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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7 SPECIAL

세상과 연결 짓기

  • 2017-12-04

시드니의 응용미술 및 과학박물관 (MAAS)의 수석 큐레이터 매슈 코넬은 우아한 디자인과 작품을 연결하는 유려한 내러티브가 담긴 전시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이란 미술관을 걷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거쳐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이야기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MAAS의 수석 큐레이터 매슈 코넬.

미디어 아트, 로봇공학, 호주의 역사 등 다각적인 주제의 전시를 선보이는 응용미술 및 과학박물관(Museum of Applied Arts & Sciences, MAAS)의 수석 큐레이터 매슈 코넬. 그는 그동안 미술관이 ‘랜드마크’가 되기보다는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쪽을 택하며,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 중심의 전시 디자인을 선보였다. 실험자적 태도로 모든 문화와의 접점을 찾는 매슈 코넬과 만나 오늘날 미술관이 지향해야 할 목표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에서 응용과학을 전공하고 시드니 공과대학 인문사회과학부에서 리서치와 컴퓨팅 업무를 하다 1991년 MAAS의 컴퓨팅과 수학(Computing & Mathematics, C&M) 큐레이터로 부임했습니다. 미술과는 관련 없는 일을 하다 어떻게 처음 큐레이터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큐레이터가 되겠다는 계획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드니 공과대학에서 컴퓨터 랩 업무를 하면서 미디어 이론, 문화 연구에 대한 강의를 들었어요. 그 무렵 제 친구가 C&M 큐레이터 구인 공고를 보고 제게 맞을 것 같다며 미술관에 추천했습니다. 미술관에서 일한 경력은 전무했지만 1991년 당시만 해도 문화적 시각과 C&M 분야의 지식을 두루 갖춘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 덕분에 흥미로운 분야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되돌아보는 전시 < Out of Hand: Materializing the Digital > 전경.

전시 기획을 하면서 컴퓨팅과 수학 외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C&M을 전문으로 하지만 컴퓨터 역사, 로봇공학, 뉴미디어, 디지털 기록 등으로 관심 분야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MAAS는 1879년 개관 이래 호주의 역사, 기술, 디자인 등 다양한 문화를 아우르는 전시를 비롯해 관람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선보여왔습니다. 21세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미술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관람객이 국소적 현상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호기심을 갖고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 컬렉션 작품을 통해 사유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6월 막을 내린 < Out of Hand: Materializing the Digital >은 조각가 배리×볼, 건축가 자하 하디드 등 60명 이상의 아티스트와 건축가 등이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만든 작품을 선보인 전시였습니다. 3D 프린팅, CNC 가공 등의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그토록 다양하고 정교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우리는 지금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고,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번쯤 미술과 디지털 기술을 엄격히 나누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기술과 미술이 하나 되는 디지털 세상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여겼어요. 그 전시는 지난 10년간 현대미술, 과학, 디자인, 패션 등 우리 삶에서 디지털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뉴욕의 아트 앤 디자인 박물관(Museum of Arts and Design, MAD) 전시를 재구성한 만큼 그들의 디자인 형식을 참고할 생각이었는데, 호주의 기술과 과학 등을 볼 수 있는 섹션을 추가해 둘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죠. MAD 전시의 기본 아이디어와 출품작을 활용하면서도 호주를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재료를 추가해 기술적 측면을 강화했습니다. 역사적 맥락을 부여하기 위해 우리 미술관 소장품도 전시 목록에 포함했고요.

패션, 디자인 제품은 물론 호주 엔지니어링의 요소를 더한 제품을 소개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오브제들이었나요? 호주 멜버른의 모내시 대학교와 제트기 부품 제조 방법을 연구하는 애마에로 엔지니어링이 3D 프린터로 만든 분사기, 공학자들이 3D 프린터로 만든 복사뼈와 골반 보형물 등의 혁신적 의료품,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 위치한 울런공 대학교에서 설계·제작한 바이오 펜도 있었습니다. 또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시드니 공과대학 경영학과 건물에 사용한 벽돌 등 다양한 오브제를 전시했죠.

그 전시에서 선보인 패션 작품 중 디자이너 마이클 슈미트와 건축가 프랜시스 비톤티가 합작해 만든 3D 드레스, XYZ 워크숍의 ‘InBloom’ 드레스는 다시 봐도 획기적이에요. 익숙하면서도 신기한 작품이 많아서 평소보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이 많았을 것 같아요. 네.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총망라해 많은 관람객이 흥미를 느낀 것 같습니다. 특히 ‘InBloom’ 같은 몇몇 3D 프린트 드레스는 코드를 저장해두면 언제든 새롭게 드레스를 프린트할 수 있어요.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요즘, 우리 미술관이 디지털의 가치와 예술에서 무엇이 진짜 원본인지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1루이스 프랫의 작품 ‘Torrent’.   2 루이스 프랫의 작품‘Future Events’.




예술과 과학을 접목한 매슈 가디너의 작품 ‘Oribotics’.

좀 더 < Out of Hand: Materializing the Digital > 전시 이야기를 해보죠. 작품도 멋졌지만 그것과 조응하는 심플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전시 공간이 돋보였어요. 이제 전시장도 작품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 보였습니다. 건축 사무소 라바(LAVA)에 3D 기술을 연상시키면서도 현대미술 갤러리로서 최소한의 특징을 간직한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했습니다. 보안을 유지하면서 관람객이 최대한 많은 작품을 쉽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쉽진 않았어요. 그래서 여러 섹션으로 나뉜 구조물에 작품을 전시하고 하단부에 조명을 설치해 산뜻한 느낌으로 공간을 연출했습니다. 미술관은 작품을 전시하는 목적도 있지만 그 안에서 관람객이 편안하게 함께 숨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당신은 유려한 내러티브와 우아한 디자인을 결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둘을 아우르는 특별한 접근 방법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큐레이팅은 곧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전시 디자이너를 비롯해 저희 전시기획팀은 내러티브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기본으로 여깁니다. 시작 단계부터 작품이 이야기 속에서 숨 쉬는지 확인하고, 디자인 과정 내내 내러티브를 상기하면서 작업을 진행하죠. 디자인 아이디어가 궤적을 형성하며 완성되어가는 시점에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집니다. ‘이건 이야기의 일부인가?’, ‘이야기에 도움을 주고 있나?’라고 물어봄으로써 디자인이 이야기를 압도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확인합니다.

미술관이 지향해야 할 좋은 전시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전시의 내용을 부각시키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전시장은 관람객이 폭넓은 시각으로 작품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해요. 한 방향으로 관람객을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방향으로 가든 작품, 더 나아가 전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의 과거 기록을 통해 시드니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 The Curious Economist: William Stanley Jevons in Sydney >도 당신이 좋아하는 전시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컬렉션뿐 아니라 사진, 역사적 기록물 같은 자료로 전시를 꾸민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교의 린지 배럿 박사와 함께 전시를 기획했는데, 제번스가 시드니 경제에 끼친 영향에 대해 탐구할 수 있었죠. 그는 경제학에서 수학을 필수로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한 경제학자이자, 1850년대 시드니의 풍경을 찍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예요.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공부하던 제번스는 1854년부터 5년간 시드니 조폐국 감정사로 일하며 수많은 편지와 논문, 사진 등을 남겼습니다. 전시에서 경제학, 과학, 호주의 식민사를 포함한 역사, 사진 등 여러 분야를 통합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시드니를 통찰할 수 있는 자료로서 훌륭했죠. 특히 거대한 역사적 관점이 아니라 제번스의 개인사로 풀어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흥미로웠어요. 전시를 위해 만든 작은 라벨 하나가 개인의 이야기이자 역사적 이야기였으니까요. 저는 그 전시가 이제껏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지식을 창조했다고 믿습니다.

미술관에서 점점 아카이빙의 가치를 주목하고 있는데 그에 합당한 예시인 것 같습니다. 네. 큐레이터도 이제 그에 맞춰 다양한 매체는 물론 전시, 글, 디지털 미디어 등 여러 분야에서 좋은 스토리텔러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1999년에는 컴퓨터의 역사를 되돌아본 전시 < Cyberworlds: Computers and Connections >를 여셨잖아요. 이듬해 그 전시로 기술사학회에서 가장 뛰어난 미술관 전시를 시상하는 디브너상(Dibner Awards)을 수상했고요. 관람객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춘 전시였다는 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컴퓨터와 정보 기술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고 우리의 관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전시였어요. 18년이 넘도록 전시명은 물론 용도를 바꿔 때로는 전시장을 연구 목적의 실험실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열린 전시 에서는 관람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설치 작품을 가져와 관람객의 평가를 받았고, 2010년부터는 이동형 탐사 로봇인 로버를 연구하기 위해 화성 풍경을 재현한 < Mars Yard >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간 당신이 기획한 전시의 면면을 보면 호주의 역사, 디지털 기술 등 자신의 삶을 환기시킬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주제를 다룬 것 같아요. 전시는 단순히 미술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큐레이터는 눈에 보이는 것을 뛰어넘어 관람객이 자신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자문할 수 있는 주제를 제시해야 해요. 기술로 실현한 인터랙티브 아트뿐 아니라 전시 내용 자체가 상호작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버튼을 누르게 하는 게 관람객의 주의는 끌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진정한 상호 관계성의 의미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물론 그런 경험도 수반되면 좋겠지만 그에 앞서 다른 요소들과 조화를 이뤄 궁극적으로 관람객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3 관람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설치 작품을 선보인 전시 .
4 1879년 개관한 이래 역사, 기술, 디자인 등 호주의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를 기획해온 MAAS 전경.
5 이동형 탐사 로봇 로버를 연구하기 위해 화성 풍경을 재현한 프로젝트.

요즘은 미술관이 전시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교육하는 복합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MAAS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의 역할은 우리를 둘러싼 사회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습니다. MAAS에서는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실제 컴퓨터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웨스턴 시드니 코딩 클럽, 웨어러블 전자 기기를 탐구하는 워크숍 등을 운영 중입니다.

호주원자력과학기술연구소(ANSTO)와 지속적으로 기술 교류를 하고 있는데, 기술 정보가 전시 기획, 더 나아가 미술관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최근 MAAS 컬렉션 중 일부 오브제를 대상으로 중성자 빔 분석을 실시했고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생각입니다. 다양한 분석 결과 작품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도 재료의 구조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화석을 가지고 중성자 빔 분석을 하는 실험을 했고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오브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분석 기법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결국엔 관람객이 작품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줄 것이고요.

21세기 미술관이 갖춰야 할 요건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인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여기는 세상을 장기적 관점으로 생각해봐야 해요. 우리의 생각은 경제, 정치 등 현재에 머물러 있기 쉽죠. 미술관은 잠시 일상으로 점철된 현재에서 벗어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고, 우리의 정체성과 미래 세대를 위해 짊어져야 할 책임감을 자각하는 시간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현재 계획 중인 전시를 소개해주세요. 디자인과 정체성을 주제로 오토바이에 대한 전시를 준비 중이에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에 대해 들려주세요. 기술이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호주의 디지털 아트에 관한 전시를 해봤으면 해요. 이제는 예술가들이 호주의 컴퓨팅 발전에 끼친 영향력을 이야기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제공 응용미술 및 과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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