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관념의 세계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FEATURE
  • 2022-06-01

소리, 관념의 세계

수십 년간 애청자들을 만났던 황인용을 ‘카메라타’에서 만났다.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고 가격이 아주 비싼 상표의 제품’,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 흔히 정의되는 ‘명품(名品)’의 의미다. 하지만 명품을 가장 명품답게 만드는 건 바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고 늘 처음과 똑같은 감동을 준다’는 데 있지 않을까? 1980~1990년대 TV와 라디오를 종횡무진한 아나운서계의 전설, 황인용의 목소리를 ‘명품 목소리’라 칭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경희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1966년 TBC 3기 아나운서로 입사한 그는 이후 TBC <장수만세>, KBS <행운의 스튜디오> . <연예가 중계> . <100세 퀴즈쇼>, MBC <생방송 아침이 좋다> . <세상사는 이야기>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TV에서는 노련한 진행과 언변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진가가 발휘된 건 라디오에서였다.
1975년부터 1981년까지 진행한 TBC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 외에도 TBS <황인용의 마이웨이>, KBS <황인용의 영팝스> . <안녕하세요 황인용, 강부자입니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무엇보다 그를 톱 DJ 자리에 오르게 한 건 당시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인 MBC <별이 빛나는 밤에>와 더불어 청소년 사이에 인기가 높았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 당시 라디오의 황금 시간대를 쥐고 있던 최고의 인기 DJ였던 그는 이후에도 EBS 다큐멘터리 <자본주의> 내레이션으로 2013년 한국방송대상 ‘성우·내레이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4년 고향 파주 헤이리에 음악 감상실 ‘카메라타’를 오픈한 건 아무래도 오랜 시간 음악 DJ로서 활동한 영향이 크다. 아나운서 때와 달리 팝송 DJ를 통해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끼와 소질을 발견했기 때문. 방송국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일터이다 보니 평소 가지고 있던 오디오에 대한 관심도 커졌고, ‘언젠가 음악 감상실을 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파주 헤이리에 예술마을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오랜 기간 수집한 빈티지 오디오와 1만5000여 장의 LP판이 가득한 ‘카메라타’를 열게 됐다.
2004년 조병수 건축가의 손끝에서 완성된 카메라타는 ‘16세기 피렌체에서 시인, 건축가, 미술가, 음악가 등이 모여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작은 마을’을 의미한다. 조병수 건축가는 카메라타로 2004년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을 수상했지만, 사실 카메라타가 매력적인 것은 건축물 자체가 시각적으로 강하게 부각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안에서 일어나는 경험과 사람 간의 스토리가 더 큰 건축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간 카메라타는 황인용 아나운서의 진두지휘 아래 음악 감상실 이상의 기능을 수행해왔다. 계절마다 한국페스티벌 앙상블과 정기 음악회를 열었고, 때로는 젊은 클래식 뮤지션에게 리사이틀 무대를 제공했다. 크레디아에서 발간하는 <클럽발코니>와 ‘小說, 카메라타’라는 이름으로 박찬욱 감독, 김미숙 배우 등을 초대해 음악과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며, 워너 클래식과 함께 음반 감상 시리즈인 ‘카메라타 초이스’를 진행, 문화 예술 애호가 및 대중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러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황인용 아나운서가 진행자 그리고 DJ로 활약한 덕분. 예전만큼 무대에 자주 서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음악 선곡은 직접 한다. 특별 프로그램 참여비는 따로 책정되지만, 황인용 아나운서가 선곡한 명클래식을 빈티지 스피커로 원 없이 감상하고 음료까지 마시는 데 일반 입장료 1만 원이면 충분하니 남녀노소 클래식 애호가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을까? “카메라타와 같은 공간이 있어 감사하다. 이런 감사함이 반복되니 삶이 축복으로 느껴진다. 이 감사함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카메라타를 방문하고 돌아온 한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이 문장은, 그래서 더 진심 어리게 다가온다.

길고 길었던 코로나19 시국이 마무리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이 지친 상태인데요, 지난 2년간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요? 이런 팬데믹은 저처럼 나이 많은 사람도 거의 처음 겪는 일이라 인류의 위기를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삶의 동선이 매우 좁아진 것이 달라진 점인데요, 사람이 활동 범위가 좁아지면 현명한 사람은 대개 독서 등을 통해 내면의 세계에 침잠하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경지는 오르지 못한 것 같아요. 다행히 음악 감상실을 하며 그 안에서 견딜 수 있었습니다. 늘 음악이 치유의 기능이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팬데믹을 경험하며 더욱 확신했죠.
많은 사람이 팬데믹을 겪는 과정에서 ‘코로나블루’ 같은 상실감 또한 깊어졌습니다.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죽음의 순간에 예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였어요.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죽을 때 예우를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답게 저세상으로 가는 그 예우의 형식과 절차가 굉장히 중요한데, 팬데믹은 그 형식을 송두리째 앗아갔죠. 지난 2년간 뉴스를 가급적 보지 않으려고 한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카메라타를 찾는 많은 분이 여전히 TBC, 그리고 KBS에서 라디오를 진행하던 그 시절의 ‘황인용’을 추억합니다. 이곳에서 매일같이 그 시절의 청취자와 팬들을 만나고 계신데, 어떤 기분인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추억 속에 살죠. 추억이 빈약한 사람은 노년에 쓸쓸합니다. 근데 추억이라는 것이 묘해서 상상 속 추억은 강렬하지 않아요. 물건이든 음악이든, 누군가의 목소리든 직접적인 것이 오래가죠. 카메라타를 찾는 많은 분이 “황인용 씨 목소리에는 그 시절의 내 추억이 묻어 있다”라고 말씀해주세요. 제가 사람들의 추억에 작은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직업이 참 좋았구나. 그런 직업을 가졌던 나는 행운아다’라고 생각해요.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음악 감상실 ‘카메라타’.

TBC와 KBS, TBS 등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2004년 카메라타를 시작하셨어요. 이렇게 성공할 줄 예상하셨나요? 제 직업에서 오는 프리미엄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조금 가졌지만 카메라타가 클래식 음악을 고집하다 보니 운영이 좀 걱정된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문을 열고는 카페인데 음악이 약간 강조된 공간으로, 역할을 반반 두었어요. 손님들 입장에선 이곳을 카페라 생각했으니 큰 목소리로 떠드는 분도 많았죠.
문을 연 지 20년이 되어가는데, 당시와 지금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음악 감상실로서 기능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손님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기보다 음악 감상에 더 몰입하는 모습이에요. 특히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는 거의 대화가 단절되다시피 했죠. 지금은 그 분위기가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손님들의 연령대가 많이 어려진 것도 변화 중 하나입니다.
음악 감상을 위한 건축은 일반 건축과 다를 것 같습니다. 조병수 건축가에게 카메라타 건축을 맡긴 과정이 궁금합니다. 헤이리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건축가와 건축주의 모임이 있었어요. 서른 명 정도 건축가가 참여하셨고, 저도 음악 감상실 공간을 염두에 두고 있어 모임에 나갔는데, 유일하게 저에게 말을 건 분이 조병수 건축가였어요. “음악 듣는 공간을 만드신다면서요?” 하면서요. 그 후 조병수 건축가가 평창동에 지은 한 예술가의 집을 보러 갔는데 일반 집의 물성과 확연히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부탁드렸죠.
건축 당시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건축가와 어떤 부분에 대해 가장 많은 토론을 거치셨는지요? 저는 건축을 잘 아는 클라이언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음악 감상실을 준비하고 있다. 오디오 시스템과 소장한 LP 규모가 꽤 된다”라고만 말했어요. 반짝반짝한 것보다 때가 타더라도 세월이 묻어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연륜이 있는 창고’같이 친근한 건물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에 가면 공간이 사람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잖아요. 그 말씀을 드렸더니 바로 알아들으시더라고요. 이 건물을 짓고 저는 건축이라는 분야를 예술로서 이렇게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카메라타 건축은 제 인생에서도 큰 계기를 선사한 일이기도 합니다.
음악과 건축, 예술이 담긴 공간입니다. 손님들은 이곳에서 음악을 감상하고,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죠. 선생님은 카메라타를 어떤 공간으로 정의하세요? ‘디지털의 바다에 떠 있는 아날로그로 물든 섬’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디지털이 일상이 된 요즘 세상에 카메라타는 외로운 섬처럼 존재하죠. 건축부터 음악까지 모두 아날로그 스타일이니까요.
카메라타에는 1920~1930년대 미국 극장에서 쓰던 웨스턴 일렉트릭과 독일 히틀러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클랑필름 제품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앤티크 오디오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대단하신데요, 오디오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어릴 때는 집에 제대로 된 라디오 하나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음악을 참 좋아했어요. 방송국에 입사하니 방송국이라는 곳이 음악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는 걸 알겠더군요. 특히 라디오에서 음악은 매우 중요해요. 음악 없이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때우겠어요.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방송이 필요하지만 방송도 음악이 절실하죠. 방송 일을 하면서 점점 오디오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카메라타에 설치된 1920~1930년대 오디오 시스템의 퀄리티는 어느 정도인가요? 사실 카메라타를 처음 열었을 때 찾아오신 손님들에겐 지금 생각하면 매우 미안해요. 앤티크 스피커의 숨겨진 부분에는 구동을 위한 수많은 부품이 있어요. 하나도 빠짐없이 중요한데, 부품을 잘 맞추면 소리가 기가 막히게 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형편없는 소리가 납니다. 초반에는 기술적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었던 만큼 소리가 뭔가 답답했죠. 그러다 물리학 분야에 상당한 지식이 있는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과 함께 공부해가면서 오디오 부품을 조금씩 바꿔나갔어요. 오디오는 부품을 매칭하는 실력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 실력까지 겸비한 분이었죠.
그럼 지금 카메라타의 소리는 많이 나아졌나요? 소리란 관념의 세계여서 단순히 설명하기가 힘들어요. 보통 우리가 오디오로 음악을 듣다가 피아니스트가 직접 나와 연주하는 걸 들으면 오디오가 들려주던 소리에 절망하게 됩니다. 자연적인 소리와 기계의 소리가 그렇게 다릅니다. 그런데 최근 카메라타는 무대에 있는 피아노에서 실제로 연주를 하고, 바로 이어서 오디오로 같은 음악을 재생해도 예전 같은 불만은 생기지 않는 것 같아요. 실제로 연주하는 음에 많이 가까워졌죠. 그걸 위해 10년간 노력했고요.
소리를 구성하는 음조와 음색, 음량 등은 오디오에 따라 각각 다르게 느껴집니다. 일반 사람은 잘 구별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좋은 오디오를 구별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왕도가 따로 없기 때문에 자주 듣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처음엔 나쁜 소리를 듣고도 “굉장히 산뜻한데”라고 이야기했어요. 귀를 훈련시키려면 자주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클래식 음악이나 오디오에 관해 따로 공부하지 않고 들어도 되나요? 하루에 30분만이라도 집중해 듣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자세도 바르게 하고 ‘지금부터 난 이 음악을 제대로 들을 거야’ 하면서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해 듣다 보면 좋은 소리를 구별할 수 있을 거예요.
지금도 직접 DJ를 진행하세요? 문학동네와 함께 이달의 책을 선정해 ‘카메라타의 서재’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제가 진행합니다. 낭독도 하고요. 워너 클래식과 함께 신보 위주로 앨범을 소개하기도 하죠. 제 성격이 약간 충동적이라 그렇게 정해진 일정이 아닐 때도 갑자기 마이크를 잡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손님들도, 아르바이트생들도 매우 좋아하더라고요.
라디오 음악 방송에서처럼 신청곡을 틀어주실 때 나름의 기준이 있으신지요? 기준이 있으면 재미없지 않을까요? 근데 선곡의 이유는 있어요. 오늘 오전에 모차르트를 튼 이유는, 모차르트 음악은 좀 영롱하달까? 분주하던 이른 아침에서 벗어나 살짝 한숨 돌리면서 듣기에 매우 좋죠.
1만5000장 이상의 LP를 소장하고 계십니다. 음악도 대부분 LP로 틀어주시나요? 소장 비율은 LP 70%, CD 30% 정도인데, 동일한 앨범인 경우 LP를 사용합니다. 아주 가끔 꾀부리고 싶을 때는 CD를 사용하긴 합니다. 한번 틀어놓으면 30분 정도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카메라타 같은 공간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음악 애호가가 많습니다. 단골손님도 많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마음에 오래 남은, 인상적인 손님이 있나요? 카메라타도 이제 20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처음 찾던 손님들이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그 아기들이 커서 함께 오는 경우가 있어요. 세월이 참 무섭죠.(웃음) 한번은 조부모님, 부모님, 아이까지 함께 방문해주신 손님이 있었어요. 젊은 할아버지, 할머니셨는데 “우리 애들이 여기서 만나 연애를 시작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벌써 이렇게 컸다”라며 가족을 소개하시더라고요. ‘카메라타가 이렇게 훈훈한 공간이었구나’ 생각했습니다.
5월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면 선생님도 다시 곡을 트시겠죠. 나른한 봄, 오후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들을 만한 곡을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오늘 날씨가 매우 좋은데요, 재즈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미국 작곡가 조지 거슈윈의 음악을 틀고 싶어요. 거슈윈의 작품은 유럽이나 러시아 작곡가와 많이 다릅니다. 유럽 쪽 클래식은 자세도 좀 바르게 앉아 들어야 할 것같이 근엄하지만 거슈윈의 음악은 몸에 힘을 빼고 들어야 할 것 같은 자유로움이 있죠. 오늘 오후엔 거슈윈의 피아노 콘체르토를 들려드릴게요.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