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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14

NFT의 현재와 미래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NFT의 미래.

NFT라는 문화
NFT라는 지각변동이 미술계를 넘어 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낙타 작가의 ‘The night’s asleep’.

스포츠, 와인, 아트, 패션. 2022년 1월 30일자 <파이낸셜 타임스>의 ‘디지털 자산 트레이더 제네시스가 NFT를 대출과 파생 상품 담보로 인정한다’는 기사에 언급된 산업이다. 스포츠, 와인, 아트, 패션은 이 기사의 말미에 나온 NFT 진출 분야였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NFT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박서보 화백이 SNS에 ‘내 그림 자체가 대체 불가능이다’라는 글을 올리든 말든, NFT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자산의 하나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스포츠, 와인, 아트, 패션 산업의 공통점이 있다. 뭔가 멋있지만 모호한 영역에 가치를 붙여 판매하는 비즈니스라는 점이다. 하나 더. 원가 대비 마진이 무한정 오를 수 있는 비즈니스라는 점이다. 생필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필품은 많은 사람에게 판매할 수 있으니 시장과 고객 규모를 전 지구적으로 키울 수 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가격이 무한정 오를 수는 없다. 생필품의 반대에 사치품이 있다. 사치품은 많은 사람에게 판매할 수 없으나 소수의 사람에게 아주 비싸게 팔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 단 한 사람에게. NFT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또 하나의 ‘단 한 가지’를 만드는 일이다. 멋진 걸 다루는 모호한 비즈니스가 달라붙기 아주 쉽다.
세상은 모호해서 누군가 알기 쉽게 뭔가 정할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성공할 수 있다. 모호함을 구체화하는 비즈니스 역시 언제나 인기 있다. 최근 대표적 예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비즈니스적 사용 실적이다. 광고주나 마케터 입장에서 보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관련 수치는 그 자체로 하나의 단위이며 구체적 수치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인간의 영향력이라는 모호한 힘에 대한 구체적 수치, 유튜브 영상 조회 수는 콘텐츠의 인기라는 모호한 개념에 대한 구체적 수치가 된다. 인간 문명의 온갖 산물이 컴퓨터 세상으로 들어가 디지털화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와 관련한 각종 지표를 보여주는 일로 누군가 돈을 버는 건 놀랍지 않다.





낙타 작가의 ‘Illusion’.

아트, 스포츠, 패션 등의 시장 역시 나름의 NFT적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모호함을 구체화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일류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권위가 있었고, 자신들이 일류라고 선정한 걸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고객 네트워크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사람은 누구일까? 개별 그룹의 아이콘? 아니다. 판을 짜는 사람이다. 지금 NFT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NFT라는 신규 거래소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른 플레이어들의 논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박서보 화백은 NFT 게임에 참여하지 않을 테니 반대하는 게 자연스럽다. 반면 축구 선수 구자철은 자신이 2012년 런던 올림픽 3, 4위전에서 입은 유니폼을 NFT로 발매했다. 바둑 기사 이세돌이 알파고와 겨뤄 이긴 대국도 NFT로 발매되었다. 이런 사람들은 NFT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NFT를 둘러싼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창작물이나 자산을 넣은 사람들은 NFT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반면 NFT라는 게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NFT를 좋아할 이유가 없다. NFT 자체가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탈중앙화를 통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거래 이력을 구축하면 디지털 파일을 유일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NFT의 논리이며, 이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논리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암호화폐는 21세기의 새로운 자산이 되고 있다. NFT에도 전 세계의 자산이 몰리는 중이다. 그뿐이다.
앞서 말한 NFT에 뛰어드는 비즈니스 속 기업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신규 진입자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와인 비즈니스의 모든 플레이어가 NFT를 받아들인 건 아니다. 와인계의 신대륙인 호주 와인메이커가 NFT를 통해 2021년 빈티지를 판매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세라 제시카 파커도 자신의 와인 브랜드 ‘인비보’의 비즈니스 일부에 NFT 모델을 도입했다. NFT를 가장 잘 활용하는 스포츠 리그 역시 NBA, 미국 스포츠 리그에서 최대 규모는 아니다. 새로운 기업은 새로운 영역에서 자신을 키워나가는 게 더 효과적이니 도전적 선택이 합리적 선택이다.
은근히 미래는 단순할 수도 있다. NFT의 미래는 이 비즈니스를 둘러싼 사람들의 기세에 달려 있다. 이 비즈니스가 가치를 얻으려면 많은 사람이 NFT라는 약속에 가치를 주는 일에 동의해야 한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유명세의 지표로 인정받는 데 시간이 걸렸듯, NFT가 자산의 하나로 인정받는 데도 시간이 걸릴 듯하다. 다만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다. 세상은 끝없이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새로운 판이 짜진다. 새 판을 짜서 큰 성공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나 있다. NFT 역시 그 흐름 중 하나이며, 사람들의 기세를 볼 때 이 흐름이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는 않다. _ 박찬용(칼럼니스트)







NFT에 대한 혼란과 오해
NFT를 대하는 미술계의 몇 가지 시선



차례대로_ 1 레지나킴 작가의 ‘The powerful pink wave’. 2 어터멜론 작가의 ‘As If Nothing Had Happened’. 3 요요진 작가의 ‘Yoyo shape 41’.

동시대 미술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미술계는 의외로 아주 느린 속도로 흘러간다.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큐레이터가 전시를 만드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한 미술관과 박물관의 수집 체계는 꽤나 견고하다.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유연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미술 제도는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미술이라고 여기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것이 미술이다’ 혹은 ‘저것은 미술이 아니다’라는 합의를 끌어낸 결과물에 가깝다. 이런 합의에는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 미술관뿐 아니라 미술 판매로 이윤을 창출하는 주체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NFT는 미술계를 고민에 빠지게 한다. 블록체인이 무엇인지, NFT는 또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현실 화폐 기준으로 몇억 원에 ‘NFT 작품’이 판매되었다는 소식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하지만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 과연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며 기존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리된 입장이나 생각을 지닌 미술계 인사를 만난다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이상할 것도 없다. 미술이 먼저 있었고, NFT가 탄생한 게 아니라 NFT가 탄생한 자리에 미술이 불려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NFT는 우리가 이미 미술이라고 합의를 마친 것에 가치를 부여하거나 유통하려고 만든 수단이 아니다. NFT는 디지털 ‘자산’에 현실 세계의 미술 작품처럼 희소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법으로 만든 것이다. 2021년 3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228.69이더리움(당시 기준으로 약 785억 원)에 낙찰된 비플의 NFT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와 연동된 원본 이미지 파일은 사실상 누구나 다운로드할 수 있다. 다른 모든 디지털 파일이 그렇듯, 이 파일은 무한히 복제할 수 있다. 하지만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는 좌표가 적힌 일종의 증명서이자 거래 가능한 자산인 NFT는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다.





김선우 작가의 ‘Crypto Dodo #1’, ‘Crypto Dodo #57’, ‘Crypto Dodo #83’.

이 정도면 조선시대에 욕심 많은 한양 부자에게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이야기와 NFT를 둘러싼 이야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NFT라는 거래 수단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와 별개로, 전 세계에서 이뤄진 NFT 거래량은 2021년 한 해에만 스무 배 이상 늘어났다. NFT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크립토펑크’나 ‘BAYC’는 제한된 수량으로 발행한 NFT 보유자만 입장할 수 있는 배타적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을 나만 볼 수 있는 공간에 두는 대신, ‘세계관’을 공유하는 캐릭터를 돈으로 응원하고 커뮤니티 입장권을 받아 활동하는 식이다.
여기에 기존 미술계가 개입할 여지가 있을까? 몇몇 갤러리나 옥션은 NFT에 대해 어떻게든 입장을 정리하거나 우선은 시장에 참여하려 애쓰고 있다. 카카오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가 2021년 7월부터 베타 서비스를 거쳐 12월 15일 정식 출시한 ‘클립드롭스’에서는 표갤러리와 아라리오갤러리 소속 작가들이 NFT를 선보였고, 실제로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서울옥션은 자회사 XXBLUE를 통해 한국의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와 협업을 시작했고, 일종의 NFT 콘텐츠 제공사가 되는 구조를 그리고 있다. 올해 1월 코스닥 상장사로 거듭난 케이옥션은 NFT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 다른 국내 주요 갤러리는 자체 NFT 거래 플랫폼 혹은 협업을 준비하거나 메타버스를 키워드로 방향을 잡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계가 이렇듯 설왕설래하는 동안 NFT는 더 많은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2021년 말에는 NFT를 활용한 P2E(Play-To-Earn) 게임이 급부상했다. NFT를 도입하겠다는 언급만으로도 특정 게임 제작사의 주가가 급등하거나, 게임물관리위원회가 P2E 게임을 사행성으로 규정해 등급 분류를 취소하기도 했다. 필리핀에서는 P2E 게임으로 돈 버는 일이 직업으로 정착했다. 중소기업벤처부에서는 부산에 조성한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에서 NFT를 활용한 부동산과 의료 서비스를 시험하기로 했다. NFT를 우리가 ‘미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만 결부시킨다면 일부만 알면서 전체를 아는 듯 여기는 게 아닐까 싶다.
따라서 NFT와 미술을 함께 생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NFT, 블록체인, 가상자산에 대해 미술에 국한되지 않은 입장을 정리해야만 하겠다. 그런 다음 우리가 미술이라 여기는 것의 조건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하고, 과연 이 조건이 NFT와 결부해 생각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NFT에 대한 미술계의 혼돈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온 물리적 현실 세계의 미술에 대한 생각은 잠시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_ 박재용(미술 비평가)







NFT를 보는 경제적 관점
NFT라는 파도를 어떻게 탈 것인지 물으신다면



주재범 작가의 ‘Mona virus’.

‘무엇’에서 ‘어떻게’로 질문이 달라졌다. NFT, 대체 불가능한 토큰 이야기다. 알아야 할 내용도 점점 더 복잡해진다. 다양한 통계가 나와 있지만, 2021년 NFT 판매 총액의 평균은 약 196억 달러(약 23조4710억 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200배 넘게 늘어난 액수고, 세계은행에서 전 세계에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하기 위해 확보한 예산보다 많은 금액이다. 두 눈으로 본 적도, 볼 수도 없는 이 토큰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토록 문제적일 수 있나.
문제의 핵심에는 역시 ‘가상자산’이라는 태생적 특징이 있다. 지난해 3월 개정한 특정금융정보법(이하 특금법)은 가상자산을 일컬어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라고 정의한다. 금융위원회는 NFT도 특금법에 포함된다며, 올해부터 거래에서 발생하는 차익에 소득세를 적용할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과세 대상으로 등극했다는 것은 NFT가 경제적 이윤을 얻는 수단이 되었음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이 모든 소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NFT가 우리 현실 가까이에 있음을 실감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이뤄진 전체 거래의 85%가 거래자 10%에 집중되었다니,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의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라는 우려가 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놀라운 점도 분명 있다. NFT의 발행 표준안인 ERC-721이라는 기술은 누가, 어떤 토큰을 가졌는지를 증명한다. 각각의 토큰이 모두 다르기에 개수는 의미가 없다. 달러, 파운드, 금, 비트코인처럼 대체 가능한 통화와 달리 유일무이한 하나의 항목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다. 덕분에 거래 행위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던 온갖 것을 사고파는 공식적 시장이 구축되었다. 처음에는 ‘저걸 돈 주고 산다고?’ 싶은 내용이 즐비했지만, 매물의 종류도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킹스 오브 레온을 비롯해 디스클로저, 린킨파크의 마이크 시노다 등 여러 뮤지션이 NFT로 앨범을 발매했다. MBC는 ‘무야호’ 밈을 NFT 경매에 부쳐 950만 원에 판매했다. 코카콜라, 맥도날드, 나이키 등 각종 브랜드도 NFT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승진 작가의 ‘SD box’.

<하버스 비즈니스 리뷰>의 논평은 NFT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NFT는 소유자만 접근 가능한 이벤트, 특별 할인을 위한 일종의 멤버십 카드나 티켓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온라인 공간에 입장하기 위한 디지털 열쇠를 지닌 소유자 간 관계 맺기도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소유권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브랜드를 중심으로 고도의 고객 참여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쉽게 납득할 수 없던 NFT의 가격은 역시 교환 가치가 아니라 욕망을 채우는 사용 가치에 가까웠다. 나아가 너도나도 ‘브랜딩’을 외치는 시대, 희소와 독점에 열광하는 소비의 트렌드에도 순순히 부응한다.
얼마 전 만난 예술가 L은 NFT를 카드 패에 섞인 ‘조커’나 ‘에이스’에 비유했다. 조커나 에이스가 필요한 상황에서 그 가치가 높아진다는 설명이었다. 조커나 에이스의 표면적 이미지가 가치와 직결된다기보다는 그것이 안전한지 여부와 어떤 맥락에서 해당 패를 들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정말, 관건은 게임 규칙을 어떻게 만드는지가 아닐까. 대부분 창작물의 저작권은 창작자가 오롯이 갖지 못하는 실정이다. 원본 판매 이후 발생하는 거래에서 생겨나는 이익도 창작자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NFT가 창작자 개개인의 독자적 화폐로서 기능하고, 자율적으로 수요 공급을 결정하면서 로열티를 누리고, 그 화폐의 가치는 작품의 가치와 비례한다면 그 게임은 이론상으로는 더없이 공정해 보인다. 다만 현실은 언제나 이론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장밋빛 약속에 쉽게 넘어갈 수 없을 뿐이다. NFT 지지자들은 투명성과 개방성을 자랑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토대로 더 많은 혁신과 자유, 기회의 평등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회의주의자들은 아직 저작권과 소유권의 경계를 판단하는 법적, 제도적 근거가 부족한 데다 미심쩍은 투기 세력의 횡행이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전례 없는 신종 자산 혹은 거래 방식 앞에서 혼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축적된 데이터와 가능성을 검토한 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런데 복합적 ‘가치’를 말하면서 한쪽으로 편향된 건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는 있다.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산업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부를 통해 창조되는 제도들은 그 사회가 스스로의 탐욕과 속물성을 비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문화는 자신을 먹여주는 손을 깨무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NFT가 경제적 수단 이상의 문화적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힘으로 작동하려면 언젠가는 그들을 먹여주는 손을 꽉 깨물어야 할 것이다. _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INTERVIEW | 미스터 미상이 그리는 신세계
미스터 미상 작가는 NFT 아트를 통해 자신만의 세상과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



미스터 미상 작가의 ‘Supersize Them’.

미스터 미상을 NFT 작가라 말해보면 어떨까? 맞는 말이다. 지금 나를 소개해야 한다면 ‘NFT 작품을 하는 작가’라고 말할 것이다.
NFT를 처음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지난해 1월에 시작했는데, 국내 작가 중에서는 빠른 편이다. 아는 작가의 추천으로 시작했다.
디지털 오리지널 작품을 만드는 작가라는 점이 NFT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나? 작품을 어떻게 선보이고 활용할지 늘 고민이었다. 출력도 전시도 해봤지만, 물성이 있는 작품에는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 전시가 끝나면 그대로 버리기도 했다. NFT는 디지털 원본이 오리지널인 세계라는 점에서도, 심지어 그게 돈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 시작했다.
첫 작품은 3월 2일 ‘오드 드림’을 14.7이더(약 2681만 원)에 팔았다. 처음 작품이 팔렸을 때 어땠나? 계획한 것을 실행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Modern Life is Rubish’ 시리즈의 경우, NFT를 하기로 마음먹은 뒤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형태다.
최근 ‘고스트 프로젝트’를 개최했다. PFP(Picture for Profile, SNS 프로필로 활용할 수 있는 NFT) 프로젝트인데, 각종 SNS 플랫폼에서 인증을 통해 NFT를 PFP로 설정하는 개념이다. 여기에 마이티라는 앱으로 페이스 트래킹 기술을 더해 유저의 표정과 움직임 등을 따라 할 수 있게 해 각자의 프로필 이미지를 완성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로 지금까지 발표한 내 NFT 작품들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작가로서 물성을 띠는 이미지보다, 디지털 오리지널 작품을 활용해 온라인에서 세계관을 만든다는 면에서 NFT가 잘 맞는 것 같다. 맞다. 작가로서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세계관을 만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고스트 프로젝트’가 재미있다. PFP 프로젝트니까, 프로필 이미지라는 퍼블릭 도메인이고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최초 생산한 원본은 구매자가 갖고 있지 않나. 어쩌면 작품 소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팔린 작품은 손바뀜(재판매)이 있는 편인가? 작품의 성격에 따라 다른데, 하나뿐인 작품이나 비싼 그림은 손바뀜이 거의 없다. 투자 관점은 잘 모른다. NFT 거래를 많이 해보지 않았다.
현재 미술계에서 NFT를 보는 시선은 어떤 것 같나? 미술계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잘 모르지만, 부정적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어쨌든 미술 시장을 즐길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난 거니까.
계획이 있다면? 아직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작업을 해야겠다는 계획은 있다. 지금은 ‘고스트 프로젝트’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드는 데, 즐기면서 하려고 한다.

 

에디터 양보연(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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