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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18 FEATURE

그럼에도, 그림이다

  • 2018-03-06

프랑스의 대표적 현대미술가 필립 꼬네가 조현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단단한 벽, 거대한 타워, 빽빽한 군중…. 밀도와 응축의 에너지를 커다란 캔버스에 꾹꾹 눌러 담고 부산을 찾은 그를 만났다.

1 MAT, Wax Painting on Canvas, 210×165cm, 2017.

2007년, 조현화랑에서 열린 필립 꼬네의 전시 주제는 ‘트러블’이었다. 4차원으로 도시를 부감한 구글 어스의 이미지, 슈퍼마켓에 빼곡히 진열된 물건들, 단단한 두개골의 일그러진 형상 등 밀도 높고 규칙적인 배열의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후 납화법(蠟畵法, encaustic)이라는 표현 기법으로 이미지를 파괴하고, 녹이고, 헝클어뜨린 작품을 선보였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것을 과장되게 부각시키고, 뒤섞거나 일그러뜨려서 낯설게 만들어버리는 것. 우리가 일상에서 느닷없이 맞닥뜨리는 문제(트러블)를 시각화한다면 딱 이러하지 않을까? 또 그 문제에 부딪혔을 때 겪게 되는 당혹스러움과 불편함, 혼란스러운 우리의 심리를 시각화한다면 이러하지 않을까?
“2007년 당시 구글 어스의 항공 뷰, 슈퍼마켓, 바니타스(vanitas)를 테마로 했다면 이번 전시는 군중, 타워 그리고 구글 어스의 스트리트 뷰입니다. 이성을 잃어버린 것처럼 점점 더 몸집을 부풀려가는 도시와 그 속에 놓인 타워는 마치 바벨탑 같죠. 도시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 숨도 못 쉴 만큼 빽빽하게 도시의 건물에 들어차 있는 군중의 이미지를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우리 세계에 대한 제 시각인 셈이죠. 또 하나의 테마인 구글 어스의 스트리트 뷰는 다양한 벽의 이미지, 그 위에 새긴 낙서를 통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공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역을 표시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또 앞서 얘기한 높은 타워와 빽빽한 군중의 이미지를 수직화한 것이 흡사 단단한 벽과도 같았고요.”
무언가에 갇힌 듯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폭발하기 직전의 강렬한 에너지를 캔버스에 담고 싶었다는 필립 꼬네.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에너지와 힘은 감상하는 이들로 하여금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오랫동안 납화법을 사용해왔다. 납화법은 그리스 로마 시대에 널리 쓰인 화법으로 ‘색을 구워 넣는다’는 의미다. 필립 꼬네는 안료와 밀랍으로 형태를 그린 후 두꺼운 아세테이트지를 덮고 그 위에 다림질로 열을 가해 밀랍과 안료를 압착시켰다. 그러면 본래의 이미지가 헝클어지고 뒤틀리며 변형된다. “납화법은 유년 시절을 보낸 베냉(Benin)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안료에 담가 무늬를 넣은 바틱(batik) 천에서 영감을 얻었죠. 그 후 낭트에서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에 다닐 때, 재스퍼 존스(Jasper Johns)가 그림에 밀랍을 고착제로 사용하는 걸 보게 되었고, 저도 이 기법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목재에 써서 조각 작품을 몇 개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캔버스에 적용했는데, 그러면서 밀랍이라는 재료가 유독 성형성이 좋다는 걸 알게 됐죠. 밀랍은 작가가 원하는 형태로 변형하기 좋은 물질입니다. 납화는 뜨거운 상태에서도 순식간에 굳지만, 또다시 데울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재료인 셈이죠. 안료 위에 아세테이트지를 덮고 다림질로 열을 가하면 처음에 그린 이미지나 글자가 임의적인 형태로 뭉개집니다. 이것이 제가 표현하려는 바에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뭔가 만든 후 해체하고, 그러면서 취약한 상태의 것을 찾아내 또 변형하고…. 그림을 이용해 세상을 우리가 인식하는 그대로, 위태롭게 만들고 뒤흔드는 것 말입니다. 우리의 현실에 늘 꽃길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불안, 공포, 분노, 흔들림과 뒤틀림 등 비극적인 부분도 많습니다.”




2 N° 2, Wax Painting on Canvas, 150×180cm, 2018.
3 Termitary Tower, Wax Painting on Canvas, 150×180cm, 2017.

사진, 설치와 조형, 미디어 아트, 행위 등 현대미술은 기상천외하고도 범접할 수 없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회화의 신봉자다. 회화는 여전히 그에게 수수께끼이며, 몸과 마음을 바쳐 끊임없이 부딪치고 도전해야 할 장르다.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대상으로서 회화가, 그는 미치도록 좋다. “원시시대부터 현대까지 전 시대를 통틀어 저를 열광하게 하고, 놀라게 한 회화 작품이 수두룩합니다. 캔버스라는 위태로운 표면 위에 재료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시도해보는 것에 매료되어 있어요. 회화는 제게 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이상적 매체입니다. 그것은 조심스럽게, 때론 강렬하게 재료와 안료를 혼합하는 연금술이며, 오랜 세월 인간의 수많은 감정과 감각을 여과 없이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게 해준 미술 장르입니다. 우리 시대의 증언이기도 하죠. 화가는 글을 쓰는 작가와도 같아서 자신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친 과부화, 고밀도, 포화 상태로 일촉즉발의 순간에 놓인 어지러운 세상을 캔버스에 표현하고자 한 필립 꼬네. 4월 11일부터 5월 27일까지 조현화랑에서 열리는 전에서 그는 수개월간 치열하게 풀어낸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관람객과 나눌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이토록 강렬하고 빈틈없는 그림으로 말이다. 

 

에디터 손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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