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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25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각인

영국 왕립예술원이 50년에 걸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 세계를 주목한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The Artist is Present〉(2010). Courtesy of the Marina Abramović Archives, Photo by Marco Anelli ©Marina Abramović
아트 바젤 2019에서 공개한 〈Four Crosses: The Evil (positive)〉(2019). Courtesy of the Marina Abramović Archives ©Marina Abramović


영국 왕립예술원(Royal Academy of Arts)에서 9월 23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퍼포먼스 아트의 선구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놀랍게도 이 전시는 왕립예술원 메인 공간에서 선보이는 최초의 여성 작가 개인전이기도 하다. 세르비아에서 태어나 1970년대 초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예술 활동을 시작한 이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시각예술 형식의 하나로 퍼포먼스 장르를 개척했다. 독창적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퍼포먼스 아트를 주류 예술 장르로 끌어올린 인물로, 지난 50년에 걸쳐 육체적·정신적 인내의 한계를 끊임없이 시험한 다양한 작품으로 관람객을 사로잡았다.
이 전시는 사진, 조각, 비디오, 오브제, 설치, 아카이브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총망라해 작가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순간을 짚어낸다. 특히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방식으로 훈련한 차세대 예술가들이 그의 주요 작품을 라이브로 재연한다. 왕립예술원 측은 전시 기간에 다양한 작품을 바꿔가며 상영 또는 공연하겠다고 밝혀 더욱 관심을 모았다. 언제 방문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전시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숀 켈리에서 12일동안 선보인 〈The House with the Ocean View〉(2002). Courtesy of the Marina Abramović Archives, Photo by Attilio Maranzano ©Marina Abramović

시연 스케줄은 왕립예술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에는 아브라모비치가 이를 통해 관람객과 직접 소통한 것으로 유명한 작품 〈Rhythm 0〉(1974)와 〈The Artist is Present〉(2010)가 등장한다. 46년 시차를 두고 선보인 두 작품은 아브라모비치 예술 세계의 발전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 자신을 관람객에게 실험 대상으로 내준 초기 작품 〈Rhythm 0〉는 아브라모비치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6시간 동안 펼친 퍼포먼스다.
퍼포먼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브라모비치가 가만히 서 있으면 관람객이 미리 테이블에 놓아둔 72개의 물건 중 하나를 이용해 작가를 대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행위를 한다. 거기엔 꽃, 향수, 과일, 빵, 와인, 가위, 메스, 손톱, 금속 막대 등이 있고 총알 한 발을 장전한 총도 놓였다. 불쾌할 수도 있는 온갖 행위가 이어졌고 충격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누군가가 장전된 총을 아브라모비치의 머리에 겨눈 것. 작가는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한계로 몰아붙이며 고통, 피로, 위험을 견뎌냈다. 이렇듯 ‘몸’은 항상 아브라모비치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주제인 동시에 매개체로 작용했으며, 일상의 단순한 행동을 의식화해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탐구하는 수단 역할을 했다.
아브라모 비치는 1975–1988년에는 독일 예술가로 오랜 파트너인 울라이(Ulay)와 함께 이중성의 관계를 다룬 작품을 선보였다. 1988년에 그와 헤어지며 이별에 초점을 맞춘 작품도 제작한 바 있다. 당시 서로 반대편에서 만리장성을 90일 동안 걸어 잠시 만난 후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의식적 이별을 표현한 작품 〈연인: 만리장성 산책(Lovers: The Great Wall Walk)〉도 이번 전시에서 감상할 수 있다. 1989년부터 다시 솔로 퍼포먼스로 복귀한 아브라모비치는 2010년에 이르러 기념비적 작품을 남긴다.





오른쪽 흑백 싱글 채널 영상 〈The Hero〉(2001). Courtesy of the Marina Abramović Archives ©Marina Abramović
왼쪽 이 전시에서 꼭 봐야 할 작품 중 하나인 〈Rhythm 0〉(1974). Courtesy of the Marina Abramović Archives Photo by Donatelli Sbarra ©Marina Abramović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선보인 〈The Artist is Present〉를 위해 작가는 3개월 동안 하루 8시간 이상 한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은 채 수백 명의 낯선 사람과 한 명씩 조용히 눈을 맞추었다. 아마 아브라모비치가 붉은 혹은 어두운 색 롱 드레스를 입고 전시장에 앉아 타인을 마주하는 장면을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어린이도 이 퍼포먼스에 참여했고, 심지어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다. 이번 왕립예술원 개인전에선 이 작품을 아카이브 영상으로 재연한다.
전시는 〈The House with the Ocean View〉(2002)의 재공연으로 막을 내린다. 2002년 아브라모비치가 처음 공연한 이 작품은 뉴욕 갤러리 숀 켈리(Sean Kelly) 안에 직접 ‘집’을 짓고, 단 3개 공간으로 이루어진 그 집에서 12일 동안 실제로 살며 진행한 퍼포먼스다. 아브라모비치는 당시 물만 마시는 단식을 하며 일상적 행동을 의식화해 맨몸으로 생활했다. 관람객이 침묵 속에서 작가의 생활과 단순한 행위를 목격한 이 작품은 9·11 테러 발생 후 1년이 지나 선보이며 집단 추모 분위기를 의도하기도 했다.
아브라모비치는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제도권 미술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퍼포먼스 아티스트다. 베니스 비엔날레(1976, 1997), 카셀 도쿠멘타(1977, 1982, 1992) 같은 대규모 국제 행사에도 당연히 이름을 올렸다. 작가의 오페라 프로젝트 〈7 Deaths of Maria Callas〉는 2020년 뮌헨 바이에른 슈타초퍼(Bayerische Staatsoper)에서 초연한 후,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 등 세계의 주요 오페라극장을 순회했다. 시각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쌓았을 뿐 아니라 공연 예술의 미래를 탐구하고 지원하고자 마리나아브라모비치연구소(MAI)를 설립해 예술의 발전에 힘쓰는 작가의 행보도 반갑다. 전 생애에 걸쳐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시험하며 예술을 매개체로 정신적 도약을 꿈꾼 작가. 세계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게 예술은 삶의 방식일 뿐 아니라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제공 영국 왕립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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