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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01

나의 사랑, 나의 자동차

자동차를 유난히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은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자동차에서 얻은 영감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그 방식도 상상 이상이다.

1 알루미늄 패널에 그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셰릴 켈리의 ‘Trans AM with Banksy’
2 일러스트지만 유화적 터치가 돋보이는 아서 M. 피츠패트릭의 ‘1963 Bonneville: The Splendido’
3 비비드한 레드 컬러의 자동차가 인상적인 강세경 작가의 ‘Seen201305’






1909년에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극작가 필리포 토마소 에밀리오 마리네티(Filippo Tommaso Emilio Marinetti)는 프랑스의 일간지 <르 피가로>에 ‘미래주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과거의 유산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문명의 산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는 전위적인 선언이었다. 그중 “기관총의 탄환처럼 질주하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케의 니케’보다 아름답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당시 미래주의 선언문은 많은 논란을 야기했음에도 당대 예술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마리네티가 고대 그리스 조각상보다 기계문명을 찬양한 것처럼 미래파 예술가들은 고정된 한순간이 아닌 역동성을 주목하며 속도감 넘치는 기계에 열광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자동차는 20세기 이후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자동차는 기능적이면서 균형 잡힌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심미적 매력을 느끼게 하지만, 무엇보다 ‘움직인다’는 점이 예술적 표현을 위해 더없이 좋은 소재가 된다. 자동차는 정지해 있을 때와 달릴 때 각각 다른 시각적 느낌을 준다. 이런 점을 포착한 예술가들은 찬란한 기계문명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자동차를 그리는 화가나 자동차 디자이너 사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단연 아서 M. 피츠패트릭(Arthur M. Fizpatrick)이다. 자동차 일러스트의 대부라 불린 그는 2015년 11월 96세의 나이로 별세했지만, 700점이 넘는 자동차 작품을 남겼다. 그가 많은 이에게 칭송을 받은 건 단순히 상업적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예술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지금도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그는 차만 덩그러니 그리지 않았다. 쇼핑을 마친 부부가 백화점 앞에서 차에 오르는 장면, 호텔 벨보이가 문을 열어주는 장면 등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 시대의 풍경을 담아냈다. 사진보다 실감 나면서도 동시에 유화적 터치가 돋보이는데, 크고 화려한 차체를 부각하기 위해 구도를 과장해 차의 앞부분을 유독 크게 그린 것이 특징이다.

‘자동차와 당대 문화를 아름답게 묘사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화가, 영국의 앨런 피언리(Alan Fearnley)도 있다. 어릴 적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주로 모터스포츠 카, 클래식 카, 빈티지 카 등을 작품에 등장시켰다. 그 역시 자동차만 선명하게 부각시켜 그리지 않았다. 대신 목가적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자동차를 수채화 기법으로 담아 낭만적인 풍경화를 완성했다.
반면 현대미술계를 보면 자동차를 단일 소재로 활용하면서 독창적 예술 세계를 펼치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미국의 화가 셰릴 켈리(Cheryl Kelley)와 영국의 이언 쿡(Ian Cook)이 대표적. 셰릴 켈리는 주로 클래식 머슬 카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펼치는데, 실제인지 그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극사실주의 표현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캔버스 대신 알루미늄 패널에 고광택 유성물감으로 그리는 방식을 채택해 영롱한 광택이 살아 있는 자동차의 금속성을 표현한다. 이언 쿡은 붓 대신 RC 카를 들었다. 미니 모형카의 작은 바퀴에 물감을 바르고 캔버스 위를 돌아다니도록 리모컨으로 컨트롤하며 작품을 완성하는 것. 세밀한 부위는 작은 바퀴만 이용해 직접 칠하기도 한다. 자동차로 그린 자동차인 셈이다. RC 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작업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바퀴로 그린 덕분에 정제된 느낌보다 물감을 흩뿌린 듯 팝아트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특징.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온 자동차도 있다. 영국의 설치미술가 게리 주다(Gerry Judah)는 실제 크기의 자동차를 이용해 평균 10~35m에 달하는 남다른 스케일의 설치 작품을 만든다. 그의 초대형 작품은 자동차 마니아라면 ‘굿우드 페스티벌(Goodwood Festival of Speed)’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철근을 그물망처럼 엮어 그 위에 자동차를 붙이거나 하늘을 향해 날아갈 듯 공중으로 쭉 뻗은 라인 끝에 자동차를 올려 아슬아슬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4 천에 먹으로 그린 장재록 작가의 ‘Another Landscape-F1’
5 폐차 위기에 놓인 차에 생명을 불어넣어 설치 작품으로 탄생시킨 아티스트 칸의 ‘예정된 사고’(위)와 ‘호랑나비 소파’(아래)
6 2016년 굿우드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게리 주다의 ‘BMW Centenary Sculpture’

 

국내로 눈을 돌리면 자동차를 소재로 활동하는 신진 작가를 여럿 포착할 수 있다. 장재록 작가는 먹을 사용하는 동양화 기법으로 현대적 자동차를 그린다. “옛 조상의 전통 산수화는 그 시대의 풍경을 그린 거죠. 전 자동차가 있는 도시의 모습이 현대의 풍경화라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는 경치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보다 자동차 앞유리나 보닛에 가로수, 건물 등이 비치도록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독창적이다. 먹은 유화물감과 달리 번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작업실의 온도나 천의 상태에 따라 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어렵지만 스밈과 번짐의 매력이 자동차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눈에 띈 작가도 있다. 홍콩 경매, 홍콩 아트 페어에서 흑백 풍경과 원색의 자동차가 대비되는 독특한 그림으로 시선을 끈 강세경 작가. 그녀의 작품에는 공통된 법칙이 존재한다. 금색 바로크풍 액자 프레임과 그 안의 흑백 풍경, 액자 틀에 걸쳐 있는 원색의 자동차. “지루한 일상과 화려한 욕망, 정체되어 있는 현재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희망을 한데 표현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클래식한 명차를 등장시켜 평범한 거리의 풍경과 호사스럽게 치장한 꿈의 자동차를 시각화해 보여준다. 튀어나올 듯한 자동차 때문인지 흑백 배경임에도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무생물과 생물의 만남을 통해 메타리얼리티(사실주의와 은유의 혼합) 세계를 표현하는 김명곤 작가는 자동차 위에 식물의 이미지가 오버랩된 이중 구조의 독특한 초현실적 작품을 선보인다. 어느 날 물을 주기 위해 화분을 잠시 자동차 위에 올려두었는데 자동차가 갑자기 하나의 생물로 보이는 착시 현상을 겪은 작가는 이때부터 자동차와 다른 오브제를 결합하기 시작했다. 차만 한 크기의 꽃이나 풀, 풍선 등을 싣고 달리는 자동차를 그려 동화 같은 이미지로 꿈과 행복을 전한다.

서양화가 강민석은 자동차의 역동성과 에너지, 방향을 충실히 표현해 속도의 미(美)를 보여준다. 차가 캔버스 위를 질주하는 듯 스피드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자동차는 붓으로 그리지만 역동성과 힘을 표현할 때는 물감을 뿌리는 드리핑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 하지만 남성적 터치가 두드러지는 그림에는 ‘나침반 없이 여행하다’, ‘긴 여행’, ‘길 잃은 레이서’ 등 진지한 이야기가 스며 있다. 즉 작품 속 자동차는 앞만 보고 달리는 듯하지만 가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네 삶처럼 사실 수많은 고민의 시간을 달리고 있다는 의미.
한편 자동차를 기반으로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도 있다. 현대자동차의 <브릴리언트 메모리즈>를 통해 알려진 아티스트 칸(Khan)이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타요 버스를 만든 주인공. 찌그러지거나 구멍 난 보닛은 벽에 걸 수 있는 작품으로, 뒷자석 의자를 떼어내 월풀 욕조로 만드는 식으로 폐차 위기에 놓인 실제 자동차로 작품 활동을 펼친다. 자동차는 제 기능을 다하면 폐차되어 고철로 전락한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도구로 다시 되돌린다.
순수예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동차는 기계일 뿐 예술의 소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저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자동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작가들은 우리가 무심코 보아 넘긴 자동차에서 드러나지 않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작품 속으로 끌어당겨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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