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몰랐던 조력자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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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10

미처 몰랐던 조력자

오는 9월 1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탄생 100주년 기념전-곽인식>은 일본을 주 무대로 활동한 곽인식을 재조명하기 위해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합심해 마련한 자리다. 그중 일본 갤러리Q의 디렉터 우에다 유조는 곽인식의 제자이자 이타미 준과 절친한 관계로 한국 미술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왔다.

1 한국과 일본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곽인식.
2 곽인식의 제자이자 이타미 준의 친구인 우에다 유조는 한국 미술을 향한 사랑이 남다르다.

당신이 함께한 <탄생 100주년 기념전-곽인식>전이 연일 호평입니다.
1985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원로 작가 곽인식 귀국전> 이후 34년 만에 열리는 곽인식의 개인전이라 감회가 더 남다르네요. 이번에는 그를 두루 살피는 동시에 중요한 시기인 1960년대 작품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실제 이 전시 담당자 중 대다수는 곽인식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저는 곽인식의 살아생전 모습이 조금이라도 더 전달될 수 있도록 협조에 힘썼습니다. 그가 일본에서 제작한 놋쇠, 유리, 창호지 작업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죠. 이번 개인전의 흥행은 곽인식을 위해 모든 이가 함께 노력해 일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곽인식 탄생 100주년이기도 합니다. 2019년에 이르러 그가 주목받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본의 미술 그룹 ‘구타이(Gutai)’, ‘모노하(Mono-ha)’ 운동 그리고 한국의 ‘단색화’같이 한국과 일본의 미술이 세계 아트 신에서 평가받기 시작한 데 그 기원이 있습니다. 곽인식은 이 모든 예술 흐름에 동참했죠. 퐁피두 센터,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릴 만큼 단색화, 모노하를 향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곽인식의 존재감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곽인식 작가를 향한 애정이 남다르세요. 실제 그의 제자였죠?
곽인식 타계(1988년 3월 3일) 직전까지, 13년간 그의 조수로서 작품 제작을 도왔죠. 지금은 큐레이터지만 당시에는 작업을하는 작가였거든요. 곽인식을 처음 만난 건 1975년 도쿄에서 열린 ‘오사카 포럼 화랑’에서입니다. 당시 저는 다마 미술대학교 학생이었는데, 학교 선배였던 작가 스즈키 요시노리(Yoshinori Suzuki)가 그를 소개해줬죠. 저와 한국 미술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습니다.

그러잖아도 한국 미술에 애정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했습니다. 특별한 사연이 있어 보여요. 1977년 가깝게 지내던 도쿄 조치 대학교 문학부 교수 조지프 러브(Joseph Love)와 프랑스 여행을 떠났어요. 당시 막 개관한 퐁피두 센터와 루브르 박물관, 오랑주리 미술관을 방문해 수업에서만 접한 서양미술을 직접 경험했죠. 처음엔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좋았는데 갑자기 의문이 생겼어요.

어떤 의문요?
서양미술은 이렇게 잘 아는 반면, 아시아 미술에 관한 지식은 제 스스로 확신할 수 없었어요. 일본 학교는 주로 서양미술사를 가르칩니다. 근대화를 추구하면서 의학, 법률, 과학, 철학, 정치도 서양 문명을 따르기 급급했죠. 이는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라 생각해요. 이 현실을 직시하자 괴로움이 몰려왔고, 한·중·일의 예술을 이해하는 게 무척 중요한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문화의 근원을 알고 있어야만 역사를 논할 수 있으니까요. 이듬해인 1978년, 혼자 무작정 한국으로 떠났어요. 인사동 근처 여관에 머물며 서울을 둘러보다 도쿄에서 알고 지낸 윤형근과 일주일간 부산, 대구, 경주, 부여를 여행했죠. 저에게는 한국과 일본을 잇는 첫 여행이었는데, 정말 완벽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탄생 100주년 기념전-곽인식> 전경.

윤형근 작가와 친분이 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글로만 접한 거장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들으니 그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재일 건축가 이타미 준 그리고 이우환 작가와도 친밀히 지내셨는데 그들과 함께 나눈 추억도 물론 있겠죠?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서 다 쓰려면 지면이 부족할 텐데요?(웃음) 우선 이우환 작가는 제 은사예요. 다마 미술대학교에 강사로 오셨을 때 제가 첫 제자였죠. 이타미 준은 같은 고향 출신이고요. 그가 열네 살 더 많은 터라 저를 동생처럼 챙겨주었죠. 정말 돈독히 지냈어요. 파리 기메 박물관과 베를린 ‘에데스 건축 포럼(Aedes Architecture Forum)’에서 열린 <이타미 준-건축전>은 제가 큐레이팅을 맡기도 했죠. 특히 기메 박물관 전시는 몇 번이나 무산될 뻔했는데, 그를 너무나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여러 차례 파리로 건너가 박물관 측을 설득하고 교섭해 개최할 수 있었어요. 아, 이타미 준과는 파리, 베네치아, 뉴욕, 베이징, 서울 등 함께 여행을 자주 다녔어요. 최고의 여행 메이트였죠. 이경성 작가는 라멘 파트너예요.(웃음) 그는 와세다 대학교 재학 시절 라멘집에 즐겨 갔다고 합니다. 작가에게는 하나의 추억거리였는데, 바쁜 일상에서 한숨 돌리는 시간으로 삼을 겸 종종 저와 함께 평범한 라멘집에 가는 걸 즐기셨죠.

곽인식 작가와 함께하셨을 때는 작업을 했다고 했는데, 지금은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학창 시절부터 소소하게 전시를 기획해왔어요. 1970년대 후반부터는 갤러리에서 공식적인 전시 기획 의뢰도 받았죠.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를 잇는 게 불가능한 시절이었기에 수입이 생기는 기획 쪽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습니다. 물론 많은 선후배를 살피고 소개하는 기획 일에도 재미를 느꼈어요. 지금은 큐레이터로서 한국뿐 아니라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 등 여러 나라의 작가와 교류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이런 점이 가장 보람차고 재미있죠.

당신이 디렉터로 있는 갤러리Q는 전수천, 육근병, 권영석 등 한국 작가를 소개하면서 한일 미술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어요. 동시대 한국 작가에게도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앞으로 한국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언해줄 수 있나요? 요즘 한국의 젊은 작가는 주로 미국과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다고 들었습니다. 글로벌한 시각을 갖는 건 좋지만, 서양미술만 접하다 보면 자국의 문화나 역사를 배울 기회가 줄어듭니다. 최근 한국의 아트 신을 살펴보면 서양과 다른 정신을 가진 작가보다 그들과 같은 정신을 지닌 작가를 호평하더군요. 서양의 마인드가 곧 국제적이라 생각하는 것 같지만, 저는 다른 정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단색화가 국제 무대에서 통하는 이유는 한국적 사고가 많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단색화의 핵심은 서양에는 없는, 한국만의 것이니까요. 곽인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고한 지 31년이 지났지만 그가 미술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큽니다. 진정한 국제적 아티스트란 죽어서도 영향을 끼치는 인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남의 것에서 영향을 받는 작가가 아닌, 다른 정신을 가지고 나아가 다른 이에게 영향을 주는 작가가 되는 걸 목표로 삼길 바랍니다.




3 곽인식, 작품 63, 유리, 72×100.5cm, 1963
4 곽인식, 작품 No.11, 돌, 점 새기기, 10×9.5×9.5cm, 1976
5 곽인식, 모던 걸, 캔버스에 유채, 92×74cm, 1939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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