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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16 FEATURE

곡선으로 그린 전시

  • 2016-01-21

현대자동차가 또 한 번 대규모 전시를 열었다. 이번엔 자사의 디자인 철학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자리였다.

나무 블록으로 거대 물결을 표현한 ‘헬리오 커브’

과거 구형 그랜저는 현대자동차의 히트 상품이었다. 차체에 곡선보다 직선이 많아 ‘각 그랜저’라고까지 불렸다. 한데 2010년대 들어 슬슬 노선이 바뀌었다. 차량에 곡선이 많아지기 시작한 거다. 이후 시간이 흘러 현재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철학은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ulpture)’로 표현하고 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단어를 직역하면 ‘유연한 조각’ 정도 된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곡선을 생동감 있는 자동차 디자인으로 표현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플루이딕 스컬프처는 차 전면부터 후면까지 자연스럽게 흐르는 듯한 곡선이 특징이다. 2013년 말에 출시한 2세대 제네시스를 시작으로 한 단계 진화했고, 최근 나온 제네시스 EQ900에도 반영했다.
현대자동차는 이 디자인 철학을 더욱 많은 이와 공유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21일부터 1월 10일까지 서울 DDP에서 대형 전시를 열었다. 전시명은 ‘움직임의 미학(Sculpture in Motion)’. 파도와 물결, 곡선같이 있는 그대로의 움직임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보는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철학 ‘플루이딕 스컬프처’를 미술 전시 형태로 소개하는 자리였다. 전시장에선 총 4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아크릴 구(球)에 레이저 조명을 쏴 움직임을 형상화하는 ‘플루이딕(Fluidic)’과 움직이는 나무 블록으로 거대한 물결을 표현한 ‘헬리오 커브(Helio Curve)’, 자동차의 움직임을 오직 음악으로만 표현한 ‘뮤직 오브 모션(Music of Motion)’, 마지막으로 현대자동차의 컨셉카 전시로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관(Historic Concept Car)’이 그것이다.




레이저 빔이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플루이딕’




미래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의 미학>전 전경




현대자동차 컨셉카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관’

그중 특히 자동차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예술 작품에 눈길이 갔다. 바로 ‘플루이딕’과 ‘헬리오 커브’. 독일의 화이트 보이드(White Void)사와 협업해 탄생한 ‘플루이딕’은 2013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것으로, 국내엔 처음 공개하는 작품이었다. 1만2000개의 아크릴 구와 8개의 레이저 빔이 컴컴한 공간에서 그걸 보는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해 매번 새로운 조형물을 만들어냈는데, 그 모양새가 나뭇잎 사이로 몸을 숨기는 재빠른 도마뱀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른 작품 ‘헬리오 커브’는 2015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첫선을 보인 것이다. 미국 출신 설치미술가 루벤 마골린(Reuben Margolin)과의 협업으로 완성했다. 높이 5m, 길이 26m 작품으로 하나하나 손으로 깎아낸 400개의 나무 블록을 이어 붙인 뒤 이들과 연결된 양쪽의 구동축을 통해 자연의 살아 있는 움직임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는데, 심해를 헤엄치는 거대한 가오리처럼 느껴졌다.
이번 전시에선 소리를 통해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철학을 체험하는 ‘뮤직 오브 모션’도 볼거리였다. 이 작품은 ‘헬리오 커브’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은 것. 자동차의 움직임을 음악으로만 표현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전시장 한쪽에 자리한 작품은 자동차의 엔진음과 경고음, 작동음 등 다양한 사운드 디자인을 맡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의 전문 연구 조직인 ‘사운드 디자인 리서치 랩’의 박도영 책임 연구원이 작곡 및 디렉팅한 20곡의 사운드트랙을 직접 감상하는 형태로 전시했다. 자연의 고요하지만 활기찬 움직임, 정제된 미학의 조화와 화합, 그리고 현대음악 거장들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해 편곡한 연주곡 등 테마도 다양했다. 한편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관’엔 현대자동차의 컨셉카 4종을 전시해 이목을 모았다. 1992년에 발표한 현대자동차의 첫 번째 컨셉카 ‘HCD-1’을 비롯해 ‘HED-4 Qarmaq’(2007년), ‘HND 9-Venace’(2013년), ‘HND-12 Enduro’(2015년)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움직임의 미학>은 그간 개념으론 존재했으나,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처의 탄생과 역사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소개한 의미 있는 전시였다. ‘플루이딕’이 형태 없는 가상의 움직임을 표현한 작품이라면, ‘헬리오 커브’는 손에 잡히는 실제 움직임을 포착해 관람객의 호응을 얻었다.
사실 자동차 회사가 차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디자인 가치로만 전시를 여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또 기업이 제품과 관계없는 순수예술 전시회를 여는 건, 자동차 회사뿐 아니라 다른 업종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단순한 기계가 아닌 ‘아름다운 자동차’를 생산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현대자동차의 이번 전시는 디자인에 관한 그들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전시라 하기에 충분했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Genesis)를 내놓으며 자동차 디자인의 단계별 진화를 예고했다. 기존 현대자동차의 정제됐지만 역동적인 디자인을 계승·발전시키며 좀 더 동적인 우아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것. 단순히 잘 달리는 차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대중의 삶 속에서 예술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길 바라는 이들, 현대자동차의 또 다른 전시가 기대된다.

 




Mini Interview
자동차 디자인의 조형과 철학을 탐구하며 <움직임의 미학>전을 진두지휘한 현대자동차 선행디자인팀의 책임 연구원 김유미와의 인터뷰.

자동차 회사의 디자인 철학을 예술 전시 형태로 재해석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전시에서 가장 신경 쓴 건 뭐였나? 제품에 아트의 요소를 가미해 예술을 통로 삼은 제품 홍보를 의도하기보다는 예술의 진정성을 통해 현대자동차가 표방하는 미학을 보고, 듣고,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총체적인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이번 전시는 그간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철학을 전시 형태로 보여준 자리라 할 수 있다. 근데 이렇게까지 큰 규모의 전시를 열어야 한 이유가 있나? 알다시피 현대자동차는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그 때문에 그간 타사 대비 디자인과 성능 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이와 우리의 디자인과 철학을 공유하고 또 공감하고 싶어 전시를 기획했다. 차를 분해하거나 성능을 앞세워 사람들을 끌어모은 전시는 이전에도 많았다. 하지만 디자인 철학 자체를 예술과 접목한 전시를 연 건 현대자동차가 처음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현대자동차에서 추구하는 미학과 시각적으로 보이는 형태 그 이상의 심미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유형적으로 실재하는 아름다움, 그 이면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관람객이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움직임의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표현한 ‘뮤직 오브 모션’이 인상 깊었다. 그 프로젝트의 숨은 주역은 현대-기아자동차의 사운드 디자인 리서치 랩의 박도영 책임 연구원이다. 그는 국내 유일의 자동차 사운드 디자이너로 실제로 차량 내부의 전기장치 소리부터 오디오 음향까지 상황과 목적에 맞는 최적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뮤직 오브 모션’도 그가 전부 디렉팅한 것으로, 현대자동차를 관통하는 주제 ‘모던 프리미엄’을 시각과 청각으로 같이 전하는 걸 목표로 했다.
앞으로도 이 같은 전시를 볼 수 있나? 시리즈로 진행하는 <움직임의 미학> 전시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와 서울 단독 전시에 이어 각국을 순회하며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철학을 대중과 소통할 기회를 점차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각 전시물을 통해 ‘공간 내’ 움직임뿐 아니라 ‘공간 간’의 움직임도 선보일 예정이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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