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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8 ISSUE

완결 너머의 의외성과 매혹

  • 2018-06-19

2016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00주기를 맞아 선보인 ‘셰익스피어 스페셜 에디션’은 몽블랑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헌사다. 이에 몽블랑과 인연이 깊은 소설가 은희경이 5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셰익스피어를 기린다. 손에는 몽블랑 셰익스피어 스페셜 에디션 만년필을 든 채로.

나의 첫 몽블랑은 대학 때 아버지께서 주신 만년필이다. 윤기가 흐르는 매끈하고 검은 몸체와 눈의 결정이라는 흰 육각형 엠블럼. 나는 한눈에 매혹되었다. 백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내가 가진 최고의 사치품인 만큼 항상 지니고 다니면서 자랑을 일삼은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 펜을 써본 기억은 별로 없다. 아끼다 얼마 안 가 그만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물건을 하도 잘 잃어버려 포기하는 게 어느 정도 습관이 되었지만, 그때만은 정말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그 만년필을 갖고 있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로부터 15년쯤 지난 뒤에 다시 몽블랑을 갖게 되었다. 소설상 상금으로 가족과 함께 첫 해외여행을 갔다. ‘작가로서 폼이 날 것’이라는 남편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면세점에서 산 펜이다. 사실 나는 랩톱으로 글을 쓰고, 메모하거나 정리할 때는 가벼운 문구점 볼펜을 사용한다. 고급 펜을 자주 쓸 일은 없다. 하지만 내 취향에 맞는 잘 만든 물건을 쓰면 기분이 좋다. 그 펜으로 책에 사인이라도 하면 뭔가 내가 정성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흐뭇했다. 강연할 때도 손에 들고 있으면 어색함이 줄어들고 전문가가 된 듯해 의지(?)가 되었다.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 내가 가방 속에서 펜을 찾아 손에 쥐자 기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설명했다. “이걸 손에 들고 있으면 말이 잘 나와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답게 그 펜마저 잃어버렸다. 독일에서 열린 한 문학 행사가 끝나고 독일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려는데 펜이 보이지 않았다. 식당이나 찻집에 두고 왔든지 혹은 행사장 바닥에 떨어뜨려 어딘가로 굴러가버린 모양이었다. 내 표정이 너무 참담해 보였는지 독자가 자신의 펜을 건네며 말했다. “제 펜이라도 드릴게요. 그리고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 장소에 다시 오게 된대요. 다음에 꼭 다시 오세요.” 그 말은 내게 작은 감동을 주었다.




1 복원한 글로브 극장의 내부. 만년필의 캡은 글로브 극장을 형상화해 8각형으로 디자인하고, 캡탑은 링 모양의 극장 지붕을 따왔다.
2 (1864년 4월호)에 수록된 판화로 셰익스피어의 모습을 담았다.
3 셰익스피어 리미티드 에디션 1597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이 출판된 1597년을 기념, 단 1,597점만 제작됐다.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한 작품의 장르가 역사 드라마라면 빨간 깃발을, 비극이라면 검정 깃발을 걸었다는 점을 펜의 컬러로 승화했다.











4 만년필에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을 섬세하게 담아낸 스페셜 에디션은 레진의 광택 있는 표면을 살리는 동시에 모서리를 완벽하게 디자인했다.
5 글로브 극장의 다층 무대를 펜 촉에 담았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셰익스피어 스페셜 에디션의 촉.
6 셰익스피어의 자필 서명을 새긴 캡탑.




그러나 좋은 물건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자책하며 속으로 울부짖는 소심한 사람에게 큰 위로는 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위로가 된 것은 새로운 몽블랑이었다. 자책을 충분히 한 덕분인지 그 뒤로 나에게 2개의 몽블랑 만년필이 찾아왔다. 하나는 김광섭 선생의 호를 딴 이산문학상 수상이라는 행운과 함께였다. 부상으로 내 이름을 새긴 몽블랑 만년필을 받았다. 다른 하나는 교보문고 건물 외벽에 내거는 ‘광화문 글판’ 선정위원으로서 받은 선물이었다. 임기를 마칠 때 관례로 몽블랑 만년필을 하나씩 받는데 역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이 2개의 만년필을 케이스에 넣어 깊이 간직해두었다. 행운을 고스란히 보존하려는 의미도 있지만 역시나 나를 믿지 못해서다.
이따금 꺼내서 자태를 바라보고 감촉을 느끼며 흐뭇해하는 걸로 그 만년필의 효용은 충분한 듯했다.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만년필을 꺼내 뭔가를 쓰고 싶은 강한 동기나 열망은 생겨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이미 완결됐다고 생각하는 잘 아는 세계에 대한 익숙한 호감 이상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30대로 접어든 나의 딸과 아들에게 하나씩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얼마 뒤 아들이 결혼해서 자식이 셋이 되었으므로 그 계획은 보류했다. 그렇게 몽블랑은 나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셰익스피어 에디션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만년필을 본 내 첫 느낌은 낯섦이었다. 내가 익히 아는 몽블랑의 세련된 간명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뚜껑은 두툼한 팔각형이었고 몸체는 새하얀 색이었다. 여러 가지 문양을 새긴 화려하고 장식적인 금색 링까지 감겨 있었다. 그 의외성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을까? 나는 마치 수수께끼를 풀듯이 만년필의 디테일에 집중했고, 그러는 동안 머릿속에서 서서히 하나의 공간이 짜 맞춰지는 걸 느꼈다.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쓰고 공연을 하고 운영에도 참여한 글로브 극장이었다.
만년필 뚜껑의 팔각형은 글로브 극장의 형태를 재현했다. 그러고 보니 캡톱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3단으로 파인 링이 영락없이 지붕 없는 원형극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엠블럼을 새긴 바닥이 당시 평민이 이용했다는 입석 자리인 셈이다. 귀족들이 원형극장 의자에 둘러앉아 관람하는 동안 700여 명의 평민은 평균 서너 시간씩 되는 셰익스피어의 공연을 무대 앞에 서서 보았다. 셰익스피어 연극의 수많은 독백이 그들을 향해 울려 퍼졌다고 생각하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입석이 있던 자리에 몽블랑 엠블럼이 자리한다는 게 왠지 마음에 들었다.
금색 링에 새긴 7개의 문양에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7편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맥베스>는 왕관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장미와 단검으로, <템페스트>는 소용돌이치는 구름으로 나타냈다. 한 손에 해골을 든 채 무덤가를 헤매는 햄릿의 모습이 떠오르는 해골 문양도 있다. 리어 왕의 비극을 표현한 것은 킹과 기사, 2개의 체스 말이다. 그걸 깨닫고 나니 금색 링이 셰익스피어의 책이 꽂혀 있는 작은 서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캡에 새긴 셰익스피어의 사인. 봉인을 해제하듯 그 캡을 열어보면 가장 먼저 펜촉에 섬세하게 새긴 극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셰익스피어가 즐겨 쓴 깃펜을 본뜬 하얀 기요셰 패턴까지 포함해서 마치 펜 하나에 글로브 극장이 통째로 담긴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클립에 달린 금색 링이다. 셰익스피어의 귀고리를 재현한 것이다. 챈도스 공작의 소유였다는 초상화 속 셰익스피어는 귀고리를 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 영국에선 흔한 패션이었다고 한다. 궁궐에서도 유행했고 당시 제독이던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 같은 사람의 초상화에도 남아 있을 정도다. 빌 브라이슨은 <셰익스피어; 세상을 무대로>라는 책에서 셰익스피어가 귀고리를 한 것은 오늘날의 사람들과 똑같은 이유라고 말한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모험심이 많은 성향을 알리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나는 그 링이 마음에 든다. 완결을 넘어선 의외성, 셰익스피어의 문학 그리고 셰익스피어 에디션이 구현하고 싶었던 세계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만년필을 써보니 유려하게 미끄러진다. 마치 엔진이 좋은 차처럼 조용하고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무슨 말을 쓸까? 배신, 복수, 질투, 파멸, 전도된 운명, 사랑…. <리어 왕>의 한 문구가 좋겠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무에서 생기는 것은 무뿐이다.” 내 생각을 종이 위에 번역해 옮긴다. 이 만년필은 나와 거리를 두지 않고 한층 가까이에 머물 것 같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은희경(소설가)   사진 제공 몽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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