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으로 터트리는 오로라의 순간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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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04

색으로 터트리는 오로라의 순간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하태임 작가의 개인전 을 연다.

1973년 고(故) 하인두 화백과 류민자 화백의 장녀로 태어났다. 1994년 프랑스 디종 국립미술학교, 1998년 프랑스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해 201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나아트센터·갤러리조은·쉐마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치렀고, KIAF와 아트부산·화랑미술제 등 다수의 그룹전 및 기획전에 참여했다.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모나코 현대미술관, 두산그룹 등에서 그녀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위쪽 Un Passage No.211026, 120×160cm, Acrylic on Canvas, 2021
아래왼쪽 Un Passage No.211047, 140×140cm, Acrylic on Canvas, 2021
아래오른쪽 Un Passage No.214062, 100×100cm, Acrylic on Canvas, 2021

지난겨울 [아트나우]와 인터뷰한 뒤 1년 만에 인사드립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팬데믹으로 우울하기도 하지만, 작가로선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작업을 깊이 있게 고찰하고, 내면을 탐구하는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과거 교수직을 겸할 때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우선이라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그러나 이젠 집에 작업실을 꾸렸고, 아이들도 무럭무럭 자라 엄마의 우선순위가 그림 그리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해줍니다. 저만의 시간을 온전히 가질 수 있어 작가로서 황금기에 도달하지 않았나 싶어요.

작가님의 이름을 들으면 캔버스 위 컬러풀한 색띠가 떠오릅니다. 한데 처음부터 추상 작업을 하신 건 아니더라고요. 1995년 첫 개인전에선 표현주의 화풍을 보여주셨어요. 언어의 소통 문제를 주제로 문자나 기호를 화폭에 담기도 했고요. 그러다 이것들을 지워가며 색면이나 색띠가 등장했고, 추상 작업으로 방향이 틀어졌죠. 어떤 점에서 추상 작업에 끌렸나요? 추상 작품이 거울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작가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렇죠. 추상 작품은 관람자의 경험과 마음 상태에 따라 다양한 감상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것이 제겐 감상의 방향을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자유로움이 제가 생각하는 예술을 풀어가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고요. 또 말씀하신 것처럼 문자나 기호를 덮은 작업을 하며 컬러에 주목하게 됐는데, 무궁무진한 컬러의 조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습니다. 같은 옐로라도 주변에 어떤 컬러가 있는지, 어떤 구성과 형태로 화면에 놓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으로 다가오더군요. 추상 작업에 몰두한 지 꽤 오래됐지만, 컬러에 대한 탐구는 여전히 흥미롭습니다.

2010년 이전에는 여러 종류의 추상 작업을 전개하셨잖아요. 짓이겨 뭉갠 붓질이 돋보이는 ‘문(Une Porte)’ 시리즈, 색줄 스트라이프로 구성한 ‘인상(Une Impression)’ 시리즈가 그렇죠. 현재는 색띠가 춤을 추는 ‘통로(Un Passage)’ 시리즈만 작업하는데, 여러 형상 중 색띠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몸통을 컴퍼스 축처럼 고정하고 팔을 뻗어 선 그리기를 반복하며 색띠를 만듭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묵묵히, 수행자처럼요. 제겐 질서 혹은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행위로 다가왔습니다. 스스로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고, 이것이 제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투명한 색띠가 중첩되며 나타나는 특유의 색감과 인상은 저조차 완벽하게 예상할 수 없는데, 이런 점이 특별하다고 생각했고요. 한데 예전 작업을 말씀하시니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문’ 시리즈는 잭슨 폴록처럼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쾌감이 이루 말할 수 없죠. 컬러 배열을 통해 나타나는 인상을 탐구한 ‘인상’ 시리즈도 재미있게 작업하던 기억이 납니다.

‘통로’ 시리즈는 볼수록 조형적으로 정제된, 완성된 느낌이 듭니다. 색띠의 조합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염두에 두시는지요? 흔히 드로잉을 많이 해야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 습작은 이전 작업이에요. 예전에 하지 못한 것 혹은 작업하며 발견한 것이 머릿속에 남아 자연스럽게 현재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색띠 하나의 오묘한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붓질해야 하는데, 한 번 붓질하면 물감이 마르는 데 시간이 걸리기에 10개 정도 작품을 뉘여놓고 돌아가며 작업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동시에 작업하면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같은 시간대에 만드는 작품은 상호 보완적이고,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추상 작업은 구상 작업보다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언제 작품이 완성됐다고 느끼나요? 느낌이 오는 순간이 있죠.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근 작업은 예전과 비교해 색띠를 덜 올리는 편이에요. 사용하는 컬러 수도 줄었고요. 많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득한 것 같습니다. 작업을 지속하니 마음속에도 색띠가 쌓이면서 작업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어요.

이전 인터뷰에서 “컬러는 심리적 상태를 있는 그대로 천명해주는 하나의 심상 언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시기에 따라 선호하는 컬러도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가장 관심이 가는 컬러는 무엇인가요? 지난해 여름 개인전을 열 때는 핑크에 푹 빠져 있었죠. 핑크만의 화해와 너그러움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최근에는 그린에 눈길이 갑니다. 긴 겨울을 이겨내고 움트는 새싹이 연상되는 때 묻지 않은 컬러가 위안을 주거든요. 이번 신작을 비롯해 그린으로 진검 승부를 펼쳐보려 합니다.





Un Passage No.212003, 130×160cm, Acrylic on Canvas, 2021

색띠라는 틀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도 인상적으로 느껴집니다. 색띠를 캔버스 한쪽에 치우쳐 배치하거나, 아예 캔버스를 세워서 그려 물감이 흘러내리는 현상을 살리기도 하셨죠. 지난여름 개인전 [하태임: 마음의 정원에 핀 꽃]에선 스테인드글라스를 재료로 한 작업을 최초로 선보이셨고요. 새로운 시도를 가능케 하는 영감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고민해요. 작가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거예요. 그러기 위해 새롭고 좋은 것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크고 작은 경험이 개인의 필터를 거쳐 유니크한 작품으로 만들어지니까요. 최근엔 사춘기인 아들과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면서 힙합을 즐겨 듣습니다. 잘 모르는 장르지만, 호소하는 것이 일반 가요보다 한층 예술적으로 느껴집니다. 또 요즘은 어렵지만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많이 다니고요.

방금 말씀하신 부분은 이번 개인전과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캐나다에서 오로라를 본 경험이 이번 개인전에 녹아 있다고요. 2019년 가을 노블레스 컬렉션 공간을 보고 이곳에서 전시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다음 날 오로라를 보러 캐나다로 여행을 떠났죠. 귀국 후 전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는데, 오로라를 본 환상적 경험을 작품으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종합예술인 오페라 같은 인공의 것도 제게 많은 영감을 주지만,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아름다움과 스케일은 가히 압도적입니다.

실제로 본 오로라는 어땠나요? 오로라를 보려면 행운이 필요해요. 여러 자연 조건이 맞아야 나타나거든요. 나흘간 새벽마다 하늘을 올려다본 끝에 마침내 만났습니다. 오로라는 컬러가 다양한데, 전 그린만 봤어요. 희귀하다고 알려진 핑크는 보지 못했죠. 그래도 좋았습니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신작은 그린·핑크·퍼플이 주조를 이루는데요, 핑크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오로라를 보러 가는 여정의 설렘과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오로라에 대한 제 경험과 인상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봐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전시를 본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요? 오로라를 찾아 나서며 파랑새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우리 모두는 파랑새를 찾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제 작품이 그 과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 펼쳐볼 수 있는 지도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좋은 전시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노블레스 컬렉션 전시 후 재미있는 계획이 있다면 귀띔해주세요. 오는 12월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아버지인 고(故) 하인두 화백과 처음으로 2인전을 엽니다. 오래전부터 준비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연되면서 포기할 뻔했는데, 다행히 전시를 개최할 수 있어 기쁩니다. 또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당장 다음 목적지는 미국 데스밸리입니다. 미래에는 조금 삭막한 작품을 보여드릴 수도 있겠네요.(웃음)





왼쪽 Un Passage No.217011, ø120cm, Acrylic on Canvas, 2021 오른쪽 Un Passage No.214071, 100×100cm, Acrylic on Canvas, 2021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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