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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17 LIFESTYLE

THE MASTERS OF HANDICRAFT

  • 2017-03-25

공예는 손으로 빚은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자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매개체이며 인류의 문화적 자산이다. 이는 오랜 경험과 숙련을 거친 ‘손’으로 작업을 이어온 장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술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장인의 혼과 정성 어린 손끝에서 탄생한 동시대 공예품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1 자연산 전복패의 작은 조각을 이어 붙인 자개 항아리와 자개 상판에 검은색 다리를 매치해 직선의 미학이 돋보이는 테이블은 모두 나전칠기 장인 김영준의 작품.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빛을 내는 자개로 모던하고 심플한 작품을 만들었다. 나무의 순수한 형태와 따뜻한 느낌을 살린 사방탁자와 경상은 소목장 조화신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참죽나무와 오동나무를 조합한 사방탁자는 간결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 경상은 서애 류성룡의 유물인 대나무 경상에 대한 오마주로 느티나무를 사용해 이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2 전통과 현대가 적절히 융합된 소박하고 청아한 백자는 도예가 김익영의 작품. 앞부터 수반, 백자사면합, 상백자가형합이다. 쓸데없는 장식성을 없애고, 날카로운 선과 강한 면, 독특한 곡률의 조화를 통해 세련된 형태미를 갖추었다.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유기그릇은 유기장 김수영이 현대 생활에 맞게 재해석한 것. 벽면 뒤에 있는 유제함은 냉장용으로 사용 가능한 밀폐 용기. 백자 오른쪽은 유기 컵과 직선의 형태를 살린 바름 라인의 밥그릇, 곡선의 미를 살린 아름 라인의 찬그릇이다.

Part 1 / 한국의 혼
물성은 다르지만 고집스러운 신념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개척하고 기술을 축적해온 각 분야의 장인 4인을 만났다. 전통을 지키면서 새로운 것을 찾고 궁리하고 도전하는 그들의 장인정신과 인고의 시간으로 완성한 아름다운 작품.




설백의 아름다움을 잇는 도예가
김 익 영

우리나라 현대 도예의 시작은 1960년 전후. 그때부터 본격적인 도예 작업을 시작해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선백자의 전통을 바탕에 두고 우리 백자를 창조해온 한국 도예 1세대 작가 김익영. “미국 유학 중이던 1960년에 영국의 유명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의 심포지엄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강연에서 ‘조선 도자의 아름다움은 오늘날 현대 도예가들이 지향해야 할 미의 세계’라고 말했죠. 그 당시엔 고려창자의 비색을 재현하려고 애썼지, 조선 도자엔 관심이 없었어요. 외국인이 먼저 알아본 조선 도자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래 김익영은 화학공학과 과학도였다.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요업공학대학원에 진학했다가 일본 학술지에 실린 도예 작품을 보고 도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 뉴욕 앨프리드 요업대학원으로 도자 디자인 유학을 떠나면서 비로소 도예 인생이 시작되었다. “조선백자의 매력은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는 단순미죠.” 매끈한 곡선의 달항아리도 있지만 투박하고 소탈하게 도자 표면을 썰어낸 작품들이 그녀만의 특성을 드러낸다. “전 형태미를 추구합니다. 모양에 변화를 주다 보니 두툼한 면도 나오고, 원하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흙을 좀 쳐내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고요. 칼을 이용해 면을 치면서 좀 더 신선한 형태를 완성하게 되었죠." 이 방법을 통해 전통적 도예의 한계에서 벗어나 조선백자의 현대성과 세련미를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도 누군가 손을 내밀고 애용해야 참된 공예가 된다고 말하는 그녀. 공방에서 직접 물레를 돌리며 작품 활동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일요라는 큰 공장을 짓고 생활 자기를 만드는 시스템을 갖춰 공예의 공공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시대정신을 담는 유기장
김 수 영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김수영 유기장은 전설 속으로 사라질 뻔한 안성 맞춤 유기를 지켜내고 부활시킨 주인공이다. 안성은 예부터 대구, 남원, 익산 등과 함께 국내 유기 공예를 이끌어온 도시다. 하지만 1950년대에 스테인리스스틸과 알루미늄 제품에 밀려 유기 공방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유기의 최고 전성기인 해방 직후 안성 맞춤 유기 공방을 설립한 부친 김근수(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에게 기술을 물려받은 김수영은 새로운 판로를 개척했다. 주로 제기, 생활식기를 빚어내던 유기로 벽걸이, 재떨이 등 장식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 국내에선 백화점에 납품하고 일본과 미국에 수출하며 안성 유기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사람들은 다시 유기그릇을 찾기 시작했어요. 유기가 항균 기능을 지녀 세균 번식을 막아주고, 열 보존율이 높으며 식자재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탁월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죠.” 주로 녹인 쇳물을 특정한 틀에 부어 기물의 형태를 만드는 주물 제작에 집중하는 김수영은 주거 환경과 식생활의 변화에 맞춰 전통 유기를 현대화하고 있다. “유기는 구리에 청동이나 황동 등을 섞어 만듭니다. 그 비율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방짜의 경우는 구리 78%, 청동 22%가 최적의 비율이에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결점이 생기거나 깨져버리죠.” 김수영 장인은 소재나 방식은 계속 전통을 고수하지만 디자인은 현대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새로 출시한 바름 라인과 아름 라인만 봐도 현대인의 식생활에 맞춰 그릇 사이즈를 줄였고, 직선과 곡선의 미를 살려 세련된 디자인으로 선보인다. “유기는 거푸집에 붓거나 불에 달궈 수없이 두들겨 만듭니다. 물론 요즘엔 두드리는 기술을 어느 정도 기계가 대신해주지만 웬만한 열정과 기술로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성실함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목가구의 미감을 계승하는 소목장
조 화 신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전수교육조교 조화신은 열여섯 살에 처음 나무와 만났다. “1960~1970년대는 사회적·문화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 당시엔 긴 시간 고통을 감내하면서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당연했죠. 어머니의 권유로 목공예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동네에 솜씨 좋은 장인 한 분이 계셨거든요.” 인간문화재인 故 강대규의 제자로 나무를 접한 그는 처음 5년간은 대패질과 문짝 아귀 맞추기 등 기초 작업을 도맡아 하면서 소목의 기틀을 다지고 스승의 기술을 체득했다. 소목은 집을 짓는 대목과 달리 집에서 사용하는 가구와 그 밖의 목공품을 만드는 것이다. 감나무, 물푸레나무처럼 무늬가 아름다운 나무는 크게 자란 것이 적다 보니 우리네 전통 장은 판재의 크기가 자그마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그가 만든 가구는 판재가 크고 나뭇결의 미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전통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디자인이어도 재료를 달리 씁니다. 어떤 목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감동을 줍니다. 장인이라면 물성에 대한 이해가 필수죠.” 최소 10년 정도 일해야 나무의 형태와 질감에 대한 눈이 뜨이고, 좋은 목재를 고르는 안목과 노하우가 생긴다고 말한다. 목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그는 “소목의 과정 중에서 중요한 것은 나무를 건조, 숙성시키는 일이에요.” 요즘 인위적으로 수분을 빼서 빨리 건조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하지만 충분한 숙성을 거쳐야 나무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섬유질 자체가 유연해진다고. 주거 문화가 바뀐 만큼 우리 문화의 재탄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 연륜 있는 소목장은 전통을 이어가되 현대인이 사용하기에도 무리가 없는 디자인의 가구를 만들고 있다.

창의적 시선으로 자개를 바라보는 나전칠기 장인
김 영 준

나전은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내 기물의 표면을 장식하는 기법을, 칠기는 옻칠로 만든 제품을 말한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볼 수 있었던, 화려한 무늬로 영롱한 빛을 내던 검은색 장롱이나 화장대가 나전칠기의 대표적 예다. 하지만 요즘 세대에겐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 나전칠기 장인 김영준은 디자인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애널리스트 출신인 그는 자개의 빛과 옻칠에 매료돼 미국과 일본, 이탈리아 등에서 공부하며 나전칠기 기법에 현대적 디자인을 접목하는 등 독창적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번거로울 수 있지만 전복, 소라, 진주패를 직접 고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좋은 자개에서 더 깊이 있는 작품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 “자개도 사람하고 똑같아요. 생명이 있죠. 나전칠기는 버려진 자개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과 같아요. 작품이 완성되면 무수한 빛을 내며 생명력을 발휘하잖아요.” 공원에 놓인 벤치의 형상을 본떠 만든 물빛 벤치나 국화문 벤치는 물론,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영부인이 입은 옷의 패턴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는 물방울 콘솔 등은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집 안에 들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가장 애지중지하는 작품은 달항아리입니다. 완성하는 데 5년이 걸렸어요. 도자기 명장을 찾아가 마음에 드는 도자기가 나올 때까지 계속 다시 구웠고, 항아리 안팎은 열댓 번씩 옻칠을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자개를 가는 실처럼 잘라 모양을 만들며 붙이는 작업은 고도의 장인정신을 필요로 합니다.” 자개 특유의 영롱한 색채와 빛깔도 아름답지만 현대적 디자인에 매료되어 빌 게이츠가 그의 작품을 구매한 것으로 유명하다. 빌 게이츠의 주문으로 자개 엑스박스, 명동성당 미사에서 사용한 프란치스코 교황 나전옻칠 의자 등을 제작한 김영준. 지금도 태국 왕실, 캐나다 한국문화원 등 해외에서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그는 우리 자개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Part 2 / 세계를 엮다
장인의 예술혼은 국적을 초월하는 법. 자국을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 공예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는 장인을 만나 그들의 열정과 장인정신을 기록했다.





1 CptA 테이블   2 유리 대신 대리석 갓을 올린 램프

사르토리 마르미, 대리석을 향한 헌신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비첸차에서 대리석 장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고 있는 대리석 장인 사르토리 마르미(Sartori Marmi). 전기통신 전문가가 되려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그가 석공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리석 산업에 뛰어든 것은 1973년. “처음엔 건축이나 빌딩 분야에 국한해 작업했습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다채로운 대리석을 접했고, 무한한 변주가 가능한 소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리석으로 가구와 조명 등을 제작하면서 예술의 도구로서 대리석을 탐미하기 시작했죠.” 이미 대리석 분야에서 명성을 떨친 장인이라 웬만한 재료는 섭렵했을 것 같은데도, 보기 드문 대리석을 찾아내 새로이 작업하려는 욕구가 충만하다. 이렇게 다양한 물질과 대리석을 탐구하는 장인을 유독 매료시킨 물질이 있으니, 칼라카타(Calacatta)나 스태추어리(Statuary) 같은 결정질 대리석이다. 보통 이런 희귀한 대리석은 고가라 부담을 느껴 손대기 어려워하기 마련. 사르토리 마르미는 과감하게 이를 사용해 신비로운 돌이 지닌 유려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드러낸다. “저는 언제나 열정을 되살리는 또 다른 대리석을 찾아 헤매죠. 젊은 디자이너와 어울려 새로운 것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함께 모여 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제가 가진 노하우를 전하고 그들의 젊은 감각을 받아들이는 거죠.” 그에게는 배움과 미지를 향한 두려움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인다. “모든 프로젝트가 중요하기에 항상 최선의 결과를 추구하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재료에 대한 지식과 지속적인 연구, 배움에 대한 겸손과 헌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 젊은 디자이너와 함께 결정질 대리석으로 유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램프를 만들기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는 사르토리 마르미. “공예가 주는 만족감, 유려한 역사를 지닌 대리석이 공간 안에서 빛을 발하는 모습, 재료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미래에 전하고 싶습니다.” 꾸준히 자신을 갈고닦으며 새로움을 찾는데 여념이 없는 장인의 헌신은 기나긴 세공 과정을 감내하며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대리석의 모습과 닮았다.





1 메이플 우드 오브제   2 나무 본연의 캐릭터를 살린 다양한 오브제들

에른스트 감페를, 오롯이 전하는 나무의 숨결

나무 사랑이 유달랐던 한 청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가구 제조사 수습생이 된다. 착실히 기술을 연마하던 어느 날 먼지로 뒤덮인 우드터닝(갈이칼을 이용해 목재를 깎는 기계로 도자기의 형태를 둥글게 만들기 위해 쓰는 물레와 같은 개념)을 발견하고, 이에 매료되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돌입한다. 훗날 독일의 목공예 장인으로 이름을 떨친 에른스트 감페를(Ernst Gamperl) 이야기다. “당시 목공예가 선사하는 새로운 경험에 사로 잡혔습니다. 도전의식이 생긴 순간이죠. 어떠한 사전 지식도 없이 관련 서적을 찾아 읽으며 독학으로 우드터닝을 연마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틀에 박히지 않고 제한이 없는 형상이 눈길을 끈다. “나무의 자연적 형상을 그대로 살리는 데 집중하는 이유는 잘라낸 보드나 패널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나무 자체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입니다. 토양, 지역, 날씨 등 수많은 시간과 상호 영향을 거쳐 탄생한 나무 고유의 개성을 무엇보다 존중합니다.” 수년간 손에 익은 도구를 들고 나무와 직접 대면하는 순간, 장인의 예술혼이 꿈틀댄다. “나무 몸통을 처음으로 자르는 그 순간, 나무 안에 숨어 있는 형태를 인식하는 지점에서 예술은 피어납니다. 조각 과정에서 나무 본연의 캐릭터를 최대한 살리고 형태를 만들어가면서 생기는 즉흥적 변화도 그대로 수용하죠.” 그는 목재와 인연을 맺는 모든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자연을 연구하고 이를 지키려는 장인의 강한 의지는 실생활에서도 드러나는데, 식물의 성장을 지켜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의 작업장에서 숲과 정원, 초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건 우연이 아니다. “작업실은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작품이 탄생하는 곳에서 어떠한 논쟁과 분노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곳에서 공예를 통해 완전한 자유와 기쁨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예술을 대하는 진실한 마음이 느껴진다. “예술에서도, 생활에서도 날것 그대로를 선호해요. 재료와 제 감정을 중시하는 편이죠. 초기엔 뚜렷하고 선명한 윤곽을 바탕으로 한 명쾌한 디자인을 취했지만, 최근엔 나무의 아름다움을 끌어내기 위해 미니멀리즘을 추구합니다. 수년에 걸쳐 나무를 조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무 또한 나를 조각했다고 생각해요.” 에른스트 감페를의 멋진 표현처럼, 이제는 그가 곧 나무고 나무가 곧 그가 되는 경지에 다다른 듯싶다.





1 컬러 시리즈 전시장 풍경   2 다채로운 색상의 컬러 시리즈

쓰지 가즈미, 생활과 예술을 동시에 감싸다

일본 가나자와는 전통 공예를 오롯이 간직한 도시다. 옛것을 그대로 보존할 뿐 아니라 현대적인 도전도 서슴지 않기에 공예 도시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다. 이 지역에서 생산한 공예품은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도시 부흥에는 유리공예 장인 쓰지 가즈미(Kazumi Tsuji)의 공헌이 컸다. 어린 시절 일본화를 공부하고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 떠난 미국 유학길에서 운명의 재료, 유리를 만났다. 영롱함의 결정체인 유리 물질을 팔팔 끓는 용광로에 달군 다음 입으로 불어 형태를 만드는 핸드블론 글라스 제작 기법을 익힌 그녀는 일본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유리공예에 뛰어들었다. 분유리 기술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장인이 숨결을 불어넣는 찰나에 있다. 장인의 테크닉과 우연적 효과가 만나 일으키는 소소한 차이가 완성품의 형태를 결론 짓기 때문이다. 제작 공정만 봐서는 결과물이 꽤 실험적일 것 같은데, 섣부른 판단은 금물. “추상적 형태를 추구하기보다 독창적이면서도 생활과 접점을 이루는 실용성 높은 작품에몰두합니다.” 쓰지 가즈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은 대중적으로도 높은 인기를 구사한다. 실용적이라고 해서 예술적 미감을 놓치는 건 절대 아니다. 12년에 걸친 전시 경력을 지닌 그녀의 작품은 환상적인 색감을 뽐내며 예술로서도 빛을 발한다.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에서도, 저녁식사를 차려놓은 테이블에서도,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생명력을 발한다. 그래픽 디자인 전공자로서 창조적 감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다채로운 패턴을 입힌 맨-초코(Men-choco)와 수십 가지 색상으로 표현한 컬러(Color) 시리즈는 장인의 전매특허. 식탁 위 정물화를 표현한 스틸라이프(Still Life)와 그러데이션 색감이 돋보이는 레드(Red)는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정도다. 여기에 깨지거나 부서진 공예품을 녹여 온전히 새로운 형태로 재생산하는 리클레임드 블루(Reclaimed Blue) 프로젝트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작품 활동에 꾸준히 매진하면서도 자신의 공방인 팩토리 주머(Factory Zoomer), 갤러리, 카페를 운영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잇는 시도 또한 마다하지 않는다. 유리공예 장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건 아마도 그동안 그녀가 쌓아 올린 행보가 주는 무한한 신뢰 덕분일 것이다.





 




Part 3 / 미래를 빚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문화적 도구로 저마다 고유한 가치가 깃든, 지켜야 할 우리 공예. 담담하고 소신 있게 전통 공예의 명맥을 이어가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 속에 우리 공예의 미래가 담겨 있다.





테이블 위에 올린 굽접시, 뚜껑이 덮인 유개호, 초화 문주병 등은 고만경 작가 작품, 코발트색 선과 초문을 그려 넣은 청유채 주병은 윤한성 작가 작품. 고만경 작가가 입은 화이트 셔츠 S.T. Dupont, 패턴 니트 Brooks Brothers. 윤한성 작가가 입은 니트 톱 Loro Piana, 슈트 본인 소장품

청송 백자의 깊은 잠을 깨운 스승과 제자

16세기부터 현재까지 5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조선 후기의 대표적 생활 도자기 청송 백자. 황해도 해주 백자, 함경도 회령 자기, 강원도 양구 백자와 함께 조선시대 4대 지방요로 손꼽히는 전통 공예다. 마지막 남은 청송 백자사기 대장 고만경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흙을 채취해 제작하는 도자기와 달리 청송 백자는 도석이라는 흰 돌을 빻아 만듭니다. 얇고 가벼운 데다 내열성이 좋아 생활 자기로 널리 쓰였어요. 절제된 선과 담백한 색채가 밥맛도 좋게 했죠.” 그는 열다섯 살에 공방에 입문, 3년 만에 실력을 인정받아 사기 대장으로 독립했다. 수입 사기와 공산품에 밀려 모든 청송 백자 공방이 폐점한 1958년까지 그는 마지막 사기 대장으로서 소명을 다했다. 청송 백자는 2001년 지자체에서 진행한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되살아났고, 40여 년간 잊고 살아온 청송 백자를 전기 물레 위에서 다시 마주했다. 청송이 고향이지만 대구에서 공방을 운영하던 도예가 윤한성은 고만경 장인과의 첫 만남을 회고했다. “사기 제작 기술을 회복하기 위해 대구 자택 인근의 도예 공방을 찾던 선생님께서 우연히 제 공방에 들르셨어요. 청송 백자는 실용 도자를 추구하는 제 모토와도 부합해 선생님께 도자 제작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현재 청송 백자 수석 전수자로서 옛 청송 백자의 원형을 복원하고 현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넘어 자신만의 방법을 하나하나 축적해가는 중이다. 단아한 형태에 코발트색 선과 초문 등을 심플하게 그려 넣은 세련된 그의 작품은 옛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장 프루베의 모던한 금속 가구와 청송 백자를 매치하거나 아트 디렉터, 스타일리스트와 협업해 현대인의 식탁을 재현한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다. 전통을 재현하면서도 현대와의 접점을 찾는 것은 그가 지속해야 할 과업. “담담한 쓰임을 담은 청송 백자가 현대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그 진정성에 응답하기를 바랍니다.”





바닥에 놓인 황녹청광율 1505, 적광율 0808은 정해조 작가의 작품. 액자 속 옷칠 장신구 SL11-No21은 정은진 작가 작품. 정해조 작가가 입은 셔츠 Brooks Brothers, 페일 핑크 컬러 니트 Loro Piana, 면 팬츠와 슈즈 본인 소장품. 정은진 작가가 입은 블라우스와 스커트 Longchamp, 슈즈 본인 소장품

100년 가업의 미래

전통문화와 현대적 감각을 접목한 옻칠 작품으로 극찬을 받는 한국 옻칠의 대가 정해조.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시절 처음 옻칠을 접한 뒤 그 오묘한 빛깔에 매료돼 50여년간 옻칠공예와 생의 고락을 함께했다. “옻은 독을 이겨내고 끈기 있게 기다려야 본래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칠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거듭하다 보면 신비로운 색이 눈앞에 펼쳐지죠.” 그가 주로 쓰는 제작 기법은 협저태 칠기. 전통 직물 삼베를 옻칠액과 함께 굳혀가며 겹겹이 이어 붙이는 작업으로 까다롭고 공정기간도 길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빚어낼 수 있는 선명하고 깊이 있는 전통 오방색이 매끈한 표면 위를 미끄러지듯 흐른다. 비정형 주름이 만들어내는 리드미컬하고 유연한 형태는 물방울을 연상시키며 장식을 배제한 담백한 기품이 작품을 감싼다. 보는 각도에 따라 뿜어내는 빛도 제각각. 적광율, 황록광율 등 작품명도 빛을 테마로 붙였다. 그중 ‘흑광율 0819’는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며 ‘오색광율 0831’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서 구입했을 정도로 해외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에게 남은 꿈은 한국의 옻칠공예를 후대에 계승하는 것. 그의 딸 정은진 작가가 과업을 이어받았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옻칠공예를 전공해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작업을 돕기 시작했어요. 같은 길을 걷는 공예가로서 어떠한 과정도 소홀히 하지 않는 아버지의 한결같은 장인정신에 경애심을 느낍니다.” 아버지의 옆에서 칠공예 사업을 병행하며 매니저 역할까지 맡고 있는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옻칠을 이용한 장신구를 선보인다.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지만 수많은 생각을 담을 수 있고, 그것을 몸에 지닐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매력적이죠.” 그녀는 장신구뿐 아니라 옻칠 컵과 술잔, 수저 등 생활 식기를 통해 대중에게 옻칠을 알리고 있다. “오래전 <백 년의 가게>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대를 잇는 옻칠 가게를 꿈꿨습니다. 전통을 지켜가는 구성원이 저마다 시대에 맞는 변화를 수용하며 유지·발전시키는 것이죠. 아버지에게 배운 것을 후대와 공유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저처럼 그다음 세대를 위해 그 역할을 하겠지요.”





 




Part 4 / 지금 우리 시대의 장인
각 분야의 공예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생각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장인은?” 미래의 장인이 응답한 현대의 명장.






우산장 윤규상
전통 지우산의 맥을 이어가는 유일한 인간문화재이자 2016년 예올이 뽑은 올해의 장인. 오죽을 사용해 엮은 우산대의 흐름, 선과 선이 만나며 이루는 아름다운 비율은 감탄을 자아낸다. 전통 기법과 아름다움, 가치를 전하되 현대화를 통해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며 진정으로 전통을 계승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_양지운(도예가)

나전장 이형만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인간문화재 나전 장인으로 나전 중에서도 줄음질 장인이다. 중학교 때부터 작업을 시작해 반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외길을 걸어온 그의 끈기와 인내심을 존경한다. 오로지 좋은 옻칠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온 그의 삶과 언젠가 한번 마주하고 싶다. _허명욱(옻칠공예가)

두석장 박문열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로 가구의 기능을 보강하고 장식적 효과를 더하는 장석(금속 장식)의 대가다. 2015년 울산쇠부리축제 기념 전시 에 함께 참여했는데 매우 뜻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랜 시간 한길을 단단히 다지며 전통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_박보미(예술 가구 작가)

금속공예가 스즈키 히로시
현대 금속공예 분야에 한 획을 그은 일본 출신 공예가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로열 칼리지 오브아트에서 금속공예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영국에서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했다. 은을 망치로 두드려 기형과 굴곡을 만드는 장인으로는 현재 세계 최고 수준. 성공적 공예가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_권중모(금속공예가)





유리공예가 데일 치훌리
베네치아의 무라노 섬에 위치한 ‘베니니 파브리카’ 유리 공장에서 유리공예를 배운 최초의 미국인 미술가. 유리공예를 순수미술과 건축 인테리어에 접목해 그 경계를 허무는 시도로 존경받고 있다. 선명한 색채의 유리 작품은 식물과 바다 생물의 형상을 연상시키며 유리가 아트 또는 디자인 그 자체임을 느끼게 한다. _양유완(유리공예가)

금속공예가 고보형
공예는 삶의 태도와 같아서 지속적이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익숙함이 생겨난다. 곡선과 직선을 교차시키며 일상의 특별함을 만들어내는 공예가 고보형. 수많은 두드림(단조)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는 그의 작업에는 공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함축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일상과 작업이 어우러진 삶을 사는 고보형은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이다. _김대건(금속공예가)

나전장 오왕택
모든 작업 과정에서 절대 타협하지 않는 그의 작품에 나를 비추어보곤 한다. 같은 나전을 사용해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서 그의 작품을 대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과거의 답습에 머물던 나전을 현재를 사는 나전으로 발전시킨 그. 선이 살아 있는 심플한 그의 작품에서 절제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낄 수 있다. _이삼웅(예술 가구 작가)

도예가 이강효
장인이란 전통적 공예 기술을 배우고 익혀 자신만의 기술로 발전시키고 오랜 시간 그 업에 종사하며 명맥을 잇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도예의 전통 기법 중 하나인 분청자 기법을 이어가고 있는 이강효 작가는 현대적 언어로 전통을 표현하는 대표적 장인. 옹기 기술에 분청사기를 접목해 그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_이정은(도예가)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김윤영(snob@noblesse.com)
사진 이창재  디자인 이혜림   백아영(프리랜서)  사진 제공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  알러스트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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