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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6

시대를 넘어선 소통의 예술

우리 주변의 잊혀가는 것을 살피는 임민욱과 장영규의 시선.

임민욱의 ‘스무고개 -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2008).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이 2014년부터 매년 열어온 <타이틀매치>전은 서로 개성이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2017년까지는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원로 작가와 21세기 차세대 작가가 합을 맞췄다. 원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한편, 차세대 작가의 작품을 살핌으로써 시대를 넘어선 소통의 장으로 기능한 것. 2018년부터 방식을 바꿔 연령과 무관하게 작가를 초청하더니, 지난해에는 <타이틀매치>전 최초로 작가와 평론가를 짝지으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전시명에 내재된 경쟁의 담론보다는 대화와 연대, 화합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런 흐름 속에서 10월 13일부터 11월 21일까지 열리는 올해 <타이틀매치>전에는 현대미술 작가 임민욱, 영화음악감독이자 이날치의 리더 장영규가 나선다. 다른 듯 서로 닮은 두 사람의 작품 세계가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 기대를 모은다.







임민욱 작가(왼쪽)와 장영규 감독(오른쪽).

임민욱
1968년 대전 출생. 1988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국립고등조형예술학교에서 공부한 임민욱은 ‘제너럴 지니어스’의 창립 멤버로 활약했고, 2004년 귀국해 ‘피진 콜렉티브’로도 활동했다. 오브제,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수행적 형식을 통해 공동체와 기억의 문제, 근대성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고 있다. 독일 포르티쿠스 미술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프리어/새클러 갤러리, 삼성미술관 플라토, 아트선재센터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장영규
1994년 어어부프로젝트로 한국형 아방가르드 음악을 선보이며 신선한 충격을 안긴 장영규는 국악 프로젝트 그룹 비빙과 씽씽을 이끌었고, 2019년부터 이날치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황해>, <곡성>, <부산행>, <죽여주는 여자> 등 다양한 영화의 음악감독으로도 활약했다. 또 2015년 국립무용단의 <완월>을 시작으로 무용을 연출하고, 2016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사운드 퍼포먼스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장영규가 기획한 사운드 퍼포먼스 ‘사라져가는 목소리들’. 2016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선보였다. @사진 제공 아시아문화원 Photo by ICKHEO





임민욱의 ‘봉긋한 시간’(2020).

전례 없는 역병의 시대에 어떻게 지내시나요?
장영규(이하 장): 해야 할 일이 오히려 늘면서 시간에 쫓기고 있어요. 현장 공연은 무대에서 내려오면 끝이지만, 요새는 모든 일이 온라인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준비, 촬영, 후반 작업까지 챙겨야 할 게 많거든요.
임민욱(이하 임):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코로나19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네요. 작업의 성질이나 규모에 따라 기술적 도움을 받는 등 미술을 ‘프로덕션’해야 할 때가 있거든요. 과거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손그림을 그려 쉽게 의견을 전했지만, 요새는 디지털 매체를 경유해 소통해야 하니 과정이 복잡해졌죠. 매 순간이 도전입니다.

이번 전시가 성사된 배경이 궁금해요. 언제 결정된 건가요?
임: 2019년 미술관 측에서 제의를 받았습니다. 당시 사정이 있어 2년 뒤를 말씀드렸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장영규 감독에겐 제가 같이 하자고 요청했어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지만 아주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순 없어요. 작업자로서 동경하는 부분이 있어, 이번 전시에서 뭔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 이전에도 미술 작업을 했지만, 이렇게 전면에 이름을 걸고 하는 건 처음이에요.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고민하기도 했지만, 임민욱 작가가 용기를 북돋아줘서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타이틀매치’라는 전시명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권투나 레슬링 따위에서 선수권을 걸고 하는 시합’이란 사전적 의미가 다소 도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임: ‘대결’ 혹은 ‘경쟁’의 뉘앙스에 다른 제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제겐 2인전이라는 형식의 의미가 크고요. 장영규 감독과 제가 하나의 주제를 어떻게 풀어내고 의미를 엮어가는지 주목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0월 전시를 위해 작업에 매진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아직 준비 단계라 자세히 물어볼 순 없지만,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장: 전시 주제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임민욱 작가와 저는 ‘사라지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뮤지션 김민기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 중 ‘교대’라는 곡이 힌트처럼 작용하기도 했고요.





임민욱의 ‘솜사탕 내각’(2007).





2013년 일민미술관의 전시 <탁월한 협업자들>에서 장영규가 선보인 음악 아카이브.

‘사라지는 것’이란 말에서 감독님과 작가님의 기존 작업이 연상됩니다. 감독님은 불교음악과 궁중음악을 재해석한 국악 프로젝트 그룹 비빙을 시작으로 씽씽, 이날치를 결성하는 등 전통음악을 지금에 맞게 되살리고 계시죠. 작가님은 도외시된 역사를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하셨고요.
임: 애써 그런 역사를 찾은 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제가 일상에서 갈등을 겪은 일이에요. 그런 사건이 정신적으로 영향을 끼치다 보니 작업을 통한 질문도 자연스럽게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변했거나 사라졌는지, 그 무엇을 끊임없이 사라지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질문하는 거요. 예술은 결국 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역설하기 위한 것 같아요.
장: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가다 보니 어쩌다 전통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제가 들으며 자란 소리와는 질감이 달라 관심이 갔고요. 관련 작업을 하나둘 진행하며 오늘날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어떤 부분이 사라지는 걸 걱정하는지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과 견해가 벌어지는 지점이 생기기도 했죠. 달리 접근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외부자의 시선’으로 전통음악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외부자의 시선요?
장: 전통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데 매몰되지 않으려 해요. 저는 전통이 뭔가 조금씩 남겨진 조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조각 자체에 관심을 두고 ‘이걸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머지 부분은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조각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들기보단, 그걸로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제 역할인 것 같아요.

사라지는 것과 ‘교대’라는 곡은 어떤 연관이 있나요?
임: 장영규 감독과 예전부터 김민기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선생님이 기울인 노력에 예술가로서 공감하는 바가 크고, 얼마 전 장영규 감독이 헌정 음악으로 ‘교대’라는 곡을 녹음할 때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 촬영하기도 했죠. 또 개인적으로 교대라는 단어를 곱씹어보고 있어요. 자연스레 세대‘교체’라는 말의 의미와 견주어, ‘바꾸다’라는 뜻은 뭘까 궁극적으로 더 생각해보고 싶고요. 교체라는 단어에는 사물을 보는 관점과 시간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낡은 부품을 교체하는 것처럼, 기능적으로 시간을 바라보는 것 같은? 이렇게 시간을 선형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돌봄과 순환의 의미가 담긴 교대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상상을 열어주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이 작업으로서 사라지는 것을 다루는 하나의 태도가 아닐까 싶고요.

말씀하신 아이디어를 <타이틀매치>전에서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공간을 미리 살펴보니 1·2층에 걸쳐 규모가 크더라고요. 그 넓은 공간을 어떻게 채울 생각인가요? 감독님은 소리를 재료로 작업하실 듯한데, 400여 평의 전시장을 음악으로만 채운 김소라 작가님의 사운드 퍼포먼스 프로젝트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2016)를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감독님은 그 전시의 소리를 편집하기도 했고요.
장: 여러 가능성을 앞에 두고 고민 중입니다. 작품으로 직접 선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전승 과정에도 호기심이 있어요. 무언가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를 보여줄 수 있으면 흥미로울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파생된 소리를 가지고 시간의 메아리를 만드는 거죠.
임: 서로의 작업이 엉켜 있으면서 공생하는 형태가 될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렸듯 대결보다는 대화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설치한 오브제와 초지향성 스피커가 또 다른 풍경을 발생시키기를 기대해보기도 하고요. 미술 작가와 음악가가 함께 전시를 연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텐데, 일체감보다는 다른 층위의 존재감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임민욱의 ‘절반의 가능성’(2012).





국악 프로젝트 그룹 비빙의 2014년 공연 <피-避-P project>.

두 분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솜사탕 내각’(2007)을 시작으로 ‘스무고개 -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2008), ‘S.O.S – 채택된 불일치’(2009), ‘시네 라디오 버스(비 300 - 워터마크를 찾아서)’(2014), ‘봉긋한 시간’(2020) 등 작가님의 작품에 감독님이 힘을 보탰어요. 또 감독님의 작품 ‘사다라니·향화게’(2013)의 촬영을 작가님이 담당하기도 했고요. 아까 가까운 관계는 아니라고 하셨는데, 사실은 친한 것 아닌가요?(웃음)
임: 대략 IMF 시기 홍대 앞에 살 적부터 알고 지낸거 같아요. 2007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서 솜사탕이 주인공인 설치 작품 ‘솜사탕 내각’을 선보일 때 퍼포먼스도 진행했는데, 장영규 감독에게 음악을 부탁했어요. 당시 장영규 감독이 만드는 소리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서커스 음악처럼 느껴졌고, 달콤하지만 곧 사라지는 솜사탕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장: 사실 그간에 한 일을 ‘협업’이란 말로 묶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협업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같이 걸어가는 거잖아요. 반면 임민욱 작가와 저는 서로에게 원하는 작업적 역할에 충실한 것이니, 굳이 말하면 ‘협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감독님은 기획자로서, 연주자로서, 작곡가로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작업하시잖아요. 원활한 협력 혹은 협업을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장: 결국 서로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각자의 역할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임: 실험적인 접근을 하면서 교감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장영규 감독과 함께 작업할 땐 안정감이 느껴져요. 때로는 그것이 무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남다른 마음의 깊이로 드러나기도 하죠. 그게 장영규 감독이 다양한 분야에서 장르적 구분이나 경계 없이 활약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두 분이 작품 활동을 통해 여러 번 교류한 것이 신기하기도, 또 기적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서로의 예술관에 공감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임: 장영규 감독과 저 사이엔 적당한 틈이 있어요. 이것이 생각의 여지를 주어 교류를 이어갈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꼭 친하지 않아도, 같은 예술관을 공유하지 않아도 교류가 가능합니다. 보통 우리는 논리적 구조나 명확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어떤 일을 설명하려고 하죠. 하지만 무관계도, 비관계도 하나의 관계로 존재할 수 있거든요. 이번 <타이틀매치>전이 같은 감각이나 세계관을 공유하지 않아도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번 <아트나우> 특집의 주제가 ‘MZ세대’인데, 혹시 젊은 예술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임: 동료 작가로 생각할 뿐이에요. MZ세대라는 구분이 낯설고요. 그래서 조언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을 하는 게 두렵게 느껴집니다. 젊은 세대가 지적으로, 윤리적으로 엄청난 능력을 갖췄고 노력과 실천 또한 겸비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오히려 제가 무지하다는 걸 절감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장: 동등한 위치에서 작업하고 있기에 어떤 말을 해주겠다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하나 경험하고 배워가는,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JK(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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