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편지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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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7

젊은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편지

신진 조각가 X를 중심으로 미술평론가 임근준이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담았다.

그간 강희안 (1417~1464)의 그림으로 잘못 알려진 ‘고사관수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019년 10월 재개관한 뉴욕 현대미술관의 소장품 전시 중 407번 방인 <프랭크 오하라, 점심시간 시인>의 전경.





프랭크 오하라와 발레리노 빈센트 워런.





Paul Signac, Opus 217. Against the Enamel of a Background Rhythmic with Beats and Angles, Tones, and Tints, Portrait of M. Felix Feneon in 1890, Oil on Canvas, 73.5×92.4cm, 1890, Gift of Mr. and Mrs. David Rockefeller, 1991 @Courtesy of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신진 조각가 X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습니다. 저는 그의 순수한 면모와 사물의 본질을 바로 알아채는 눈에 호감을 느꼈어요. 아직 제대로 된 작업을 전개하지는 못하고 있고 또 앞으로 작업을 가로지르는 유기적 질서로 구현되는 의사-자연적 세계를 창출해내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아무튼 그의 성장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어째서인지 약간은 (양)아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래서 조건 없는 애정을 야금야금 쏟아보기로 작정했죠. 가급적 존대하며 친구로 지내는 모양새지만, 아무튼 평론가로서 신진 미술가를 만나고 작업 세계의 성장을 자극하고 기대하는 그런 관계는 아닙니다. 물론 그가 자신의 삶에서 특별한 존재의 의의를 찾으면 기쁘겠어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자신의 꿈과 이상으로 타인의 삶에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된다면 정말로 자랑스럽겠죠. 하지만 그게 꼭 예술가가 되는 길을 통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명의 청년에게 투사하게 된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의 산물일지도 모르겠네요.
미술가이자 디자이너로서 활동을 중단하고 연구자로서 삶을 살기 시작한 이래 저는 Y 씨를 비롯해 수많은 작가를 만났습니다. 동년배 미술인뿐 아니라, 미술대학 재학생과 전후 청년 세대인 원로들을 비롯해 이미 은퇴한 1910년대생 모던보이, 모던걸까지 다양한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또 나눌 수 있었죠. 한데 시간이 흐르고 성과가 조금씩 축적되면서 저의 직업적 정체성도 변하게 됐습니다. 현장 평론가라는 정체성에 미술사학자로서의 레이어가 중첩되면서 점차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따라서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좋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게는 언제나 여러 가능성 가운데 최선의 것만을 보고 거기에 희망을 건다는 문제점이 있었고(어쩌면 어려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속에 성장한 탓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건 늘 추가적인 곤경을 만들어왔습니다.
어떤 신진 작가를 만나 그의 과거와 현재 작업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미래를 다각도로 시뮬레이션해볼 때마다 거의 언제나 작가 개인의 삶의 안녕보다는 작업 세계의 성장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제 글은 대개 그러한 시뮬레이션과 가치 판단의 일부를 담고 있죠. 그러한 사고방식은 작가의 자율성과 작업의 자율성이 충돌할 때 결국엔 예술을 위해 자기 자신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구식 믿음에 기반을 둔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의 삶을 보면서 점점 기준이 강퍅해지고 기대치는 높아졌지만, 또 그런 만큼 보통 사람들의 가치관에서 차차 멀어졌을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제 평문을 바탕으로 성장을 모색하기는커녕 허명을 쌓고 안주하는 청년 작가들을 보게 됐습니다. 그때마다 누구보다 Y 씨가 먼저 그걸 알아보고 실망감과 약간의 분노를 표하곤 했죠. “감당할 수 없는 글을 써준 정우 씨가 잘못했다, 정우 씨의 책임이 크다”라는 말도 늘 잊지 않았습니다. Y 씨는 “정우 씨의 비평을 ‘먹고 체한 사람’이 많다”라고도 했습니다. 행간의 의미도 파악하지 못하고 맥락까지 오독해 평문이 그린 작업 세계가 정말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사람이 망가지고 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의 1886년 초판본.





1979년 스튜디오 54에서 앤디 워홀과 함께한 트루먼 커포티. 커포티는 젊은 시절의 워홀에게 롤모델이기도 했다.





Paul Cézanne, Mont Sainte-Vicoire, Watercolor and Pencil on Paper, 42.5×54.2cm, 1902~1906, Gift of Mr. and Mrs. David Rockefeller, 1991 @Courtesy of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청년 시절에 저는 평론가와 작가는 기본적으로 ‘창조적 길항 관계’여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실제 작업과 작가의 망상과 평론가의 평문은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유의미한 각도로 상호 간의 접촉면을 타고 흐르며, 끝없이 데굴데굴 구르며 어디론가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확신이 스러진 자리에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라는 관수노인(觀水老人) 혹은 송하관수(松下觀水)의 헛헛한 깨달음이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평론가와 미술가의 아름다운 이인삼각 전진 질주의 사례를 살펴보면, 대개 그 끝은 그리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인 듯합니다. 젊어서는 몰랐던 혹은 알 필요가 없었던, 혹은 알아도 무시할 수 있었던 부분이죠. 더글러스 크림프와 신디 셔먼, 프랭크 오하라와 그레이스 하티건,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헬렌 프랑켄탈러, 기욤 아폴리네르와 파블로 피카소의 경우 모두 각기 중대한 문제로 크고 작은 파국을 맞았습니다. 이상적 협업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요? 하지만 가장 슬픈 파국을 맞은 건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이겠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시작된 사랑에 가까운 우정의 관계는 졸라가 1886년 인상파 화가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쓴 소설 <작품(L’Œuvre)>을 발표했을 때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죠. 소설의 주인공 클로드는 세잔만을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니고 마네 등의 사례까지 포괄해 창조한 인물이지만, 아무튼 세잔은 자신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를 실패자로 묘사했다는 사실에 분노했습니다. 1902년 졸라가 의문의 가스중독 사고로 급사했을 때에도 세잔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죠. 1906년 비를 맞으며 무리하게 작업한 세잔은 귀갓길에 쓰러진 며칠 뒤 폐렴으로 졸라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들의 관계를 곱씹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과연 소중한 벗과 절교해야 할 만큼 예술과 자존심이 중요한 것일까요?
저도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이 글과 소설을 쓰고 있으니 <작품>을 발표한 뒤 미술평론가로서 위상을 상실하다시피 한 에밀 졸라처럼 궁지에 몰리게 될까요? 그의 사례는 훗날 트루먼 커포티에 의해 재현되기도 했습니다. 상류사회의 천박한 면모를 다룬 소설 <응답된 기도(Answered Prayers)>를 쓰고 판권을 판매해 수익을 올리려는 과정에서 그는 ‘이너서클의 적’으로 낙인찍히고 뜻밖의 몰락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소설은 미완성으로 남았고, 그의 사후에야 <응답된 기도: 미완의 소설(Answered Prayers: The Unfinished Novel)>(1986/1987)로 출간됐습니다.
조각가 청년 X는 예술가로 무사히 성장할 수 있을까요? 주변 사람들에게 “양아들 삼았으니 있는 힘껏 밀어주고자 한다”고 농반진반으로 말하곤 합니다만, 사실 평론가가 밀어주면 결국 사달이 나고 마니 정말로 그렇게 할 턱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조각가의 양안 시각을 전제로 한 시각적 촉각성의 조소 작업이 갖는 중요성을 하루빨리 깨닫기를, 그러한 개안을 바탕으로 유의미한 작업의 연속을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사실 일전에 비 오는 날 굳이 친구의 작업을 돕고 있다는 그를 찾아가 테이트 미술관의 전시 도록 <로댕의 제작(Making of Rodin)>을 선물로 건넨 것도 어서 시각적 촉각성의 조각이 갖는 의미를 파악하라는 기대 투사 행위였습니다만, 그게 옆에서 재촉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겠죠. 그래서 뉴욕 현대미술관의 전시 도록 <세잔: 드로잉(Cézanne: Drawing)>도 두 권을 주문하려다가 참았어요.





Augueste Rodin, Study for the Thinker, 1881 @Courtesy of the Musée Rodin





매스와 볼륨, 밀도의 정의와 관계. 조소 전공자라 해도 이 용어의 정의를 바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Jeff Koons, Liberty Bell, Bronze, Wood, Wrought Iron, Cast Iron, Steel, Polychrome, 2006~2014

XYZ 축의 순수 매스(pure mass(reinen masse)) 공간에서 형태를 제외한 나머지를 시뮬레이션하고 그를 덜어내는 방식으로 구현하는 조각은, 그리고 순수 매스 공간에서 형태를 시뮬레이션하고 볼륨을 채워가는 방식으로 구현하는 소조는 공히 일안원근법적인 것이지만 이를 분명히 인식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미술 전공자들도 회화의 순수 평면(pure surface(reinen fläche))과 소실점을 통해서만 일안원근법을 사고하기 때문에 조각의 일안원근법과 그에 저항하는 양안 시각의 소조를 이해하고 있는 조소인을 만나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순수 매스의 XYZ 축을 활용한 시뮬레이션의 조각은 이미 미켈란젤로가 시도한 일이죠. 왁스 모델을 만들어 XYZ 축을 돌려가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의 해상도를 높이고, 그걸로 대리석 조각을 만들어 인류 1등 자리를 차지했으니까요. 또 그러한 방법은 바사리가 <뛰어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생애(Le Vite de' piú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d architettori)>(1550)에 잘 기록해놓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메타 사고를 전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조각의 인식론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일천한 편입니다. 사실 일안원근법적 구현의 조각은 이제 3D 조각 로봇으로 할 수 있죠.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 ‘We Don’t Need Another Michelangelo’: In Italy, It’s Robots’ Turn to Sculpt’에서도 잘 소개했듯이 디테일만 사람이 손보면 되는 단계입니다.
회화적 회화에 상응하는 조각적 조각의 새로운 성립에 치중해야 하는 시기입니다만, 그와는 별개로 ‘확장된 사진으로서의 조각’을 시도하는 사람도 나와야 하겠습니다. 3D 스캔 정보와 이를 바탕으로 한 3D 렌더링의 구현은 새로운 종류의 사진술입니다. 동일한 3D 정보의 다양한 출력과 조작을 통해 조각 출력물의 확장된 사진으로서의 성격을 규명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오늘날 동영상, 3D 스캔과 출력 모두 새로운 차원에서 사진술과 중첩되고 있어요. 분명히 근미래에 동영상의 존재 의의도,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바탕으로 출력한 3D 오브제의 존재 의의도, 그와 연동되는 사진술의 문화적 존재 방식도 모두 큰 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X는 이렇듯 중차대한 변화의 시대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또 그는 더글러스 크림프, 프랭크 오하라, 에밀 졸라와 같은 평론가를 만나게 될까요? 그는 미지의 벗들을 위한 연구 대상이자 아폴로 혹은 뮤즈가 될 수 있을까요? 나는 그의 인생이 지속 가능한 불꽃으로 타오르길 기대합니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저는 다음의 시구를 즐겨 인용했습니다.
뜨락의 작은 나무는 하늘을 찌르기 소망하고 바위 밑으로 흐르는 작은 샘물은 큰 바다에 이르기를 뜻하네 하지만 오늘의 작은 나무는 하늘을 찌르길 원하지 않고, 오늘의 작은 샘물은 옹달샘에 그치기를 바랍니다. 누구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텅 빈 하늘과 탁해져만 가는 바다를 생각하면 가슴에서 잠시 열불이 치솟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건강 회복을 기원하며, 총총. - 임근준(이정우) 드림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임근준(미술・디자인 역사/이론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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