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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13

음악으로 지은 집

한국이라는 집을 마음속에 간직해온 음악가들. 고잉홈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로 돌아와 모두의 안식처인 '음악'의 집을 지었다.

왼쪽부터 유성권 그레이 셋업 슈트와 베스트 모두 Ami, 화이트 셔츠와 더비 슈즈 모두 에디터 소장품.
함경 블랙 셋업 슈트 Loewe, 화이트 셔츠와 보타이, 더비 슈즈 모두 에디터 소장품.
스베틀린 루세브 랩 스타일 재킷과 팬츠 모두 Dior Men, 화이트 셔츠 에디터 소장품.
박지훈 플라워 패턴 드레스 Etro, 블랙 펌프스 에디터 소장품.





왼쪽부터 플로린 일리에스쿠 그레이 셋업 슈트 Dior Men, 화이트 셔츠, 보타이, 더비 슈즈 모두 에디터 소장품.
손열음 새틴 드레스 Lehho, 뱅글과 블랙 펌프스 모두 에디터 소장품.
조성현 블랙 테일 코트와 팬츠, 화이트 셔츠, 보타이, 더비 슈즈 모두 에디터 소장품.
김홍박 턱시도 슈트와 화이트 셔츠, 보타이, 더비 슈즈 모두 에디터 소장품.





니트 톱 Dior, 하이웨이스트 팬츠 에디터 소장품.

 피아니스트 손열음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무대 뒤에 섰다. 고잉홈 프로젝트 전반의 운영을 맡으며 주역이 아닌 조력을 택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고잉홈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2018년 평창 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조직했어요. 해외 오케스트라에 재직 중인 한국인 단원과 한국에 계신 외국인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만든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인데 고잉홈 프로젝트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어요.
고잉홈 프로젝트의 의의가 무엇일까요? ‘이 오케스트라는 왜 있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했을 때 한국의 뛰어난 연주자는 많지만 그들이 합심해 만든 음악적 자산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주목했어요. 평창에서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앞으로도 만날 기회를 만들면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죠.
‘봄의 제전’을 지휘자 없이 연주할 것을 제안한 것이 손열음 감독이었다고 들었어요. 연주하지 않으니까 부추겼다고 하진 않던가요?(웃음) 이왕 지휘자 없이 하는 연주가 어려우니, 정말 어려운 곡에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제안했죠. ‘봄의 제전’ 자체가 워낙 난해한 변박과 리듬 구성 때문에 어려운 곡이에요. 처음에는 연주자들이 “무슨 소리야”라는 반응을 보이더니 곧 “어려운 건 다 똑같지 뭐” 하며 받아들이더군요.
단지 어려운 곡이라 선택한 것은 아닐 거예요. 왜 ‘봄의 제전’을 제안했나요? 봄의 제전’은 발표 직후부터 화제가 된 작품이에요. 이 전의 역사와 안녕을 고하는 작품이라 평가받기도 했고요. 지휘자가 있어도 까다로운 곡이죠. 이 단체의 출발과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인데, 결과는 놀라웠어요. 모든 연주자가 악보를 철저히 체크하며 연습했는데, 그런 점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볼레로: 더 갈라’의 경우 반응이 가장 좋았다는 평이 있어요. 무대 구성도 작은 편성에서 큰 편성으로 이어져 듣고 보는 재미가 컸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빛나는 형태가 뭘까 하고 생각하다 구성한 것입니다. 어느 날 볼레로를 들었는데, 곡 자체가 악기 하나로 시작하다 둘이 되고 셋이 되잖아요. 다 같이 연주를 시작하고 끝나는 식이니 그와 유사한 공연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고잉홈 프로젝트에 거는 기대나 꿈이 있나요? 이 오케스트라가 언젠가 꼭 수출되면 좋겠어요. 한국은 그동안 세계적 연주가들을 많이 배출해왔어요. 하지만 사실 오케스트라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아요. 단원 대부분이 해외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해외 공연을 하게 되어도 추진하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앞으로 10년쯤 후에는 세계에 알려진 단체가 되었으면 해요.





터틀넥 스웨터와 그레이 팬츠 모두 Hermès.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 
정교한 테크닉과 섬세한 음악으로 명성을 쌓아온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가 고잉홈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무대로 돌아왔다.

스베틀린 루세브의 공연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뭘까요? 제가 노래를 안 한다는 거죠. 할 수는 있지만, 안 하는 게 더 좋을 걸요.(웃음) 바이올린은 제 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해주죠. 저에게 음악은 소리의 공명, 울림과 같은 것들을 공유하는 소통과 같아요.
다양한 공연 제안이 있었을 텐데 고잉홈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가 있을까요? 서울에 있는 제자들을 포함해 오랜 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과 독특한 아이디어가 저를 이끌었어요. 준비 과정만 보아도 전례 없는 프로젝트였죠.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였거든요. 하지만 함께한 연주자들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어요.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프로젝트를 시작 후에는 모두가 “이제 이전에 했던 것처럼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관객들과 SNS 반응을 보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악장을 맡은 지 20년이 넘었다고 들었어요. 많은 콘서트 경험이 있을 텐데 이번 콘서트는 어떤 점이 특별했나요? 공연 일정 중 진행한 갈라 콘서트의 경우 굉장히 독특한 구성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겠네요.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작은 편성에서 래퍼토리마다 악기를 합류하며 대규모 편성으로 키워가는 구성이 독특한 데다 아주 높은 수준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어떻게 하면 엄청난 볼륨과 에너지를 통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어요.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다면 고잉홈 프로젝트에 꾸준히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고잉홈 프로젝트와 다른 오케스트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이 프로젝트는 15개국 연주자들이 모였습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데다 단순히 수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함께 하기 위해 모였다는 점이 중요해요. 이런 마음이 모여 큰 차이를 만드는 거죠. 덕분에 그간 해보지 못한 여러 시도를 할 수 있었어요. 갈라 콘서트에서 연주한 음악은 대부분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들이 협연자로 나섰고요. 지휘자 없이 연주한 ‘봄의 제전’은 용감하면서도 특별한 시도였죠. 이렇게 훌륭한 음악가들과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공연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또 다른 기회가 온다면 함께 고잉홈 프로젝트에서 협업하고 싶은 음악가가 있나요? 음악의 흐름과 경험을 빚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환영이죠. 손열음 씨는 아주 뛰어난 피아니스트일 뿐 아니라 완벽한 본보기입니다.





하운즈투스 패턴의 코트와 팬츠, 화이트 셔츠 모두 Alexander McQueen.

 바이올리니스트 플로린 일리에스쿠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 종신 악장으로 활동 중인 플로린 일리에스쿠는 고잉홈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인 아내에 대한 사랑을 더 깊이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잉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고잉홈’ 이라는 프로젝트의 이름과 연관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아내와 아이가 한국인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지내며 집보다 더 집 같은 편안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잉홈 프로젝트가 다른 오케스트라와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그게 뭘까요? 세계 각국에서 온 연주자들이 하나의 프로젝트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고잉홈 프로젝트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해요. 각자의 나라에서 서로 다른 전통을 가지고 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연결시키는 것이죠. 각기 다른 연주 방식을 하나의 화음이 될 수 있게 맞춰야 하는데 덕분에 이 프로젝트를 해결해가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그렇게 탄생한 소리도 매우 훌륭했고요. 아주 독특합니다.
고잉홈 프로젝트는 후대 음악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한국의 젊은 관객들이 클래식 콘서트를 많이 찾아주신 것을 보고 정말 놀라고 행복했어요. 모두가 음악이라는 ‘집’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신호라고 생각했어요. 동서양의 전통이 어우러진 요소를 음악에 연결시킨 점이 매우 아름답다는 생각도 공연 기간 내내 자주 했고요.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폴란드 작곡가인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Henryk Wieniawski)입니다. 얼마 전 그의 곡을 연주했어요. 개인적으로 비에니아프스키의 곡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곡은 항상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의 곡을 연주할 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가 되죠. 연주하기는 어렵지만 (웃음) 항상 에너지를 얻어요.
팬들과 사진을 찍거나 대화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어요. 팬들과 어떤 식으로 소통하고 있나요? 콘서트가 끝난 후 가장 먼저 관객을 만나러 가요. 관객을 만나는 경험은 개인적으로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고, 영광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니까요. 그 외에도 SNS를 통해 사람들과 자주 소통하는 편이에요.
연주자들은 투어 중 오랜 시간 집을 떠나게 될 텐데요. 어떤 식으로 삶의 균형을 유지하나요?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것입니다. 아이와 아내,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무엇보다도 소중하죠. 한국에 오는 경우는 더 특별해요. 이 곳에 올 때면 친구, 가족 그리고 가족들이 제가 머무는 동안 편안히 있을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시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 노력해주세요. 이런 모든 사랑과 지원이 너무 감사한 일이죠.





V넥 니트 톱 Ami, 블루 코듀로이 팬츠 Loro piana.

 바수니스트 유성권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의 종신 수석 연주자인 유성권에게 고잉홈 프로젝트는 한국 가족들에게 공연을 선보일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공연에서 바순 솔로를 선보였어요. 어떤 곡이었을까요? 바순 협주곡으로 유명한 ‘모차르트 협주곡’이었어요. 바수니스트들이 오디션을 볼 때 항상 연주하는 곡이기도 하고요. 사실 악기 자체가 관객에게 친숙하지 않아 어떤 곡을 연주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곡이어야 듣는 관객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클래식 팬에게도 바순은 그리 친숙한 악기가 아닙니다. 바순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어머니가 태교를 하실 때 비발디의 ‘사계’를 많이 들으셨는데, 제가 어릴 때 사계가 흘러나오자 “엄마가 많이 들려준 곡”이라고 하더래요. 그 일을 계기로 클래식 음악 쪽에 관심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자주 접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덕분에 피아노를 비롯해 몇 가지 악기를 일찍 접했는데, 우연히 교회에서 바순을 연주하는 분을 보고 반하게 된 거죠.
바순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을까요? 악기 외관 역시 화려한데, 어린 나이에는 그런 점에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진 않아요. 확실히 저는 소리에 끌렸어요. 그 전에도 다양한 악기를 접했는데, 바순의 소리가 가장 편안했어요. 그 전에 접한 다른 악기의 소리는 제게 좀 날카롭게 느껴졌거든요. 바순은 편안했어요. 베이스를 담당하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솔리스틱한 부분을 맡기도 하죠. 예전보다는 많이 알려지기 시작해 조금은 편안하게 다가가고 있어요.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고잉홈 프로젝트는 어떻게 알고 합류하게 되었나요? 손열음 예술감독과 플루티스트 조성현 씨와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예요. 조성현 씨가 제안해주셨어요. 사실 전부터 이런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망설이지 않았어요. 저 역시 서울에서 공연할 기회가 많지 않던 차에 좋은 제안이기도 했고요.
고잉홈 프로젝트에 대한 외부 반응은 성공적이에요. 소회가 어떤가요? 후회 없어요. 저뿐 아니라 모든 연주자가 그럴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아느냐면, 연주가 끝나고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연주에서 후회가 남으면 절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아요. 저는 준비가 잘되어 있었고, 모두가 다 그렇게 노력했어요. 이 모험에 대해 후회가 없다는 말보다 굉장히 행복했다는 말로 마무리하고 싶어요.





빈티지한 매력의 니트 톱 Neil Barrett, 블랙 팬츠 에디터 소장품.

 플루티스트 조성현 
15세에 유학을 떠난 후 줄곧 해외에서 살아온 조성현은 같은 마음으로 음악을 하는 동료들을 모아 고잉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유학을 떠나 독일 쾰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합류한 지 9개월 만에 종신 수석 연주자가 되었죠. 플루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저를 각종 클래식 콘서트에 데려가셨어요. 다양한 공연을 접하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플루티스트인 에마누엘 파후트(Emmanuel Pahud)의 연주를 보게 됐어요. 영화배우처럼 멋진 연주자가 2300석이 넘는 객석이 가득 찬 공연장에서 단독 리사이틀을 하는 광경이 너무 멋있었어요. 완전히 매료된 거죠.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다양한 공연과 활동을 해오신 것으로 알아요. 팬데믹 직전에 국내 활동을 시작했어요.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직도 맡게 되었고요. 감사하게도 독일에서 활동할 때보다 더 많은 공연 기회가 있었어요. 솔로, 협연, 리사이틀, 실내악 등 공연 기회가 많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어요. 덕분에 많이 발전했어요. 그 시간 동안 항상 꿈꾸거나 기획하고 싶던 연주도 해보았고요.
꿈꿔오던 기획이란 고잉홈 프로젝트를 의미하는 걸까요? 맞아요. 저와 손열음 예술감독은 2018년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때부터 이런 계획을 이야기해왔어요. 음악가가 만든 단체를 통해 더 유연하면서도 진취적인 공연을 하고 싶다고요. 음악제나 오케스트라의 성격, 지휘자의 방향을 따르는 것은 각자의 오케스트라에서도 할 수 있는 거니까. 저희가 꿈꾸고 기획하고, 다 같이 모여 만드는 공연을 해보고 싶었어요. 나아가 후배 세대를 위한 교육적인 것도 하고 싶었고요. 그렇게 만들게 된 거예요.
인터뷰가 진행된 시점은 공연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후인데, 소회가 궁금합니다. ‘진짜 일어났네, 이 일이’ 하며 신기하기도 하고, ‘진짜 만들어버렸네’ 하는 기분이 교차해요. 꿈꾸며 이야기하던 일이 현실이 되어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이기도 하고요. 저의 2022년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어요.
고잉홈 프로젝트는 계속될까요? 물론이죠. 처음부터 상설 단체를 꿈꾸며 시작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내년에도 공연 횟수를 늘려 선보일 계획이에요. 언젠가 연 4회 공연을 안정적으로 여는 오케스트라가 되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음악가들이 만들어가는 공연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매년 반갑게 지켜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스웨이드 재킷과 터틀넥 톱, 버건디 팬츠, 브라운 슈즈 모두 Loro piana.

 호르니스트 김홍박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호르니스트 김홍박은 최근 음악과 일상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다.

호른이라는 악기를 시작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편견이 있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 꿈이 성악가였어요. 하지만 부모님이 음악을 하는 건 좋은데, 목소리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악기를 다뤄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시더군요. 당시 누나의 친구 중 호르니스트가 있었는데, 첫 소리를 듣는 순간 이 악기다 싶었어요.
호른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오케스트라에서 호른이라는 악기의 역할은 배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음색이 목관악기랑 어울릴 정도로 부드러운 색을 띠면서도 금관악기 고유의 강렬한 색도 지니고 있죠. 그만큼 다양한 음색을 갖췄기에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다른 악기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만들어줘요.
고잉홈 프로젝트의 주축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의의는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집으로’라는 뜻이죠. 해외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다 함께 모여 음악이라는 집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참 좋았어요.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통해 이미 좋은 추억을 만든 덕분에 더 확신이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단기간에 모인 음악가들이 합을 맞추며 확신을 얻고 서로 신뢰하는 무대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이 감정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나누고 싶어 고잉홈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 같아요.
지휘자 없이 진행된 연주들이 있었죠. 종전엔 보지 못한 시도 같은데, 어떤 이유였을까요? 쉽게 말하면 도전이었죠. 오히려 이번 도전을 통해 음악가 각각의 내면에서 많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고 생각해요. 자유롭지만 불완전하기에 서로의 귀를 더 열어주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눈으로 상대방의 몸짓을 보며 더 집중하게 되었으니까요. 지휘자가 있으면 좀 더 정돈된 연주가 나올 순 있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다채로운 표현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호르니스트 김홍박이라는 연주자를 축약해 표현한다면, 어떤 문장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앞서 말한 호른처럼 따뜻한 배경이 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해요. 모든 사람을 품을 순 없지만, 그래도 노력하고자 하는 편이에요. 일부는 성공하지 않았나 싶고요. 가족을 부양하고 있으니까.(웃음)





기하학적 패턴의 니트 톱 Emporio Armani, 블랙 팬츠 Loewe.

 오보이스트 함경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과 서호주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보이스트 함경의 무대는 담담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부모님이 음악가로 활동하셨죠? 오보에를 시작한 것도 부모님의 영향이 컸을까요?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죠. 음악을 접하기 쉬웠으니까. 처음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초등학생 때 리코더가 재미있더라고요. 비슷한 악기가 없을까 고민하던 차, 집에 있던 오보에가 운명처럼 눈에 들어왔어요.
왜 오보에였을까요? 하나의 호흡을 통해 음악의 선율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개인적으로 사람의 목소리가 주는 음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오보에가 그렇거든요. 오보에 소리를 잘 듣다 보면 사람의 목소리와 닮아 있어요.
오보에는 리드가 정말 중요하다면서요? 리드는 악기와 다름없어요. 오보에 소리의 근간이기에 리드를 어떻게 깎느냐에 따라 음색과 음정이 달라져요. 리드를 깎는 행위 자체가 오보이스트에게는 하나의 숙명이라고 볼 수 있어요.
리드를 깎으며 원하는 소리를 찾는 과정이 힘들 것 같습니다. 오보에 연습만큼 오랜 기간 소요되는 작업이에요. 사람마다 입 모양도 다르고 원하는 소리가 다르다 보니 오보이스트들은 직접 리드를 고독하게 깎죠.(웃음) 오보에를 놓기 전까지 리드를 깎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어요. 항상 더 좋은 리드를 생각하며 말이죠.
많은 공연을 해온 만큼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을 것 같아요. 모든 공연이 기억에 남지만,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공연의 기억은 그 어떤 공연보다 짙고 선명해요. 수십, 수백 명의 단원이 모여 지휘자의 손짓을 바라보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갈 때 거기서 오는 뿌듯함이 정말 커요. 그리고 그 순간 마음의 울림이 정말 좋습니다.
고잉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무대 구성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많은 준비가 있었다면서요? 단원들과 공연 전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계획을 완성하더라도 더 좋을 순 없을까 계속 고민하고. 100명 가까운 인원과 감독님이 생각하는 비전대로 갈 순 없는 게 현실이지만, 그것을 계속 맞춰가며 많이 발전한 것 같아요.
고잉홈 프로젝트가 오보이스트 함경에게 남긴 게 있다면? 음악을 순수하게 즐기던 때의 기쁨을 다시금 되새긴 것 같아요. 무대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기 위해 정신없이 연습에 몰두하다 보면 목적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어요. 하지만 이번 고잉홈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 그 자체의 즐거움을 다시 느꼈죠. 10년 넘게 해온 음악이지만 새롭게 음악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고, 위로와 보상을 받은 기분이에요.





더블브레스트 코트 Bottega Veneta, 골드 이어링 에디터 소장품.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훈 
코리안 솔로이스츠와 평창 페스티벌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해온 박지훈은 고잉홈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꿈꾸고 있다.

고잉홈 프로젝트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이죠? 어떤 역할인지 궁금합니다. 연주자 섭외부터 공연 준비까지 모두 도맡아 진행했어요. 장소 섭외는 물론 각각 연주자의 악기에 맞는 의자, 또 연주에 중요한 악보 구매도 있죠.(웃음) 연주자들이 연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했어요.
연주자이기도 한데, 부담이 되셨을 것 같아요. 그동안 연주만 해왔잖아요.(웃음) 그런데 고잉홈 프로젝트에서 사무국장이라는 생소한 직함을 받고 행정적 업무를 진행하다 보니 부담감과 걱정이 생기더라고요. 생각해보면 그 부담과 걱정이 고잉홈 프로젝트를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고잉홈 프로젝트의 첫 시작이 궁금합니다.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서 단원으로 연주 활동을 하고 있을 때로 기억해요. 그때 고잉홈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프로젝트에 흥미를 느껴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조심스럽게 표현했어요. 그 후 자연스럽게 프로젝트를 구체화했고, 지난해 12월 사단법인 승인을 받았어요.
유튜브에서 고잉홈 프로젝트 브이로그를 보게 되었는데, 흡사 어벤저스 멤버를 모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단원들을 직접 만나러 가보니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연주 실력은 물론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자극도 많이 받았어요. 고잉홈 프로젝트 사무국장으로 단원들을 만나러 간 거지만, 개인적으로 음악가 박지훈으로서 느끼고 배운 점도 큰 것 같아요.
내년 고잉홈 프로젝트에서도 사무국장과 오케스트라 멤버로 활동할 계획인가요? 맞아요. 사무국장만 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연주자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단원들과 섞여 연주하다 보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것을 보완해야 하는지 바로 느낄 수 있어요. 소리로든 행정적으로든 말이죠. 내년 3월, 11월도 지금과 똑같이 음악가와 행정가로서 고잉홈 프로젝트를 준비할 것 같아요.
고잉홈 프로젝트를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관객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우리는 관객에게 클래식을 강요하지 않는 오케스트라예요. 클래식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할 테니 많이 보러 와주세요.(웃음)

 

에디터 남미영(c2@noblessedigital.com),박재만(c7@noblessedigital.com),김미영(jarah@noblesse.com),오경호(c9@noblessedigital.com),차은향(c10@noblessedigital.com)
사진 이대희
헤어 & 메이크업 박희성, 김건우, 강지혜, 박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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