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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30

바흐의 시간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5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선다.

© Markus Jans

얼마 전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을 발매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연주자님은 2018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앨범으로 클래식계에 이름을 알렸고, 이후 드뷔시와 라모, 모차르트와 동시대 작곡가를 조명한 앨범을 선보였죠. 여러 작곡가의 음악 세계를 충분히 탐구한 후 바흐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벌써 그리고 다시 바흐였나요? 어릴 땐 바흐를 좋아하긴 해도 사랑하는 정도는 아니었어요. 선생님들은 균형 잡힌 연주, 사운드와 리듬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르치기 위해 바흐의 작품을 연주하게 했죠. 그러다 열두 살 무렵 에드윈 피셔가 연주한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의 오래된 음반을 들었는데, 다단조의 프렐류드와 푸가가 큰 감동으로 다가오더군요. 바흐가 위대한 음악적 설계자이자 음악의 시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르던 앵무새가 세상을 떠났을 때 평안을 찾기 위해 프렐류드와 푸가를 연주했고, 그때부터 바흐는 제 삶과 함께해왔습니다.
바흐가 남긴 많은 명곡 중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택했습니다.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연주자라면 거의 빠짐없이 이 작품을 녹음하고 공연한 것 같아요. 무엇이 이 작품을 위대하게 만드는 걸까요? 곡의 완벽한 수학적 구조일까요? 제게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역사상 최고 건반 음악입니다. 구조적이면서 철학적이고, 기교적이지만 시적이죠. 기쁨을 표현한 바로 다음 순간에 비극이 찾아오고요. 음악의 구조적 탁월함도 중요하지만, 그 구조가 펼쳐내는 드라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주자들이 계속 이 작품을 찾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는 항상 뭔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고, 각 변주는 연주자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유난히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각양각색 연주가 나오는 곡입니다. 글렌 굴드는 1955년 음반에서 기존 해석과 악보의 도돌이표를 무시하고 빠른 템포로 38분 만에 연주를 완료했고, 로절린 투렉의 연주는 느린 템포로 70여 분간 이어지죠. 연주자님은 이 곡을 어떻게 해석했나요? 굴드의 템포에 가까운 편이지만, 이 작품에 내재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악보의 모든 도돌이표를 연주합니다. 반복은 그저 똑같은 음악의 반복이 아닌, 작품 소재를 다시 정의하고 새롭게 해석할 기회라고 생각해요. 제 접근법을 하나씩 설명하긴 어려워요. 다만 이번 앨범을 스스로 발견하는 기회로 삼아 작업했습니다. 각 변주가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전체의 크고 긴 아치(arch)에 딱 들어맞길 원했죠. 때로는 이 작품이 태양계처럼 느껴져요. 아리아는 태양이자 중력의 중심으로 작용하고, 나머지 30개 변주는 우주의 조화 속에 묶인 행성이죠.





© Sebastian Madej

평소 다른 연주자의 연주를 즐겨 듣는 편인가요? 다른 연주를 듣는 것이 오히려 곡 해석에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즐겨 들어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오랜 시간 여러 번 연주되었고, 몇 가지 좋아하는 버전이 있습니다. 특히 굴드의 1959년 잘츠부르크 연주 실황이 근사하죠. 약 20년 전 발매된 머리 퍼라이아의 연주도 마음속 깊이 와닿고, 완다 란도프스카의 초기 하프시코드 녹음도 훌륭합니다. 다른 연주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내므로 해석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몇 달 전 인터뷰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해 “음악적 여정에서 내가 어디쯤 왔는지 깨닫게 해주는 이정표와 같다. 약점과 장점을 포함한 모든 것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앨범을 작업하며 느낀 점은 오는 12월 내한 공연에 어떻게 반영될까요? 지난 8월 글로벌 투어를 시작했을 때는 앨범 작업과 같은 방식의 해석으로 공연했는데, 무대에 오를수록 새로운 의견과 감정이 생기더군요. 예를 들어 고요하면서 아름다운 캐논, 9번 변주의 경우 녹음 당시엔 비교적 흘러가듯 연주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10월 말 슈투트가르트 공연 때는 좀 더 명상에 가까운 느낌으로 연주했고, 이로써 힘 있는 10번 변주에 도달했을 때 확연한 대비를 이루었죠. 무대에서 작품을 연주할수록 더욱 자유로워진달까. 한국에 도착할 때엔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 있고, 그게 정확히 무엇일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놀라운 점은, 이 곡을 그렇게 많이 연주했는데도 지치거나 충분히 연주했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다음 앨범 작업으로 염두에 두는 작품은 무엇인지, 앞으로 음악적 여정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싶은지도요. 저희 집 피아노 위에는 슈베르트, 버르토크, 스카를라티, 브람스, 베토벤, 쇼팽 등 많은 작곡가의 악보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작품을 녹음하고 싶어요. 새롭게 들려드릴 음악으로는 작곡가 존 애덤스가 저를 위해 쓰고 있는 협주곡이 있는데, 굉장히 기대됩니다. 피아니스트 유자 왕과 함께하는 듀오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고요. 다음 시즌에는 주로 슈만과 브람스 협주곡으로 공연할 것 같습니다. 준비 중인 앨범은 바흐가 아니지만, 제가 느끼기엔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이어 연주하기 알맞은 작품입니다. 할 얘기가 많지만, 서프라이즈를 위해 비밀로 남기겠습니다.(웃음)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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