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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8

다시, 호크니

데이비드 호크니의 몰입형 전시가 ‘라이트룸 서울’에 상륙했다.

[Bigger & Closer(not smaller & further away)] 전경.

몰입형 예술(immersive art, 디지털 기술로 만든 작품을 공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예술 기법)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다. 전시장에 다녀온 사람들은 “작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미술사 속 인물이 된 것 같다”라고 평한다. 영상이 내 몸에 투영될 때 작품과 하나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 때문. 반면, 평론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실제 작품이 없어 예술이 주는 감동이 사라졌다는 게 골자다. 이는 몰입형 예술이 ‘체험’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봤음에도 고민할 거리가 덜 남는 것에서 기인할 것이다. 더욱이 몰입형 예술은 대부분 거장의 걸작을 가공한 결과물인데, 디지털 기술이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변질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관해 미술 평론가 정준모는 “목적으로서 몰입은 예술적 의도나 미학의 실천, 실험보다는 기본적으로 상업적이에요. (…) 몰입형 전시가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예술의 기본 요소인 자기 목적성을 갖추지 못해서죠. 예술품이란 물적 요소를 갖춘 ‘형상적 존재’, 정신에 의해 파악되는 ‘실제적 존재’, 보이는 모습 너머에 있는 ‘이념적 존재’입니다”라고 말한다.





라이트룸 서울.

그러나 현장의 행보는 평론가들의 견해와 다르다. 대표적으로 ‘아트 바젤 홍콩 2023’에선 중국 난징 더지 미술관이 기후 위기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비플의 작품을 약 120억 원에 구매했고, 스위스 로잔 연방 공과대학교는 몰입형 전시를 개발하는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 미술 매체 아트넷에 따르면, 반 고흐의 몰입형 전시는 2021년 2월부터 2022년 5월까지 500만 장 이상의 티켓을 판매했다(미국인 90명 중 1명이 구매했다는 의미). 그만큼 많은 사람이 미술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결국, 작금의 설왕설래는 ‘색다른 경험을 추구하는 것’과 ‘예술을 인스타그래머블한 상업적 존재로 여기는 것’ 사이의 거리를 좁혀가는 단계인 셈. 그렇다면 작가들의 목소리는 어떠할까. 지난 2월 영국 런던 라이트룸에서 개최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몰입형 전시 [Bigger & Closer(not smaller & further away)]를 예로 들어보자. 이 전시 역시 극찬과 비난이 공존했다.





3년에 걸쳐 전시 기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데이비드 호크니. © Mark Grimmer
3년에 걸쳐 전시 기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데이비드 호크니. © Mark Grimmer


그런데 정작 호크니는 쿨한 반응을 보여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비평가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그게 전부입니다.” 이처럼 개방적인 혹은 자유로운 데이비드 호크니의 캔버스에 몰입할 수 있는 자리가 서울에 마련됐다. 바로 런던 라이트룸에서 선보인 [Bigger & Closer(not smaller & further away)]가 고덕동 ‘라이트룸 서울’에 상륙한 것. 런던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열리는 전시다. 총 여섯 가지 주제를 담은[Bigger & Closer(not smaller & further away)]의 특징은 작가의 타임라인 대신 특정 작품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비선형적 구조를 선택한 것. 이로써 관람객은 예나 지금이나 호크니는 늘 회화적 관습에 재치 있게 도전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런던 전시장과 비슷한 규모로 지은 라이트룸 서울(가로×세로×높이 18.5×26×12m)은 러닝타임 50분 동안 호크니의 세상으로 물든다. 바닥을 포함한 다섯 면과 27개의 프로젝터를 활용해서인지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널찍한 정원을 거닐다 넘실거리는 수영장 물에 몸을 맡기는 상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게다가 오페라 작품은 움직이는 무대 디자인과 아름다운 아리아가 어우러져 실제 공연을 관람하는 듯하다. 이와 함께 영상은 미술을 대하는 호크니의 태도와 작품을 제작하는 법, 작품 관련 일화도 담아냈다. 특히 폴라로이드 사진을 콜라주한 작품과 아이패드 드로잉은 탄생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 그의 노르망디 스튜디오 한가운데에 앉아 미술 거장의 하루를 감상하는 관찰자적 시각을 즐길 수 있다.





[Bigger & Closer(not smaller & further away)] 전경.
[Bigger & Closer(not smaller & further away)] 전경.


[Bigger & Closer(not smaller & further away)]의 차별점이 있다면, 여느 몰입형 전시와 달리 생존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 호크니는 3년에 걸쳐 전시 기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직접 작품 해설을 맡아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전했다. ‘신작’, 이 전시를 가리켜 라이트룸 런던 CEO 리처드 슬래니가 말한 단어다. 곱씹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구성이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까닭이다. 현란한 빛의 향연에 홀리는 것도, 황홀한 감정에 빠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시는 사유의 정원을 보장한다. 왜 호크니가 원근법을 비틀었는지, 2차원의 사진이 어떻게 3차원의 생동감을 줄 수 있는지 등. 이미 책과 화이트 큐브를 통해 작품을 접하면서 품은 익숙한 의문이나, 5개의 면을 밝히는 작품의 오라 덕분에 보는 이는 고착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예전보다 입체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마치 60여 년 동안 호크니가 ‘본다’라는 기본적 행위를 꾸준히 실험하며 독특한 재현 방식과 창작 방식을 찾아낸 것처럼. 문득 전시장에서 나직하게 들려온 데이비드 호크니의 읊조림이 귓가를 스친다. “봄이 오는 것은 항상 흥미로웠습니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놀라움이 펼쳐집니다! 물론 모든 것이 화려하고 또 새로워집니다. 꽃이 피면 모든 것이 싱그럽지 않은가요?” 새삼스럽게 봄날의 신기로움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호크니의 그림을 다시 펼쳐봐야 할 것 같다. 전시는 내년 5월 31일까지.

 

에디터 박이현
라이트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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