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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7

A Dream Called Santa Fe

탁 트인 하늘과 넓게 펼쳐진 산자락, 자연풍경과 조화를 이룬 황톳빛 건물.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의 전통을 두루 간직한 이국적인 도시 샌타페이의 매력.

7월에 열리는 ‘아트 샌타페이’에서 샌타페이 예술의 현주소를 살필 수 있다.

“널 원해. 눈을 감고 떠올리면 손에 잡힐 듯 넌 사라지는걸. 절대 안 돼. 난 너마저 없으면. 내겐 너 하나뿐이야.” 이 애절한 노랫말은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것이아니다. 여기서 ‘너’는 미국 뉴멕시코의 도시 샌타페이다. 에디터는 디즈니 뮤지컬 <뉴시즈>를 보러 갔다가‘샌타페이’라는 넘버에 꽂혔다. 아니, 꽂힐 수밖에 없었다. 뉴욕에 사는 신문팔이 소년 잭 켈리가 험난한 현실에 부딪힐 때마다 높은 곳에 올라 ‘샌타페이’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가 ‘샌타페이’를 외치는 목소리가 어찌나 애달픈지, 며칠이 지나도 귓가에서 샌타페이를 찾는 환영이 들리곤 했다. 도대체 샌타페이가 어떤 곳이 길래 이리도 애타게 부르짖을까?
뉴멕시코가 1912년 미국의 47번째 주로 편입되면서 뉴멕시코주의 주도가 된 샌타페이는 생그리더크리스토산 아래 해발 약 7000피트 고지에 있다. 그만큼 다른 도시보다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다. 어디 하늘만 가까우랴. 샌타페이에는 흙을 주재료로 쓴 건축이 많아 도시 전체가 땅의 색깔로 가득하다. 하늘과 땅이 손에 닿을 듯 가깝고 건물이 낮아 시야가 탁 트인 도시, 샌타페이에 가면 자연풍경 속에서 한껏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1 샌타페이를 대표하는 산미겔 채플.  2 어도비 양식으로 지은 건물.




3 샌타페이에서만 볼 수 있는 이국적 시내 풍경.  4 데이비드 리처드 갤러리 내부 전경.

독특한 건축양식
샌타페이의 이국적 풍경은 전통 건축양식인 ‘어도비 양식’이 완성한다. 스페인어로‘머드브릭(mudbrick)’, 즉 햇볕에서 건조한 흙벽돌을 뜻하는 ‘어도비 양식’으로 만든 흙집은 도시에 독특한 향취를 입힌다. 낮고 표면이 매끄러운 황토색 건물 덕분에 땅의 색으로 가득한 샌타페이는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매력을 자랑한다. 어도비 양식의 근원은 ‘푸에블로(pueblos, 마을)’ 원주민의 공동주택에서 찾을 수 있다. 마을을 뜻하는 스페인어 푸에블로 원주민은 구하기 쉬운 목재, 돌, 진흙 등으로 수천 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집을 지었고, 16세기에 처음으로 이 지역에 도달한 건축 형태가 진화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됐다. 당시 원주민이 가족이 늘면 집을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렇다고 무작위로 층을 높인 것이 아니라 앞, 뒤, 옆으로 독특하게 이어지는 안정적 형태다. 소나무 몸통으로 중심을 지탱하고, 벽을 손으로 몰딩한 다음 계속해서 낮은 층을 쌓아 나간다.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 문이나 창문을 달지 않은 건물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과 평평한 지붕은 생그리더크리스토산의 완만한 경사면을 닮았다. 샌타페이의 주거지역 등 건물 대부분은 어도비 양식으로 지었지만, 그중에서도 산미겔채플을 빼놓을 수 없다. 1610년에 건축한 산미겔 채플은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다. 1680년 푸에블로 반란이 일어나 지붕이 불탔지만, 복구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다. 1917년에 생긴 뉴멕시코 예술 박물관도 뉴멕시코주에서 가장 오래된 뮤지엄 중 하나로, 역시나 어도비 건축의 매력을 뽐낸다. 어도비 양식은 아니지만 1878년에 세운 로레토 채플도 해마다 많은 관광객을 모으며, 샌타페이 플라자도 400여 년 동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건물만 봐도 샌타페이가 미국의 여느 도시와 비할 수 없는 유구한 역사를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5 오는 6월10일까지 SITE 샌타페이의 전에서 만날 수 있는 라파엘 로사노-에메르의 작품.
6 TAI 모던이 소개한 진 모리가미의 대나무 공예품 ‘Sound’.
7 미국의 사진가 토드 웹이 찍은 조지아 오키프의 모습.
8 ‘비바 멕시코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프레-컬럼비안 전통 춤.

축제의 향연
샌타페이는 축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매년 다양한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그중 ‘샌타페이 오페라’가 대표적이다. 샌타페이 오페라극장에서 4월 19일에도 ‘뉴욕갈라’ 공연을 열지만 본격적으로 ‘샌타페이 오페라’가 개막하는 6월부터는 훨씬 볼거리가 많다. 6월 29일 부터 8월 25일부터 열리는 62번째 에디션은 코믹 오페라 <캔디드>, 푸치니의 <나비 부인>,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미국 내 여름 오페라 페스티벌의 롤스로이스”라고 평가한 샌타페이 오페라를 관람한다면, 마치 롤스로이스를 타고 황야를 달리는 기분일까? 하지만 오페라만으로 여름을 끝내기는 아쉽다. 7월 13일부터 3일간 ‘국제 포크 아트 마켓 샌타페이’가 예정돼 있다. 매년 7월 둘째 주 주말, 고정적으로 열리는 마켓은 처음엔 연례행사가 아닌 일회성 행사로 계획했지만, 워낙 반응이 좋아 현재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포크 아트 마켓이 됐다.
그런가 하면 캐시드럴 파크에서는 ‘샌타페이 아티스트 마켓’ 준비가 한창이다. 원래 3월부터 12월 중 세 번 열리는 마켓은 6월 16일과 17일, 9월 15일과 16일, 10월 6일과 7일 등 이틀씩 주말에 할애한다. 마켓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는 모두 뉴멕시코 출신으로 보석, 회화, 도자, 사진, 혼합 매체, 가죽과 나무공예 등 갖가지 매체를 두루 선보인다. 아티스트 선별 기준이 까다로운 만큼 출품작 퀄리티가 높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샌타페이에 토착이나 전통 예술만 존재한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2009년부터 꾸준히 맥을 이어온 ‘샌타페이 독립 영화 페스티벌’이 가을을 장식한다. 소규모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뉴멕시코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샌타페이 전역에 있는 극장에서 100여 편에 달하는 영화를 상영하며,10월 17일부터 21일까지 단 5일간 열린다. 이외에도 로데오 드 샌타페이, 뉴멕시코 재즈 페스티벌, 샌타페이 체임버 음악 페스티벌, 샌타페이 원주민 마켓 등 수십 개에 달하는 페스티벌 정보를 샌타페이 관광청 웹사이트(santafe.org)에서 열람할 수 있으니 기억해두자.




9 샌타페이에서는 다양한 아트 마켓이 열린다.    10 SITE 샌타페이 외부 전경.

예술의 메카
샌타페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은 관광과 미술이다. 특히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아트 마켓을 자랑한다. 캐니언 로드를 중심으로 샌타페이 플라자, 다운타운, 레일야드 지구 등지에 자리한 250여 개의 갤러리와 20개가 넘는 박물관이 샌타페이 아트 마켓의 규모를 증명한다. 샌타페이에서 둘러볼 만한 갤러리를 몇 군데 소개하면, 작년 겨울에 열린 ‘아트 마이애미’에 참가해 좋은 성과를 낸 Yares 아트와 TAI 모던을 들 수 있다. Yares 아트가 보유한 다채로운 회화 작품도 볼만하지만, 샌타페이에서 출발해 뉴욕으로 확장한 TAI 모던이 선보이는 작품이 특히 흥미롭다. TAI 모던은 혼다 쇼류와 가와시마 시게오 같은 일본 현대 공예가의 작품을 주목하는 전시를 꾸준히 개최하며 20여 년간 아시아 예술을 샌타페이에 소개해왔다. 또 2010년 뮤지엄급 전시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로 오픈한 데이비드 리처드 갤러리도 작년 뉴욕에 분점을 열 만큼 급속도로 성장했다. 2015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 출품한 크리스천 호브(Christian Haub)의 작품이 <뉴욕 포스트>가 뽑은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서 꼭 봐야 할 작품 13’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며 페어에서도 인정받았다. 옵아트와 팝아트를 중심으로 한 전시와 출판뿐 아니라 애플리케이션과 팟캐스트도 운영하고 있으니 앞으로 행보를 주목해보는 것도 좋겠다. 다가오는 여름엔 샌타페이 관광청이 ‘7월에 샌타페이를 방문해야 하는 11가지 이유’ 중 하나로 꼽은 페어 ‘아트 샌타페이’가 예정돼 있다. 7월 12일 오프닝 파티를 시작으로 15일까지 열리며, 곧 참여 갤러리와 세부 프로그램을 공개한다고 하니 홈페이지를 주시하자. 아트 샌타페이가 평면과 설치미술 중심이라면, 8월 9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오브젝트 오브 아트샌타페이’는 다양한 예술 오브제에 주목한다. 페어의 공동 프로듀서 존 모리스가 “사람들은 점점 다양한 영역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우리 페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고 밝힌 것처럼 미술뿐 아니라 섬유, 패션, 주얼리, 북, 가구 등을 아우른다. 각 페어를 모두 방문해 특징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동시대 예술 현장을 전하는 현대미술 전문 기관도 방문해보자. SITE 샌타페이에서는 뉴욕 출신 예술가 루크 드보이스(Luke DuBois)의 개인전이 4월 4일까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와 라파엘 로사노-에메르등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작가가 세계의 다이내믹한 역사에 대해 말하는 전이 6월 10일까지 이어진다. 또한 멀티미디어 전문 단체 먀우 울프(Meow Wolf)는 샌타페이에서 영향력을 인정받아 2020년에 덴버와 라스베이거스로 활동 무대를 확장할 예정이다.
유서 깊은 도시 샌타페이를 거쳐간 예술가도 만만찮다. 소설가 루 월러스는 영화 <벤허>의 원작이자 베스트셀러 소설 <벤허: 그리스도의 이야기>(1880년)를 샌타페이에서 집필했다. 추상화가 조지아 오키프도 샌타페이에 살았다. 1887년 위스콘신의 어느 농장에서 태어난 그녀는 1929년 뉴멕시코 땅을 밟는 순간 샌타페이와 사랑에 빠졌다. 샌타페이의 낯선 풍경과 새파란 하늘, 토착적이고 원시적인 예술, 독특한 어도비 건축은 조지아 오키프의 마음을 완전히 앗아갔다. 결국 20년 뒤 샌타페이에 정착한 그녀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샌타페이의 조지아 오키프 박물관은 현재 라는 상설전을 열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조지아 오키프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기관답게, 700여 점에 달하는 드로잉과 수채화 등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그녀가 뉴멕시코의 하늘과 땅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을 놓치지 말자. 지난 2월 디지털과 교육 분야의 큐레이터를 새로이 영입한 조지아 오키프 뮤지엄의 활약을 기대해도 좋다.
샌타페이는 이렇게 시대를 아우르는 예술의 업적을 인정받아 2005년 ‘유네스코 창조의 도시 네트워크(UNESCO Creative Cities Network)’로 선정됐다. 유네스코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문화 예술 지역으로 오래도록 고유의 역할을 해온 샌타페이는 성공적으로 문화 자산을 개발하고 유지했다. 큐레이터, 디자이너, 댄서,음악가, 시각예술가, 배우 등 다양한 예술인이 모여 사는 이곳은 재능과 창조성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 멜팅 포트”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아쉽게도 한국에서 샌타페이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 댈러스를 경유해야 하는 루트가 조금 번거로울 수 있다. 하지만 샌타페이에 발을 디딘 순간, 기나긴 비행시간의 노고가 단숨에 씻길 것이라 자신한다. 국제 열기구 축제로 유명한 도시 앨버커키 등 샌타페이에서 1시간 30분 만에 기차로 닿을 수 있는 도시를 함께 묶어 여행해도 좋다. 마지막으로 샌타페이의 매력을 하나 더 밝히려 한다. 뉴멕시코의 다른 도시보다 높은 지대에 자리한 만큼 여름에 무더위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새로운 여행지를 발견하고 싶은 당신에게 올여름 휴가지로 샌타페이를 추천한다. 어도비 양식으로 지은 호텔에 묵으며 도시의 이국적 정취에 흠뻑 빠져보면 어떨까? 1년 중 300일 이상 맑은 날씨를 유지하는 샌타페이에 다녀온다면 어느새“샌타페이! 널 원해!”라는 말을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제공 샌타페이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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