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의 흔적을 따라서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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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30

시칠리아의 흔적을 따라서

문화 칼럼니스트 정준호의 이탈리아 여행기.

위쪽 아그리젠토의 신전의 계곡.
아래왼쪽 로마 외곽 막센티우스 황제의 전차 경주장.
아래오른쪽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그린 아그리젠토의 주노 신전.

영화 속 시칠리아
영화 <스타워즈>에서 죽은 줄 알았던 해리슨 포드가 <인디아나 존스> 최신 편으로 부활해 시칠리아에서 아르키메데스를 만나고 올 줄이야! 인디아나는 키케로가 어렵사리 발견했다가 잊힌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을 ‘디오니시우스의 귀’로 불리는 채석장에서 다시 찾는다. 그런데 실제로 시칠리아를 여행한 사람 대부분이 가장 인상적인 장소로 꼽는 타오르미나의 반원형극장, 아그리젠토(Agrigento)의 ‘신전의 계곡’을 영화나 그림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불의 여인(Blood Feud)>(1978)은 소피아 로렌,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 잔카를로 잔니니라는 당대 최고 이탈리아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역시 아는 사람이 적다. 제목이 가장 긴 작품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이 영화의 원제목(<시쿨리아나 공동체에서 두 남자 사이에 한 과부를 놓고 일어난 피의 사건. 정치적 동기가 의심된다>)은 줄거리를 함축하고 있다. 주인공은 마피아에게 남편을 잃은 과부 티티나. 변호사이자 사회주의자 스팔로네는 ‘주노 신전’ 앞에서 마피아에게 겁탈당할 뻔한 티티나를 구하다 뭇매를 맞는다. 그녀는 상처를 치료하면서 스팔로네의 구애를 뿌리치지 못한다. 그때 죽은 남편의 사촌이자 어릴 때부터 티티나를 좋아했던 니콜라가 사업가로 성공해 미국에서 돌아온다. 미묘한 삼각관계 중 니콜라는 티티나가 남몰래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외간 남자와 통정하는 것이라 오해한 그는 티티나를 경멸하지만, 사실 낙태를 도우러 간 것이라는 말에 용서를 빌고 그녀와 밤을 보낸다. 무솔리니가 집권하면서 마피아는 파시스트의 옷을 입고 사람들을 겁박한다. 복수심에 불타던 니콜라와 스팔로네는 각자 마피아를 찾아 ‘원형극장’으로 간다. 총격 끝에 니콜라는 스팔로네를 구하고, 이들은 티티나와 함께 미국으로 탈출하려 한다. 그러나 쫓아온 마피아에게 결국 총을 맞고 죽어가는 스팔로네와 니콜라에게 티티나는 “당신의 아이를 가졌다”고 말한다. 티티나 자신조차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면서 두 남자를 위로하기 위해 건넨 말이다. 시칠리아에서 일어난 치정극을 배경으로 한 내용에는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더 어울리겠지만, 감독은 벨리니의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을 주제곡으로 골랐다. 벨리니가 시칠리아의 카타니아 태생이기 때문이었을까?







왼쪽 그리스 바다 건너 유입되었다는 전설의 아레투사 샘.
오른쪽 채석장 노예들의 한숨이 어려 있는 디오니시우스의 귀.

영화의 배경이 된 세제스타(Segesta)와 아그리젠토에는 폐허임에도 압도적 인상을 주는 그리스 신전이 즐비하다. 내게 이번 시칠리아 여행의 주된 목적 중 하나는 아그리젠토에서 주노 신전을 보는 것이었는데, 19세기 독일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그린 그림 때문이었다. 기독교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프리드리히는 폐허가 된 신전을 통해 신들의 황혼을 명상적으로 묘사했다. 한스 위르겐 지베르베르크(Hans-Jurgen Syberberg)가 감독한 바그너의 <파르지팔(Parsifal)> 중 성찬의 전례에서도 이 그림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교도 신의 자리를 기독교가 대신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비춘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황혼’으로부터 자유로운 신은 없다고 도발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신들이 오간 자리에는 신을 향한 인간의 욕망만이 변치 않고 끈끈히 들러붙어 있다.
역삼각형 형태인 시칠리아의 아래 꼭짓점을 돌아 시라쿠사(Siracusa)에 도착했다. 시라쿠사는 고대 그리스 당시 번창한 식민지 중 하나로, 시칠리아의 부속 섬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움베르티노 다리 중앙에는 도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 아르키메데스의 동상이 서 있다. 부력 차이로 금관의 진위를 밝혀냈을 때 앎의 기쁨을 한마디로 요약한 감탄사 “유레카!”를 외친 주인공이다. 시라쿠사는 그리스 식민지답게 아폴로 신전이 있던 자리가 보이고, 디아나 여신의 분수가 광장 중심에서 휴식처가 되어준다. 그다음은 기독교 차례. 산타 루치아를 섬기는 시라쿠사 대성당은 아테나 신전의 뼈대를 그대로 이용해 지었다. 화려한 18세기 바로크양식의 외관과 달리 내부는 웅장한 그리스식 기둥과 투박한 로마 벽체로 되어 있다. 기독교가 이교도 토대 위에 안착한 것을 기념하는 장소랄까. 바로 곁에는 같은 양식이지만 더 소박한 산타 루치아 알라 바디아 교회가 자리한다. 카라바조가 그린 ‘산타 루치아의 매장’과 카라바조 작업을 활인화(tableau vivant)로 촬영한 토니 마차렐라의 ‘산타 루치아에게 바침’이 숙연함을 자아냈다. 영화 <말레나>에서 소년의 눈에 비친 아름다운 말레나는 마치 산타 루치아처럼 죄 없이 핍박받은 여인이었을 것이다. 말레나를 연기한 모니카 벨루치가 거닐며 뭇 남성의 눈길을 받은 곳이 바로 이 성당 앞 광장이다.
골목길을 따라 바닷가에 면한 아레투사 샘(Fonte Aretusa)에 도착했다. 시칠리아 여정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다. 올리브나무 아래 거대한 우물처럼 보이는 샘은 바닥이 훤히 비치는 물빛부터 건너편 쪽빛 바다와는 사뭇 다르다. 보통의 민물은 바다로 흘러가지만, 오비디우스의 책 <변신>에 따르면 이곳은 그 반대다. 아르테미스의 시녀인 아레투사는 강의 신 알페이오스의 구애를 뿌리치려고 샘물이 되었다. 수원(水源)은 그리스의 아크로세로니아산맥인데, 알페이오스강과 섞이지 않으려고 이오니아해를 건너 이곳으로 피했다는 이야기다.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는 이 신화를 시로 썼고,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는 그 시를 오페라와 교향시를 결합한 ‘포에메토 리리코(Poemetto lirico)’로 작곡했다.







로마 메디치 빌라의 분수.
그리스 신전을 뼈대로 지은 시라쿠사 대성당.
아그리젠토의 주노 신전.


레스피기와 벗하다
밀라노에서 출발해 베로나, 베네치아, 로마, 나폴리를 거쳐 시칠리아까지 돌아본 이번 여정을 다시 로마로 돌아가 마치려고 한다. 사려 깊은 독자는 내가 유독 레스피기라는 작곡가를 자주 언급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바야흐로 그의 때가 되었다. 나는 며칠 뒤 키릴 페트렌코(Kirill Petrenko)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의 연주로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을 들을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빌라 보르게세의 소나무’ 아래에서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조각품을 논하는 괴테와 키츠를 상상해 본다. ‘카타콤의 소나무’는 어쩌면 그 옛날 기독교 수호성인 세바스티안이 묶여 화살을 맞고도 신앙을 꺾지 않았던 나무일지도 모른다. 로마에서 가장 높은 ‘잔니콜로 언덕의 소나무’는 크리스티나 여왕이 꽃피운 바로크 문화를 굽어 내려다보고,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는 자유를 위해 죽은 수많은 스파르타쿠스의 증인이다. 여기까지가 바로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 네 곡이다. 이어서 ‘로마의 분수’가 ‘음악 분수란 이런 것’이라며 솟구친다. ‘새벽녘 줄리아 계곡의 분수’, ‘아침의 트리토네 분수’, ‘한낮의 트레비 분수’, ‘해 질 녘 빌라 메디치의 분수’는 마치 영화 속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의 하루를 예고하는 듯하다. 마지막은 가장 덜 알려진, 그래서 제일 중요한 ‘로마의 축제’다. ‘치르 첸세스’는 이름 모를 검투사들의 사투와 군중의 광기를, ‘희년(禧年)’은 로마에 도착한 순례자들의 감격을, ‘시월제’는 풍요를 기원하는 이교도의 축제를, 끝으로 ‘베파나’는 주현절 전날 나보나 광장의 축제를 그렸다. 베파나는 산타클로스의 원조 격인,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는 노파다. 역시 고대 이교도의 선물 나눔 풍습에서 비롯된 축제를 동방박사의 아기 예수 경배와 접목한 것이다.
이탈리아 인문 기행을 계획한다면 단테나 괴테, 미켈란젤로, 베르디가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나아가 레스피기와 벗하려면 그 모든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유레카!

 

글·사진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
에디터 김혜원(haew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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