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Special] 이야기가 담긴 트로피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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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24

[Feature Special] 이야기가 담긴 트로피

역사와 전통이 깃든 시상식엔 그에 걸맞은 트로피가 있다. 수상의 영광을 오롯이 담은 트로피, 그중에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만 모았다.

현대 미술가 트레이시 에민이 디자인한 2015년 브릿 어워드 트로피.

트로피는 ‘적을 이긴 표지’라는 뜻의 그리스어 ‘트로파이온(tropaion)’에서 유래한 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전투에서 이기면 공로자에게 적에게서 빼앗은 갑옷, 투구, 방패 등을 나누어주었는데, 이것을 나무에 걸거나 바닥에 쌓아두던 것이 트로피의 시초다. 시간이 흘러 트로피는 스포츠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아마 스포츠 경기에선 전쟁처럼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나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18세기 영국의 앤 여왕은 승마 대회 우승자에게 술을 따라 마실 수 있는 컵 모양 트로피를 수여했는데, 이것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트로피 모양으로 정착됐다. 물론 현재에 이르러서는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개성 넘치는 트로피와 상패를 제작하고 있지만 말이다.
역사와 전통이 깃든 시상식에서는 트로피 자체가 영예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을 몇 개 추린다면 스포츠 분야에선 월드컵의 ‘FIFA컵’이 있다.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부터 1970년 멕시코 월드컵까진 승리의 여신 니케를 형상화한 ‘쥘리메컵’을 사용했지만, 세 차례 월드컵 우승을 달성한 브라질에 영구 수여하면서 1974년부터 새로운 트로피인 FIFA컵을 사용하고 있다. 18K 금과 공작석으로 만든 이 트로피는 이탈리아의 실비오 가차니가(Silvio Gazzaniga)가 디자인했으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월드컵 정신을 잘 반영했다는 점에서 호평 받고 있다. 바닥부터 나선형으로 올라오는 선은 세계를 제패하는 힘을, 조각 전체에 흐르는 생동감은 대회의 활기를, 선수 2명이 등을 맞대고 두 손으로 세계를 떠받든 모습은 승리의 순간을 상징한다고 한다.






1 2014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독일팀이 ‘FIFA컵’을 들고 자축하고 있다.   2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케이트 블란쳇.

영화 분야에선 아카데미 시상식의 ‘오스카 트로피’를 빼놓을 수 없다. 9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시상식의 사람 형상 트로피는 로스앤젤레스 출신 조각가 조지 스탠리(George Stanley)가 디자인했다. 청동으로 형태를 만들고 니켈과 구리로 코팅해 내구성을 높인 다음, 24K 금으로 도금해 완성한다. 흥미로운 건 트로피의 이름이 원래는 ‘오스카’가 아니었다는 사실. 1931년 아카데미협회에서 일하던 사서 마거릿 헤릭(Margaret Herrick)이 트로피를 보고 “어머, 우리 오스카 삼촌이랑 꼭 닮았네!”라고 외쳤는데, 그 에피소드가 신문에 소개되고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상의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한편, 1977년 시작한 브릿 어워드는 영국 음반산업협회가 매년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음악인을 선정하는 대중음악 시상식으로, 영국을 상징하는 여신 브리타니아(Britannia)를 형상화한 트로피로 유명하다. 특히 2011년부터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자하 하디드 등 유명 디자이너와 미술가의 터치를 더한 개성 넘치는 트로피를 선보이고 있다. 트로피 자체가 매년 화제를 낳으면서 상의 명성도 한층 높아졌다는 후문.
물론 한국에도 각 분야에서 시상식의 의미를 드높이는 특별한 트로피가 존재한다. 우선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대산문학상은 우리 문학의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 제정한 종합 문학상이다. 시, 소설, 희곡, 평론, 번역 총 다섯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며 수상자에겐 상금 5000만 원과 함께 양화선 조각가가 제작한 트로피 ‘산수기행(山水紀行)–소나무’를 수여한다. 책에서 소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트로피는 그 독특한 개성으로 대산문학상의 브랜드를 공고히 한다는 평. 별도로 대산문화재단에선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산대학문학상도 운영하는데, 상금과 함께 8박9일의 해외 문학 기행이라는 특전을 부여한다.
이인성미술상은 대구 출신의 천재 화가 이인성의 예술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 대구광역시가 주관했지만, 2014년부턴 대구미술관이 운영을 담당하며 새롭게 개편했다. 11인의 추천위원단이 수상 후보자 5인을 선정하고, 심사위원단 5인의 심사를 거쳐 최종 1인을 결정하는 방식. 수상자에겐 창작 활동 지원과 함께 대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해주고, 계원예술대학교 리빙디자인과 교수 하지훈이 직접 제작한 트로피를 수여한다. 하지훈 교수는 트로피에 대해 “목재에 고온의 알루미늄을 부어, 그것이 타들어간 것 같은 거친 효과를 냈다”며 “이인성 작가의 짧고 굵은 예술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3 제17회 이인성미술상에 선정된 홍순명 작가가 트로피를 받는 모습.    4 스타일러스가 제작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   5 골든디스크 시상식의 ‘생황 부는 여인상’ 트로피.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현대미술상인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은 창의적이고 역량 있는 젊은 작가의 발굴을 목적으로 한다. 2000년 제정 이래 선출 방법이나 혜택 등이 조금씩 바뀌어왔지만, 2015년부터는 수상자 선정 후 이듬해에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는 급변하는 국내 미술계에서 작가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수상자에겐 이듬해 개인전 오프닝에서 에르메스 매장에서 실제로 판매하는 눈 모양의 돋보기를 상패로 수여 한다. 물론 판매 상품을 그대로 주는 것은 아니고, 테두리에 미술상의 해당 연도를 새겨 특별함을 더한다.
스포츠 분야에도 종목마다 수많은 트로피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눈에 띄는 건 국내 프로야구의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가 아닐까 싶다. 위로 퍼져 올라가는 형태는 야구 경기장의 부채꼴 라인을 표현한 것이고, 야구 경기장을 에워싼 10개의 판은 한국 프로야구 10개 구단을 상징한다. 트로피의 대미를 장식하는 건 중앙에 솟은 야구공. 보석 브랜드 스타일러스의 장인들이 1000개가 넘는 큐빅을 하나하나 채운 작품이다.
‘한국의 그래미 어워드’로 불리는 골든디스크 시상식은 1986년 이래 국내 최고 음악상으로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여타 가요계 시상식과 달리 음반(음원) 판매량을 가장 중요한 심사 기준으로 삼아 언더그라운드 가수까지 아우를 수 있는 것이 특징. 이 시상식을 상징하는 ‘생황 부는 여인상’은 한국조각가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김수현 조각가가 제작한 것이다. 한국 범종 외관에 새긴 비천상을 발전시킨 형태로, 승천하는 여인의 실루엣은 시상식의 높은 품격을 나타내고, 여인이 받쳐 든 생황은 우리 고유의 관악기로 한국 대중 예술의 발전이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청룡영화상은 지난 1963년 조선일보가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제정한 상이다. 1974년 한국 영화 산업의 침체로 중단했다가 1990년 계승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해 개봉한 한국 영화를 대상으로 영화 전문가와 네티즌 투표를 종합해 후보자(작)를 선정하며, 심사 진행 전 과정을 시상식 후 공개해 가장 공정하면서도 상을 잘 주는 시상식으로 꼽힌다. 현재의 청룡영화상 트로피는 1990년 청룡영화상이 부활하며 다시 디자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트로피에 디자인한 여인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인이 들고 있는 원판에 새긴 용은 청룡을 상징한다.
하나하나의 트로피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단순히 무게가 많이 나가서가 아니라, 해당 시상식의 권위와 영광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시상식을 볼 때 수상자는 물론 그들이 들고 있는 트로피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트로피에 담긴 사연과 속뜻이 시상식을 한층 풍성하고 즐겁게 해줄 테니.

 

에디터 피처팀
사진 김도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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