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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8 FEATURE

낡은 소리, 새로운 감성

  • 2018-09-28

요즘 로파이 음악에 빠져 있다. 그게 뭐냐고? 부연 설명은 제쳐두고, 일단 들어보라.

1 유튜브 채널 ‘ChilledCow’.   2 로파이 음악은 낡은 카세트테이프의 잡음을 연상시킨다.   3 비치 보이스.

주로 출퇴근길에 음악을 듣는 에디터의 플레이리스트는 정해져 있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이 아니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 데다 취향이 확고해 웬만해선 새로운 노래가 끼어들 틈이 없다. 하지만 최근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한두 곡씩 지분을 늘려가더니, 어느새 리스트를 꽉 채운 장르가 있다. 바로 로파이(lofi) 음악이다.
로파이는 ‘로 피델리티(low fidelity)’의 약자로, 고음질을 뜻하는 ‘하이파이(hifi)’와 반대되는 단어다. 쉽게 말해 음질이 떨어진다는 뜻인데,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 또는 낡은 카세트테이프에서 새어 나오는 잡음이나 라디오 소음을 연상시키는 사운드가 묘하게 매력 있다. 컬러 소음과 반대로 귀를 자극하지 않는 ‘백색소음’을 떠올리면 쉽다. 의도적으로 음질을 낮춘 음악이지만 저음질이라고 해서 선입견은 금물이다. 기술을 이용해 일부러 음질을 떨어뜨리거나 노이즈를 추가해 거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단지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를 내세울 뿐, 재지한 비트를 가로지르는 소음, 거칠고 깨끗하지 않은 날것의 음질,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되레 듣기 좋다. 자연 속 백색소음이 심리적 안정을 불러오고 수면을 촉진하는 것처럼, 로파이 사운드도 일상 속 날것의 소리를 그대로 노출해 듣는 이에게 익숙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로파이 음악은 1950년대 펑크를 기반으로 록 음악가가 값싼 장비를 이용해 만든 홈 리코딩에서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직접 손으로 만든다(Do it yourself)’를 뜻하는 DIY 음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가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의 홈 스튜디오에서 만든 앨범도 로파이 장르로 볼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WFMU DJ 윌리엄 버거(WFMU DJ William Berger)가 ‘로파이(Low-Fi)’라는 이름으로 홈 리코딩 음악을 정기적으로 선보이면서 이 용어가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고 뉴질랜드의 톨 드워프스(Tall Dwarfs)와 미국의 비트 해프닝(Beat Happening) 등이 카세트테이프 레코더로 녹음한 앨범을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1990년대부터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인식되며 록, 힙합, 재즈 같은 여러 음악 장르에 활용됐다. 깔끔하고 선명한 음질을 추구하는 음악과 결을 달리하는 꺼끌거리고 긁어대는 소리와 잔잔하고 조용한 비트로 색다른 음악을 탄생시키며 점점 마니아층을 늘려왔다.
‘부드러운, 풍부한, 그윽한’을 의미하는 ‘멜로 비트(mellow beat)’라고도 불리는 로파이 사운드는 멜로디와 비트가 주를 이룰 뿐, 악기 소리나 래핑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물론 노랫말과 내레이션을 가미하기도 한다. 또 바람 부는 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글씨 쓰는 소리,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등을 삽입해 음악을 들으며 그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볼수 있다. 이렇게 일상의 따사로운 햇살을 연상시키는 먹먹하고 뭉개지는 사운드에 빠져든 마니아가 한둘이 아니라고. 오래되고 낡은 듯한 음악에서 오히려 새로움을 느끼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요즘 디지털카메라를 뒤로하고 필름카메라를 꺼내 들어 낡은사진을 찍는 유행과도 유사하다. 오래된 것에서 익숙함을 느끼듯, 오히려 너무 깔끔하게 다듬은 고음질 음악보다 편안하다는 의견도 많다.
에디터는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로파이’로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해 듣는 편인데, 로파이 마니아들이 가장 애용하는 창구는 유튜브다. 로파이 음악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채널이 수백 개에 이르는 걸 보면 요즘 로파이 사운드에 푹 빠진 사람이 에디터만은 아닌 듯하다. 로파이 음악을 틀어주는 대표적 유튜브 채널 두 곳을 소개한다.
먼저 유튜브의 로파이 음악 채널 중 구독자 수가 가장 많은 채널 ‘ChilledCow’다. 이 채널의 구독자 수는 194만 명에 달한다. 동시 접속률이 높기로 유명한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에디터를 포함해 8450여 명이 동시에 이 채널이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lofi hip hop radio - beats to relax/study to’를 통해 로파이 음악을 듣고 있다. 물론 스트리밍하는 음악도 수준급이지만, 서정적 애니메이션 영상을 함께 제공해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또 구독자 수가 37만 명인 ‘Mellowbeat Seeker’도 높은 인기를 구사하는 채널 중 하나다. 특히 로파이 힙합을 엄선해 들려주는 ‘24/7 lofi hip hop radio - beats to chill/study/relax’라는 스트리밍서비스를 제공하며, 제목 24/7은 24시간 동안 일주일 내내 스트리밍한다는 뜻이다. 동시 접속 인원은 800~900명 정도다.
이 두 채널처럼 구독자 수가 많진 않지만 로파이 힙합과 로파이 재즈를 믹스해 특정 상황에 맞는 음악을 테마별로 묶어 소개하는 ‘RLIFE’나 사운드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믹싱해 10분가량의 영상을 제공하는 특색 있는 채널‘Lophee’ 등도 추천할 만하다. 이도 저도 어렵다면 유튜브 검색창에 ‘lofi’라고 친 다음 제일 먼저 나오는 영상을 클릭하자.




4 이리의 앨범 재킷. 로파이 음악의 앨범 이미지도 음악만큼 잔잔하고 아름답다.
5 오래된 레코드판에서 나오는 음악은 로파이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6 제이컵 오가와의 앨범 재킷.

로파이 음악을 한 단어로 표현하긴 어렵다. 느슨하고 편안한 사운드, 잔잔하고 조용한 선율을 자랑하면서도 절대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다. 대중가요나 재즈를 리믹스하면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그냥 과장 좀 보태서 모든 상황에 어울린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포털 사이트에 ‘로파이 음악’을 검색하면, 공부할 때 들으면 좋은 곡이라는 포스팅이 줄줄이 뜰 정도다. 지나치게 시끄럽고 빠른 비트나 너무 차분하고 잔잔한 리듬이 질린다면, 로파이 음악이 제격이다. 로파이 사운드를 들으면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도 마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홀로 마당에 누워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음을 다스리고 싶은 순간이나 잠들기 직전 하루를 돌아보며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도 어울린다. 에디터는 집중해 기사를 써야 할 때 로파이 음악의 도움을 받는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너도나도 하이파이를 찾는 디지털 시대에 로파이 음악을 들으며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해보자. 마지막으로 귀를 자극하는 고음질 사운드가 넘쳐나는 시대를 거스르는 부담없고 편안한 감성에 흠뻑 젖어보고 싶은 독자에게 로파이 음악 몇곡을 추천한다. 포츠(Potsu)의 ‘Lovesick’, 이리(eery)의 ‘Her’, 무(Moow)의 ‘People’, 제이산(j’san)의 ‘Waking Up in the Park’, 제이컵 오가와(Jakob Ogawa)의 ‘All Your Love’ 등이다. 이외에도 무궁무진한 아티스트와 음악이 존재하니 취향에 맞게 즐겨보자. 일단 유튜브 채널을 틀어놓고 듣다가 순간 귀에 감기는 음악이 있으면 아티스트를 확인해도 좋겠다. 음악을 말로 설명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막상 들어보면 귀에 익숙할 거다. 재생하자마자 귀에 꽂히는 멜로디가 대부분이고, 곡 길이도 짧아 부담이 없다. 삶과 가장 가까운 소리를 제공하는 로파이 음악. 직접 들어보라. 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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