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미술을 담는 또 다른 미술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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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04

미술관, 미술을 담는 또 다른 미술

‘미술관’이란 미술을 담는 건축이다. 건축 자체도 미술의 영역이므로 미술관을 종합 미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건축가가 지은 국내외의 미술관과 미술관이 된 기존 건축물을 살폈다.

1 1939년 필립 굿윈과 에드워드 더렐 스톤이 설계한 모마 건물.
2 스페인 빌바오를 세계적 예술 도시로 바꾼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도시와 미술관
‘모마(MoMA, Museum of Modern Art)’로 불리는 뉴욕 현대미술관은 그 역사만으로도 흥미롭다1.9 29년 창립 이후 줄곧 콘텐츠로 승부해온 모마는 제대로 된 건물도 없이 이곳저곳 옮겨다녔다. 뉴욕 5번가 730번지의 작은 임시 건물에서 필립 굿윈과 에드워드 더렐 스톤이 설계한 웨스트 53번가 11번지의 새 건물로 이사한 게 1939년이다. 이후 모마는 거장 필립 존슨의 설계로 1951년 같은 자리에 북측 동을 증축했고, 1964년엔 동측 동을 새로 지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작품을 감당할 수 없어 1984년 또 다른 거장 세사르 펠리의 설계로 미술관 바로 옆에 52층짜리 ‘뮤지엄 타워’를 올린다. 이후에도 이들은 혁신을 멈추지 않았고 21세기를 앞둔 1997년, 유명 건축가 12명을 모아 지명 설계 공모전을 연다. 최고의 건축가들이 참여한 경쟁의 마지막 승자는 일본 출신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 일본에선 인정받는 건축가였지만, 당시 국제 무대를 주름잡던 렘 콜하스, 베르나르 추미, 헤어초크 & 드 뫼롱 같은 건축가와 비교하면 그는 무명에 가까웠다. 당시 다니구치 요시오는 단순한 네모와 직선으로 구성된 미술관 설계안을 옻칠한 일본식 도시락 상자에 넣어 제출했다. 밥과 음식을 담는 단순한 도시락통처럼 작품을 담는 순수한 그릇으로서의 미술관을 제안한 것이다. 그릇이 튀면 음식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그의 논리는, 2004년 11월 웨스트 53번가와 54번가에 걸쳐 건물이라기보단 도시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특별하고 개방적인 미술관으로 실현되었다. 7년에 걸친 설계와 공사에 총 1조 원을 투입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모마는 다시 리모델링 중이다. 급변하는 시대에 변화를 멈추지 않는 뉴욕의 정신이 현대미술의 메카 모마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뉴욕의 또 다른 명소인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은 철강 재벌 솔로몬 구겐하임의 제안으로 만든,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이다. 이 미술관은 1943년에 착공, 무려 16년이 지난 1959년에야 완성됐다. 순백색의 말려 올라간 나사 모양 외관은 얼핏 보면 달팽이 같고, 잘 만든 백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통적 미술관의 ‘전형’으론 볼 수 없는 독특한 설계안은 당시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외부의 나선은 실내에선 완만하게 올라가는 경사로가 되고, 경사로의 중심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완전히 뚫린 개방 공간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미술관을 바깥과 안을 구분하는 하나의 껍질로 보고 벽을 따라 움직이는 전시 공간을 제안했다. 그 결과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은 준공 후 뉴욕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예술 공간으로 인정받았고, ‘구겐하임’을 예술 브랜드로서 해외에 수출까지 하게 되었다. 현재 구겐하임 분관은 여럿인데, 1979년에 설립한 이탈리아 베니스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과 1997년에 개관한 스페인 빌바오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대표적이다. 특히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디자인으로 스페인 북부의 이름 없는 도시를 단번에 세계적 명소로 만들었다. 1997년 개관 첫해에만 130만 명이 방문했고, 이후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이 빌바오를 찾는다. 이쯤 되니 가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방법, 혹은 도시를 다시 살리는 방법 중 ‘미술관’이라는 도구는 꽤 매력적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의 공간을 보고 싶다면 굳이 뉴욕까지 날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가까운 교토에 그가 설계해 2014년 준공한 근사한 미술관이 하나 있다. 교토 국립박물관 신관이다. 일본 전통 건축의 맥락을 잇는 칼날 같은 직선과 정교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이곳은 다니구치 요시오의 건축을 대표하는 작품. 설계에만 11년, 공사 기간은 5년이 걸려 16년 만에 완성했다.




모네의 ‘수련’ 연작이 전시되어 많은 관람객이 찾는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

미술관, 미술을 담는 또 다른 미술
전시작보다 더 작품 같은 미술관 하면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Msuee de l’Orangerie)이 생각난다. 오랑주리(orangerie)는 ‘오렌지 온실’이라는 의미로 루브르 궁전의 오렌지나무를 재배하는 온실로 쓰이다 1297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이곳은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수련(Nympheas)’ 연작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모네의 요청으로 만든 모네 전시실은 폭이 90m에 이르는 ‘수련’ 연작의 수평적 화폭을 관람객이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천장에서 자연광이 쏟아지는 기다란 타원형 공간으로 계획했다. 그곳에선 전시장 벽과 작품이 하나가 된 듯한 착각을 일으켜 마치 작품 속 연못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술관의 경계를 넘어 모네의 작품을 통해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 작품은 사라지게 하고 실제 정원을 불러오는 공간이랄까. 백색의 벽으로 둘러싸인 무대가 되어 관람객을 수련이 가득한 당시의 지베르니로 데려간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이 ‘수련’이라는 작품을 담기 위한 백색의 무대라면, 공간 자체를 작품으로 만든 거대한 조각 작품 같은 미술관도 있다. 파주출판단지 한 귀퉁이에 매끈하게 휘어진 콘크리트 건물 하나. 바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Mimesis Art Museum)이다. 외관은 구불구불 휘어진 콘크리트 표면으로, 내부는 천장에서 쏟아지는 백색의 산란광으로 가득한 미술관. 벽면에 걸린 작품과 홀 중간에 놓인 조각, 그것을 감싸는 균질한 빛과 면의 위용. 이것이 관람자를 위해 건축가가 제시한 미술관의 컨셉이다. 알바루 시자는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조건을 작품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계로 본다. 그의 직관은 순수한 백색의 공간을 통해 작품과 사람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일체감을 느끼도록 했다. 아름다운 내부 공간은 굳이 작품을 걸지 않아도 작품처럼 다가온다. 미술을 담는 또 다른 미술로서의 미술관이랄까. 작품보다 공간이 더 작품처럼 보이는 상황이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술관으로 한정 지어 말한다면, 공간의 기능성과 예술로서의 공간을 조금 구분해서 이해했으면 좋겠다. 우리에겐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정신적 공간도 필요하니까. 공간이 먼저 관람자의 닫힌 마음을 열고 헤아릴 수 있을 때 미술관은 단순한 건물을 넘어 스스로 예술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가 설계한 일본 데지마 소재의 데지마 미술관(Teshima Art Museum)은 공간 자체가 작품인 독특한 미술관이다. 이곳은 누구도 경험해본 적 없는 공간을 전시한다. 데지마의 언덕에 얕고 긴 이글루처럼 박힌 높이 5m, 길이 60m에 이르는 백색 콘크리트 껍질은 살짝 봉긋하게 솟은 구릉 같은 모양으로 얼핏 보면 땅 위에 맺힌 물방울 같다.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는 땅에서 솟아오른 듯 주변 산세와 어울리는 자연 곡선의 빈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구조체의 표면은 유리면처럼 맨질맨질하다. 1층짜리 콘크리트 공간 하나를 1년 동안 만들었다. 기초공사를 위해 파낸 흙으로 현재의 구릉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굳혔다. 콘크리트가 굳은 후 흙을 파내 공간을 만들었는데, 표면의 흠집을 막기 위해 일일이 손으로 흙을 파느라 그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미 미술관의 건축 과정 자체가 예술인 셈이다. 데지마 미술관의 전시물은 바닥을 ‘굴러다니는’ 물방울이지만,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이 물방울은 조연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이 물방울은 유리 같은 콘크리트 바닥을 굴러다니다 서로 만나 작은 물줄기를 이루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물방울이 다니지 않는 바닥 아무 데나 엉덩이를 깔고 앉을 수 있다. 눈을 감으면 미세한 자연의 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이마엔 선선하고 조용한 바람이 스친다. 데지마 미술관은 자연을 끌어들여 관람객의 마음을 만지고 움츠린 감각을 깨운다. 바닥에 누워 둥글게 휘어진 아름다운 천장을 바라보면 풍경도 느려진다. 이 미술관이 보여주려 한 건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일본의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가 설계한 데지마 미술관.




3 기차역을 리모델링해 만든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4 도살장이었던 건물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상하이의 1933라오창팡.

미술관, 시간을 전시하다
시간과 미술관을 연결 짓다 보니 다시 파리로 돌아가 과거 기차역이었던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할 것 같다. 오르세 미술관은 버려진 기차역을 개조한 것이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개설한 오르세 역은 1939년 철도역 영업 중단 후 꽤 오랜 시간 철거 압박을 받아왔다. 이 미술관은 역 부지의 재활용을 놓고 오랜 논쟁을 거쳐 결국 정부의 대책 마련으로 재생한 케이스다. 1900년대 초 파리시 외곽의 오스테를리츠 역과 파리의 대표적 기차역이었던 오르세 역은 철골과 석조가 융합된 당시의 구조 공법과 아치형의 천창 유리 아트리움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건축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개장 후 불과 40년 만에 급속히 발전하는 철도 기술을 감당하지 못해 역은 문을 닫고 만다. 폐쇄된 오르세 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로 쓰이기도 했고, 이후엔 영화 촬영 장소 등으로 쓰이다 호텔 건설 재개발 계획으로 역 자체가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후 오르세 역에 새 이슈가 생긴 건 1970년대 중반 조르주 퐁피두 정부가 미술관을 계획하면서다. 그 후 몇몇 정부를 거쳐 1986년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 시절 오르세 역은 마침내 미술관으로 재탄생한다.
현재 오르세 미술관은 한 해에 수백만 명이 찾는 파리의 명소다.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재생 공간의 개념을 도입한 결과 내부는 기차역 당시의 공간을 최대한 보존해 철로와 육교, 플랫폼 정도만 개축하고, 건물 구조체와 태양광이 쏟아지는 천장, 석조 장식 등 주요부는 그대로 살려 20세기 초의 시공간을 남겨두었다. 그런 이유로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100년 전의 주철 장식과 탈색된 벽면을 통해 축적된 시간이 오감을 통해 전해진다. 오르세 미술관 이후 근대화 시대의 산업시설이나 공공시설을 예술 공간으로 바꾸는 시도는 보편적 트렌드가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과거의 공간에 작품을 걸어두는 것만으론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란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 역시 관건은 그 공간의 히스토리인 듯.
상하이엔 ‘1933라오창팡’이란 독특한 건축물이 있다. 라오창팡이란 ‘생을 마감하는 무대’라는 의미. 원래 이곳은 수백 마리의 가축이 매일 생을 마감하는 도살장이었다. 여기서 도축된 가축을 1차 저장하고, 그중 일부를 2차 가공 공장으로 보내거나 식당으로 공급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접어들어 많은 도축 시설이 시 외곽으로 이전, 한때 제약 공장으로 쓰이더니 2000년대엔 ‘철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2006년 시 당국은 건물을 우수 역사 건축물로 지정했다. 그리고 지금 이 공간은 아트 숍과 전시장, 소극장, 레스토랑, 공방, 스튜디오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 시설로 사용하고 있다. 말하자면 ‘도살과 문화’의 만남, ‘가축과 예술’의 만남이다. 물론 이 기묘한 결합은 그로테스크한 매력을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1933라오창팡 내부를 산책하다 보면 미로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가축의 환영이 보이는 것 같다. 동물의 창자나 근육처럼 어지럽게 통로가 얽힌 내부를 헤매며 예술 작품을 구경하고, 작가의 작업 풍경을 바라보고, 감각적인 현대적 공예품을 쇼핑하고, 와인을 마시고, 스테이크를 먹는다. 말하자면 이곳은 몸의 감각을 깨우는 공간, ‘육체성’에서 발아되는 게 예술임을 알려주는 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예술의 시작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느끼는 경험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5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공간사옥. 현재는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사용하고 있다.
6 수도 가압장으로 쓰이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서울 청운동의 윤동주문학관.

이와 비슷한 맥락의 건물이 서울에도 있다. 공간사옥을 리모델링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다. 이곳은 오래전 건축설계 사무소로 쓰인 공간이다. 이 건물 지하의 작은 공연장은 척박한 1970년대 군부독재 시절,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던 유서 깊은 장소다. 그래서인지 이 미술관의 내부를 연결하는 작고 낮은 공간들은 그 시절 숨죽여 지낸 진보적 예술가들과도 잘 어울린다. 또 이곳은 건축가 김수근의 뿌리 같은 건축물이기도 하다. 그가 생각한 ‘공간’은 작고 조밀한 인간적 스케일,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근원적 은신처였다. 40여 년 전, 젊은 건축가인 그는 은행에 진 빚으로 경매에 넘어간 자신의 계동 집터에 건축설계 사무소를 지었다. 경매 중인 땅에 건물을 짓다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군사정권 시절 굵직한 정부 프로젝트를 수행해 명성을 날린 그지만, 정작 자신의 공간은 좁고 어두운 동굴처럼 지었다. 그러나 그 시절 동굴 안에서 벌인 예술적 성과는 꽤 다양했다. 국내 최초의 종합예술지 <공간> 발행, 세계적 문화 콘텐츠가 된 김덕수사물놀이패의 데뷔, 공옥진의 병신춤 초연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1970년대와 2017년의 만남, 과거와 현재가 예술을 매개체로 공존하는 것에 대해 이 공간은 우리에게 잔잔한 질문을 던진다.
끝으로 해마다 이 무렵 필자가 찾는 작은 공간이 하나 있다. 서울 청운동 언덕의 윤동주문학관이다. 수도 가압장으로 쓰이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이곳엔 물탱크로 만든 우물 같은 정원이 숨어 있다. 이곳에서 보잘것없는 공간 하나가 지닌 큰 힘에 대해 생각한다. 때 묻은 콘크리트 물탱크와 그 위를 지나는 하늘과 바람을 바라보며 죽은 시인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 지난주, 그곳에 갔을 때 물탱크의 점검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던 천장의 작은 구멍으로 좁지만 강한 빛이 내부로 들어왔다. 어떤 공간은 이렇게 우리를 정신적 영역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마치 공간 자체가 예술 작품처럼 일상의 막연함에 구체성을 부여하고, 지친 열정에 불을 댕긴다. 지루하고 따분해 죽을 지경인 우리의 삶이 종종 예술이 되는 지점엔 우리를 상투적 일상의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게 하는 미술관이 있다. 미술관은 ‘미술’을 담는 또 다른 미술이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최준석(건축사사무소 NAAU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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