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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6 FEATURE

어느 늙은 사회

  • 2016-06-21

훈고(訓)의 시대가 저만치 가고 있다. 더 이상 남이 하라는 대로만 해서는 한 발자국도 전진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린 피동적이고 수동적이다.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그 사회가 늙었다는 것이다. 개인의 독립성, 주체성, 그리고 호기심이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이즈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최진석 건명원 원장이 던지는 ‘나는 과연 나인가’와 같은 자문이 아닐까?

 

지난달 마감이 끝난 주말, 모처럼 마음에도 여유가 찾아왔다. 식사를 막 끝내고 어떤 게으름을 피울까 하다 한동안 보지 않은 TV를 켰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을 카메라가 며칠간 따라다니며 그의 사사로운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 중이었다. 청년은 지난 2월 서울의 한 명문 대학을 졸업한 뒤 여전히 학교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비련의 취준생이었다. 주인공은 그 외에도 여럿이었다. 이번엔 전남의 한 시골 마을 출신 여대생이 등장했다. 서울 명문대 졸업반인 시골 소녀가 부모의 물질적 지원 없이 대학을 졸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생히 기록했다. 세 번째 주인공 역시 대학 졸업반에서 대기업 취직을 준비하고 있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다. 카메라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다 그들이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노트북 화면을 비췄다. 주인공들은 모두 수십 개에 달하는 대기업에 원서를 내고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앵글은 자연스럽게 노트북에 떠 있는 수개의 대기업 홈페이지 창으로 이동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대해 멋들어지게 쓰여 있었다. 거짓말처럼 그 인재상은 하나로 모아졌다. “우리는 21세기를 책임질 ‘창의적’ 인재를 원합니다.”
지난해 3월, ‘21세기 창의적 미래형 인재 양성소’를 표방하며 북촌에 문을 연 건명원(建明苑,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에 다양한 인재와 기업이 눈독을 들이는 건 어떤 면에서 당연하다. 건명원은 두양문화재단의 오정택 이사장이 ‘어떻게 하면 돈을 가치 있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 교육이야말로 한 나라 미래의 명운을 가를 수 있다고 판단, 사재 100억 원을 털어 설립한, 세상에 없던 학교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중 누가 더 창의적인가?”, “인공지능에 투표권을 줘도 되는지 설명하라”와 같은 입학시험을 통과한 1기 학생 30명 중 단 18명만이 수료증을 받았다. ‘S 기업에서 건명원 출신을 원한다’, ‘건명원 출신은 면접도 안 보고 뽑겠다’는 등의 이야기가 이미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1년 만에 이런 평가를 받을 정도면 교수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 법도 한데 건명원의 목표는 그 지점이 아니다. 건명원은 ‘이병철 회장을 만드는 학교’지 ‘이병철 회장이 만든 회사에 보내는 학교’가 아니기 때문.
교수진에는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비롯해 배철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김개천 국민대학교 공간디자인학과 교수, 김대식 카이스트 전자전기공학과 교수, 주경철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 이광호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등 총 11명의 학자가 포진해 있다. 1년 과정으로 진행하는 건명원의 수업료는 무료.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각각 4시간씩 교수들의 강의와 피 튀기는 토론을 이겨내야 하고, 어떤 이유에서든 5회 이상 결석하면 제적이다. 이쯤 되면 수료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건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듯. 18명의 1기 수료자에겐 각각 해외 연수비 500만 원을 지급했다. 스페인으로, 뉴질랜드로 무언가를 배우러, 도전하러, 관찰하러 간 학생이 다수지만 그들 틈에 괌으로 가서 푹 쉬고 펑펑 놀다 온 학생도 있다. “500만 원으로 어떤 여행을 하든 본인의 결정이니까 존중하는 거예요. 꼭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익숙하지 않은 자신을 만나는 것이 곧 여행이니까요.” 착실한 인재를 잠시 접어두고 반역자, 돌연변이, 기존의 것과 불화를 이루는 인재 양성에 집중하는 건명원의 최진석 원장에게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젊은 사회로 가는 길을 물었다.




‘건명원’은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이란 의미다.




‘건명원’은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이란 의미다.

건명원은 미래적 인재 양성을 표방하는 학교입니다. 과거와 현재 추구하는 인재상이 다르다는 뜻인데, 건명원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인재를 미래적 인재로 보시나요? 지금까지 우리의 삶은 따라 하기, 즉 모방으로 이루어져왔습니다. 큰 틀에서 이것을 훈고(訓)라고 하죠. 그런데 다른 사람에 의해 탄생한 창의적 결과를 보고 따라 하던 삶의 방식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한계를 돌파해 창의적 레벨, 선도적 레벨, 선진국적 레벨, 문화적 레벨로 가지 않으면 급격한 후퇴와 정체 시기를 겪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국내 교육자들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미래를 준비하지 않아요. 미래는 시간이 열어주는 게 아닙니다. 인재들이 여는 것이 ‘미래’거든요. 그래서 우리끼리라도 미래적 인재를 양성해보자 해서 두양문화재단 오정택 이사장님과 몇몇 교수가 모여 시작한 겁니다.

수업을 하는 이 한옥도 오정택 이사장님의 사재입니다. 강의실이 한옥이라 더욱 운치 있네요. 자유로운 토론이 오가기도 좋을 것 같아요. 건명원을 설립할 당시 제가 이사장님께 요구한 건 딱 하나였어요. “수업은 한옥에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공간에 의해 지배를 당하기도 합니다. 건명원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의성, 그것은 자기가 자기 모습으로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인데, 저는 한국인은 한국적 공간에서 사유를 시작하는 것이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건명원의 건배사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원장님이 ‘건명원!’ 하면 원생들이 ‘반역자!’라고 외친다고요. 네. 이미 존재하는 것들과의 결별 같은 의미죠. 기성의 것과 불화를 빚지 않고서는 새로운 미래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올해는 이사장님이 ‘돌연변이’라는 말을 쓰시더라고요. 착실한 인재는 이미 다른 곳에서 많이 배출하고 있으니 건명원에서만큼은 반역자나 돌연변이 같은 인재를 양성하고 싶어요.

원생의 직업도 각양각색입니다. 지난 1기 수석 졸업은 육사 출신 여군 대위가 차지해 이슈가 되기도 했죠.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합니다. <도덕경>부터 라틴어, 한국 현대시, 근대 일본과 동아시아 역사, 정치와 과학 수업 등 광범위하면서도 깊은 주제를 다룹니다. 이런 수업을 진행하려면 교수나 원생 모두 정말로 대단한 지성을 갖추어야 할 것 같아요. 문제의식만 있으면 됩니다. 교수진은 예술, 건축, 언어, 철학, 과학, 역사 등 각자의 학문적 성과물을 원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집어넣어요. 그러면 그들의 내면에서 지적 충돌이 일어나면서 기존에 습득한 것들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불안에 휩싸이면서 어떤 요동치는 욕망이 새롭게 샘솟겠죠.

그런 과정을 통해 인재를 육성한 후 그 인재들이 사회 곳곳에서 힘을 발휘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건명원 1기 졸업생을 배출하고 나니 많은 사람이 물어요. “결과가 어때요?” 사실 아무 성과 없어요. 눈앞의 결과를 기대하면 건명원 같은 교육 사업은 못하죠. 학생들이 바로 나가서 뭘 하겠어요. 우선 기다리는 거죠. 가만 보면 우리는 결과를 묻는 습관에 젖어 있어요. 결과는 부산물 같은 거예요. 꿈을 꾼 부산물. 결과에만 집중하면 꿈을 꿀 수 없게 돼요. 꿈은 항상 미래지향적이고 눈에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인데, 자꾸 결과물을 요구하면 꿈을 꾸지 말라는 이야기잖아요.

건명원의 핵심 주역인 원장님과 배철현 교수님은 되도록 젊은 교수진을 꾸리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나이가 사고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그 사람을 표현하는 데 분명한 지표로 작용하죠.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도 몇 살인지 묻잖아요. 나이를 알면 대개 어떤 사람인지 예측이 된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그 예측이 별로 틀리지도 않죠. 물론 저도 그래요. 그래서 가급적 젊은 교수를 모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상이 적중하셨나요? 안타깝게도요. 사실 외국엔 나이가 많아도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국인은 그렇지 않아요. 나이와 호기심이 반비례하죠.

어디에서 그런 것이 느껴지나요? 저는 눈빛에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인간은 동물 중 눈빛이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알 수 있어요. 지성인을 만나보면 대략 두 부류죠. 지식을 쌓으면서 눈빛이 야성적으로 변해가는 사람, 그리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야성이 사라지는 사람. 창의성의 가장 중요한 척도는 ‘질문’인데, 질문은 곧 야성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공부를 하면 할수록 대답은 잘해도 질문은 못해요. 보편적 이념을 수행하는 인재를 만들어내는 데에만 열중하는 한국의 공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죠.

그럼 선진국의 교육 시스템을 찾아 그곳으로 떠나야 할까요? 아니요. 많은 한국의 인재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들이 새로운 교육 풍토를 만들어냈나요? 그렇지 않거든요. 결국 그들도 똑같아져요. 여기서 핵심은 사람이에요. 꿈을 중요시하는 사람인가, 아닌가. 꿈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고급 지식을 습득해도 그것을 꿈으로 이루어내지 못해요. 그런데 꿈이 확실한 사람은 지식이 부족해도 문명의 새로운 깃발을 세워요. 스티브 잡스가 그 방면에 지식이 가장 풍부한 사람이었나요? 저는 한국의 유학생들이 너무 지식을 습득하는 데만 열중한다고 생각해요.

그 문제에 대해 학생이나 그들의 부모부터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우리나라는 공부 좀 한다 그러면 다 의대에 가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성을 지닌 인재들이 자격증에만 매달리는 거예요. 자격증이 뭔가요? 기존의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거예요. 지식인이야말로 도전을 즐겨야 하는데 그러지 않죠.

가정교육부터 문제군요. 자식에게는 기존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라고 가르치면서 사회가 창의적으로 변하길 바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요. 자식에게 “네 꿈이 무엇이냐?”, “너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하냐?”, “너는 무엇을 좋아하느냐?” 이런 질문을 하는 대신 “너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지시만 하고 있어요. 한국의 10대는 행복이 뭔지 모르고 그 찬란한 시기를 보냅니다. 본인이 행복하지 않으니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죠.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가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어요. 행복해야 자존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생겨야 자신을 믿고, 자신을 믿어야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됩니다. 비로소 그때 자신의 꿈을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겨요.

건명원은 인문과 예술, 과학 이 세 가지가 서로 자극을 주는 커리큘럼을 갖추었습니다. 과학 없는 인문학, 인문학 없는 예술을 지양하죠. 그것이 왜 중요한가요? 그렇지 않을 경우 피상적 학문이 되니까요. 인문학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인문을 공부하는 것? 스피노자를 이해하는 것? 그것은 인문학이 아니에요. 그것은 인문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겁니다. 인문 지식을 습득하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인문적 높이의 시선을 갖기 위해서예요. 이 세계를 인문적으로 보고 인문적으로 관리할 능력을 키우지 못하는 인문학 교육은 다 헛일이에요.

꽤 어려운 말이네요. 제가 어제 학생과 점심을 먹었어요. 장자를 매우 좋아하는 학생인데, 앞으로 장자처럼 살아보겠다더군요. 그래서 내가 “이 사람아.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해? 그건 철학적 삶이 아니라 가장 노예적 삶이야”라고 호통을 쳤어요. 장자, 칸트, 데카르트, 비트켄슈타인. 훌륭한 지성인은 모두 ‘자기처럼’ 산 사람이에요. 모두 ‘나처럼’ 살고 ‘나만의’ 시선을 갖춘 지성인이죠. 그것을 기록하여 남긴 것이 철학서예요. 그러니까 칸트의 책을 읽고 ‘아 나도 칸트처럼 살아봐야겠다’ 하는 건 노예적 사고예요. ‘아! 칸트가 그랬듯이 나도 나처럼 살아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거죠. 이것이 철학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올바른 지혜예요.

철학과 인문학 모두 주체적 삶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군요. 일찍이 신채호 선생님도 이렇게 탄식했어요. 조선이라는 땅은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의 조선이 되려 하고, 불교가 들어오면 조선의 불교가 되지 못하고 불교의 조선이 되려 한다고. ‘네가 너냐? 그게 아니라면 다 헛것이다’라는 거죠.

건명원 홈페이지 게시판을 한참 읽었어요. 건명원답게 솔직한 질문과 답이 오가더군요. 어떤 방문자가 “먹고살기도 바쁜데 꼭 인문학을 해야 하나요?”라고 묻자 원장님은 이렇게 답하셨더라고요. “꼭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와 인문학 공부가 갈등을 빚는다면, 그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죠. 그분에게는 인문학 공부가 필요 없어요. 이런 질문과 똑같아요. “나는 계율을 지키기 어려운 사람인데 득도를 할 수 있습니까? 꼭 득도를 해야 하나요?” 그럼 전 이렇게 대답해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건명원의 입학시험은 매우 치열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입학시험을 통해 창의적 인재를 잘 선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입학시험만 가지고는 창의적 인재인지 알 수가 없죠.

그럼 그 시험을 통해 파악하고자 하는 건 뭔가요? 이 사람이 건명원에서 교육을 받고 창의적 인재에 가까이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봅니다. 즉 몰입도가 있느냐 없느냐, 지적으로 탐욕적이냐 아니냐를 보는 거죠. 지난 1년 동안 잘린 원생이 과연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였을까요? 오히려 높은 지성을 갖춘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몰입도나 집중력에서 점점 뒤처진 사람들이죠. 우리는 그걸 봐요. 그걸 파악하는 장치로 입학시험을 활용하는 거고요.

입학 지원에 나이 제한이 있더라고요.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입시를 거치면서 머리가 많이 굳어요.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말해도 크게 잘못된 말은 아니죠. 그래서 처음에 건명원에서는 10대 청소년을 뽑으려 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미성년자다 보니 혼자 해외 연수를 보낼 수도 없고 책임 소재가 복잡한 거예요. 그래서 19세에서 29세로 정했더니 “30대는 사람도 아니냐”면서 주변에서 항의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35세까지로 늘렸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뽑고 보니 30대가 한 명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입학원서에 나이도, 성별도 못 쓰게 되어 있어서 심사위원들이 지원자 나이를 모르는 채 뽑는데도 합격자 안에 30대는 한 명밖에 들지 못한 거죠.

건명원의 강의는 교수들조차 서로의 수업을 듣고 싶어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교수님은 동양철학을 강의하시는데, 예술과 과학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계신가요? 저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 안 하는 학생이었어요. 지금도 지식이 많이 부족하죠. 철학이 무엇인지도 30대 중반이 되고서야 알았어요. 예술도, 과학도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비로소 조금씩 알게 됐죠.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과학을 모르고 하는 철학, 예술이 결여된 철학은 모두 헛소리구나’라는 거죠.

그것도 서른 중반에 깨달았나요? 지금 한 말은 마흔 넘어서 알았어요.(웃음) 우리가 지금 배우는 철학은 모두 다른 학문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니 과학을 따라가지 못하는 철학은 헛소리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지금도 과학 공부, 예술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 관련성 속에 들어가면 사람의 지성과 감성이 얼마나 고양되는지 이제 좀 알게 되었죠.

1기 학생 30명 중 최종 수료생이 18명입니다. 입학 당시와 비교할 때 수료생들의 변화 같은 것이 보이시나요? 인상적인 변화가 있어요. 여기 입학했을 때, 건명원을 졸업하면 취업을 하겠다고 말하던 학생이 있었어요. 1년 후 저희가 “기업에 추천을 해주겠다”고 했죠. 건명원 출신을 원하는 대기업이 꽤 있거든요. 그러자 그 학생이 취업 말고 창업을 하겠다는 거예요. 사람이 생각을 바꾸는 건 정말 큰 변화거든요. 많은 학생이 그래요. 취업할 의사가 있던 학생들이 졸업 후 더 큰 꿈을 꾸게 된 경우가 많죠.

건명원을 세운 지난 첫해의 경험이 이번 2기 학생 선발에 색다른 기준으로 작용하진 않았나요? 올해 입학시험 방법을 바꿨어요. 1기 때는 8명의 교수가 모든 학생의 점수를 매긴 다음 평균을 내서 뽑았어요. 그래서인지 대체로 비슷한 학생, 둥글둥글한 학생들이 들어왔죠. 올해는 좀 더 모난 학생을 뽑고 싶었어요. 뭔가 더 치열하고 액티브한 모습이 보고 싶었거든요. 1차 서류 전형에서 100명을 뽑아 25명씩 네 그룹으로 나눈 후 한 명의 교수가 한 그룹씩 맡아 그중에서 본인이 원하는 학생을 뽑기로 했어요. 각 교수마다 특성이 있기 때문에 개성 있는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왠지 수업 분위기가 더 활발해진 것 같아요.

나이 들면 꼰대가 된다고 하는데, 건명원의 교수님들은 안 그럴 것 같아요. 원장님도요. 학생들하고 같이 있으면 재미있어요. 학생들도 저랑 있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아내는 그러죠. “학생들은 절대 당신과 있는 걸 재미있어하지 않는다. 같이 오래 있지 말라”고.

자녀에게도 친구 같은 아빠일 것 같아요. 지금 둘 다 대학생인데,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한 적은 없었어요. 그 대신 늘 이런 말을 해줬어요. “너는 참 고유한 아이야.” “너는 너로 살아야 해.” “네가 생각한 것, 그것이 가치 있는 거야.”

잘은 몰라도 자신감 하나는 넘칠 것 같네요. 저는 아이들이 어릴 때 뭘 물어보면 무조건 모른다고 했어요. 백과사전 던져주며 찾아보라고 했죠. 둘째 아들이 막 한글을 배워서 쓴 첫 편지에 “아버지! 공부 열심히 하셔서 엉터리 교수 되지 마세요”라고 당부했을 정도니, 제가 얼마나 바보로 보였으면 그랬겠어요.(웃음)

아주 당차고 어른스럽네요. 아들 두 놈이 모두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책임감이 강하죠. 전 아이들에게 “내 앞가림도 힘드니 우리 각자 자기 앞가림은 하고 살자. 그리고 나중에 정상에서 만나자”고 해요.

<노블레스> 독자에게 이 여름, 혼자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 하나를 던져주신다면? ‘내가 과연 나일까?’를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생각을 해봤는데 만약 내가 나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를 찾아야죠. 인생 훅 가요. 제가 학생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나는 진리를 찾기 위해 철학과에 왔는데 진리는 못 찾았다. 진리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진리하고 제일 비슷한 것을 하나 찾았다. 너희는 금방 죽는다는 거다. 너희나 나나 금방 죽는다.”

그걸 알고는 있는데 행동으로 옮기긴 참 어렵죠. 주체적으로 사는 것 말이에요. 저는 도가 철학자라 가끔 명상을 하는데 명상이 끝난 뒤 나 자신에게 하는 당부 메시지를 다섯 번 정도 중얼거려요. “나는 금방 죽는다. 나는 금방 죽는다….”

그러면 뭔가 달라지나요? 그런 것 같아요. 덜 쩨쩨해져요. 그리고 더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이 쉽게 가려지죠.

원장님은 철학을 안 했으면 무엇을 했을까요? 수행자가 됐을 거예요. 그런데 수행자가 되기에는 이미 속세의 즐거움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죠.(웃음)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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