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News

SEPTEMBER. 2018 CITY NOW

100년 전부터 시작된 모더니즘

  • 2018-08-30

지금 오스트리아 빈은 ‘빈 모더니즘 100주년’으로 어느 때보다 뜨겁다. 물론 그게 전부란 얘긴 아니다.

1 오토 바그너의 완숙한 걸작으로 평가받는 빈 우편저축은행.
2 클림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담과 이브’.

빈은 역사적 건축물로 가득하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은 더 다양하다. 오늘날 이곳을 채운 문화유산은 1900년 전후 한꺼번에 탄생했다. 바로 윗세대와 단절을 선언한 ‘분리파’ 예술가들이 혁신적 예술 활동을 펼친 ‘빈 모더니즘’을 통해서다. 당시 활동한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년)와 에곤 실레(1890~1918년), 디자이너 콜로만 모저(1868~1918년), 건축가 오토 바그너(1841~1918년)는 19세기 말 빈을 세계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한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들은 모두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빈은 모더니즘 선구자인 이들의 100주기인 올해를 ‘빈 모더니즘 100주년’으로 기린다. 지금 빈에 있는 거의 모든 미술관에선 클림트와 실레, 모저, 바그너와 관련한 전시가 열린다. 바로크 양식의 장대한 건축과 정원으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벨베데레에선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와 ‘유디트’를 비롯한 주요 작품 24점을 소개하고, 카를 광장에 있는 빈 미술관에선 오토 바그너의 대규모 전시가, 박물관 지구 무제움스크바르티어(MQ)의 레오폴트 박물관에선 에곤 실레 특별전이 열린다. 하지만 빈 모더니즘을 창조한 이들을 기리는 전시 중에서 눈길을 끄는 건 따로 있다. 바로 오토 바그너의 전시다.






1880년에 문을 연 카페 슈페를(Cafe Sperl). 빈에서 활동한 수많은 예술가가 다녀간 카페다.

건축가 오토 바그너가 빈에 끼친 영향은 가우디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미친 영향력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더 깊고 농후할지 모른다. 빈 전역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다. 카를플라츠 역 등 30여 개의 전철역사와 우편저축은행, 암 슈타인호프 교회에 그의 이념이 깃들어 있으며, 요한 슈트라우스와 슈베르트 등 음악가의 동상이 한데 모인 시민 공원 슈타트파르크에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 또 수많은 다리, 철교, 고가도로, 터널, 댐 등도 설계했다. 놀라운 건 그중 대부분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 10월 7일까지 빈 미술관에서 열리는 <오토 바그너>전에선 그의 대표작과 각종 건축 도면을 두루 살필 수 있다. 100여 년 전, 곧 ‘실용’의 시대가 온다는 걸 감지하고 기존 스타일을 과감히 깬 건축양식을 고안한 그는 평생을 빈의 새로운 외관을 만드는 데 바쳤다.
빈 모더니즘을 좇는다고 굳이 미술관에만 붙어 있을 필요는 없다. 사실 분리파의 작품이 지금처럼 빈을 대표하기까지 그들 개개인의 능력뿐 아니라 사상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 것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이 모인 장소, 즉 카페가 없었다면 빈 모더니즘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다. 지금도 빈엔 이전 시대 예술가들이 서로 생각을 나눈 카페가 수두룩하다.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사상을 정립해 각자의 작품에 녹여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부디 빈까지 가서 미술관만 둘러보고 오는 불상사는 저지르지 말기를.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