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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18 FEATURE

바래고 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라면

  • 2018-08-09

건축가 조성룡은 이전에 하지 않은 고민을 시작했다. 바로 풍화(風化)다.

1 조성룡의 40여 년의 건축 이야기를 담은 <건축과 풍화>.
2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을 리모델링한 꿈마루 전경.

볕이 따가운 오후. 그와 사진을 찍기 위해 종로의 한 낡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저만치 까마귀 세 마리가 안테나에 매달려 아슬아슬 중심을 잡고 있었다. 우리가 서 있는 옥상보다 높이 자란 느티나무는 딱 서너 사람 정도 쉬기 좋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이 건물 한편에 건축가 조성룡의 사무실이 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그는 최근 출판사 수류산방 심세중 편집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40여 년의 건축 인생을 담은 <건축과 풍화>라는 책을 펴냈다. 책 제목엔 그의 건축 철학이 녹아 있다. 그는 ‘풍화’라는 단어에 대해 “건물은 완성되면서부터 서서히 낡아가므로 건축의 목표는 이 피할 수 없는 과정을 가능한 한 지연시키며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노화를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고 권위의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고, 각종 건축상을 휩쓴 거장과의 인터뷰는 의외로 다소 수줍게 시작됐다. 그는 여느 건축가와 달리 자신만을 내세우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의 건축 목록엔 대기업 사옥이나 지방자치단체 청사같은 화려한 프로젝트가 별로 없다. 대신 오래된 건물과 장소를 재생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한강정수장을 재생한 ‘선유도공원’이나 옛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을 리모델링한 ‘꿈마루’ 등이 그것이다.




건축가로 활동하신 지 40년이 지났습니다. 한데 이제야 첫 책이 나왔죠. 그간 어떻게 여러 출판사의 제안을 거절해왔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제게 그간 책을 내자고 제안한 이는 없었습니다. 건축가는 자비로 책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늘 ‘어떻게 자신이 기획해 책을 내지?’라는 생각이 앞섰죠. 심지어 작품집 형태가 대부분인 책을 말이죠. 그보다 저는 제가 여태 해온 걸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쑥스러운 일이죠.

건축이 ‘작품’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작업’이죠. 돈 받고 하는 작업. ‘아, 그거 정말 예술이다’ 같은 말은 후 대에 다른 이들이 평할 일이고요.

책 제목에도 쓰인 ‘풍화’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건축가가 그 모든 것에 ‘반하는’ 단어를 쓰시다니요. 풍화(風化)는 지난 세월 많은 건축물을 세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체득한 개념입니다. 시간의 작용에 따라 바래고 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구조물의 숙명이라면, 설계 단계부터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고려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얘기죠.

많은 이가 선생님이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이나 소마미술관 등을 설계한 건 알지만, 아시아선수촌아파트 같은 대규모 공동주택을 설계한 사실은 모릅니다. 당시 30대의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대형 프로젝트를 맡게 되셨나요? 전두환 대통령이 1980년 5·18로 여론이 안 좋으니까 부랴부랴 올림픽 유치하고 아시안게임 유치하면서 국가적 홍보 이벤트를 벌인 탓이죠. 그때까지 전 고층 아파트 단지에 살아본 적도 없었어요. 한데 1500가구 5000~6000명 정도가 사는 공공주택 국제설계공모에서 덜컥 당선이 되어버렸죠.

지금도 직접 설계한 아시아선수촌아파트에 30년 넘게 살고 계십니다. 전 건축가들은 대부분 자신이 설계한 단독주택에 사는 줄 알았어요. 건축가가 생각하는 아파트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냥 큰 집이죠. 복수의 세대, 복수의 가구가 모여 사는 큰 집. 사람이 갑자기 밀집해 살기 시작하며 아파트가 생겼죠. 그렇게 도시가 생성되고, 그 안엔 개개인의 생활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저는 요즘 ‘도시에 모여 산다는 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합니다. 다양한 이가 연고 없이 도시에 모여 살잖아요. 도시의 역사가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보다 굉장히 짧은 만큼 단순히 모여 사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의 생활방식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살고 계신 아파트를 설계할 당시엔 그런 생각을 하기 어려우셨겠죠? 당시에도 여러 시도를 하긴 했어요. 하지만 경험이 부족했죠. 그럼에도 거실과 부엌을 분리하고 식당을 북쪽 창가로 냈습니다. 가족이 식사하며 삼각산 풍경을 즐기라는 거였죠. 강남이 막 개발되면서 생긴 중산층의 생활양식을 거스르는 구조여서 불만도 많았어요.

수년 전, 현재 ‘서울로7017’로 불리는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 설계 공모에도 참여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2등으로 낙선하셨죠. 당시 프로젝트 제목이 ‘모두를 위한 길’이었습니다. 서울역 고가의 아스팔트 일부를 잘라 하중을 줄이고, 차가 다니던 길을 다종다양하게 보행자의 길로 만들어 서울의 역사가 스민 주변 건물이나 인도로 사통팔달 연결되게 하자는 아이디어였죠. 하늘에 떠 있는 공원도 좋지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하게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어야 그 의미에 합당하다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에 깔린 의도였어요. 역사를 공유하고 지형과 경관의 체험을 공유하는 이웃과 함께 사는 도시에 대한 상징으로 이 고가가 자리 잡으면 축복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으로 접근했죠.

설계안을 들으니 더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 최근 서울역 주변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아프거든요. 땡볕에 말라비틀어진 나무와 화분 때문이죠. 당시 공모에 당선된 네덜란드 건축가 비니 마스(Winy Maas)도 애당초 지금처럼 사람이 잘 찾지 않는 서울역 고가를 떠올리며 작업하진 않았겠지만요. 건축계의 문화사대주의는 여전히 심한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죠. 하지만 도시적 욕망을 건드리는 훌륭한 건축가를 불러다 그 정도밖에 할 수 없었던 게 당시 우리 상황이었음을 부인할 순 없습니다. 만약 그 시절 그런 프로젝트가 맞겠느냐는 고민을 누군가 더 했다면 다른 일이 생길 수 있었겠죠.

요새 서울은 그야말로 공사판 같습니다. 옛것을 뒤엎고 새로 만들어서가 아니라, 부수지 않고 자꾸 뭘 덧입히는 과정 때문에 시끄럽죠.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버리려던 걸 다시 쓰자는 생각이 무조건 틀린 건 아니라고 봅니다. 단, 버리려던 걸 새로 쓰려면 거기에 맞는 형태로 일을 진행해야 하죠. 문제는 엄청난 돈을 들여 ‘새것’처럼 만들려 한다는 데 있어요.

제 생각엔 옛것을 새롭게 바꾸는 어떤 프로젝트에 ‘공공(公共)’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사람들이 이전에 한 실수를 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간 ‘공공’이란 이름을 걸고 내놓은 결과물이 한 번도 제대로 된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공공이란 개념은 사실 별게 아니에요. 함께 생각하고 같이 쓰자는 얘기죠. 현재 한국에선 그 말을 너무 거창하게 번역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뭔가 개인적인 걸 버리고 희생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공(公)’과 ‘사(私)’와 ‘공공성’은 또 다른 얘기예요. 보통 공과 사의 공을 공이냐 사냐, 이렇게 따지니 문제가 되죠.

이번에 펴낸 책의 부제가 ‘우리가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도시에서 잘 살려면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요? ‘웰다잉’이 중요하듯, 건물을 허는 과정에도 과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겠죠. 건물은 그걸 짓는 순간부터 풍화를 거치며 삶의 기억과 역사를 담습니다. 재건축 단지에 살던 이들이 ‘함께 나이 먹은 풍경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며 아쉬워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유걸, 김인철 건축가와 함께 일흔이 넘어서도 현장에서 뛰는 몇 안 되는 건축가 중 한 분입니다. 최근엔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설계공모에도 당선되셨죠.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이 즐거우신지요? 제게 건축은 취미가 아닌 생존이지만, 지금처럼 계속 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충분히 ‘행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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