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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24

건축물의 얼굴에 재료의 표정을 입히다

헤질과 표피를 다루는 특유의 감각으로 건축물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건축가 듀오 헤어초크 & 드 뫼롱

피에르 드 뫼롱과 자크 헤어초크. Courtesy of H&dM

 H&dM 
1950년 스위스 출신인 자크 헤어초크(Jacques Herzog)와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이 공동 설립한 건축사무소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Zurich)에서 수학한 두 사람은 1978년 고향 바젤에 각자의 성을 딴 건축사무소를 설립, 40여 년에 걸쳐 불가분의 파트너십으로 세계 곳곳의 랜드마크를 설계하며 삶의 궤적과 건축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드 영 미술관. Photo by Nickolay Stanev, © Shutterstock.com





런던 테이트 모던은 H&dM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Courtesy of Tate Modern

2021년 가을, 5년이 넘는 설계와 공역 과정 끝에 모습을 드러낸 송은의 신사옥은 도산대로의 화려함과 달리 절제된 건축 문법으로 이목을 끌었다. 앞다투어 내부를 훤히 비추는 쇼윈도가 즐비한 도산대로 한가운데에 좁고 기다란 창문 2개만을 낸 거석 같은 건축물의 파사드는 과시하지 않으면서 차분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담담한 미학이 빛을 발하는 이 건축물은 동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듀오 헤어초크 & 드 뫼롱(Herzog & de Meuron, H&dM)의 작품이다.
건축의 기능과 정체성, 주변 환경의 맥락 등을 고려해 디자인을 도출하는 합리적 작업 스타일과 오랜 활동 기간을 참작하면, H&dM의 행보를 명쾌하게 함축한 키워드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건축물의 ‘표피(skin)’와 건축 재료에 해당하는 ‘물질’을 향한 천착은 H&dM의 명성을 이룬 뿌리다. 1987년 스위스 라우펜에 지은 초기작 리콜라 창고 빌딩(Ricola Storage Building)을 보자. 멀리서 보면 수평 패널을 여러 겹 쌓은 단조로운 육면체 콘크리트 건물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비로소 숨은 이면이 드러난다. 건축물의 수평 패널이 서로 이어진 듯하나 실은 숨은 나무 접합 부재가 패널 각각을 받치고 있다. 독립적으로 부유하는 듯한 패널의 모습은 무뚝뚝한 건축물의 첫인상을 한층 가볍게 전환한다. 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경험적 건축물을 제안함으로써 시각에 의존하는 일반적 지각 방식의 허를 찌른 셈. 반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콘크리트 패널이 사실은 회색 안료를 칠한 목재라는 것까지 발견하면, 물질의 표현 가능성과 지각 경험을 확장하려는 H&dM의 건축 목표를 단번에 알 수 있다.
H&dM은 물질과 표피를 실험하며 그들만의 건축 세계를 구축했다. 리콜라 창고 빌딩에서 볼 수 있듯 초기에는 미니멀리즘과 독일어권 건축 스타일의 영향을 받아 순수한 육면체 매스 위에서 모더니즘 건축의 전통을 침착하게 정련해나갔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물질과 표피에 대한 관심은 유지하되 본격적으로로 다양한 형태를 시도하기 시작한다. 거대한 수정을 연상케 하는 도쿄 프라다 아오야마(Prada Aoyama)에서는 다이아몬드꼴의 투명·불투명, 평판·볼록 유리를 교차해 날카롭고 불규칙한 구조체의 표피를 완성하고, 2008년 완공한 베이징 국립 경기장 프로젝트에서도 철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대담하고 유려한 곡선 연출로 찬사를 받았다. 이 외에도 스투코 표면의 12개 매스를 5층형 건물로 절묘하게 조직한 비트라하우스(VitraHaus), 함부르크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엘필하모니(Elbphilharmoney) 등 H&dM의 건축 미학은 한곳에 정박하지 않고 물질과 표피를 부표 삼아 부단히 항해한다.





시공 당시 홍콩 M+ 내부. © Kevin Mak





바젤 샤우라거 전경. © Ruedi Walti

하지만 H&dM의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는 따로 있다. 둘은 유독 미술과 인연이 깊다. 헤어초크도 현대미술의 성지 바젤에서 성장한 덕분에 자신과 드 뫼롱 모두 풍부한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1978년에 H&dM은 지역 축제 ‘바젤 파스나흐트(Basel Fasnacht)’에서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와 협업하는 기회를 얻는다. 요제프 보이스는 여기서 펠트로 만든 슈트를 선보였고, H&dM은 의상을 만드는 과정과 축제 기간 중 그의 퍼포먼스 전반을 도왔다. H&dM은 스스로도 ‘굉장히 중요한 경험(tremendously important experience)’이라고 회상한 이 협업을 통해 재료의 물성을 다루는 다양한 접근 방식을 익혔고, 이는 당시 요제프 보이스 작업의 핵심이자 현재 H&dM 건축의 뿌리가 되기도 했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와 젊은 건축가 듀오의 조우가 오늘날 H&dM의 건축 철학을 만들어낸 셈이다.
H&dM은 이 외에도 다양한 현대미술 작가와 협업했다. 바젤을 중심으로 함께 활동한 레미 차우그(Remy Zaugg)에게는 1990년대 초 뮐루즈에 리콜라 유럽(Ricola Europe)의 새 공장을 지으며 자문을 구했다. 공장 표면의 잎사귀 실크스크린 패널 이미지와 크기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레미 차우그의 컨설팅으로 현재의 외관을 도출했다고. 나무가 많은 주변 환경을 반영하고자 사진작가 카를 블로스펠트(Karl Blossfeldt)가 촬영한 나뭇잎 사진을 공장 패널의 모티브로 쓰기도 했다. 또 베이징 국립 경기장 설계 과정에서는 아이웨이웨이(Ai Weiwei)와 협업, 새 둥지 모양의 전반적 디자인 과정을 논의했다. 경기장은 철 골조 사이로 내부를 드러내 개방감 있는 인상을 주는데, 이는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자유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H&dM의 탁월한 감각은 미술관 건축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니애폴리스의 워커 아트 센터(Walker Art Center), 홍콩의 M+, 샌프란시스코의 드 영 미술관(de Young Museum), 바젤의 샤우라거(Schaulager), 마이애미의 페레스 미술관(Perez Art Museum), 콜마르의 운터린덴 미술관(Musee Unterlinden) 등 동시대 미술계의 수많은 랜드마크가 이들의 손을 거쳤다. 그중 그 터에서 나온 흙과 돌로 표피를 꾸민 샤우라거는 주변 맥락까지 함께 건축에 담으려는 H&dM의 시도가 돋보이는 사례다.





비트라하우스 전경. Courtesy of VitraHaus © Vitra

화려한 미술관 포트폴리오 중에서 남다른 위상을 차지하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도 마찬가지다. 1994년 테이트 재단은 버려진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 부지를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탈바꿈하는 미술관 건립 현상 공모를 개최했고, 당시 H&dM이 안도 다다오(Tadao Ando)와 렘 콜하스(Rem Koolhaas) 같은 거장을 제치고 프로젝트를 거머쥐었다. 대부분 기존 구조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건축물을 짓겠다고 제안했지만, H&dM은 건축물의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20세기 영국 산업의 상징인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의 역사성을 보전하는 리모델링 계획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들은 발전소 지붕에 2개 층의 반투명 유리 구조물을 올리고 기존의 내부 구조를 적절히 개조해 대형 전시 공간인 터빈 홀(Turbine hall)과 갤러리를 마련하는 등 본래 건물의 외관과 구조를 최대한 유지, 활용하는 건축적 혜안을 발휘했다. 덕분에 2001년에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고, 2005년과 2016년 사이 신관 증축을 위한 프로젝트 책임자로서 테이트 모던과 두 번째 인연을 맺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벽돌 건물인 지구라트에서 착안한 신관 디자인은 기존 건축물처럼 벽돌을 이용한 표면으로 구관과의 연결성을 부여하면서도 날카롭고 뒤틀린 듯한 형태감으로 수평·수직 중심의 미술관 주변 풍경에 현대적 요소를 가미했다.
미술관에서 ‘공간’은 전시를 기획하고 관람하는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H&dM은 이 점을 잘 이해하는 건축가다. 송은, M+, 운터린덴 미술관 등에는 다양한 크기와 특징을 지닌 갤러리와 예외적 공간, 드라마틱한 인상의 나선형 계단 같은 구조적 특징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로써 역동적인 동선과 공간 경험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즐거움을 배가하고 큐레이터에게는 다양한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제반 조건을 제공한다. 미술관 내・외부의 다층적 맥락을 고려한 디자인으로 아트 신에 건축적 풍미를 불어넣고 도시에 또 다른 색채를 부여하는 H&dM. 이들의 예술적 영감이 다음에는 어디로 향할지 예측해보자. 이 또한 동시대 미술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전민교(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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