우연성이 있으면, 그 길을 걷는 이들이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고 더욱더 ‘자기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물론 이는 단순히 서울의 대형 쇼핑몰과 유럽의 골목길, 자연을 두고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개념은 아니다. 말하자면 ‘문화 영역’에 대한 문제로, 도시의 본질과는 별 상관이 없다.
서울에 친한 외국인 친구가 놀러 오면 우린 과연 어디로 안내할 수 있을까? 아파트나 복합 쇼핑몰 근처에 그럴싸하게 조성한 공원을 명소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지은 지 20~30년만 되어도 낡았다고 말하는 서울에서 멋진 건축물은 무엇일까? 우리가 찾는 복합 쇼핑몰에 ‘욕망’이 아닌 ‘소통’이 들어찰 순 없을까? 도시가 상징하는 건 대체 뭘까? 우리가 필요한 건 정작 ‘장소’보다 ‘행위’이며, 그 안에 좀 더 자신다울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닐까?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문화’란 무엇일지 떠올려봤다. 하지만 보편적이고 획일화된 생각밖에 할 수 없어서 머리가 아팠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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