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사이먼 후지와라의 세계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ARTIST&PEOPLE
  • 2023-06-08

아티스트 사이먼 후지와라의 세계

유쾌한 그림 속 묵직한 질문, 사이먼 후지와라.

사이먼 후지와라
1982년 런던 출생.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고 프랑크푸르트 예술대학 슈테델슐레 순수미술과를 졸업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종적·국가적·역사적· 문화적 가치의 모순을 재료 삼아 기술이 매개하는 이 시대에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2010년 아트 바젤 발루아즈 미술상과 프리즈 까르띠에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독일 국립미술관 신진 작가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 도쿄도 현대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Whoseum of Who>전을 위해 내한한 사이먼 후지와라.

2013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도 그렇고 작가님의 전시는 언제나 많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이번에 <Whoseum of Who>전에선 만화 캐릭터 연작 ‘Who the Baer’의 회화, 영상, 설치 등 40여 점을 선보였죠. 우선 전시의 주인공 ‘후’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여쭤야 할 것 같습니다. 팬데믹 첫 봉쇄 기간에 탄생했다고요.
지금의 모든 문제가 응축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는 그 자체로도 문제였지만,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쌓인 모든 문제를 인식하게 됐죠. 문제를 마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비관주의에 빠져 우울한 그림을 그리거나, 낙관적인 자세로 한층 밝은 작품을 만드는 것. 저는 후자를 택해 동화 같은 작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동화는 일종의 판타지지만, 실재하는 감정이나 사실을 기반으로 하거든요.
지난해에 프리즈 서울에서 만난 또 다른 작품, 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 인간으로 변신한 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부터 캐릭터 이름이 왜 후인지 궁금했어요. 추측건대 작품마다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니 누구라고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후는 레퍼런스 덩어리 혹은 인터넷에서 태어난 프랑켄슈타인입니다.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이랄까요. 덕분에 모든 인종, 성별 등 어떤 정체성이든 그에 맞춰 형태를 바꿀 수 있죠. 네이밍은 유명 만화 캐릭터 곰돌이 푸(Winnie the Pooh)의 영향을 받았어요. 곰돌이 푸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프랜차이즈 캐릭터 중 하나인데, 후 역시 푸처럼 부자가 되고 싶어 하거든요.(웃음) 또 이름에서 ‘후~’ 하고 숨을 내쉬며 릴랙스하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최근 ‘~풍(風)’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삶의 경로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뜻이 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름 하나로 여러 생각이 떠오르는 건 다분히 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 작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개념입니다. 이 세상은 논리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지만 실은 비논리투성이거든요. 시적인 것이야말로 비논리의 유일한 방어책이고요.





Who La La(Body Positive), 캔버스에 목탄, 파스텔, 125×190×2.5cm, 2023. Courtesy of the Aritst & Gallery Hyundai

전시에서 후는 피카소, 마티스, 바스키아,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서양의 주요 미술 작품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과거 작품을 소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Who the Baer’는 하나의 세계관이고, 저는 이걸 ‘후니버스(Whoniverse)’라고 부릅니다. 후니버스 속 개별 전시는 테마파크의 한 구역 같은 역할을 해요. 그 한 구역이 20세기 걸작으로 이루어진 것이고요. 당시 관점으론 전형을 타파한 이미지를 제시했지만, 어느새 우리가 지식재산권(IP)이라 부르는 것이 되어버린 작품들입니다. 마티스나 피카소는 이름만으로 브랜드가 된, 그래서 후와 같은 만화 캐릭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이번 전시에선 그들의 작품으로 새로운 대화를 끌어내고 싶었습니다. 후는 여성 모델들이 나체로 있는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거예요. 여성을 대상화하는 데 불편함을 느낄 테니까요. 대신 젠더를 가지고 장난치거나, 관람객에게 윙크하며 친근하게 다가가는 형식으로 오늘의 사유를 덧입히는 거죠.
작업에 끌어들일 20세기 걸작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요?
어떤 작품에 스며들지는 후가 결정했어요. 즉각적으로 어떤 상황이나 행동,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명화들이죠. 후는 만화 캐릭터이기에 만화적 세계를 찾고 있고, 그런 점에서 <심슨 가족> 주인공들이 미술관에 갔을 때 볼 법한 명쾌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후를 별개의 인격으로 상정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혹은 작가님의 아바타일 수도 있고요.
그보다는 철학에 가까워요. 삶은 약간의 광기 없이는 버틸 수 없고, 그래서 어느 정도 후라는 철학을 품고 지냅니다. 끔찍해서 볼 수 없는 것을 그나마 볼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심지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즐기고 있죠. 가령 힘없는 소녀가 요술봉을 한 번 휘두르면 공주로 변신하는 이야기처럼. 다만 후는 제가 창조했지만, 자체적 논리가 있어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정확히 어떻게 해석되는지도 알 길이 없고요. 그래서 이 캐릭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단순히 말하면 그저 만화 캐릭터일 뿐입니다.





왼쪽 Who’s Iconic? (Abstracted Who),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목탄, 파스텔, 연필, 120×100×2.5cm, 2023
오른쪽 <Whoseum of Who>전 전경.

팝업 스토어 ‘후티크(Whotique)’를 열어 작품 이미지를 품은 티셔츠, 모자, 러그, 포스터 등 아트 상품을 판매하셨죠. 작품이 걸린 벽을 여러 컬러로 칠하고, 바닥에는 보드라운 카펫을 깔았고요. 여러모로 방문객 친화적 연출이에요.
근래의 평평한 세상에서 미술은 다른 오락거리와 동등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그들과 경쟁할 필요는 없지만, 소중한 에너지를 써서 전시장을 찾은 이들을 위해 충분한 즐거움을 제공하고 싶어요. 물론 엔터테인먼트와 지성의 적절한 교차점을 찾는 선에서요. 또 사람은 본래 열정, 돌봄, 집착 같은 것에 반응하는 존재거든요. 긴장이 풀리면 대화가 원활해지고 무언가를 수월하게 얻어 갈 수 있죠. 제 작품 그리고 방문객 모두에게 집과 같은 편안한 공간이길 바랍니다.
1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면, 작가님은 자신의 성장 과정을 담아낸 ‘The Mirror Stage’(2009~2013), 아버지와 재회한 이야기를 담은 ‘Rehearsal for a Reunion’(2011) 등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때에 비해 근래의 작품은 자전적 성격이 현저히 줄어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무언가 진지하게 바라보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프리다 칼로를 그저 ‘원주민 혈통 작가’,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작가’로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죠. 작업 초기에 자전적 이야기를 자주 활용했지만, 스스로 퍼포먼스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했어요. 프랑코 독재 시절 스페인에서 부모님이 운영한 호텔을 소재로 만든 작품과 관련해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다음 날 “사이먼 후지와라는 스페인에서 태어난 작가”라고 나오더군요.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존재라고 느꼈죠. 아, 저는 스페인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웃음) 결국 판타지가 이기는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판타지에 가까운 작업을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죠.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사용한 메이크업 제품으로 그린 초상화 ‘Masks(Merkel)’(2015~), 안네 프랑크의 밀랍 인형이 등장하는 ‘Likeness’(2018)도 판타지가 투영된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돌이켜보면 만화처럼 단순화한 인물에게 주목한 것 같아요.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인간에서 브랜드로 변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죠. 지금 시점에서 브랜드로 존재한다는 건 슈퍼파워를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하지만 동시에 악몽과 같은 일입니다. 안네 프랑크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브랜드가 된 케이스죠. 어린아이로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나무로 만들어 그럴 수 없는 피노키오처럼, 두 세계 사이에 끼인 존재에 관심이 갑니다.





<Whoseum of Who>전 전경.

그간 한국에선 작가님을 ‘개인 혹은 집단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하는 작가’로 소개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 정도로는 작가님을 제대로 소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 소개 문구는 저라는 작가를 만화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소개도 필요한 것이, 무언가 이해하려면 실제로 볼 수 있는 형태가 필요하니까요. 다만 알려진 것을 계기로 충분히 또 자세히 작품을 감상하고 그 안에서 더 많은 의미를 발견했으면 합니다. 왜 작업하는지 생각해보면, 스스로 외부 세계를 탐구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거든요.
첫 개인전이 열린 2009년과 비교하면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죠. 그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페이스북이 처음 타임라인을 도입했을 때 사람들이 자신만의 자서전을 써 내려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토리텔링이 더욱 중요해지겠다고 느꼈고요. 다만 아시아계 혼혈, 게이라는 제 정체성을 사회에서 흥미롭게 그리고 가치 있게 여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긍정적 변화는 제가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1980년대엔 상상도 하지 못한 것들이 현실이 되었고, 그래서 동화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작가로서 최종 지향점을 물으며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당분간은 ‘Who the Baer’ 페인팅 작업을 이어가려고요. 초기 작업이 좀 더 지적이고 프로덕션이 많았다면 현재는 몸 쓰는 일이 많아졌죠. 몸의 언어의 미묘함을 느끼다 보니 몸과 마음이 좀 더 연결된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로 회귀한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런 부분을 탐구하고 싶습니다. 제 목표는 단순해요. 오래도록 작가로서 살아가는 것. 작품으로 기쁨을 주고, 그렇게 더 많은 사람을 치유하고 싶습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