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락가의 미식 기행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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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20

식도락가의 미식 기행

‘맛’에 일가견 있는 식도락가 4인이 전하는 세계 각 도시의 미식 탐방기.

마르셰 데 앙팡 루주.
데 가토 에 뒤 팽.
르 프레 카틀랑.
라망시크레 & 이타닉가든 손종원 헤드 셰프.
라 매뉴팩처 카비아리. © Bernhard Winkelmann
르 프레 카틀랑.


 프랑스 미식의 본질 
by 손종원(라망시크레 & 이타닉가든 헤드 셰프)

파리는 잘 알려진 미식 도시라 조금은 빤하게 여길 수 있지만, 그렇기에 다채로운 종류의 맛집이 많다. 작은 동네 빵집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티시에의 부티크 베이커리, 하루 종일 로스트 치킨을 굽는 식료품점, 거장 셰프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미식 스폿이 어우러져 있다.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맛의 근본’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생각하는데, 프렌치 퀴진의 본질을 느끼기엔 파리만 한 곳이 없는 듯하다. 이를 체감하기 좋은 스폿으로는 먼저 ‘시장’을 언급하고 싶다. 다양한 브랜드의 숍이 밀집한 마레 지구에는 ‘마르셰 데 앙팡 루주(Marche des Enfants Rouges)’라는 멋진 시장이 있다. 싱그러운 과일과 채소, 싱싱한 해산물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 프랑스식으로 해석한 모로코 음식이나 버거 등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는 야외 푸드코트도 있다. 현지인이 많이 찾는 곳이라 휴일 오후에 가면 왁자지껄한 로컬 바이브를 경험할 수 있다. 르 봉 마르셰 백화점 근처에 위치한 페이스트리 셰프 클레르 다몽(Claire Damon)의 ‘데 가토 에 뒤 팽(Des Gâteaux et du Pain)’도 빼놓을 수 없다. 재료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페이스트리와 가토, 빵이 가득한 곳이다. 그중에서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입안 가득 사과와 레몬맛이 느껴지는 ‘쇼송오폼므(Chausson aux Pommes)’가 일품. 이곳의 유일한 단점은 맛있는 게 너무 많은데, 다 먹어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옛 귀족의 사냥터였던 파리 서쪽 공원 불로뉴 숲 중앙에 자리한 레스토랑 ‘르 프레 카틀랑(Le Pre Catelan)’은 맛과 향을 고루 갖춘 음식을 선보인다.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현대 프랑스 퀴진의 정점을 보여주는 곳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 피에르 이브 로숑(Pierre-Yves Rochon)의 모던하고 우아한 공간에서 색다른 미식 경험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세계적 캐비아 하우스의 생산 공장을 리뉴얼한 ‘라 매뉴팩처 카비아리 (La Manufacture Kaviari)’에서는 3대 진미 중 하나인 캐비아를 보고, 듣고, 맛볼 수 있다. 미국, 덴마크 셰프들과 함께 이곳에 들러 캐비아를 즐긴 경험은 파리에서의 특별한 추억이 됐다. 캐비아 마니아라면 꼭 한번 방문해볼 것을 추천한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 보칼리노 이반 스파다로 헤드 셰프.
에트나 로소.
에트나 로소.
세테 피우.
라 프루아.
파스티체리아 콰란타.
라 프루아.


 카타니아의 숨은 보석 
by 이반 스파다로(Ivan Spadaro, 포시즌스 호텔 서울 보칼리노 헤드 셰프)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시칠리아섬에 위치한 항구도시 카타니아는 진정한 맛의 고장으로 꼽힌다. 지중해성기후에 기반한 풍부한 식재료,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조리법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요리를 선보이는 로컬 식당이 가득하다. 평소 숨은 맛집이나 이색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며 미식 트렌드를 파악하고 색다른 맛을 즐기는 편인데, 카타니아는 들를 때마다 이런 호기심과 취향을 충족시킨다. ‘에트나 로소(Etna Rosso)’ 레스토랑은 클래식하고 정교한 레시피를 바탕으로 전통 요리를 선보인다. 특유의 우아한 분위기와 섬세한 서비스, 다양한 와인 라인업을 갖춰 이탤리언 퀴진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로컬 식재료를 활용해 전통 레시피대로 요리한 문어 샐러드는 상큼하게 입맛을 돋우는데, 와인과 페어링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시칠리아 퀴진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라 프루아(La Prua)’ 레스토랑이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전통적인 맛을 현대적 기술과 결합해 훌륭한 맛을 창조하는 곳으로, 통창으로 아름다운 바다를 조망하며 신선한 해산물과 식재료로 만든 이탤리언 요리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정석 레시피에 이곳만의 비법을 살짝 가미한 오징어 먹물 파스타는 반드시 맛볼 것.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싶을 때는 ‘파스티체리아 콰란타(Pasticceria Quaranta)’를 찾는다. 아늑하고 따뜻한 이 카페에서는 이탈리아 각 지역에서 생산한 로컬 원두로 내린 신선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 페이스트리 메뉴와 디저트도 제공하는데, 모두 지역 재료를 사용해 직접 만든다. 간단한 식사로 적합한 연어 아란치니와 이곳만의 방식으로 블렌딩한 커피가 시그너처 메뉴. 한편 나폴리탄 스트리트 푸드를 대표하는 레스토랑 ‘세테 피우(Sette Piu)’에서는 이탈리아 피자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다. 밝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와 다양한 종류의 피자가 기분 좋은 추억을 선사하는 곳. 대표 메뉴는 ‘에트나 화산의 보석’이라는 뜻을 지닌 ‘오로 델레트나(Oro Dell'etna)’ 피자. 신선한 토마토소스와 버펄로 모차렐라, 다진 피스타치오를 포함한 여러 재료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환상적 맛을 끌어올린다.







티포 00.
푸드 스타일리스트 밀리.
티포 00.
엠블라.
엠블라.
만체.
만제. © Daisie Bindoff


 모던 오스트레일리안 퀴진 
by 밀리(푸드 스타일리스트)

호주 멜버른은 ‘맛의 고향’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약 6년 동안 요리 학교에 다니고 요리사, 푸드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등으로 일하며 많은 미식을 경험했다. 지금도 매년 휴가 때면 멜버른을 찾는데 좋은 추억과 오랜 친구들이 있기도 하지만, 이곳만의 미식 문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기 때문이다. 호주는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고 이민자가 많은 나라인 만큼 한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비해 오래된 전통 음식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천혜의 자연환경이 선사하는 다채로운 식재료와 여러 문화권의 레시피가 공존하는 독특한 환경으로 ‘모던 오스트레일리안 퀴진’이라는 고유의 미식 문화가 생겨났다. 핵심은 ‘오픈 마인드’. 호주, 특히 멜버른의 셰프들은 로컬 식재료로 건강하고 맛있으면서도 색다른 음식을 만드는 것을 즐기며, 현지인도 새로운 음식을 늘 열린 마음으로 대한다. 최근 가장 핫한 와인 바 중 한 곳인 ‘엠블라(Embla)’는 와인 리스트도 훌륭하지만, 깔끔하면서 새로운 맛과 식감을 살린 메뉴가 일품이다. 형태는 매우 단순한데, 먹어보면 그 안에 풍부함이 가득하다. 익숙한 오이 피클과 비슷한 듯하지만 감칠맛이 뛰어난 ‘사우어드 큐컴버(Soured Cucumber)’가 대표적. 한편 이탈리아 이민자가 많이 사는 멜버른에는 유명한 이탤리언 레스토랑도 여럿 있다. 그중 한 곳이자 나의 오랜 단골 식당이기도 한 ‘일 솔리토 포스토(Il Solito Posto)’에서는 따뜻한 집밥이 연상되는 메뉴를 맛볼 수 있다. 그중 가장 애정하는 메뉴는 송아지 고기로 만든 라구 소스 파스타 ‘베알 라구(Veal Ragu)’. 푹 끓인 소스의 진한 맛이 긴 여운을 남긴다. ‘티포 00(Tipo 00)’ 역시 이탈리아를 기반으로 하지만, 호주 스타일로 재해석한 퓨전 형태의 다양한 음식을 선보인다. 직접 만든 생면을 사용하는 파스타 바로, 날로 인기가 많아져 요즘은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모리셔스 음식점 ‘만체(Manze)’도 특별하다. 향신료가 폭발하는 듯한 이국적이고 강렬한 맛이 펼쳐진다. 매달, 혹은 분기별로 메뉴가 바뀌지만 해산물 요리는 한결같이 훌륭한 맛을 자랑한다. 공간이 아담한 만큼 예약은 필수.







뚜르 디 메디치 서현정 대표.
앙투안즈 레스토랑.
앙투안즈 레스토랑.
짐빔 양조장.
커맨더스 팰리스.
커맨더스 팰리스.
커맨더스 팰리스. © John Caire


 미국 남부의 역사적인 맛 
by 서현정(뚜르 디 메디치 대표)

‘미국의 맛’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햄버거, 스테이크 등을 연상하거나 미식과는 거리가 먼 나라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은 알고 보면 매우 풍부하면서 다채로운 음식 문화를 지닌 나라다. 세계 최강국으로서 문화적 파워, 많은 민족이 모여 형성된 멜팅 팟으로서 역사 등을 기반으로 한 미식 세계가 넓은 대륙 곳곳에 스며 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지역은 미국 남부다. 켄터키에서 시작해 루이지애나에서 마무리되는 루트를 따라가다 보면 버번위스키, 크리올 푸드 등 지역색이 강한 술과 음식을 풍성하게 접하게 된다.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이색 메뉴가 많아 진정한 미국의 맛을 마주할 수 있다. 먼저 들를 곳은 켄터키 루이빌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소도시 ‘바즈타운(Bardstown)’. 버번위스키의 고향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짐 빔(Jim Beam)의 양조장을 비롯해 바턴 1792 디스틸러리, 윌레트 디스틸러리 등 양조장이 밀집해 있다. 각 양조장에서는 공간 투어와 위스키 테이스팅이 가능하고, 레스토랑을 갖춘 경우 식사도 할 수 있다. 짐 빔의 경우 환상적 바비큐 카트를 갖춰 위스키와 함께 즐기기 좋다. 이주 역사를 대변하는 ‘크리올’과 ‘케이준’ 요리를 맛보기에는 미국 내에서 유일하게 영어와 함께 프랑스어를 공식어로 쓰는 혼종의 도시 뉴올리언스가 적합하다. ‘커맨더스 팰리스(Commander’s Palace)’는 크리올 요리 전문 레스토랑으로, 1893년 오픈해 지금까지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적 터치를 가미한 크리올 메뉴를 선보이며,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7회나 수상했다. 1840년에 문을 연 ‘앙투안즈 레스토랑(Antoine’s Restaurant)’에서도 크리올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오이스터 록펠러(Oyster Rockefeller), 에그 살두(Eggs Sardou) 같은 유명 음식이 탄생한 곳으로,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 같은 금주법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이 외에도 미국 남부 지역의 특징적 식문화인 바비큐, 흔히 알려진 KFC와 또 다른 차원의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등은 로컬 식당 어디에서든 수준급 이상의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김혜원(haew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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