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의 여행하는 손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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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24

박서보의 여행하는 손

박서보는 수행자의 자세로 쓰고 그린다. 그는 쓰는 행위 또한 작가의 행적을 남기는 일이라고 믿는다.

박서보 화백이 오랜 세월 직접 컬렉팅한 몽블랑 만년필 컬렉션과 펜 케이스.

한국 현대미술의 아버지, 단색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박서보의 또 다른 별칭은 ‘수행자’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그의 한지 작업은 ‘한국 단색화’에 대한 거장의 철학과 이념을 노동집약적 행위를 통해 완성한 것이다. 서양의 다색주의와 무관하게 자연에 가까운 색에 다가간 박서보 고유의 단색화는 무한에 가깝게 반복된 행위가 만들어낸 물성을 통해 작가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이를 “수없이 반복하는 행위를 통한 수신(修身)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예술이라는 불확실의 영역에서 이미 오래전 자신의 것을 확립하고, 긴 시간에 걸쳐 깊이 뿌리내린 거장은 인터뷰 자리에서 스스로를 아직도 “부족함도 넘침도 너무 많은 사람. 그런 자신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한낱 인간”이라 느낀다는 믿을 수 없는 고백을 털어놓기도 했다. 덧붙여 “그렇기 때문에 도를 닦는 마음으로 수신하며 나라는 존재를 다듬어가고 있다”며 반복되는 작업 과정을 통해 자신을 비우고 작품을 완성해나간다고 했다. 그의 일상 역시 그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충직한 수행자답게 매일 하루를 돌아보고 기록하는 박서보의 일상은 그의 작업 방식과 그 형태가 닮아 있다.
작가가 아닌 몽블랑 컬렉터로서 박서보 화백을 만나며, 그의 작업과 삶의 방식이 이와 어떻게 엮일 수 있을지 염려가 앞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지팡이에 의지해 무겁게 발걸음을 떼며 다가오던 아흔의 노장은 종이와 펜이 놓인 테이블에 앉는 순간 자세를 꼿꼿이 하며 눈을 빛냈다. 거장의 위엄이 서린 엄격한 얼굴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된 사람의 표정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가 1970년대부터 모아온 몽블랑 컬렉션이 들어 있는 커다란 펜 케이스가 놓여 있었다. 얼핏 봐도 스무 자루가 넘는 그의 몽블랑 컬렉션은 가까운 이들이 아니면 쉬이 접할 수조차 없는, 오랜 세월에 걸쳐 수집해온 귀한 보물이었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금장의 자그마한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이게 내가 처음 산 몽블랑 만년필이에요. 1970년대에 산 펜이지.” 그와 몽블랑의 첫 인연은 프랑스로 가던 중 경유한 알레스카 공항에서 맺어졌다.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남아 들른 몽블랑 매장에서 금장의 만년필을 보자마자 ‘가격이 얼마든 반드시 사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충직할 정도로 몽블랑에 대한 애정을 키우고 지켜왔다. 수십 자루의 만년필 컬렉션이 있지만, 그중에서 몽블랑이 아닌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어째서 몽블랑이어야 했을까? 화백에게 묻자 “시각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는 몽블랑의 정체성이 좋아요. 만년필 캡에 있는 스노우 로고를 통해 그 정체성이 한눈에 드러나는 점이요. 사람이든 사물이든 정체성이 느껴지고 개성이 드러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든요. 매년 새로운 에디션이 나오는데, 각 에디션마다 디자인에서 스토리가 드러나는 디테일도 몽블랑에 빠지게 된 이유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서보는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미술계에서 손에 꼽는 ‘패셔니스타’다. 만년필 한 자루를 고를 때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에게 ‘멋’이란 어떤 의미인지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매우 중요하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사용할 때 오는 심리적 즐거움이 나를 위로하니까.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의 만년필을 손에 쥐고 글을 쓰는 동안은 설명하기 힘든 위안을 받아요. 단지 ‘쓰는 노동’을 하는 시간이 아닌 거죠. 그 순간에는 만년필이 위안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 이유라면 디자인이 아름다우면서 편리하고 가벼운 볼펜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화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볼펜은 볼이 둥글어서 긁히는 맛이 없어요. 중요한 메시지를 남기거나 편지를 쓸 때 반드시 만년필을 사용하는 이유죠. 닙이 종이를 긁으면서 남긴 획이 쓴 사람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법이거든. 글씨를 통해서도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거지. 그래서 중요한 서류에는 반드시 만년필을 써요.” 실제로 한 전시에서 갑자기 사인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을 때 볼펜으로 사인을 남기고 싶지 않아 일행과 함께 근처 백화점과 대형 서점의 몽블랑 매장을 뒤졌다는 에피소드는 그의 지인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박서보 화백은 매일 밤 잠들기 전 일기장을 편다. 붓을 손에서 놓는 순간 펜을 쥐는 것이다. 일기장에는 그날 만난 인물들과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적는다. 사진 같은 기억력을 자랑하는 편이지만, 기억력을 맹신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한 일기 쓰는 습관이 40년 넘게 이어져왔다. 잠이 쉬이 오지 않는 날 밤이면 다시 노트를 펼쳐 디테일한 기억을 적어 내려간다. 밤이 긴 날에는 그가 소유한 다양한 컬러의 잉크를 고루 사용해서 형형색색으로 노트를 채운다. “기록을 통해 나의 흔적을 남겨두는 거지. 소일거리처럼. 몸이 움직이는 한 무엇이라도 해서 내 행위를 남겨두려고 해요.”
젊은 날 국전을 반대하며 미술계의 반항아로 낙인찍힌 화가는 이제 ‘소일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자신의 노트를 색색의 잉크로 채운다. 이 행위는 그에게 작은 일탈이자 자유의 표현이다. “나는 9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림이 즐겁다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과거에는 시대와 맞서 투쟁도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를 못 느껴요. 예전에는 1000호 캔버스를 작업대를 타고 채웠지만 지금은 100호, 200호를 채울 때에도 삼발이 지팡이를 짚고 단에 올라가 서서 작업하죠. 지금의 내게 맞는 예술은 내 몸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예술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기록하며 사는 거죠. 이제야 비로소 자유롭달까.”

 

에디터 남미영(denice.n@noblesse.com)
사진 김경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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