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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8 FEATURE

보통의 건축가

  • 2018-02-23

보통 사람들에게 특별한 집을 지어주는 건축가, 리을도랑의 김성률 대표를 만났다. 그는 건축이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의 집 처마 아래에 앉은 리을도랑 김성률 소장.

울산 도심에서 차로 30~40분간 달리면 나오는 울주 만화리. 논지와 산지 사이사이 단독주택이 자리한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회색 벽돌집이 있다. 네모반듯한 박스형 건물에 집 모양의 터널이 뚫려 있는 외관. 한겨울에도 중정에 햇볕이 풍성하게 들어오는 집. 외벽에 쓰인 벽돌만 2만 장이 넘는다는 주택의 이름은 ‘보통의 집’이다. 나란히 선 다른 단독주택에 견주면 전혀 평범하지 않은, 보통의 집을 지은 건축가는 ‘리을도랑’ 건축 사무소의 김성률 소장이다. 그런데 왜 보통의 집일까?
“반복되는 일상, 평범한 풍경, 늘 마주하는 이웃… 일상은 너무나 평범하지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특별하다면 어떨까 가끔 생각해봤습니다. 매일 하는 보통의 일도 조금 다른 공간에서 일어난다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착안해 보통의 집을 짓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교외 주택에는 ‘처마’가 있습니다. 지금 아파트에는 없는 것, 아파트에서는 쉽게 하지 못하는 많은 일이 이 처마 아래에서 이뤄지죠. 처마는 하늘의 비와 구름을 막아주면서 집에서도 바깥의 일상을 할 수 있게 하는 공간입니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건축주에게 특별한 감성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보통의 집은 지붕을 연장해 생긴 처마 대신 건물을 관통하는 터널 같은 아케이드가 처마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일부분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게 뚫려 있다. 자칫 폐쇄적으로 보일 수 있는 회색 박스 외관에 좌우는 물론 위로도 개방감을 준 것이다. 김성률 소장의 말에 따르면 요즘의 건축은 그동안 잊고 살아온 것에 대한 회복, 일상이 반복되는 집이라도 특별함을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열망, 열악한 도심 환경에 대한 극복으로 자연환경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중요시한다고 한다. 보통의 집은 그런 의미에서 보통의 욕구를 수용한 보통의 집인 셈이다. 요즘의 집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가 이어졌다.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를 보면, 집에 대한 안좋은 뉴스로 ‘독성’에 관한 것이 등장하잖아요. 실제로 그렇거든요. 많은 사람이 자기가 사는 집이 얼마나 좋고 나쁜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벽지, 우드, 페인트 같은 소재에 친환경만 붙으면 다 좋은 줄 알지만 사실 친환경 등급도 여럿이거든요. 보통 안방에 붙박이장이 들어가는데, 사람들은 붙박이장에 돈을 많이 투자하지 않습니다. 잠을 자는 안방은 어찌 보면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보내는 곳인데, 안 좋은 우드와 벽지, 페인트 등을 쓰면 수면에도 지장을 주죠.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일상이 무척 바쁘다 보니 집에 들어왔을 때도 정리하기 쉬운 공간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정리의 편의성을 높인 집, 즉 수납 효율성이 월등한 공간을 선호해요.”






1 보통의 집 외벽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터널 형태의 집 모양은 처마 역할을 한다.
2 박스 형태의 외관은 2만장 이상의 벽돌로 마감했다.
3 시원한 개방감을 살린 중정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제품 디자이너가 꿈이었다는 김성률 소장은 덜컥 건축과에 입학만 하고 길을 찾지 못하다 어느 순간 디자인의 상당 영역을 포용하는 건축의 매력에 눈을 떴다고 한다. 석사과정까지 마친 후, 10년 동안 여러 건축 사무소에서 실무 경력을 쌓다가 2013년에 자기 이름을 건 리을도랑 건축 사무소를 오픈했다. 자신의 이름에 들어간 ‘리을(ㄹ)’과 어릴 적 집 앞 ‘도랑’에서 뛰어놀던 추억을 합쳐 리을도랑이라 명명했다. “고향이 경남 함양이에요. 경호강의 상류가 함양읍을 통과하는데, 집 앞 도랑은 그야말로 제 놀이터였어요. 그 기억을 살려 회사도 즐거운 놀이터 삼아 일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리을도랑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실 건축 사무소는 작업의 강도가 아주 센 곳이거든요. 의미만이라도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오픈한 지 만 4년. 그는 비교적 일찍 자리 잡은 젊은 건축가에 속한다. 초창기 프로젝트인 금정산성마을의 ‘한울타리 주택’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를 찾는 고객이 늘었다. 한울타리 주택은 건축가로서 그의 초심이 담긴 작업이다. 네 가족을 위한 4채의 집이 한 곳에 모인 한울타리 주택을 지을 때, 그는 제일 먼저 집짓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 10권을 사서 각각의 집에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설문지와 인터뷰를 통해 각 구성원에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내가 살 수 있는 집에 대한 생각과 가족을 위해 만들어주고 싶은 집’에 대한 의견을 꼼꼼하게 적게 했다. “모두에게 평등한 건축을 위한 ‘저예산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러나 빠듯한 예산에 맞춰 집을 짓는 것이 힘들었다기보다 ‘내가 어떤 공간,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그 당연한 물음에 대한 건축주들의 현실적인 답을 듣는 게 힘들었어요. 사람들은 ‘집은 꼭 있어야 한다, 갖고 싶다’는 마음은 당연하게 품고 살면서도 ‘어떤 공간을 어떻게 이용해 살고 싶은지’에 대한 것은 거의 고민하지 않거든요. 적은 예산으로 좋은 집을 짓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그러나 진정 내가 필요로 하는 공간이 어떤 형태인지 알아가는 것, 그렇게 가족 구성원 각자가 원하는 공간이 모여 집이 된다는 것에 대한 개념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이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에서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해주었습니다.”
김성률 소장은 ‘건축가는 건축으로 말해야 한다’는 나름의 신념을 지키고 있다. 요즘의 건축이 어떻고, 뭐가 문제인지 비판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건축에 대해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것을 나름의 창의성으로 풀어내야 하는 게 건축가의 역량이라고.
경기도 구리의 상가 주택, 거제시 가조도의 카페, 제주도 디자이너 부부의 주택 겸 풀빌라, 사직동의 카페 겸 주택, 남산동에 지을 보통의 집 2 등. 그의 역량을 발휘할 프로젝트가 지금 이렇게나 잔뜩 쌓여 있다. 건축주의 작은 바람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고, 그것을 직설적인 표현 대신 그만의 건축 언어로 특별하게 풀어내되 보편타당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김성률 소장의 프로젝트들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더 많이 보일 수 있길 기대해본다.

 

에디터 손지혜
사진 여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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