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스물한 살, 이름은 이택기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FEATURE
  • 2018-08-24

나이는 스물한 살, 이름은 이택기

피아니스트 이택기는 피아노가 없는 곳에서도 피아노 생각만 한다.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어서다.

이 인터뷰는 피아노 연주에 대해서만 얘기한다. 인터뷰이 이택기가 “피아노를 치는 게 가장 즐겁고 늘 그 생각뿐”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의자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운 그와 1시간가량 피아노 얘기만 했다. 옆에 피아노는 없었지만, 사진을 찍을 때도 그는 열 손가락을 쫙쫙 펼치며 ‘피아니스트다운’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이내 평범한 21세의 얼굴로 돌아와버린 그다. 그의 생각, 하는 말과는 다르게 그는 흥미로운 인터뷰 상대다. 예를 들면 이런 말 때문이다.
“이번 질문은 생각을 더 해볼게요. 아니, 말할게요. 아니, 역시 더 생각해볼게요.” 그는 어떤 질문에도 신중을 기한다. 그런 와중에 “지난 콩쿠르 우승 상금이 얼마였어요? 그거 다 어디에 썼어요?” 같은 돌발 질문을 던지면 눈을 꾹 감고 소리 내어 웃는다. “해외 콩쿠르 상금은 보통2만 달러 정도예요. 아, 그런데 세금을 떼요. 전에 헤이스팅스 콩쿠르에서 우승해 받은 상금은 여행하는 데 거의 썼어요. 나머지는 뉴욕 생활비에 보탰고요.” 웃을 때마다 보이는 고른 치열. 웃던 입이 닫힐 때 찾아오는 총총한 눈빛. 영락없는 스물한 살.
이 정도 설명으로는 이택기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를 위해 여기 그의 몇 가지 이력을 더한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그는 1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에 그 뿌리를 둔 영국 헤이스팅스 국제 피아노협주곡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해 세계 클래식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세계 무대에 데뷔했고,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다수의 해외 무대에서 연주했다. 이외에도 영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젊은 피아니스트를 위한 국제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콩쿠르, 발티도네 국제 음악 콩쿠르, 토론토 국제 콩쿠르, 서울국제콩쿠르 등에서 좋은 성적으로 입상했다.
하지만 한때 대중의 관심 그 중심에 있었던 그가 이젠 다른 국면에 접어 들었다. 자의식이 강해지며 피아노 연주 자체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음악은 어릴 때보다 더 어려워졌다. “따로 극복하는 방법은 없어요. 그저 계속 곡을 쳐보는 거죠. 어릴 땐 잘 못 치더라도 스스로 괜찮다 되뇌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자신에게 떳떳해지고 싶어요. 제가 가진 흠을 다 없애고 싶어요.”
스스로 떳떳해지고 싶다. 흠을 전부 없애고 싶다. 이런 그의 각오는 최근 있었던 한 연주회의 일화로도 설명할 수 있겠다. 지난 6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 그는 협연자의 부상으로 갑작스레 대타로 무대에 올랐다. 그가 오케스트라에서 연락을 받은 건 공연 시작 일주일 전.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겨우 일주일 남짓이었기에 그도, 연주를 의뢰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도 마음이 조마조마한 건 매한가지. 심지어 당시 그가 연주해야 할 곡은 영화 <샤인>의 메인 테마로 유명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화려한 테크닉과 풍부한 감성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성공적으로 연주할 수 없는 마성의 곡. 하지만 그는 무대에서 보란 듯이 그 곡을 쳐내 관객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1년 2개월여 전에 마지막으로 연습하고 다시 손대지 않은 그 곡을 단 일주일 만에 완벽히 소화해냈다.
“오케스트라에서 처음 연락을 받곤 기분이 묘했어요. 하필 가장 좋아하는 곡을 연주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걸 무대에서 연주하는 건 또 다른 문제죠. 일주일 동안 거의 미쳐 살았어요. 하루에 11~12시간을 연습만 했으니까요.” 그날 그의 연주에 많은 이가 감동했다. 심지어 목프로덕션의 이샘 대표는 그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분장실까지 찾아가 즉석에서 국내 매니지먼트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샘 대표는 그날의 무대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기 안의 이야기, 자기 안의 성품을 끄집어낸 연주”라고 극찬했다.
그는 고된 연습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 또한 ‘연습’이라고 답한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200%가량 꾸준히 연습하는 게 제 일이죠. 연습은 늘 뜻대로 되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너무 좋아하니까 잡고 있는 거죠.” 그럼 이런 질문은 어떨는지? “음악은 무엇보다 즐기는 게 중요한데, 연습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면 그걸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요?” 그가 다시 신중하게 답한다. “연습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요.”
여섯 살 때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간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처음 피아노를 접하고, 열 살 무렵 스스로 장래 희망을 피아니스트로 결정,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와 예원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는 올가을 스승 로버트 맥도널드를 따라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에서 새 학기를 시작한다. “주변에서 필라델피아는 정말 차분한 도시라고 하더라고요.” 이 말의 요지는 ‘피아노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도시로 간다’는 것. “미국에 간 지 거의 6년이 됐는데 뉴욕에서만 4년을 살았어요. 그래서 뉴욕에 대해선 충분히 알고 있죠. 조금 질린 것도 있고요. 지금은 새 도시, 새 환경에 대한 기대가 커요.”
피아니스트 이택기가 당면한 과제는 “모든 클래식 작곡가를 이해하고 그들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어떤 곡이든 다 제 곡처럼요.” 그는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같은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에서 특히 장기를 발휘한다.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방식. 실제로 차갑지만 직선적인 그들의 음악을 그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러시아 작곡가들의 곡에 매력을 느끼는 건 제가 아직은 어린 나이라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정말 빠져 있어요. 아까 아이돌 노래는 안 듣느냐고 물으셨잖아요? 전 외출할 때도 피아노 연주곡만 들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곡가들의 곡이죠. 언젠가 제가 연주해야 할 곡이고요.(웃음)”
올해 남은 기간, 그는 몇 개의 연주회와 콩쿠르에 참여한다. 9월엔 영국 리즈 피아노 콩쿠르에 도전하고, 그보다 앞서 서울과 순천, 부산, 제주에서 개인 리사이틀을 소화한다. “지금은 운동으로 연주를 이어갈 수 있는 체력을 만들고 있어요. 라흐마니노프의 곡 같은 경우는 근력을 키우지 않으면 절대 끝까지 연주할 수 없거든요. 앞으로 체력을 키우고 연습량을 늘려 무대에서 후회하지 않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요.” 이제 막 앳된 티를 벗고 눈을 반짝이는 그가 앞으로 어떤 연주자가 될지 기대되지 않는가? 이택기, 그의 이름을 기억하자. 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안지섭   헤어 & 메이크업 김활란뮤제네프   의상 협찬 로로피아나(팬츠, 스니커즈) 셔츠는 본인 소장품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