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미술관 만들기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CITY NOW
  • 2022-12-22

지속 가능한 미술관 만들기

탄소 발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한 미술관의 변화들

제주도 노지에서 진행한 ‘액트제로’. © SeeDo Film, Bang & Lee Studio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전. 사진 남기용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전. 사진 남기용

먹고, 움직이고, 숨 쉬면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탄소를 내뱉는다. 미술 활동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0월 런던 디자인 뮤지엄(The Design Museum)에서 열린 [Waste Age]전은 탄소 10톤을 배출했다. 에너지 사용량을 줄였기에 이 정도지, 평소처럼 운영했다면 185톤에 육박했을 거라고 이들은 말한다(참고로 한 사람이 1년 동안 배출하는 탄소는 약 7톤이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형 전시가 막을 내리는 순간 폐기물 5톤이 버려진다고 한다. 수십 개국이 참여하는 아트 페어는 어떤가. 얼마 전 열린 ‘프리즈 서울’ 기간에 관련자를 태운 비행기가 뜨고 내린 것만 족히 100회가 넘을지도 모른다.
“오직 컬렉터만을 위해 비행기를 띄우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라는 작가 앤터니 곰리(Antony Gormley)의 말처럼,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던 일이 이제는 신중을 기해야 하는 사안이 됐다. 왜냐, 미술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움직여야 할 사회적 의무가 있으니까. 주요 아트 신으로 떠오른 서울도 응당 그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부터 서울의 몇몇 큼직한 기관은 기후 위기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운영과 전시, 크게 두 가지 방향을 향한다.
운영 면에서는 미술관을 가동하며 탄소와 쓰레기를 줄일 실질적 방법을 모색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4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미래 미술관이자 생태 미술관’을 미술관의 중장기 비전과 중점 방향으로 발표했다. 환경오염이 심각한 현시점에 미술관의 위상을 재점검하고 이를 실제 운영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꾸준히 진행한 ‘다원예술’ 프로젝트의 올해 주제도 ‘미술관-탄소-프로젝트’로 정해, 지속 가능한 미술관과 전시를 탐색했다. 미술사적 의의, 관람객 수 등 전시의 아웃풋에만 초점을 맞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까지 살피겠다는 것. 그중 일부 담론은 추후 ‘미술관-탄소-프로젝트’ 사이트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진지한 담론으로 장기적 전략을 풀어냈다면 아트 숍에서는 단기간에 할 수 있는 노력을 실천한다. 온라인 숍 ‘미술가게’에서는 판매용 도록에 비닐을 씌우지 않고 포장에 쓰는 모든 비닐을 재활용 가능한 종이 소재로 교체했다. 오프라인 아트 숍의 종이봉투는 친환경 소재로 바꿔 점진적으로 미술관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할 예정이다.
도대체 왜 전시 후 5톤에 육박하는 쓰레기가 나올까 싶겠지만, 전시장을 나눈 대다수 가벽을 폐기한다는 말을 들으면 납득할 만하다. 동선, 디스플레이, 작품 규격이 전시마다 제각각인지라 가벽은 좀처럼 재활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벽을 쓰지 않으면 걸 수 있는 작품 수가 현저히 줄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럼 퀄리티를 유지하되 쓰레기는 줄일 방법은 없을까? 최근 리움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아트스펙트럼 2022>전이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다. 전시장의 일부 가벽에 재활용할 수 있는 모듈 파티션을 사용해 폐기물량을 50% 줄인 것. 종이 브로슈어도 ‘리움 디지털 가이드’로 대체해 모바일 해설과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지난 6월 리움미술관을 관할하는 삼성문화재단이 ESG 경영 방침과 함께 3대 핵심 전략 중 하나로 탄소 배출량 감축을 꼽았으니 이들의 친환경 행보는 지속될 듯하다.





이동용, B-플렉스, 가변 설치, 혼합 재료, 2021 사진 윤수연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전은 시트지 대신 이면지를 활용해 벽면에 텍스트를 붙였다. 사진 남기용





지난해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대지의 시간>전은 폐기물을 줄이고자 가벽 설치를 최소화했다.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그간의 문법대로 전시를 통해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기관도 여럿이다. 작년 여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입구 앞에 말라 죽은 침엽수 한 그루가 덩그러니 놓였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침엽수 고사목 현상이 현실로 닥쳤다고 경고하며 시작한 전시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의 일부다. 공공 예술 프로젝트 ‘기후시민 3.5’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과 환경, 주택 건설 후 폐기물, 도시화로 삶의 터전을 잃은 새와 벌을 조명했다. 그 내용 못지않게 운영 면에서도 돋보였는데, 캡션을 비닐 시트지 대신 이면지에 프린트해 붙였고 잉크 낭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1도 인쇄와 망점 인쇄 그리고 에코 서체를 사용했다. 기후 위기라는 이슈를 전시뿐 아니라 운영에도 확대 적용해 ‘2021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브랜드 & 커뮤니케이션 부문 전시 디자인 본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트센터 나비는 더욱 기술적 관점으로 접근했다. 작년 말에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연계 문화 사업 중 하나인 프로젝트 ‘개더링 모스(Gathering Moss)’는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가 모여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방법을 논의하는 일종의 디지털 플랫폼이다. 그중 아티스트 컬렉티브 방앤리가 기획한 ‘액트제로’는 기후변화 대응 캠페인의 제0막이자 탄소 중립을 실천하는 행동이다. 프로젝트의 첫 장소로 기후변화에 민감하고 해수면 상승과 해양생태계 오염을 상징하는 제주도 노지를 택했다. 3D 프린트로 만든 건물을 해안가에 설치해 점점 차오르는 해수면 아래로 사라지는 모습을 관찰자 시점으로 보여주며, 우리가 모르는 사이 환경오염이 한순간에 모든 걸 삼켜버릴 수 있다고 조용히 경고한다.
미술관 내 탄소 발자국은 대부분 관람객이 이동하며 발생한다. 그렇다면 관람객으로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중교통으로 미술관 가기’, ‘브로슈어는 필요한 만큼만 챙기기’ 정도가 아닐까? 추운 계절 차디찬 바람을 가르며 미술관에 가는 길이 녹록지 않겠지만 한번 걸어가보자. 지구라는 무대가 없으면 예술이 무슨 소용인가. 또한 예술의 뿌리는 자연이고 고대부터 지금까지 자연은 영감의 원천이다. 자연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지금 배를 갈라버리면 무대도, 아이디어의 보고도 모두 사라질지 모른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이효정(프리랜서)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