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90'S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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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31

응답하라 90'S

요즘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구축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1990년대생 작가 14인의 작품 세계를 그린다.

노두용 1992 Dooyong Ro
노두용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작가? 전시 기획자? 뭐라 불러도 좋을 듯하지만, 왠지 요즘엔 전시 기획자에 조금 더 가까운 듯하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전시 공간 ‘실린더’를 운영하는 그는 원래 이곳을 자신의 작업실이자 전시장으로 만들 계획이었다고 한다. 공사 중 예상치 못한 차질이 생기며 3개월가량 오픈이 지연됐는데, 이때 문제가 된 부분을 직접 손으로 고치면서 공간에 대한 묘한 애착이 싹텄다고. “제 못난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 전 거치는 마감 과정과 유사한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공간이 노두용의 시간을 오롯이 담고 있듯이 이곳이 단순한 작업실이 아닌 전시 공간으로서 누군가의 작품을 담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그렇게 2020년 11월 이원우 작가의 [AI vs AI]전을 시작으로 벌써 여덟 차례 전시를 치르며 노두용은 두 가지 확실한 실린더의 역할을 짚어냈다. 바로 전시를 받쳐주는 최적의 지지대이자 비정형적 이야기를 담는 장소라는 점이다. 마치 무균실처럼 흠집 없이 깨끗한 상태의 공간을 유지하는 것은 실린더의 디폴트값이다. 여기에 물리적 현상이나 경험, 혹은 기억과 같이 무형의 것을 혼합하는 내용을 담은 전시를 지향한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이렇듯 바쁘게 전시를 기획하는 노두용이 작가로서 역할을 게을리하는 것은 아니다. 2019년 가상 보이 그룹 프로젝트 ‘LITMIS’를 선보인 그는 현재 시퀄 제작을 고민하고 있다고. 공간 운영보다 조금 더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니, 작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모습을 조만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은희 1990 Eunhee Lee
이은희는 오늘날의 기술 환경과 개인 그리고 이미지의 관계를 관찰하며 사회적 이슈와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에 관해 탐구하는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아직까지는 미술과 무빙 이미지라는 영역에 머물러 있지만, “좀 더 속 시원한 방법을 찾는다면 언제든지 이 경로를 탈주할 준비를 하는 요즘”이라는 작가의 입장을 감안하면 그녀를 단지 ‘영상’이라는 매체에만 가둘 수는 없을 것 같다. 2016년 [Have been Here]를 필두로 [Contrast of Yours](2017), [회생 비용](2020), [디딤기와 흔듦기](2021) 등 네 번의 개인전을 거치며 작가는 꾸준히 이미지, 테크놀로지, 신체와 노동이라는 굵직한 줄기를 더듬어왔다. 일례로 싱글 채널 영상 ‘세 가지 벨트’(2018)는 각각 다른 분야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현장을 담은 영상을 마치 컴퓨터 메모리카드 내부처럼 구성한 화면에 배치해 자동화와 첨단화의 이면에서 육체를 움직이는 인간의 노동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간의 작업을 촉발한 계기는 기술 사회에서 발견하는 불합리에 대한 거부반응이었다. 특정 사건과 현상이 일어난 이유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민하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보는 과정 자체가 곧 작업 과정이다. 이은희의 작업은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한들 테크놀로지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여전히 인류의 문제를 답습하며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오류와 결함은 결국 인간의 문제와 별개가 아님을 꼬집는다. 작가는 최근 ‘플랫폼 자본주의’처럼 노동환경이 동시대 기술과 접목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적 현상, 인간의 몸을 향한 트랜스-휴먼적 열망에 대한 문제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정유진 1995 Eugene Jung
정유진의 작품을 처음 만난 건 2021년 초 시청각랩에서 고바야시 다이요 작가와 함께한 2인전 [해류병]에서다.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설치 작품 ‘Funeral of Eugeene95’s Macbook Pro’로 변신시켰는데, 제목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이는 그녀가 오랫동안 사용한 노트북과 데이터에 대한 일종의 장례식이자 애도의 장소였다. 이 전시는 2019년 일본 도쿄에 교환학생으로 가며 고바야시 작가와 맺은 우정에서 비롯했다. 재난, 재앙, 환경문제 등 디스토피아적 주제를 주로 다루는 정유진은 자신의 작업이 유년 시절 즐겨 읽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만화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은 지금 역시 재난의 시대죠. 그동안 재난에 대한 거대한 설치 작업을 해왔는데, 전시가 온라인이나 영상으로 대체되면서 큰 공간을 차지하는 입체 작업이 어떠한 맥락과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어요. 물리적 한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풀고 싶었죠.” 작가는 결국 현실 세계의 부피와 무게를 온라인으로 완전히 대체할 방법이 있을지 반문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힘든 상황에서 그녀에게 고무적으로 다가온 부분도 있었다. “어쩌면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예술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이러한 상황이 오니 예술은 보다 가치 있고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며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존재라는 점을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진지한 주제를 다루지만, 정유진은 조금 힘을 풀고 작업하려고 노력한다. “블랙코미디적 시각으로 현실을 비추고자 한다”는 그녀는 오히려 가볍게 소비되는 과장된 이미지들이 작가에 의해 다시 조악한 방식으로 입체화될 때, 그러나 전혀 현실의 무게감과 연결되지 않을 때처럼 즐겁지만은 않고 또 웃어도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닌 다소 애매한 위치를 살펴본다.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스스로 즐겁고 납득이 가는 작업을 한다는 그녀는 관람객이 자신의 ‘세계관’에 공감하고 마치 즐거운 여행길에 오른 듯 상상하며 전시를 찬찬히 즐기기를 소망한다.





현정윤 1990 Jungyoon Hyen
한국 현대미술 신에 관심을 두고 관찰해온 사람이라면, 현정윤이라는 이름이 눈에 익을지 모르겠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9월 22일까지 진행하는 <젊은 모색 2021>전과 작년 봄 송은아트큐브에서 선보인 <울며 수영하기>전은 그녀의 화법을 밝히는 자리였다.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와 그것이 개인이나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설치 작업으로 가시화하는 현정윤은 “개인으로서의 자신과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창작의 동력으로 삼는다. 거처를 옮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휘말리는 복잡다단한 이해관계 속에서 사람은 최소한의 방어기제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상황과 현상을 ‘이해’하고자 애쓴다. 그리고 그 이해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흔적을 예술가라면 작품으로 남길 수 있다. 가령 현정윤이 ‘,babe,’(2018)에서 발화한 ‘No Worry’는 순진한 낙천성의 발로라기보다는 내 힘으론 이도 저도 못하는 환경에 처했을 때 찾아오는 현자 타임의 역설에 가까울 것이다. 수경을 썼는데도 물인지 눈물인지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혹은 눈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 차라리 수영을 하는 상황을 동시에 상정한 ‘울며 수영하기’(2020)도 우리가 처한 난감한 상황을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하는 세계의 디렉터다. 조각을 배우로 내세워 그들을 특정한 상황에 처하게 할 수 있다. 같은 공간에 놓인 조각들이 존재하는 상태나 태도, 그 조각들이 그리는 공동체의 모습은 현재 사회구조와 시스템 속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자들의 양태와 그 관계를 투영한다. 한 걸음 물러나 조각들을 바라보면서 관람객은 기시감을 느끼거나 미처 실감하지 못한 감각을 깨울 수도 있다. 여기서 ‘조각’이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바꿔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점에서 현정윤은 보편타당성을 확보하지만, 자신의 작업을 “일종의 저항”이라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 기세는 젊디젊다.





김대운 1992 Dan Kim
‘직관성’은 흙을 주무르는 김대운의 작업을 관통하는 언어다. 점토와 세라믹의 세계에 빠져든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직관성에 있다. “직관적이고 확실하게 순간의 제스처를 담아낼 수 있는 재료가 바로 점토예요. 비록 여전히 세라믹을 공예의 영역으로 구분하긴 하지만, 그래서 저는 더더욱 점토 자체를 재료로서 표현하고, 기존 공예의 문법을 벗어나 거칠고 찢어발겨진 작품을 만들면서 재료가 품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제 작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지난봄 라라앤에서 열린 단체전 <사람 모양 조각>에서 그는 눈에 띄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김대운의 작품에선 돼지와 꽃같이 양면성을 드러내는 도상이 두드러진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은유로 표현한 이야기와 그 작업의 형태를 일치시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점토를 주무르기 전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더욱 길다는 김대운은 직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모습을 통해 메시지를 던진다. “얘들아, 이거 한번 봐봐.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결국 작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소화해낸 주제를 다시 자신만의 언어로 꺼내놓는 것. “젠더, 평등, 인권, 다양성, 하위문화 등에 관심이 있어요. 저 스스로 비주류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이러한 다양성이나 비주류성이 인정받는 모양새잖아요. 언젠가 주류를 전복하는 사건을 만든다면 정말 신날 것 같은데요!” 그렇게 어찌 보면 미술이란 매체에서도 주류가 아니라 여기는 세라믹을 통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김대운은 이미 메인스트림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게 아닐까?





황예지 1993 Yezoi Hwang
황예지는 “사진을 통해 시간을 유의미하게 잘 잡아두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시간을 잡아둘 수 있기에 사진이나 미술이 큰 힘을 갖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즐겨 찍고 사소한 편지나 메모도 버리지 않는 수집과 기록의 유전자를 가진 부모님 밑에서 자란 성장 배경 덕분에 자연스럽게 시작한 사진은 그녀를 세상에 ‘작가’라는 이름으로 소개할 수 있게 해줬다. 2019년 낙원상가에 위치한 d/p에서 치른 첫 번째 개인전 [마고]는 여성과 사랑에 대한 다층적 해석으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혀, 눈, 가슴, 얼굴 등 여성의 몸을 몸 그 자체로 보여준 사진은 많은 이들의 눈과 마음에 가 닿았다. 계원예술대학교 사진예술과 졸업 전시를 위해 엄마와 언니를 찍은 사진을 모은 책 [절기]부터 황예지는 렌즈 앞 피사체를 직시하는 법을 연마했다. 가족이나 초상 사진처럼 개인의 역사에서 울림을 느낀다는 작가는 인물을 찍을 때 자신의 갈망이 드러날지 모를, 도달하고 싶은 지점을 설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녀는 꾸준히 사진과 글을 오가며 자신이 처한 상황, 내면의 상처, 소란과 고요를 그저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솔직함에 이끌린 사람들은 느린 템포로 자신을 돌아보고 현재를 곱씹으며 성장해가는 작가의 여정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황예지가 지금 가장 찍고 싶은 대상은 누구일까? “작업을 하면서 ‘좋아하는 것에서 오히려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까운 것을 못 보고 놓치고, 자꾸 먼 산을 보는 것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요즘은 가까운 것을 바라보는, 애정의 시선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꾸준히 찍던 것들을 찍고 싶어요.”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재능보다 막강하다”던 이슬아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 황예지의 이미지는 얼마나 막강해지려나.





박관우 1990 Kwanwoo Park
박관우의 작품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가장 인간적인 특성/자질이라고 할 만한 것은 무엇인가?” “자/타의 사이에 놓인 피아 식별의 불변하는 경계란 어떤 것인가?” 아주 오래전부터 예술이 근본적으로 품은 물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을 선택함에 있어 그의 작업은 ‘요즘 예술’의 향방과 결을 같이한다. 인공지능이라는 화두에 익숙해질수록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은 더 까다로워진다. 경계가 희미하기에 더 많은 예술가가 그 주제에 매료되고 도전한다. 가령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뒤섞여 1시간 동안 열심히 춤을 췄다고 치자. 서로는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과연 ‘안드로이드는 춤추고 싶은 기분을 느끼는가?’(2019) 그럼 인간은?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가? 만약 인간보다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느낌을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아득한 곤란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이처럼 박관우의 물음은 인간과 기계 중 우위를 판가름하는 담판을 짓자는 도발이 아니라 훨씬 더 입체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의 다채로운 매체 실험 중에서도 ‘퍼포먼스’라는 형식은 단연 눈에 띈다. 작가에게 퍼포먼스는 “살아 있는 장면”이다. 관람객이 작품을 창작자의 생각이나 삶이 묻어 있는 어떤 대상물로 여기기보다 “그들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끼길 바라기 때문에 그는 설계 단계부터 그들을 장면의 중요한 일부로 포함시킨다. 박관우가 현재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는 “타자와의 조우와 공생을 주제로 한 전시”라든가 “삶과 죽음에 대한 문명의 궁극적 약속에 대한 대형 설치 작업” 또는 “오직 ‘조건’으로만 존재하며, ‘구전’의 방식으로만 전시되는 실험 전시”를 아우른다. 과연 이런 개념을 어떻게 구현할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지만, 우리가 그 속에서 또 한 번 인간이라는 자각과 환상 사이를 고민하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이다 1993 Iida Choi
최이다는 예술을 “몰라도 좋은 것”이라고 했다. 작업을 이해하지 못해도 애정을 갖고 좋아할 수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꼭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일까? 이런 중의적 표현은 현재 그녀가 주력하고 있는 영상 매체를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바로 ‘만화경’처럼 말이다. 영상을 이루는 이미지, 텍스트, 소리 등 하나씩 따로 놓고 살펴봐도 재미있는 것을 한데 뭉쳐놓으니 더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그녀다. 사실 최이다는 상업 영화와 비상업 영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알쏭달쏭함이 좋다”라고 말하는 작가는 경계를 무조건 없애거나 지울 필요는 없다고 한다. 이것이 영화인지, 현대미술인지 가늠하려 섬세히 작품을 본다면 오히려 영상물을 통해 더욱더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픽션과 논픽션을 절묘하게 넘나드는 스토리텔링도 한몫한다. 잔인한 현실이 허구의 세상에서 현실보다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픽션’이라는 안전장치를 통해 차분하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답 없음’이 자신의 작업 전반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공통점이라고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작가는 자신이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 물음표를 던지고, 그 물음표를 우회적으로 돌려 작품을 감상하는 이에게도 함께 생각해볼 것을 권유한다. 어릴 적에는 특정한 공기나 온도, 소리를 접하면 유체이탈을 하듯 이 세상이 실재가 아닌 것처럼 느끼곤 했다는 그녀는 그간 글에서 그림으로 또 영상으로 옮겨가며 자신에게 잘 맞는 언어를 찾으려 부단히 애써왔다.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사소한 감각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하는 최이다의 다음 작품은 우리에게 또 어떤 알쏭달쏭함을 남길까?





장진승 1991 Jinseung Jang
미디어 아티스트 장진승의 포트폴리오에는 4개의 카테고리가 있다. ‘Art Work’, ‘Graphic’, ‘Sound’, ‘Exhibition & Performance’. 이들은 각각 그의 활동 반경을 일컫는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짓기 힘든 그를 너무 섣불리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수식해버린 것은 아닌지 겸연쩍기도 하다. 작품 구상을 시작하면서 완결된 상태를 정해놓지 않고 진행 과정에서 적절한 형태와 매체를 찾아가는 작업 방식은 유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작가로서의 행보와도 닮았다. 2017년 공개한 미디어 작품 ‘Face de-Perception’은 장진승의 현재적 키워드인 ‘미래, 인간, 데이터’를 솎아내기까지 기틀이 됐다. 카메라 렌즈에 담긴 사람들의 얼굴을 흑백 데이터로 1차 저장하고, 단순한 수학적 연산을 통해 그 얼굴을 점 데이터로, 이어서 소리 정보로 옮기는 작품이다. 전기적 신호를 화면에 표시해주는 장치 ‘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를 거쳐 소리가 또 한 번 변환되는데, 이 과정에서 수집한 결과물은 패턴화된 시각 정보로 가공한 것이다. 복잡한 듯하지만 결국 얼굴을 구성하는 시각적 요소들이 어쩌면 편견이나 차별처럼 인지적으로 왜곡된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그것을 소거해가며 데이터라는 건조한 방식으로 치환하는 시도를 작품을 통해 보여줬다. 이를 확장해 개인전 [Oligopticon](2020)에서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 자체와 그것이 순환하는 과정을 재해석하는 ‘데이터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을 위한 실험에 도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장진승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기계를 개입시켜 상호작용의 방식을 바꾼다. 그렇게 추출한 데이터를 아카이브화하는 시간이 쌓인 후에는 과연 그의 유토피아적 상상이 실현될 수 있을지, 나아가 그러한 방식으로 인간인 우리의 정서적 약점이나 불완전성을 해소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프로젝트에 매진하고 있다.





최하늘 1991 Haneyl Choi
최하늘의 작품을 본 후 조각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최근 들어 필연적으로 특정한 장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설치미술에 익숙해지면서 오브제를 ‘설치’의 일부로 보는 관성적 시각이 생겼기 때문이다. 조각이야말로 본질적으로 공간의 맥락이나 에너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물질 그 자체의 특징이 그게 놓인 공간보다 먼저라는 점을 잊고 있었던 셈이다. 조각은 스스로 드러내고 표현하고 발언한다. 최하늘의 조각은 ‘요즘 관객’이고, ‘대학원생’이나 ‘회사원 최 대리’, ‘나’ 혹은 ‘너’이기도 하다. 대화나 장면, 풍경도 조각이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질감과 형태가 병치되는 전시장에서 조각품 하나하나는 제 몫의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한다. 종종 미디어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작가는 작품 옆에 서서 “조각이 무너지고 망가지고 고장 나는 일련의 사건을 기대하는 드라마 퀸”을 자처한다. 자신이 만들었지만,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각을 좋아한다는 최하늘은 요즘 뼈와 근육, 장기 등 몸의 움직임에 관심이 많다. 고민하는 것은 매끈한 감각에 관해서다. 부지런히 전시장을 찾아다니며 “젊은 작가들의 요상한 시도를 보는 것”도 즐긴다. 그렇다면 아티스트로서 최하늘이 품은 과업은 무엇일까? “소박한 과업은 어디 외딴곳에서 개인전을 여는 거요. 이를테면 바다 위 유람선에서, 달에서, 가상공간에서…. 말하고 보니 소박한 과업은 아닌 것 같네요.” 그것 말고 아주 거대한 과업도 있다는데, 나중을 기약할 뿐, 그는 끝내 말을 아꼈다. 앞으로도 최하늘의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동훈 1991 Donghoon Rhee
조각이 춤도 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이동훈 작가가 갤러리에스피에서 연 개인전 [조각이 춤도 추네요]에서 선보인 최근 작품을 보면 단번에 이해가 된다. 멈춘 사물의 특정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조각이라고 생각해온 이라면 그의 작업에서 시간의 흐름과 움직임, 즉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각 매체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회화를 전공한 작가는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던 중 조각으로 넘어왔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지극히 경험적으로 ‘조각하기’와 ‘그림 그리기’를 반복해 시도하는 작업”이라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설명을 갈음한 작가는 현재 말 그대로 조각을 먼저 만들고, 여기서 다시 영감을 받은 회화 작품을 함께 보여준다. 나무조각을 주로 하는 그는 톱으로 표면을 잘라낸 후 폴리싱 작업을 따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칠고 투박한 표면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긁듯이 바른 물감 색과 어우러져 더욱 역동적인 느낌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회화를 전공한 작가가 어떻게 조각 작품으로 전시를 하는 걸까? “처음엔 제가 그린 회화 작품에 어울리는 화려한 액자를 직접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무를 만지고 입체적으로 어떤 상을 구현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스며들었죠.” 많은 작가가 매체를 한정하지 않고 장르의 경계를 오간다지만, 이동훈은 “필요에 의해 활동을 확장한다”고 말한다. 조각하고 여기서 영감을 받아 다시 그림을 그리며 작가는 입체적 사고를 촉진하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2차원 평면 작업의 영감을 받는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 이동훈은 현재 목조각뿐 아니라 다른 재료에도 관심을 보인다. 나무를 만지며 조각의 가능성을 가늠해본 작가가 앞으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면 곧 전해질 이동훈의 전시 소식을 놓치지 말자.





정이지 1994 Yiji Jeong
자신이 하는 일을 기꺼이 “마법 같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이지의 그림에서는 전통적 초상화의 엄숙함 대신 산뜻함이 묻어난다. 유화지만 가볍고 부담스럽지 않은 질감이다. 청춘 영화의 스틸 컷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영화의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듯이 관람객은 화폭의 인물에서 쉽사리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그들이 사는 세계도 우리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주변인을 모델로 삼는다. 조명이나 구도, 표정이나 포즈, 소품의 배치 등이 모종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회화적 순간’이 찾아올 때 평범한 인물은 캔버스로 옮겨지며 특별함을 획득한다. 책과 커피잔, 참외나 치즈케이크처럼 인물이 아닌 정물을 옮긴 장면에서도 굳이 담지 않은 인기척이 느껴진다. 개인적 애정과 친밀한 관찰이 납작한 평면에 정서적 레이어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림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았을 때 긴 시간을 들여 찍은 다큐멘터리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작가 노트의 구절처럼 정이지가 대상을 보는 시선은 더없이 진득하다. 훗날 장면의 주인조차 기억과 감정을 분리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어떤 이들은 그의 회화를 보며 자기 나름의 감정을 느낄 것이다. 제목을 찾아 읽을 필요 없이 캔버스를 한동안 응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분명 있을 것 같다. 도대체 뭘 어떻게 그리길래 그러는지 궁금하다면, 오는 11월 말 용산 상업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스케줄러에 미리 표시해두길. “몇 번의 휘두름으로 빛과 그늘이 생기고, 사람들이 움직이고, 표정을 바꾸는 일이 아직도 신기해요”라며 ‘그린다’는 행위의 의미를 풀어놓는 정이지의 맑은 마음이 그때까지 변치 않기를 조용히 응원할 따름이다.





현남 1990 Hyun Nahm
“우리가 살아가는 신비롭고, 난해하고, 표리부동한 세계의 본질을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조각의 언어로 명료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현남. 현재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무지개 밑동에 굴을 파다]에서 어쩌면 그가 말하는 바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가상화폐와 암호화폐. 작가는 ‘채굴’이라는 행위에 관심을 갖고 지난 3년여간 살펴봤는데, 여기서 “수수께끼 같은 난해함”으로 인해 그 형태에 대해 끊임없이 상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채굴이라는 단어에서 느낀 이미지와 감각을 직접적으로 형태화하기 위해 직접 굴을 파봐야 할 것 같은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폴리스티렌 덩어리에 구덩이를 파고, 다양한 색으로 조색한 에폭시와 다른 혼합 재료를 타설하며 일종의 ‘네거티브 캐스팅 방식’으로 조각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시의 한 구절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전시명은 이러한 작업 프로세스에서 차용한 것이다. 또 그간 현남이 보여준 ‘축경’ 작품 역시 이번 전시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작은 돌덩어리 그 자체를 하나의 풍경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는 축경에 흥미를 느꼈다. 물질의 원리를 충실히 따랐을 뿐인데 자신의 내부에 있는 퇴적, 침식, 풍화의 흔적이 그것이 속한 세계 전체를 새긴다는 점에 감동했다. 자신의 레이더망에 한 주제가 포착되면 현남은 이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결국 그는 자신이 다루는 매체를 무기 삼아 우리가 사는 세상에 부딪치며 충돌을 만들어낸다. 현남이 세상에 선보이는 작업은 그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그 주제에 뛰어들었는지, 또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부딪쳤는지 보여주는 증거물인 셈이다.





박준영 1990 Junyoung Park
‘박준영’ 혹은 ‘에리카 콕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힌트는 아라리오갤러리, 패션 브랜드 파프다. 눈치챘는가? 그렇다. 박준영은 지난 4월 삼청동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아라리오갤러리의 전시 [파프(PAF): Final Cut]에 아트 디렉터이자 작가로 참여한 인물이다. “단지 파프의 태도와 언어를 미술의 형태로 번역하는 역할을 자처했을 뿐”이라고 답한 박준영은 말 그대로 ‘메이커’다. “현대적이고 잘 훈련된 감각과 우리가 흔히 공유하는 미감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물질과 이미지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 그것이 왜 그런 모양으로 발현되는지 늘 궁금하죠. 이미지가 소비와 소유의 단계로 나아갈 때 갖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힘에 반응하며 작품도 만들고, 다른 작가들이 작업에 필요하다며 요청하는 ‘기능적 사물’도 만드는 것 아닐까요?” 이따금 한정된 공간에서 고정된 형태와 정제된 언어로 보이는 미술의 무게에 질릴 때가 있다고 말하는 박준영. ‘E15’, ‘E23’, ‘E68’ 등 그가 최근 선보이고 있는 작품은 모두 조각조각 분해가 가능하다. 완전하게 이들을 하나로 묶지 않고 해체할 여지를 남기는 것에 대해 박준영은 “형태와 과정을 컨트롤하고자 하는 강박이 있다”고 고백한다. 작업에서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은 작가적 욕망을 ‘일시적 균형’을 이루는 형태의 작업으로 귀결시키며, ‘출력한 결과물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세울 것인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박준영은 아직 미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다만 ‘작가’라는 사람은 조형적 사고를 장착한 일종의 프로그램 같다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그는 조형적 사고와 훈련된 몸을 겸비한 부지런한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아주 소박한 희망 사항을 남겼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이가진(프리랜서)
사진 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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